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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2. 00:10 미술 이야기

한동안 뜸했던 '내 맘대로 작품보기'

Elena Yushina

이번에도 우연히 페북에서 발견한 그림.  사실 이 작품의 작가에 대해 알아내는데 조금 애를 먹었다. 그 페북 주인장이 작가 이름을 잘못올려서.  좀 더 검색하다가 우크라이나 작가들을 소개하는 한 웹사이트에서 그 작가의 이름이 Elena Yushina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 우크라이나 출신의 작가는 1958년생의 생존 작가이고 그 어느 웹사이트에 따르면 '인상주의자'로 분류되어 있다.  그 웹사이트에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게재되어 있던데, 전반적으로 멜랑콜리하다고나 할까 감상적이라고나 할까.  아름답게 채색된 작품들이긴 한데, 뭔가 호기심이 일어나는 작품들은 아니라는게 내 솔직한 감상이긴 했다. 하지만, 봄과 여름의 중간 햇살이 따사함과 따가움 사이에 있는 길목에 부합해서일까 ?  이 창 그림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해서 내맘대로 써보기로 맘먹게 되었다. 


내 관심사가 관심사다 보니, 똑똑한 페북은 계속 '이것도 네가 좋아할 거 같아'라며 미술 관련 사이트를 권해주곤 하는데, 그런 계정들 대부분이 작품들에 대한 정보나 의견 없이 그냥 그림들만 하나씩 올리는 곳들도 많다.  덕분에 처음보는 작품들을 접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고, 지금 이 글도 그 덕분에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페북과 핀터레스트 등에 수도 없이 올라오는 작품들은 대부분 다소 감상적인 주제에 인상주의와 사실주의적 화풍이 적당히 섞인, 장식적인 회화 작품들이 많아 커다란 감흥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작가의 작품들도 아름답긴 한데, 다른 작품들은 그런 많은 그림들과 유사한 것 같긴하다.  이 창문 그림은 결정적으로 찻잔 옆에 그려진 나비 한마리가 감성을 더해준다고도 할 수 있고,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치우치게 되는 미묘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감상적과 감성적, 결국 한끗 차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창인데, 사실 회화 작품과 창의 관계는 역사가 깊다. 

폼페이 유적에 그려진 창문을 그린 벽화 Example of First Style painting, House of Sallust, Pompeii, (B.C. 2nd C)

 고대에 건축기술이 아직 덜 발달되어 창을 빵빵 뚫지 못하던 시절, 그 갑갑한 심경을 달래고자 사람들은 벽에다 창을 통해 바라본 듯한 바깥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근법이 발전하면서 회화와 창의 메타포는 더욱더 발전을 하게 되었고, 낭만주의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앙리 마티스 등 현대의 많은 작가들이 창을 즐겨  그리곤 했다.  

개인적으로 엘레나 유시나의 창 그림을 보고 두 작품이 뇌리에 떠올랐다.  둘 다 미국 국적의 작가들로, 하나는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1882-1967)이고 또 하나는 앤드류 와이어스 (Andrew Wyeth: 1917-2009)이다.    

Edward Hopper, Evening Wind (1921) Etching, Plate: 17.6 x 21 cm ; Sheet: 24 x 27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먼저 에드워드 호퍼의 경우, 창을 즐겨 그린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의 소품 중에서, 엘레나 유시나라는 작가와 유사한 분위기의 '저녁 바람'이라는 에칭 작품이 있다.  자신의 침대위로 오르려던 나체의 여인이 창에서 불어들어온 바람에 문득 창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순간을 포착한 것 같은 작품이다.  여인은 창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어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왠지 공허하고 쓸쓸한 표정일 것 같다.  감상적 혹은 감성적 작품이다. 다만 이 작품의 경우, 매체의 특성상 흑과 백만으로 표현되어 있고 그녀의 머리칼과 벽면의 검은 색을 표현한 펜의 선의 변주와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 창 밖의 풍경의 공허함이 전체적으로 쓸쓸한 분위기의 효과를 잘 살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Andrew Wyeth, Wind from the Sea (1947), tempera on hardboard ; overall: 47 x 70 cm, framed: 66.4 x 89.5 x 7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엘레나 유시나의 창을 보고 처음 떠오른 작품은 사실 앤드류 와이어스의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작품인데, 구도나 분위기 면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보다 좀 더 그녀의 작품과 근접하다.  물론 아래에서 창을 올려다 본 듯한 엘레나 유시나의 그것에 비해, 이 그림은 그냥 성인 어른이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본 각도라는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그녀의 창이 찻잔에 내려앉은 나비때문에도 그렇지만 좀더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라면, 와이어스의 창은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다소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모습이다.  오랫동안 쓰지 않던 다락방의 창을 환기를 위해 열었을 때의 모습을 그렸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이겠지만, 낡고 삭아버린 레이스 커튼이, 제목대로라면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계산되지 않은듯 펄럭이는 거의 투명한 커튼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별 주제 없이 그려진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볼 때마다 다시 보고 싶은 느낌이 든다.  바람이나 커튼이 계산을 할수 없으니 계산되지 않은 듯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저 작품은 스냅 사진이 아니라, 작정하고 시간을 들여 그린 회화 작품이고, 그 어떤 순간을 포착하여 선택한 것은 화가일테니, 그렇게 계산되지 않게 보이는 것도 작가의 실력이다.  

사실 앤드류 와이어스의 대표작으로는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작품으로 이 작품 덕에 거의 미국 국민 화가 반열에 들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작품이 훨씬더 감동적이다.  

Andrew Wyeth, Christina's World (1948) Egg tempera on gessoed panel, 81.9 cm × 121.3 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City

엘레나 유시나의 창을 바라다보면 따뜻한 봄날의 바람이 볼을 어루만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면서, 새로운 날들에 대한 희망이 내게 불어드는 것 같다면, 앤드류 와이어스의 낡은 레이스 커튼 사이로 바깥이 내다보이는 창은 그다지 눈부실 것도 없고 어쩌면 때로는 냉혹하게 들이닥칠 수도 있는 인생의 파고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겸허함과 의연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같은 창 그림인데 이렇게 다르게 느껴진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6. 03:44 미술 이야기

한 여인이 두손을 다소곳이 앞으로 모은 채, 고개만 내밀어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Caspar David Friedrich, Woman by a Window (1822) oil on canvas ; 44 × 37 cm, Alte Nationalgalerie, Berlin


젊은 여인이 서있는 곳은 독일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의 드레스덴에 있던 스튜디오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카홀리느 (Caroline), 화가의 아내이다. 그녀는 남편의 스튜디오 창 밖으로 보이는 엘브 강과 그 위를 지나는 배를 바라보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여린 푸른 빛의  포플러 나무들로 보아, 때는 바야흐로 북구의 긴 겨울을 나고 맞이하는 봄이다. 

강한 수직선으로 이뤄진 그녀를 둘러 싼 모든 환경과 배경과 그녀의 몸과 드레스가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곡선의 대조는 그녀의 심리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 먼저, 강한 수직이 주를 이루는 실내의 구조를 보라!  창틀에서 마루바닥에 이르기까지 실내에는 수직선이 위주를 이룬다.  특히, 그녀의 양쪽에 내려오고 있는 창 옆의 두 기둥은 그녀를 속박하고 있는 듯하고, 곧게 뻗은 배의 마스트, 저 멀리 보이는 곧게 뻗은 포플러 나무들, 모든 것이 수직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둥글게 말아올린 머리, 그녀의 작고 둥근 어깨, 주름이 잔뜩 들어간 그녀의 드레스... 이 모든 것은 그녀를 둘러싼 수직의 세계와는 상반된 것으로 보인다. 제한된 자유 속에서 그녀는 외부 세계를 동경하며 그녀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잔뜩 내비치고 있다.  

한편, 그녀의 모습과 실내의 모습, 그리고 어두운 실내와 찬란한 태양이 비치는 외부의 풍경에서 이중적인 태도와 분위기도 읽을 수 있다. 실내광이 따뜻하게 채워진 집 안에서 아늑해 보이는 드레스를 입고, 두손은 마주 모으고, 동그랗게 만 몸은 창 쪽으로 기울이고 고개는 길게 창 밖쪽으로 빼고 서있는 그녀의 뒷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안락한 집안에서 벗어날 용기는 없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집 앞 수로 앞을 지나는 배가 이끌어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여인의 심정이 잘 드러난다.  

그녀의 호기심이 집안의 안락함과 편안함을 이기게 될 때, 그녀는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 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서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녀는 잠시 후, 한차례의 꿈을 꾼 듯 멋진 세계에의 상상을 접고 조용한 일상으로 복귀할지도....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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