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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28. 00:30 미술 이야기

오늘은 어제 고갱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잠시 나온 '전원 풍경화 (Pastoral Landscape)'에 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티치아노 (이전 조르조네), 전원교향곡 (c. 1509), oil on canvas ; 105 x 137 cm, Musée du Louvre, Paris 


티치아노 (이전 조르조네), 잠자는 비너스 (일명 드레스덴 비너스) (c.1510), oil on canvas ; 108.5 x 175 cm,  Gemäldegalerie Alte Meister, Dresden


위의 두 작품은 모두 조르조네 작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연구들에서는 실은 조르조네의 뛰어난 수제자이자 베니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거장 티치아노에 의해 그려졌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위의 작품은 <전원 교향곡>, 불어로는 Fête champêtre 영어로는 Pastoral Concert 라고 알려진 작품인데, 오늘 살펴볼 '전원 풍경화'라는 장르의 대표적 작품이다.  또 그 변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잠자는 비너스>는 소장처의 이름을 따서 일명 <드레스덴 비너스>라고 불리는데, 역시 전원 풍경화에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상이 결합된 형태이다.  이 작품은 '누워있는 비너스'라는 서양미술에서의 널리 알려진 도상 중 최초의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안빈낙도' 정도 될까? 고대부터 문인들과 귀족들 사이에서 소위 '전원시' 혹은 '목가'로 번역될 수 있는 'Pastoral poetry'라는 장르는 존재해왔다. 번잡한 도회에서의 생활일랑 벗어버리고, '청산에 살으리랏다'의 서양 버전, 양이나 치면서 자연과 벗하고 시나 짓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는 회화에서는 '전원 풍경화 (Pastoral Landscape)'이라는 장르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맨 위의 작품, 티치아노의 <전원 교향곡>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티치아노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스승에 대한 추모 작품이라고 한다. 그림속의 두 청년은 티치아노와 조르조네, 즉 옷을 세련되게 잘 입고 계신 분이 스승인 조르조네를 그린 것이고, 더벅머리 시골 총각은 자신 티치아노를 묘사한 것이라고.  누드의 두 여인에 대해서 두 남성이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뮤즈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누드로 앞에서 왔다갔다하는데, 저렇게 남자 둘이서 얘기하고 여성들에게 눈길조차 안돌린다는 건 좀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  

그 해석의 근거로는 최근 세상을 떠난 조르조네가 들고 있는 루트의 현이 없게 그려진것 (그는 이젠 더이상 창조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의미), 또한 뮤즈 중 한명이 물병의 물을 다시 우물 속에 되돌리고 있는 것 (이는 조르조네의 뮤즈로 조르조네가 더이상 창조의 샘에서 물을 길어낼 수도 없는 상태이므로)

이처럼 의미가 풍부한 작품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도상은 '전원 풍경화'의 전형이다. '시골 가서 양이나 치면서 풍월을 읊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도시 귀족들의 로망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우리로 치면, 다 때려치고 시골가서 농사'나' 짓고 살고 싶다라는 맘에 해당하는 것이리라.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의 유유자적하게 근심걱정없이 지내는 단조로운 삶을 그린 것이 '전원 풍경화'이고, 이러한 작품들은 대개 귀족들의 서재에 걸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한 자연 속에 사는 것을 꿈꾸는 남성 귀족들의 로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주문되고 제작되어온 장르가 <전원 풍경화>이다.  여기에 아름다운 미녀가 있으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잠자는 비너스>는 그러한 로망을 충족시킨 그림이다. 

어제 고갱의 그림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전원 풍경화>의 변주라고 할 수 있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 속에서 세상의 치열한 경쟁과 권력에의 암투 이런 것 없이 단순하고 소박하게 평화롭게 사는 삶.  그러한 로망은 21세기를 사는 많은 이들에게도 유효한 것같아 보인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7. 01:30 미술 이야기

세상을 보는 시각은 여러가지다.  여기서 그 다양한 시각에 대해서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크게 줌인한 시각과 줌아웃한 시각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친구들끼리 모였을때, '얘는 어머님이 전라도 분이시라 음식맛이 좋다'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갱상도 사나이의 '으리'도 자주 하는 말이다.  이 밖에도 충청도 출신인 사람들은 느긋하다거나, 뭐 그 밖에도 각 지방에 대한 선입견 내지 편견을 포함한 평가는 한국 사람이라면 거기에 동의를 하든 안하든 들어보긴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거기에 반해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냥 '미국 사람' '일본 사람'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한다. 

다른 곳은 잘 모르지만, 일단 미국은 그 크기로 말하자면 남한의 백 배는 족히 되는 크기의 땅인데, 그리고 그 속에 얼마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우리는 그냥 '미국 사람들은...'이라고 특징을 지워 이야기 하곤 한다. 

참고: 

남한의 면적=9만 9538㎢
북한의 면적=12만 2762㎢
미국의 면적=951만 8323㎢
참고로 시카고 북쪽에 있는 오대호의 크기를 합하면 24만5000㎢이고, 

그 중 가장 큰 슈페리어 호 같은 경우만 해도 8만㎢이다. 

즉, 미국 면적의 크기는 
남한에 비해 105배의 크기
북한에 비해 79~80배의 크기
한반도를 합한 면적의 44배의 크기

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또 다르다.  뉴욕을 방문했다가 그 다음 행선지가 LA라고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내 평생 LA를 가본 적은 없지만, LA 사람들은 이렇다며?'라고 물어본다. 그리고 LA를 방문한 뒤, 다시 뉴욕으로 돌아갈 날짜가 언제다라고 이야기하면, '나는 한번도 뉴욕을 가본적은 없지만...'이라는 이야기를 꼭 하곤 했다. 그 뿐 아니다. Texas 사람들은... Midwest 사람들은.... 이렇게 각각 다른 지방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인상과 고정관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때에는 '한국에 가면 다 "미국 사람들"인데...'라고 생각하면서 재밌다고만 생각했었다.  

원체 미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좀 식견이 있다는 사람들도 한국과 중국, 일본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위치가 다르다는 정도는 알아도, 결국 한국은 그냥 '극동' 내지 '동양'이라는 큰 범주에 묶인다.  '미국인들'이 본국 이외의 지역에 대해 알려고 하는 노력이 부족하기도 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에 대해서 세분해서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생각해봤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린 결론은 결국은 본인에게 가까운 것에 대해서는 세분해서 살펴보고 이해하고, 자신과 먼 것일 수록 개략적으로 이해하는 인간의 본성 탓이라는 것이다. 내가 명명해보자면, '줌인과 줌아웃 법칙'인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차이들이 도드라져 보이고 멀리서 보면 공통점들이 잘 보이는 것이다. 이는 미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미술사에서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이야기 할 때, 플로렌스 (피렌체)와 베니스 (베네치아)의 미술을 선과 색으로 대비하여 설명한다. 즉, 피렌체는 색보다는 '선'을 중시하는 미술이라 소묘의 기법이 뛰어난 작가들이 많고, 베네치아의 미술은 선보다는 '색'을 중시하는 미술이라 다른 지역에 비교해서 탁월한 색상이 특징인 작가들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MICHELANGELO (1475-1564)'Ignudi detail from the Sistine Chapel Ceiling', c.1508-12 (fresco) - 선을 중시한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대변하는 작가,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천장화를 위한 수많은 드로잉 중 하나 ; 오른쪽은 완성된 모습

Titian, Bacchus and Ariadne (1520-23), The National Gallery, London  색을 중시하는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 티치아노

그러나, 이것은 줌인했을 때의 시각이고, 줌아웃해서 북유럽르네상스 (이탈리아보다 북쪽의 유럽국가, 플랑드르 지방 등)과 함께 비교해보면, 세부의 디테일을 중시하는 북쪽지방의 예술에 비해 이탈리아 미술 전반이 소묘, 즉 디세뇨 (disegno)를 중시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북유럽르네상스를 설명할 때에는 이탈리아 미술전반에 대한 특징을 다시금 언급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Jan van Eyck,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Portrait  (1434)oil on oak panel of 3 vertical boards 82.2 ×60 cm, National Gallery, London

이는 동서양 미술의 특징을 논할 때가 되면 다시 달라진다. 북유럽과 이탈리아 할 것 없이 그냥 '서양미술'.... 이처럼 우리는 줌인해서 관찰할 때와 줌아웃해서 관찰할 때의 자세가 달라지고 따라서 도출되는 결과도 달라진다.  

요는 줌인해서 보는 세상과 줌아웃해서 보는 세상이 많이 다르다는 것. 평소에는 아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세상을 가끔은 줌아웃해서 보는 것도 신선한 시각을 유지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  좀 논의가 달라지긴 하지만, 내 인생이기 때문에 가깝게 들여다보고 자세히 보이는 내 삶의 문제들도 때로는 줌아웃해서 보면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닐때도 있다는 점. 그리고 의외로 쉬운 해결책이 보이기도 한다는 것.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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