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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10. 00:10 미술 이야기

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시대는 극단적으로 '시각적'인 시대이다. 

예전에 유명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방법은 단 하나, 내가 직접 그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에 가서 보는 것이다. 

물론 직접 작품을 보는 것이 예술 감상의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건 오늘날에도 적용되긴 하지만, 오늘날에는 직접 보는 것과는 다르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다. 

벨기에의  겐트시 (Ghent)시의 성 바보 성당 (St. Bavo Cathedral)에 소장된 휴버트와 얀 반 에이크 형제가 그린 '신비로운 양 (The Mystic Lamb)'(1432), 혹은 겐트 제단화로 알려진 작품만 해도 그렇다. 플랑드르의 대가로 알려진 얀 반 에이크가 그의 형과 공동작업으로 제작한 이 복잡한 제단화는 미술사 개론서에 실리는 경우에도 다면화가 접힌 상태이거나 일부만 이미지가 제공되어 전체적인 모습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직접 가서 본 경우는 없지만, 직접 간다 한들 문화유산 급인 이 작품을 관람객이 아주 가까이서 살펴 볼 기회가 있을까는 의문이다. 

그러던 이 작품이 오늘날은 게티 파운데이션의 후원으로 보수작업을 끝내서 이전과는 달리 생생하게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앱의 발달로 이제는 내 집에서 컴퓨터로 이 작품을 아주 자세하게 꼼꼼히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겐트 제단화의 닫힌 모습. 수복 전, 도중, 그리고 수복을 마친 모습. 이미지는 게티 센터의 블로그에서 가져옴.

Closer to van Eyck 라는 이 앱을 통해서는 이 걸작의 모습을 제단화가 닫힌 모습과 열린 모습을 각각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수복전과 후를 따로 살펴볼 수도 있다. 그 뿐 아니다. 적외선과 x 레이 등 을 사용해서 다양한 방법 (infrared macrophotography ; infrared reflectography ; x-radiography)으로 촬영한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놀랍지 않은가? 이는 그 옛날, 나귀 타고 작품의 물감이 마르기 전에 도착해서 직접 감상할 수 있었다한들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그것을 이제는 그냥 컴퓨터 앞에서 클릭 몇번으로 다 살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Jan van Eyck,  Ghent Altarpiece  (open), completed 1432, oil on wood, 11 feet 5 inches x 15 feet 1 inch, Saint Bavo Cathedral, Ghent, Belgium

예전 개론서나 미술교과서에서 얼핏얼핏 본 적은 있던 이 작품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되니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동과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는 현대미술에서도 볼 수 없었고, 좀 더 익숙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종류의 미감이자 표현이다.  

Jan van Eyck,  Enthroned Virgin in Ghent Altarpiece  (open), completed 1432, oil on wood, 11 feet 5 inches x 15 feet 1 inch (detail), 출처: http://legacy.closertovaneyck.be/#home  

나로서는 우리가 진정 '시각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고, 감사해야할 순간이기도 했다.  이처럼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관심사의 변화로 '시각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이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방식도 바꾸어 놓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아카데미의 살롱전 리뷰를 18세기의 유명한 비평가인 디드로가 했다고 치자. 그는 우선  그 전시를 직접 볼 수 있는 극소수의 관람자들 중 하나였고, 그 전시는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것을 잘 아는 이 노련한 비평가는 그런 독자들을 위해 '비평' 이전에 우선, 전시실 입구부터 전시장에 전시된 작품들까지 하나하나 자세히 '서술'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날 우리 눈에는 다소 장황하고 세세한 설명과 묘사, 수사법이 활용될 것이고 그 평론의 길이는 상당히 길어진다. 예전 미술사 혹은 비평의 기본은 '작품에 대한 묘사'가 처음에 놓여야 하고, 전체적 서술의 상당부분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만약 오늘날 그런 정도의 '묘사'를 페북에라도 올릴라치면 반드시 '위의 글 세줄로 요약 부탁드려욤'이라는 댓글이 달릴 것이다.

하다못해 전시회 소식을 전하는 기사만 해도 그렇다. 오늘날 기사에는 그 전시에 전시될 주요 작품 사진이 한 두점 실려야 독자들이 눈길이라도 줄 것이다. 만약 저작권이 걸린 작품이라면 하다못해 전시실 입구 사진이라도 하나 실려야 '아~ 이게 전시회 소개 글이구나~'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비평이나 미술사 글에는 '묘사'부분이 많이 축소되었다. 그건 사진 하나 '딱 보면' 다 알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는 오늘날 현대미술의 형식에도 원인이 있긴하다. 아무리 길게 묘사를 해도 르네상스 시대 고전의 서사 가득한 작품에 대한 묘사보다 몬드리안이나 도널드 저드의 작품에 대한 '묘사'는 짧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서사가 빠진 자리에 철학이나 미학의 이론이 들어온 것이리라 생각을 한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포털은 사진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매체이기도 하겠고, 블로그나 유튜브나 수많은 앱들이 '시각적' 보조 없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예전 소설이 유독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오늘날 같으면 사진 한장으로 대체될 수 있는 많은 정보들을 너무나도 자세히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고, 오늘날 독자들 눈에는 '쓸 데없는 정보' 같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그 기나긴 서술은 '안물안궁' 정보인 것이다. 

사뮤엘 리차드슨의 1740년 소설 <파멜라>의 경우, 18세기 당시 유럽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문학계에서도 영향력이 높았던 작품이다. 언젠가 언급한 바 있는 <위험한 관계>라는 소설에도 영향을 끼친 서간체 소설로 15세 소녀 파멜라의 '미투'운동이라고나 할까? 물론 시대적 지리적 차이로 인한 가치관의 차이는 상당하지만 말이다. 이 18세기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의 소설을 21세기 오늘날 독자가 읽어내자면 엄청난 인내를 요구한다. 주인공 소녀가 의자에 앉아서 자수를 하다가 자수를 놓던 천을 내려놓고 방문 쪽으로 걸어가서 방문을 여는 과정이 무려 몇 페이지에 거쳐서 서술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티브이나 영화와 같은 오락거리가 드물던 시대였고, 이러한 소설이 일할 필요없던 귀족들의 소일거리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측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정보는 시각적으로 제공되어 '한 순간에 즉각적'으로 흡수할 수 있고, 할 일 많고 바쁜 현대인에게는 맞지 않는 코드인 것이다. 

사뮤엘 리차드슨의 1740년 소설 <파멜라> - 이 글에서도 반드시 시각적 보조자료가 이렇게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피카소를 보았고 마티스를 보았기 때문에, 피렌체의 르네상스와 베니스의 르네상스의 색감과 형태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크와 로코코의 차이를 알아내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또 가끔 직접 전시실에서 마주했을 때보다 블로그나 페북에 사진으로 실린 작품이 훨씬 더 나아보이는 작품을 대할 기회가 예전보다 더 늘었다. 실제와 사진과 같은 매체를 통해 대하는 작품과의 괴리에 대해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할 필요를 못느꼈었는데 말이다. 따라서, 시각 매체가 아무리 발달한다 하더라도 직접 작품과 마주하는 경험은 예술감상에서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 2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겐트 미술관 (the Museum of Fine Arts Ghent (MSK))에서 개최되는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ca. 1390-1441)에 대한 전시회 <반 에이크. 시각의 혁명 (Van Eyck. An optical revolution)> 은 방문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미술사에 반드시 언급되는 작가치고는 남겨진 작품이 불과 20여점 밖에 되지 않는 이 북유럽 르네상스의 거장 얀 반 에이크의 작품들이 이 미술관에 다 모일 모양이다. 일전에 소개한 렘브란트 탄생 350주년 기념 전시회와 함께, 2020년 유럽을 여행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또 생겼다. 

  

 이 글 바로 전에 렘브란트 전시 소식에 대한 글을 올렸다. 관심있는 분들을 그 글도 함께 보시길.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7. 01:30 미술 이야기

세상을 보는 시각은 여러가지다.  여기서 그 다양한 시각에 대해서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크게 줌인한 시각과 줌아웃한 시각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친구들끼리 모였을때, '얘는 어머님이 전라도 분이시라 음식맛이 좋다'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갱상도 사나이의 '으리'도 자주 하는 말이다.  이 밖에도 충청도 출신인 사람들은 느긋하다거나, 뭐 그 밖에도 각 지방에 대한 선입견 내지 편견을 포함한 평가는 한국 사람이라면 거기에 동의를 하든 안하든 들어보긴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거기에 반해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냥 '미국 사람' '일본 사람'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한다. 

다른 곳은 잘 모르지만, 일단 미국은 그 크기로 말하자면 남한의 백 배는 족히 되는 크기의 땅인데, 그리고 그 속에 얼마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우리는 그냥 '미국 사람들은...'이라고 특징을 지워 이야기 하곤 한다. 

참고: 

남한의 면적=9만 9538㎢
북한의 면적=12만 2762㎢
미국의 면적=951만 8323㎢
참고로 시카고 북쪽에 있는 오대호의 크기를 합하면 24만5000㎢이고, 

그 중 가장 큰 슈페리어 호 같은 경우만 해도 8만㎢이다. 

즉, 미국 면적의 크기는 
남한에 비해 105배의 크기
북한에 비해 79~80배의 크기
한반도를 합한 면적의 44배의 크기

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또 다르다.  뉴욕을 방문했다가 그 다음 행선지가 LA라고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내 평생 LA를 가본 적은 없지만, LA 사람들은 이렇다며?'라고 물어본다. 그리고 LA를 방문한 뒤, 다시 뉴욕으로 돌아갈 날짜가 언제다라고 이야기하면, '나는 한번도 뉴욕을 가본적은 없지만...'이라는 이야기를 꼭 하곤 했다. 그 뿐 아니다. Texas 사람들은... Midwest 사람들은.... 이렇게 각각 다른 지방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인상과 고정관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때에는 '한국에 가면 다 "미국 사람들"인데...'라고 생각하면서 재밌다고만 생각했었다.  

원체 미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좀 식견이 있다는 사람들도 한국과 중국, 일본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위치가 다르다는 정도는 알아도, 결국 한국은 그냥 '극동' 내지 '동양'이라는 큰 범주에 묶인다.  '미국인들'이 본국 이외의 지역에 대해 알려고 하는 노력이 부족하기도 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에 대해서 세분해서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생각해봤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린 결론은 결국은 본인에게 가까운 것에 대해서는 세분해서 살펴보고 이해하고, 자신과 먼 것일 수록 개략적으로 이해하는 인간의 본성 탓이라는 것이다. 내가 명명해보자면, '줌인과 줌아웃 법칙'인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차이들이 도드라져 보이고 멀리서 보면 공통점들이 잘 보이는 것이다. 이는 미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미술사에서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이야기 할 때, 플로렌스 (피렌체)와 베니스 (베네치아)의 미술을 선과 색으로 대비하여 설명한다. 즉, 피렌체는 색보다는 '선'을 중시하는 미술이라 소묘의 기법이 뛰어난 작가들이 많고, 베네치아의 미술은 선보다는 '색'을 중시하는 미술이라 다른 지역에 비교해서 탁월한 색상이 특징인 작가들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MICHELANGELO (1475-1564)'Ignudi detail from the Sistine Chapel Ceiling', c.1508-12 (fresco) - 선을 중시한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대변하는 작가,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천장화를 위한 수많은 드로잉 중 하나 ; 오른쪽은 완성된 모습

Titian, Bacchus and Ariadne (1520-23), The National Gallery, London  색을 중시하는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 티치아노

그러나, 이것은 줌인했을 때의 시각이고, 줌아웃해서 북유럽르네상스 (이탈리아보다 북쪽의 유럽국가, 플랑드르 지방 등)과 함께 비교해보면, 세부의 디테일을 중시하는 북쪽지방의 예술에 비해 이탈리아 미술 전반이 소묘, 즉 디세뇨 (disegno)를 중시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북유럽르네상스를 설명할 때에는 이탈리아 미술전반에 대한 특징을 다시금 언급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Jan van Eyck,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Portrait  (1434)oil on oak panel of 3 vertical boards 82.2 ×60 cm, National Gallery, London

이는 동서양 미술의 특징을 논할 때가 되면 다시 달라진다. 북유럽과 이탈리아 할 것 없이 그냥 '서양미술'.... 이처럼 우리는 줌인해서 관찰할 때와 줌아웃해서 관찰할 때의 자세가 달라지고 따라서 도출되는 결과도 달라진다.  

요는 줌인해서 보는 세상과 줌아웃해서 보는 세상이 많이 다르다는 것. 평소에는 아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세상을 가끔은 줌아웃해서 보는 것도 신선한 시각을 유지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  좀 논의가 달라지긴 하지만, 내 인생이기 때문에 가깝게 들여다보고 자세히 보이는 내 삶의 문제들도 때로는 줌아웃해서 보면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닐때도 있다는 점. 그리고 의외로 쉬운 해결책이 보이기도 한다는 것.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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