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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9. 22. 06:33 미술 이야기

걸작이라는 이유로 작품을 평소에 공개하지 않고 커튼으로 막아놓은 작품이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 맺은 글, 다시 시작해본다. 


본격적으로 검색에 착수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실제로 그 안트워프의 성모대성당이 그러했다고 알게 되었다. 


김새는 일이다. 


물론, 회화와 커튼은 오랜 인연이 있다.  널리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 Zeuxis 가 파라시우스Parrhasius 와의 경쟁 에피소드부터 존재한다. 그 얘기에 따르면, 둘이 그림을 하나씩 그려와서 서로 실력을 겨뤄보자며 한 자리에 모인다. 제욱시스가 그린 포도의 그림은 너무도 생생하고 진짜 같아서, 새들이 몰려와 그 포도를 쪼아먹으려다가 다 부딪혀 떨어지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의기양양 제욱시스가 '자, 이제 당신 그림을 보여주시지...그 커튼을 거두어보란 말이다~~'라고 하자, 파라시우스가 씨익 웃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 커튼이야말로 그가 그린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제욱시스는 '인정!! You Win!!' 외치게 되는데...  쿨한 제욱시스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그림은 새들의 눈을 속였지만, 파라시우스는 바로 '자신'의 눈을 속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누가누가 더 잘그리냐의 문제는 전문용어로 '눈속임 (trompe l'oeil)'의 기법에 관한 것을 의미한다. 즉 누가 더 진짜같이 잘 그리냐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커튼을 그려넣은 화가들도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덴마크 출신의 코넬리스 노베터스 기스브레히트 (Cornelis Norbertus Gijsbrechts (ca. 1630-ca.1675)라는 어려운 발음의,  잘 안알려진 화가의 작품이 그 예이다.  


Cornelis Norbertus Gijsbrechts, Trompe l'oeil. Board Partition with Letter Rack and Music Book (1668), oil on canvas ;123.5 × 107 cm, Statens Museum for Kunst 


그리고 보다 유명한 화가로는 베르메르 (요새 표기로 하면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있는데, 그의 얼마 되지 않는 작품 47점 중 7점에 커튼이 그려져 있다. 


Johannes Vermeer, Girl Reading a Letter by an Open Window (ca. 1659)

베르메르는 커튼을 자주 이용해서, 이 작품을 포함해 총 7점에 커튼이 등장한다고.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커튼을 자주 이용한다.  그의 경우, 눈에 보이는 것과 안보이는 것, 현실과 진실 사이에 대한 질문을 하는 화가로 유명하기에 왜 그가 커튼을 자주 쓰는지 이해가 된다. 


René Magritte, The Human Condition (1933)

oil on canvas ; 100 x 81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하지만, 이들은 모두 그림안의 커튼들 이야기이다. 


그런데, 찾아보면, 실제로 커튼을 치고 입장료 내지는 구경하는 값을 낸 사람에게만 그림을 보여주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미국 최초의 자생적 화파로 알려진 허드슨 강 화파 (Hudson River School)의 대표자 격이라고 할수 있는 프레드릭 에드윈 처치 (Frederic Edwin Church: 1826-1900)이다.


그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초기 이민자의 자손으로, 부유한 은세공사이자 시계제조자 집안의 자손으로 일찌감치부터 그림을 공부했던 인물이다. 그는 여러차례 미국 대륙은 물론 극지방을 탐험하여 그 곳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 유명해졌는데, 대표적 작품이 <안데스의 중심>, <빙하>, <나이아가라 폭포> 등이 있다.  


Frederic Edwin Church, Niagara (1857), oil on canvas ; 101.6 x 229.9 cm, Corcoran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Frederic Edwin Church (1826-1900), The Heart of the Andes (1859)

oil on canvas ; 168 x 302.9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Frederic Edwin Church, The Icebergs (1861), oil on canvas ; 163.8 x 285.8 cm, Dallas Museum of Art


그 중에서도 <빙하 (The Icebergs)>는 그의 탁월한 역량을 과시하는 역작일 뿐 아니라, 그 전시 방법에 있어서의 영리한 마케팅 전략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신이 직접 1859년 한 달간의 탐험한 북극지방을 묘사한 작품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선명한 색상, 매끈하면서도 광택이 나는 화면, 만지면 차가울것만 같은 생생한 빙하의 표현은 보는 이의 맘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처치는 무려  100점이 넘는 사생 스케치를 바탕으로 탐험 경험자들의 생생한 기록들을 읽으며 키운 그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뉴욕 스튜디오에서 위의 <빙하>라는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미국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던 1861년 뉴욕과 보스턴에서 전시되었고, 열광적인 호평을 이끌어내었다. 하지만, 전쟁때문에 구매자를 찾을 수 없었던 처치는 결단을 내려, 1863년 런던으로 건너가 <나이아가라>와 <안데스의 중심>과 함께 그곳에서 이 작품을 전시하였다.  이 때, 처치는 이 <빙하>만은 따로 화려하게 장식된 방안에 별도로 전시를 하면서, 캔버스 앞에 커튼을 장치하였다. 그 작품을 보고자 하는 관람객은 25센트를 내야만 했고, 돈을 낸 관람객은 작품 해설이 적힌 팜플렛을 받고, 작품을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전시는 그럼에도 호황을 누렸고, 결국 그곳의 자산가가 그 작품을 구매하게 되고, 이후 시간이 흘러흘러 경매에 나온 작품을 익명의 구매자가 높은 가격에 낙찰. 이후 댈러스 미술관에 기증. (2010년에야 그 기증자가 Lamar Hunt, 어메리칸 풋볼 리그 AFL을 창시한 인물임이 밝혀졌다고)....  결국 프레드릭 에드윈 처치의 마케팅 전략은 멋지게 성공한 셈이다. 



당시의 모습대로 재현해본 모습


내셔널 지오그래픽도 없고 BBC 다큐멘터리도 없던 시절, 보통 사람들로서는 구경할 수 없던 진풍경을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를 했으니, 누구라도 작품을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짐작컨대, 오늘날 아이맥스 영화나 4D 영화 이상의 경이로운 경험이었으리라.   



여기서부터는 나의 망상 ~ 

안트워프의 성모 대성당 관계자 중 누군가가 처치의 <빙하> 전시회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성당의 재정난을 타파할 혁신적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성당의 유명소장품 루벤스 작품에 커튼을 만들어 걸고 관람료를 받게 하자 제안하고 그 제안은 통과된다.  그리고 안트워프 여행 때, 성당의 입장료 제도를 목격한 "플란다스의 개"를 쓴 소설가 Marie Louise de la Ramée가 이 내용을 소설에 포함시킨다. 그녀도 '그건 쫌 너무한걸 ....'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0년 후 일본에서 그 책은 애니메이션화되어, 그 이래, 안트워프 성모 대성당에는 수많은 일본인과 한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이어지고, 심지어 그 성당 앞에는 일본 자동차 회사가 비용을 지원하여 제작한 네로의 동상까지 만들어지게 된다는 이야기....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1. 08:00 미술 이야기

'플란다스의 개'라는 말을 듣고 한국 영화가 아닌 어린이용 만화 영화를 떠올리는 분만 알아들으실 이야기~


감히 '엄마 찾아 삼만리'와 함께 역사에 남을 걸작으로 기억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플란다스의 개'


이거슨 추억돋는 <플란다스의 개>의 오프닝... 네로가 어깨를 들썩이며 뛰어가는 저 모습을 흉내내며 주제가를 따라부르곤 했었다.   


플랜더즈 지방 (현. 벨기에)에서 애완견이라기 보다는 후견인 같은 파트라슈와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와 함께 우유배달을 하는 가난하지만 미술에 재능이 있는 소년 네로의 이야기.  주인공이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단짝 아로아와 노는 것도 금지되고, 부잣집 아로아의 아버지한테 늘 구박을 받는 가난한 소년.  하지만, 사랑과 예술혼 넘치는 어린이.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싶은데, 커튼을 걷고 구경을 하려면 금화 한닢을 내야하는데, 그 동전이 없어서 항상 커튼이 쳐진 그림 앞을 서성여야만 하는 아이....  성냥팔이 소녀처럼 눈 내리는 겨울에 얼어죽은 아이.  죽음 직전 드디어 그는 환영속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루벤스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 감동의 도가니 만화영화가 일본 아니메의 더빙 판이라는 것을 알고 난 것은 어른이 되고 난 후 였고, 거기에다 그것이 영국 작가에 의해 쓰여진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지난 뒤였다. 


원작 일본 아니메의 오프닝.... 충격적이게도 멜로디가 똑.같.다.  


그도 그럴것이 Ouida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는 프랑스계 영국 작가  Marie Louise de la Ramée는 본국 포함 유럽에서 그다지 알려진 작가는 아니었나보다.  오죽하면, 벨기에 사람들이 이 작품에 대해 알게된 것이 '플랜더즈의 개를 아느냐?'는 일본 관광객들 때문이라는 설이 있겠는가?  인터넷 상에서도 이 책에 대한 소개에 '일본과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있다는 해설이 있을 정도이고, 토요타에서 그토록 네로가 구경하고 싶었던  루벤스의 작품이 걸려 있는 안트워프의 성모 대성당 (The Cathedral of Our Lady) 앞에 네로와 파트라슈의 동상을 세워준 이후로 '일본에서의 인기'는 더 알려졌으리라.  [요즘 표기법으로는 안트워프는 본토 발음을 따서 '안트베르펜'이라고 한다고... 요새는 그러냐~~? 모르겠다...난 안트워프로 배웠다....  ^^]


이로써 네로는 홍수 때 구멍 난 댐을 고사리 손과 가느다란 팔뚝으로 막아내, 위기에 처한 조국 네덜란드를 구한 소년 다음으로 일본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공의  인물인 셈이다. 


일본의 토요타사가 기증했다는 네로와 파트라슈의 동상


이 대목에서 의문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루벤스의 작품은 무엇이었던가?  안트워프의 성모 대성당의 루벤스 작품으로는 아래의 3작품이 있다. 

1. <십자가에 매닮 (Raising of the Cross)> (1610) 
2. <십자가에서 내림(The Descent from the Cross)>,(1612-14) 
3. 
<성모승천(Assumption of the Virgin)> (1626)  


Peter Paul Rubens, <Raising of the Cross> (1610)   oil on Panel ; 460 x 640 cm, Cathedral of Our Lady Andwerp


Peter Paul Rubens, The Descent from the Cross (1612-14)  oil on panel ; 420.5 × 320 cm, Cathedral of Our Lady, Antwerp


Peter Paul Rubens, Assumption of the Virgin (1626) oil on panel  ; 490 × 325 cm, Cathedral of Our Lady, Antwerp



만화의 마지막 회에서 네로는 기아와 추위로 인한 환각인지는 모르나 드디어 염원해 마지않던 루벤스의 명작을 보게 되는데, 안트워프의 성모 대성당에 걸린 작품들 중에서 <십자가에 매닮 (Raising of the Cross)>과 <십자가에서 내림(The Descent from the Cross)>을 본다.


 

여기서는 <십자가에서 내림>(1612-14)를 바라보는 네로와 파트라슈가 그려져 있다. 


교회 내부의 전경으로 살펴보면, 예수를 십자가에 올리는 그림이나 십자가에서 내리는 그림 모두 예수의 몸의 곡선이 만들어내는 리듬의 반복으로 인한 통일감이 있다. 

그리고, 정 중앙에는 성당의 이름이 이름인지라 (The Cathedral of Our Lady), 성모가 인간이 아닌 신으로 인정받아 하늘로 오르고 있는 성모 승천의 장면이 그려진 그림이 자리하고 있다. 

 

앤트워프 성모 대성당의 내부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림>(1612-14) 삼면화: <십자가에서 내림 (the Descent from the Cross)>은 삼면화 로 제작된 작품의 가운데 작품  

그 양쪽으로 <방문 (the Visitation)>, <예수의 성전 봉헌 (the Presentation of Jesus at the Temple)> 을 묘사한 그림을 좌우에 배치했다.    


<십자가에서 내림>은 삼면화 구성으로 제작된 작품의 가운데 작품  그 양쪽으로 <방문>, <예수의 성전 봉헌> 을 묘사한 그림을 좌우에 배치했다.   <방문>은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가 사촌 엘리자벳을 방문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이 때 엘리자벳도 세례 요한을 잉태한 상태였다. 그리고 <예수의 성전 봉헌>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성모가 아기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에 바치는 의식을 행하는 장면을 묘사 한것이다. 이 두 에피소드는 카톨릭에서 묵주기도에서 '환희의 신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운데의 '고통의 신비' 중 하나인  <십자가에서 내림>과 대조되는 구성이다.  


사실 네로의 분위기가 (라고 쓰고 '플란더스의 개'의 그림체라고 읽는다) 루벤스의 화풍과는 매치가 잘 안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모르긴 몰라도, 네로가 파트라슈를 껴안고 교회앞에서 숨을 거둘때 그의 눈에 떠오른 이미지는 '성모 승천'의 이미지이리라 짐작해본다.  


Peter Paul Rubens, Assumption of the Virgin (1626) oil on panel  ; 490 × 325 cm, Cathedral of Our Lady, Antwerp


만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위의 저 조그만 아기 천사들이 오종종 모여들어 네로의 주변에 모여들기 때문이다.   만화에서는 돔에서 빛이 내려오더니 좀 있다 아기천사들이 총출동해서 네로와 파트로슈를 하늘로 데려가고 있지만, 사실상 돔의 그림은 루벤스의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안트워프의 성모 대성당 돔에 그려진 그림


철들고 이 만화를 떠올릴 때면, 어린이용 만화라고 하기엔 너무 비극적이라 자칫 어린이들의 여린 가슴에 트라우마를 남길 수도 있는 이 작품이 일본과 한국에서 이토록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특히 일본 같은 경우는 기독교가 정착하지 못한 세계 유일한 나라인데 말이다. 하필이면 루벤스의 대표적인 종교화라니...  


하지만, 정작 가장 궁금한건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정말로 걸작이라는 이유로 작품을 평소에 공개하지 않고 커튼으로 막아놓은 작품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치사하게 왜 저럴까?  걸작이면 모든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게 해야지. 더군다나 성당이면 모든이에게 열린 장소이거늘....  


이 의문에 대한 탐구, '커튼 너머의 그림'에 대한 다른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해가도록 하겠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19. 07:30 미술 이야기

Bartolomé Esteban Murillo, Two Women at a Window (c. 1655–60),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지금 창 밖에 서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귀엽게 생긴 소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하고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창 밖의 인물을 바라보고 있고, 그 소녀의 뒷편에는 좀 나이들어 보이는 한 여인이 한 손으로는 창문을 잡고 또 다른 손으로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으려는 듯 숄로 입가를 가리고 서있다. 

부드러운 갈색톤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색상이 주는 평안함과 더불어 두 여인의 살아있는 표정, 그리고 소녀의 눈 높이가 관람자의 그것과 일치하는데서 오는 친근감으로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함께 미소짓게 만드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다.  더할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이 그림은 세비야 출신 스페인의 바로크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창가의 두 여인'이라는 작품이다.  무리요는 스페인이 낳은 최고의 바로크 화가 벨라스케스보다는 후대의 인물로 당대에서는 종교화로 크게 명성을 날렸던 화가인데, 이런 생활 속의 장면들을 묘사한 장르화도 몇 점 남겼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2차원의 화면과 관람자와의 관계라고 하는데, 이 작품은 관람자를 그림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하는데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창틀과 화면을 일치시킴으로서 '회화와 창'이라는 전통적 메타포를 실현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전통은 전 시대 르네상스 네덜란드 작가들에게서 널리 활용되었었다. 

그 대표적 예로는 한스 메믈링의 '축복을 내리는 그리스도'가 있다.  창틀과 화면의 하단을 일치시켜 표현한 절묘함을 보라!  

이 작품에서는 예수를 너무 거룩해서 쳐다볼수도 없는 위엄 가득한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검소한 옷을 입고, 창틀에 한 손을 얹은채, 그 그림이 걸려 있는 집안을 들여다보며 축복을 내리는 듯한 친근하고 겸허한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Hans Memling (1430–1440 to 1494), Christ Blessing (1481), oil on panel ; 35.1 x 25.1 cm, Museum of Fine Arts, Boston     


무리요의 작품에서도 소녀가 팔을 얹고 있는 창틀은 화면의 하단과 일치하여, 회화 작품이 창문이라는 설정에서, 아름다운 소녀가 창턱에 한 팔을 걸치고 또 한팔은 세워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관람객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스페인 화가는 네덜란드에서의 화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무리요는 이 작품에서 종교화와 초상화에서 주로 활용되는 화법을 장르화로 옮겨 표현하는데 멋지게 성공했다.   

어쩌면 소녀의 앞에서는 수줍은 청년이 서툴게 구애의 노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꽃다발을 건네려고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소를 띈 채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는 소녀를 계속 바라보다보면, 왠지 작은 꽃다발이라도 하나 건네야할 것만 같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15. 08:00 미술 이야기

Pieter Brueghel the Elder  (1526/1530–1569),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ca. 1558), 

oil on canvas mounted on wood ; 73.5 x 112 cm,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

 

작품의 제목은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번역하자면, <이카루스가 추락하는 장면이 담긴 풍경화>. 16세기 북유럽 르네상스 작가로 유명한 피터 브뤼헬 (父)*의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루스는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이 다이달로스로 말할 것 같으면 미노타우르스를 가둔 미로를 만든 최고의 장인이지만, 바로 그 뛰어난 재능 탓에 미로의 비밀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왕에 의해 평생 감금된 채 살아야할 운명에 처해진 인물.  탈출을 계획한 아버지가 만든 날개를 달고 시운전을 해보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너무 태양 가까이에는 가지마! 날개를 이어 붙인 밀납이 녹아버릴테니까'라고 말했건만! 그 말을 듣지 않고 좀 더 높이 좀 더 높이 하면서 우쭐거리고 신나서 날던 이카루스는 그만 밀납들이 다 녹아버려 깃털들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대로 추락해서 죽고 만다는 이야기.  

 

인간의 과욕과 오만을 경계하는 교훈을 담았다고 알려진 이야기이다. 또한, 다른 교훈도 담겨있다. 자고로 어른 말씀은 새겨들어야한다. 옛부터 어른 말씀 잘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했거늘.... 

 

16세기 르네상스 시기에 하이라이트를 받는 이탈리아를 살짝 비켜가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에서 활동했던 브뤼헬의 이 작품은 제목과는 다르게 새하얀 날개를 등에 달고 오르거나 안타깝게 추락하는 아름다운 미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전경의 중앙에는 농부가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고, 그 뒷켠으로는 양치기가 양들을 몰고 나와 풀을 먹이고 있으며, 화면에 등을 보인채 둑에 앉은 남자는낚시에 몰두하고 있다.  저 멀리 바다에는 빵빵하게 바람 맞은  돛을 한껏 올린채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는 배도 보이고,  왼쪽 원경으로는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발전한 평화로운 도시도 보인다.  도대체 이카루스는 어디에~?

 

 

자세히 보면, 낚시꾼이 자신의 낚시대와 물고기에 정신을 빼앗겨 미처보지 못한 조금 깊은 바닷쪽에 거꾸로 메다꽂혀 바다에 빠진 사람의 다리가 보인다.  그리고 좀더 자세히 보면, 밀납이 떨어져 흩어져 버린 깃털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다. 

 

놀랍게도 이 역사적, 아니 신화적 순간을 아무도 주목하기는 커녕, 알아채지도 못하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몇 분후면, 애처로운 이카루스는 물 속에 가라앉을 것인데 말이다.  그러든 말든, 사람들은 변함없이 하던 일을 할 것이다. 농부는 계속해서 밭을 맬 것이고, 양치기는 양을 돌볼 것이고, 낚시꾼은 계속 낚시를 할 것이다. 그리고 돛을 단 범선은 정해진대로 항해를 계속 할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통렬한 관찰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군중 속의 고독'을 논하기 훨씬 이전 16세기의 한 작가에 의해 한 장면으로 요약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1938년 한 영국 출신의 미국 시인에 의해 시로 다시 탄생했다.  아래는 윌리엄 오든이 벨기에의 미술관에서 브뤼헬의 작품을 보고 쓴 시이다. 

 

Musée des Beaux Arts   
W. H. Auden 

About suffering they were never wrong, 
The old Masters: how well they understood 
Its human position: how it takes place 
While someone else is eating or opening a window or just walking dully along; 
How, when the aged are reverently, passionately waiting 
For the miraculous birth, there always must be 
Children who did not specially want it to happen, skating 
On a pond at the edge of the wood: 
They never forgot 
That even the dreadful martyrdom must run its course 
Anyhow in a corner, some untidy spot 
Where the dogs go on with their doggy life and the torturer's horse 
Scratches its innocent behind on a tree. 

In Brueghel's Icarus, for instance: how everything turns away 
Quite leisurely from the disaster; the ploughman may 
Have heard the splash, the forsaken cry, 
But for him it was not an important failure; the sun shone 
As it had to on the white legs disappearing into the green 
Water, and the expensive delicate ship that must have seen 
Something amazing, a boy falling out of the sky, 
Had somewhere to get to and sailed calmly on.

 

그렇다.  농부는 뭔가가 물 속에 떨어지는 '풍덩' 소리를 들었을 지도, 살려달라는 외침을 들었을지만 모르지만, 그들의 조용한 일상을 지속해간다. 호화로운 배에 탄 사람들도 하늘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배는 경로를 바꾸는 일 없이 목적지를 향해 조용히 항해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20세기의 시인이 언급한 이래, 최근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그 누군가가 다시 언급하였다.  

그 이름이 바로 방탄 소년단 (BTS). 


그들의 '피, 땀, 눈물'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미술사적 어휘가 풍부하게 담겨 있는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나르시서스의 도상 등),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멤버 중의 한명인 뷔가 발코니의 난간에 걸쳐 앉아있다가 뛰어내리는 장면의 뒤로 비치는 풍경이 바로 부뤼겔의 <이카루스가 추락하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결과적으로 그로 야기된 인간으로서의 고독감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존재하는 인간조건인가보다.  [3분18초의 장면]

 

BTS (방탄소년단) '피 땀 눈물 (Blood Sweat & Tears)' Official MV 

물론 이카루스의 추락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방탄소년단의 뮤비는 전세계가 알아차린듯하다.  이카루스는 추락했지만, 방탄소년단은 계속 비상하고 있는듯 하다.  

 

Pieter Brueghel the Elder 는 흔히 피터 브뤼겔이라고도 표기되곤 했는데, 요새 표기법으로는 피터르 브뤼헬이라고 표기하는 듯하다.  the elder라는 꼬리가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아들도 유명한 화가. 장남인 Pieter Brueghel the younger는  환상적인 지옥의 모습을, 차남인 Jan Brueghel the younger는 아름다운 꽃을 잘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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