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Caspar David Friedrich' 태그의 글 목록
2019. 4. 23. 01:14 미술 이야기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7. 08:00 미술 이야기

이번에는 한 남자가 안개로 자욱한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다.  

저번의 작품이 '실내'의 '여인'이라면 이번에는 '거친 자연'속의 '남성'이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등을 보이며 서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이다.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c.1817),  oil on canvas ; 98 x 74 cm, Kunsthalle Hamburg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는 “뒷모습의 인물 (Rückenfigur, 혹은 figure from the back)"이라는 용어를 유행시킬 정도로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자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인물을 많이 그렸다.  이 '뒷모습의 인물'들은 관람객이 그림 속의 인물들과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지극히 감상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품은 이러한 장치를 통해 그 뒷모습의 인물들과 함께 자연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게 만들고 있다. 

 

그의 작품은 소위 알레고리 풍경화인데, 밤 하늘이나, 안개낀 아침, 헐벗은 나무나 고딕 풍의 폐허를 바라보는 사색적인 인물이 주를 이룬다. 그의 이러한 상징적인 그림은 보는 이로하여금 감상적인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데, 이는 고전주의적 화풍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거대한 대 자연 속의 미미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다름 아닌 신 앞에서 작은 존재로서의 인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장대한 자연으로 드러나는 신의 존재를 그린 그의 그림의 크기는 실제로 접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작은 크기이다.  (실제로 아주 작다기 보다는 그 이미지의 규모에 비해 작게 느껴진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추상표현주의를 필두로 대작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에 더욱 더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고.)  

 

Caspar David Friedrich, Monk by the Sea (1808-1810)  oil on canvas ; 1.1 x 1.72 m, Alte Nationalgalerie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바닷가의 승려 (Monk by the Sea)'라는 작품은 아주 작은 작품은 아니지만, 소위 대작이라고 하는 큰 캔버스에 작품과 비교하면 그리 큰 크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자연을 마주하고 겸허한 태도로 신에 대한 명상을 하는 승려의 모습은 'size'가 아닌 'scale'면에서는 이를 능가하는 작품이 드물정도이다. 

 

Seashore by Moonlight (1835–36). 134 × 169 cm. Kunsthalle, Hamburg

 

1835년 처음 뇌졸증으로 쓰러진 이후, 그는 작품활동을 계속 할 수 없었다. 위의 작품은 그가 남긴 마지막 대작이라고 알려진 그림이다.  달빛을 받으며 항해에서 돌아오는 모습은 그의 인생을 마감하는 시점에 그려져 그 의미가 남다르다.  낭만주의가 유행하던 한 시기를 풍미했던 화가는 이후 낭만주의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미술계에서 잊혀져 친구들의 온정에 기대어 생활하며 쓸쓸하게 인생을 마쳤다.  그의 명성은 표현주의자들이나 상징주의자들에게 그의 작품세계를 재평가 받으며 부활되는 듯 했으나, 나치가 좋아했던 작품으로 낙인 찍히면서 두번째의 몰락이라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이 재평가 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나 되서야 되서 였다.  그야말로, 그의 작품 인생은 독일 낭만주의의 모토 처럼 '질풍 노도의 시대'와도 같은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의 작품을 통해서는 격정적 감정보다는 고요한 명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작품 철학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I have to stay alone in order to fully contemplate and feel nature. The painter should paint not only what he has in front of him, but also what he sees inside himself.” —Caspar David Friedrich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6. 03:44 미술 이야기

한 여인이 두손을 다소곳이 앞으로 모은 채, 고개만 내밀어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Caspar David Friedrich, Woman by a Window (1822) oil on canvas ; 44 × 37 cm, Alte Nationalgalerie, Berlin


젊은 여인이 서있는 곳은 독일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의 드레스덴에 있던 스튜디오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카홀리느 (Caroline), 화가의 아내이다. 그녀는 남편의 스튜디오 창 밖으로 보이는 엘브 강과 그 위를 지나는 배를 바라보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여린 푸른 빛의  포플러 나무들로 보아, 때는 바야흐로 북구의 긴 겨울을 나고 맞이하는 봄이다. 

강한 수직선으로 이뤄진 그녀를 둘러 싼 모든 환경과 배경과 그녀의 몸과 드레스가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곡선의 대조는 그녀의 심리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 먼저, 강한 수직이 주를 이루는 실내의 구조를 보라!  창틀에서 마루바닥에 이르기까지 실내에는 수직선이 위주를 이룬다.  특히, 그녀의 양쪽에 내려오고 있는 창 옆의 두 기둥은 그녀를 속박하고 있는 듯하고, 곧게 뻗은 배의 마스트, 저 멀리 보이는 곧게 뻗은 포플러 나무들, 모든 것이 수직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둥글게 말아올린 머리, 그녀의 작고 둥근 어깨, 주름이 잔뜩 들어간 그녀의 드레스... 이 모든 것은 그녀를 둘러싼 수직의 세계와는 상반된 것으로 보인다. 제한된 자유 속에서 그녀는 외부 세계를 동경하며 그녀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잔뜩 내비치고 있다.  

한편, 그녀의 모습과 실내의 모습, 그리고 어두운 실내와 찬란한 태양이 비치는 외부의 풍경에서 이중적인 태도와 분위기도 읽을 수 있다. 실내광이 따뜻하게 채워진 집 안에서 아늑해 보이는 드레스를 입고, 두손은 마주 모으고, 동그랗게 만 몸은 창 쪽으로 기울이고 고개는 길게 창 밖쪽으로 빼고 서있는 그녀의 뒷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안락한 집안에서 벗어날 용기는 없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집 앞 수로 앞을 지나는 배가 이끌어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여인의 심정이 잘 드러난다.  

그녀의 호기심이 집안의 안락함과 편안함을 이기게 될 때, 그녀는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 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서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녀는 잠시 후, 한차례의 꿈을 꾼 듯 멋진 세계에의 상상을 접고 조용한 일상으로 복귀할지도....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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