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2019/03/22 글 목록
2019. 3. 22. 23:52 일상 이야기

한때 '알쓸신잡'이라고 '알면 쓸데없는~' 이라는 프로가 있었다. '옥탑방 문제아들'이라는 프로그램도 그렇다. 옥탑방에 모인 연애인들이 '알면 쓸데없는' 질문 10개를 다 맞추어야만 귀가할 수 있다는 룰 아래 퀴즈 푸는 프로그램이다. 말만 들어선 그러려니 할텐데, 요새 이 프로가 재밌다. 솔직히 거기서 나오는 질문들이 다 그게 질문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전혀 궁금하지도 않고, 사는데 지장도 없는 그런 질문들이다. 그런데 막상 질문으로 나오고 나면 그렇게 또 답이 궁금하다. 

미술에 대한 문제도 가끔 나오는데, 사실 진위여부는 확실하지가 않아 보이는 것도 있다. 최근 '옥탑방 문제아들'에 나온 문제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문제인 즉슨, 레오나르도가 <최후의 만찬>을 제작하는데 무려 2년 6개월이 걸렸는데, 그 중 2년 3개월은 '이것'에 소비를 했고, 채색하는 데에는 3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해답은 레오나르도가 워낙 미식가라 탁자에 올려 둘 음식의 내용을 궁리하는데 2년 3개월을 보냈다는 것. 그 설명의 내용 중, 레오나르도가 얼마나 음식에 관심이 많았냐면, 그가 또다른 르네상스의 유명 화가 '보티첼리'가 함께 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레오나르도 (1452-1519)는 왠지 밀라노와 프랑스의 궁정을 오가며 비단옷 입고 귀족들하고 노닐었을 것 같고, 보티첼리 (1445-1510)는 메디치 궁에서 지내고 있었을 것 같았는데. 설마...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야사를 다룬 사이트에서 실제로 1470년경  레오나르도나 보티첼리나 아직 베로키오의 도제시절, 용돈이 궁해서 인근 여인숙에서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했다한다. 그러다 의기투합해서 짧은 시간 "개구리 세마리 (Tre Rane)"라는 여인숙을 경영했다고 나왔다.  예전엔 레스토랑이라기 보다는 숙박업에 겸해서 음식을 파는 곳이 많았으니 '음식점을 운영했다'라는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하지만, 과연 레오나르도가 정말  그 <최후의 만찬> 식탁에 올릴 음식의 내용을 궁리하느라 2년 3개월을 보냈을까? 개인적으로는 좀 회의적이다. 

Leonardo da Vinci, Last Supper (1495-98) tempera on gesso, pitch and mastic Convent of Santa Maria delle Grazie, Milan


위의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레오나르도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는 진수성찬은 그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에서도 '빵'을 예수 그리스도의 '살'이요, '포도주'를 그의 '피'로 여기라고만 나와있지, 예수와 그의 12 제자들이 상다리 휘어지게 만찬을 즐겼다는 얘기는 없다. 그렇다고 레오나르도가 2년 3개월을 고민하며 보냈다는 말이 그냥 마냥 뻥같지는 않다. 아마도 그 시간 동안 다른 수많은 프로젝트 (하늘 나는 날개 설계하랴, 무기 설계하랴, 흐르는 냇물이랑 동물들 관찰까지...그리고 짬짬히 시체해부까지, 그는 정말 하는 일이 많았다.)를 하면서 이 작품의 구도를 고안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우리는 워낙 레오나르도의 이 작품에 익숙해져서, 마치 원래부터 <최후의 만찬> 장면은 이랬을것만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느 누구하나 실제로 이분들 모여 식사하는 것 본 사람없고, 성서에도 예수와 제자들의 식사 장면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지 않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화가의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Andrea del Castagno, Last Supper (1447) tempera on plaster (Sant'Apollonia, Florence) 

일례로 위의 작품은 초기 르네상스의 작가가 그린 최후의 만찬 장면이다. 여기서는 귀중한 분들이 식사하는 장면에 적합하게 대리석에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멋진 실내에 그리스 스핑크스 조각까지 있는 식탁과 의자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소중한 분들의 모습이 행여 가릴까 겹치지 않게 일렬로 배열하고, 배반을 한 나쁜 유다는 한 테이블에 앉히긴 괘씸하니까 테이블 반대편에 앉히기로 했다. 

이에 반해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에서는 실내와 가구를 최대한 단순화해서 인물들의 다이나믹한 심리상태에만 집중하였다.  예수님에 모든 관심이 다 쏠릴 수 있게 일점 원근법의 중심에 그를 배치시키고, 그의 자세를 통해 삼각형 형태를 이루며 안정된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식탁에는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와인잔 이외에는 보이질 않는다. 

과연 이 장면은 어떤 장면일까하는 것은 아직까지 논란 중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빵과 포도주를 나눠 장면이라기 보다는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라는 말을 한 직후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놀라운 폭탄 선언 후, 스승에 대한 애정과 염려, 그리고 충격과 공포, 분노 등으로 동요하는 제자들의 모습의 한 순간을 포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온한 그리스도의 모습과 대조되는 제자들의 감정의 소용돌이 속의 드라마가 탄생한 것이다.  반응들도 제각각이다. 오른쪽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전 아니죠?'하며 한 손으로 자신을 가르키고 있는 필립이다. 예수의 오른쪽에는 사도 요한이 눈을 감은 채 몸을 한쪽으로 기대고 있는데, 이는 도상적 표현이다. (다빈치 코드에서는 이 요한이 요한이 아니라 막달렌 마리아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Leonardo da Vinci, Last Supper (1495-98) (세부) tempera on gesso, pitch and mastic Convent of Santa Maria delle Grazie, Milan 


왼쪽의 두번째 그룹은 좀더 격렬한 감정과 심리상태가 드러난다. '대체 그 놈이 누굽니까? 아주 경을 쳐놓을테니 알려만 주십시요' 하는 듯한 베드로 (심지어 나중에 예수를 잡으러 온 군인의 귀를 자르는 행위를 암시하며 칼까지 들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뜨끔해서 밀고의 댓가로 받은 은화 주머니를 쥐고 있는 유다가 예수와 같은 접시를 집으려다 멈칫하고 있다. 또 나중에 예수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며 확인하는 토마스는 그 중요한 행동을 할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정녕 그게 하늘의 뜻입니까요?' 하고 있기도 하다.  제자들이 제각각 표현해내는 감정의 동요는 파도같은 모습의 제자들의 움직임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움직임은 식탁 저편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 식탁을 경계로 신성한 이들의 모임과 그것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이 구분지어져 있다.   

전체적인 구도의 면에서나 개별 인물들의 심리묘사 또 그들의 군집을 통해 드러나는 형식적 조화와 상징의 표현 등을 신경 쓰며 배치를 하기엔 2년 3개월도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 말고도 레오나르도는 항상 바빴다.)  식탁의 메뉴만 신경을 쓰면서 2년 3개월을 썼다는 '옥탑방의 문제아들'의 해답은 따라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웃자고 만든 오락 프로그램의 퀴즈에 너무 죽자고 달려든 것인지 모르지만, 오해는 마시라. 난 지금 너무 재미있어 하면서 문제를 푼 것이다.  난 이 프로그램이 조기 종영되거나 개편 때 소리소문 없이 없어지지 않고 오래 계속 되었음 바라는 사람 중 하나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3. 22. 00:08 미술 이야기

지지난주였던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때, 창 밖이 온통 뿌옇게만 보이고, 평소 날 맑을 때 잘만 보이던 산과 한강, 그리고 근처 건물들까지 레오나르도 풍경화 속 스푸마토 효과 최고조일때, 창을 닫고 있어 그 공기를 마시는 것은 아니었는데도 숨이 턱턱 막혔다. 

SF나 공상미래 영화에서 미래는 항상 그렇게 그려졌다. 돈많은 부자들은 아예 다른 행성으로 이사가거나, 아니면 첨단 공기 정화 시스템, 인공 태양 빵빵하게 작동되는 인공 도시 속에 살고, 빈민들은 모두 공기 저렇게 뿌옇고 건물들 다 무너져가는 폐허 속에서 살고 있었다. 바깥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박탈감과 위기감이 극에 달하던 주가 지나고, 다시 푸른 하늘을 다시 봤을 때의 감격이란!  늘 있어 감사함을 잊고 지내는 것을 공기에 빗대는 말은 이제는 고어가 되었다.  정말 공기의 중요함이 뼈저린 시간. 안그래도 짧아지는 봄날이 더욱더 소중해지는 순간.  

오지호, <남향집> (1939) 캔버스에 유화, 80.5 x 60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봄날의 따스한 햇빛을 이보다 잘 표현한 작가가 또 있을까 싶은 작품 하나를 소개한다. 우리나라 근대회화의 선구자 중 하나로 잘 알려진 오지호 화백의 <남향집>이라는 작품이다. 해방 전후로 개성에 살던 집을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그림 속 빨간 옷을 입은 소녀는 화가의 둘째따님이라고. 얼굴이 보이지 않으나 귀엽게 생겼음이 분명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버지의 애정이 담겨 있어서일까?  마당에서 늘어져 낮잠을 자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과 함께 이를데 없이 평화롭고 따뜻한 일상의 단면을 보여준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양화계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그는 동경미술학교의 유학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인상주의에 대해서 알게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의 빛과 어둠, 일광의 효과에 대한 관심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토담과 초가 지붕 위로 드리워진 나무의 그림자는 검정 혹은 회색이 아닌 보랏빛이 감도는 푸른색이다.  <남향집>에서는 그 푸른색이 지붕 너머 푸른 하늘과 맞닿으면서 청명한 공기와 따뜻하게 내려쬐는 햇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인상주의의 대표작격으로 알려져 왔었는데, 최근 이 작품이 그려진 제작년도를 1960년대로 주장하는 연구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그의 후기 작품은 필치가 좀더 빠르고 붓자국이 좀더 거칠다고 느꼈는데, 좀 의외였다. 거기에 대한 판단은 유보해둔 상태에서,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화가 오지호가 인상주의의 색과 빛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깊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프랑스산 인상주의를 성공적으로 '한국화'했다는 것에 대한 평가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다행히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 중이므로  언제 기회가 된다면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블로그가 전시 소개 블로그라고 하기엔 다소 뒷북 소개가 되어 면목이 없긴 한데, 현재 그 이 작품이 현재 전시되는지 아닌지는 나도 아직 가보지 못해서 모르긴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소장품전: 근대를 수놓은 그림 展>>을 열고 있다. 소장품 위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깜짝 놀랄만한 작품은 없을지 모르나, 우리나라 근대 미술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괜찮은 전시일 것 같다.  시작은 작년 여름부터 했는데, 다행히 올해 5월 12일까지 전시를 한다고 하니 한번쯤 봄나들이 나간 김에 전시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소장품 위주의 연대순으로 정리한 전시라서, 무난히 연대순으로, 아래와 같이 세 부분으로 구획되어 전시되는 듯하니 참고로 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 외국에서 새로운 미술 양식 유입  한국 미술 전환기 (1900~1920)

  • 개성적인 양식과 독창적인 예술정신 표출 (1930~1940년대)

  • 고난과 좌절의 극복, 예술로 그린 희망 (1950~1960년대)


봄날이 다가기 전에, 또다시 미세먼지들이 습격해와서, 디스토피아적 영화의 흙먼지 같은 공기 속 폐허 같아지기 전에 찬란한 봄과 꽃과 새순들의 향연을 만끽하러 가봐야겠다. 그리고, 한국근대미술 복습도 해봐야겠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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