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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31. 13:52 미술 이야기

이 글에는 2편이 있어요.    1편만 읽고 오류를 지적하시지 마시고~ (뭐 하셔도 괜찮습니다만), 어쨌든 2편까지 꼭 읽어주세요~ 혼란을 야기했다면 죄송합니다. 

인도계 영국작가인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아마도 시카고의 밀레니엄 파크에 설치된 <구름 문 (Cloud Gate)>라는 작품일 것이다. 나만 해도, 아니쉬 카푸어라는 외우기 힘든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 이 작품을 통해서였다.  시카고를 방문했을 때, 파리에 가면 에펠탑 앞에서 사진 찍듯이, 너나없이 모두 이 거대한 강남콩 앞에서 포즈를 취하곤 했다.  물론 나도 이 앞에서 몇 차례....  선촬영 후감상.  

공공설치인 탓에 이 작품은 당시의 기후의 변화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에 따라 비춰지는 풍경의 모습도 매번 변한다.  일단 거대한 조각품은 전통적 조각에서 느낄 수 없는 규모와 미를 전달하고 있지만, 그 아름다움을 느끼느냐 아니냐는 개인차가 있으니 패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작품은 알루미늄이라는 현대적 매체를 사용하고 형상도 도우넛 모양의 충분히 현대적 형상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전달하는 미학은 지극히 동양적이라는데 있을 것이다.  'bean'이라는 별칭처럼 도우넛 같기도 하고, 콩의 형상을 하고 있는 형태의 특징과 거대한 규모 탓에 주변의 풍경이 오롯이 다 비춰진다. 따라서 삼라만상을 다 담고 있는 우주와도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그 속에 비춘 나의 작은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우주 속에 갖힌 또다른 나와 마주하게 되고, 과연 진정한 나란 누구인가...하는 '장자의 나비'같은 생각도 하게 한다. 한편 거대한 <구름 문>과 대비되는 그 속에 비친 조그마한 내 모습에서 내 존재의 미미함을 느끼면서 철학적 사유를 하게 된다고나 할까?  

Anish Kapoor, Cloud Gate (2006), Stainless steel sculpture, 10 × 13 × 20 m,  Millennium Park, Chicago.  고광택제의 알루미늄으로 제조한 조각으로 아니쉬 카프어의 대표작. 북쪽의 마천루를 비추고 있는 모습을 동쪽에서 촬영한 것. 북쪽으로는  East Randolph Street을 따라 마천루들이 즐비하다.   

 

Anish Kapoor, Cloud Gate (2006), Stainless steel sculpture, 10 × 13 × 20 m,  Millennium Park, Chicago 

 

그러던 작품이었으나, 최근 영하를 밑도는 강추위에 이렇게 쪼그라들었다는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댓글 중에는 '이제야 작품 같아졌네.'라는 글도 있더라마는, 나같은 경우는 원상회복이 될 것인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나의 추억도 담겨 있는 조각품이 또 다시 아름답게 삼라만상을 비추어줬음 좋겠다는 바람.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은 국내에도 있다. 리움 미술관 야외 정원에 두 점과 실내에 한 점~

하늘 거울 (Sky Mirror)는 여러버전이 있고, 리움의 작품과 대동소이하다. 

예전에 안토니 곰리에 대한 글을 쓰면서 리움 미술관은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건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에도 해당이 되네요.  안토니 곰리에 대한 그 글이 궁금하신분 여기를 참고하세요.  

 

아니쉬 카푸어의 공공조각 다른 작품으로는 <하늘 거울 (Sky Mirror)> 있다.  시카고의 <구름 (Cloud Gate)> 마찬가지로 고광택제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어 하늘을 비추는 오목한 접시모양의 설치물로 여러가지 버전이 세계 곳곳에 있다.  

최초의 버전은 2001 영국 노팅엄의 웰링턴 서커스 (Wellington Circus, Nottingham, England) 설치된 것이다. 작품은 무게가 10 톤에 육박하고 6 미터 너비의 오목한 접시로 하늘을 향해 고정되어 있어, 거울과도 같은 매끈한 표면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반영한다.   버전은 2006 9 19일부터 10 27일까지 한시적으로 뉴욕의 록펠러 센터에 설치되었던 버전이 있는데, 무려 11m 지름으로 3 높이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볼록한 면은 5번가를 오목면은 록펠러 센터의 안뜰 쪽을 향해서 독특한 풍광을 제공했었다

이밖에 영구 설치로는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허미타지 미술관 (Hermitage Museum) 네덜란드 틸버그 (Tilburg) 드퐁 현대미술관 (De Pont Museum of Contemporary Art), 달라스의 AT&T Statium 있다. 그리고, 한국의 리움 미술관.  

아니쉬 카푸어, <하늘 거울 (Sky Mirror)> 2006 9 19일부터 10 27일까지 한시적으로 뉴욕의 록펠러 센터에 설치되었던 버전이 있는데무려 11m 지름으로 3 높이에 해당하는 규모

 

1980년대부터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명실공히 세계적 작가인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세계는 시기별로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시카고의 <구름 문>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 내가 한차례 아핫! 하고 아이디어에 감탄했던 작품은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승천 (Ascension)>이라는 작품.  

‘ascension’ by anish kapoor, basilica di san giorgio, venice image by oak taylor-smith

 

 

서양의 중세때부터 수도 없이 그려졌던 예수 승천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런 신박한 표현을 착안해내다니!   어떤 의미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이 가장 '리얼리즘'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쉽게도 나는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모습은 고사하고, 직접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목도한 경험도 없지만, 영혼이라는 것은 본래 형상을 지닌 것이 아니니, 만약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니시 카푸어의 작품과 가장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원을 따지자면, 뒤샹의 '남성 소변기'에서 출발했고, 이후 팝아트와 네오팝 작가들이 끊임없이 시도해온 '발상의 전환'과 '사고의 전복'을 통해 유발되는 '충격'이 예술의 목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충격 요법'을 지향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 중 하나라면, 그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참고로 아래는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그려졌던 예수 승천의 다양한 예들 중 일부.  아래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이 얼마나 참신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Rembrandt (1606–1669), The Ascension (1636), oil on canvas ; 93 x 68.7 cm, Alte Pinakothek 

 

Master of the Rabbula Gospels, The Ascension of Christ (586) Parchment, 34 × 27 cm, Biblioteca Medicea-Laurenziana

Benvenuto Tisi da Garofalo, Ascension of Christ, 1510-20. Source: Wikimedia Commons

Gebhard Fugel, Ascension of Christ (1893/94), Catholic Parish Church of St. John Baptist, Obereschach, Ravensburg

 

쪼그라든 강남콩 모양의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을 보고 써본 내맘대로 작품 보기 세번째 시간이었습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3. 06:57 미술 이야기

리움은 사립 미술관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술관일 것이다.  몇 차례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리움은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다.  현대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작가들, 혹은 남길 화가들의 작품들이 비교적 빠짐없이 적어도 한 작품씩 다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그 작품들이 다 개론서에 실릴 법한, 그 작가의 장점이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대표작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대표작들은 이미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덜 알려진 작품들이라도 실제 구매를 한다고 생각해보면 그 가격은 천문학적 금액이므로 대표작들을 골라서 소장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이해는 된다. 또 장점은 개론서나 여타 미술관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아~ 이런 작품도 있었구나 하고 감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한번은 상설 전시관을 한 바퀴 돌다가 우연히 천장을 쳐다봤는데, 거기엔 이런 작품이 있었다. 

Antony Gormley, Feeling Material XXIX (2007). Stainless steel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공사하다가 남은 철사를 미처 치우지 못했나 할 철사 뭉치.  아니, 설마....하며 라벨을 보니 맞.았.다. 그것은 안토니 곰리 (Antony Gormley: 1950~)의 작품이었다. 

안토니 곰리는 1980년대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영국의 중견 조각가이자 설치 작업가이다. 1994년,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그래도 현대미술 분야에서는 가장 권위있는 상 중에 하나인 터너 프라이즈를 수상한 이래 다양한 수상 경력을 쌓아가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다.  2014년에는 기사작위도 받아서 이제는 Sir Antony Mark David Gormley, OBE*이다.  이제는 영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그의 작품들이 소장되고, 많은 명소들에 그의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현재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그의 공식홈페이지는 여기를 클릭!]

2014년 4월 15일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기사작위를 수여받는 안토니 곰리 (photo by Jonathan Brady/PA Wire)

공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고 작가 자신이 밝히고 있는 그의 작품은 실존 철학, 불교 사상 등의 영향이 보이는 심오한 작품들이 많다. 그 중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라고 느낀 작품은 작가의 신체를 철로 주조한 동상들이 수없이 해변가에 늘어서 있는 <Another Place>이다.

Antony Gormley, Another Place, Crosby Beach, Liverpool/England 

이 작품은 리버풀 지역의 크로스비 해변에 철로 주조한 동상 100점을 모두 얼굴이 바다 쪽을 향하도록 하여 설치한 작품이다.  작가의 나체를 그대로 본 뜬 이 설치는 유럽에서 두 번 전시한 적도 있는데, 한때에는 외설논란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2007년 이후에는 이곳에서 영구 설치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위의 사진 처럼 해변가에 세워진 동상도 있으나, 밀물 때엔 상당부분 동상이 잠기게 되는 것도 있는데,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끼도 끼면서, 파티나 혹은 버디그리라고 불리는 녹청이 끼게 된다. 이런 경우,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시간과 자연이 된다. 

그 곳을 찾은 방문자들은 이들 조각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조각에 옷을 입히거나 하면서 색다른 연출을 한뒤 촬영하거나 해서 그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하는데, 그 자체로 또 다른 작품으로 변신한다. 이 때 동상들은 출연자이기도 하면서 배경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그냥 그곳을 지나는 이들과 바다를 지나는 배와 함께 서 있는 동상을 찍은 사진들을 찍기도 하는데, 그 자체로 또 다른 작품이 된다.   특히, 어떤 작품들은 얼마전 여기 블로그에 올렸던 호쿠사이의 우키요에 속의 파도 그림과 같은 미학과 철학이 담긴듯 하기도 하다. 

크로스비 해안에 설치된 곰리의 작품 <Another Place> 그 자체, 그리고 또 그것을 촬영한 사진들. 그 속에는 세월의 흐름과, 자연의 변화, 또 그 곳을 찾은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어우러져 끊임없이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며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매번 다른 컨텍스트를 만들어낸다. 자연과 인공,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의 조건, 숙명, 동과 정, 생과 사... 수 많은 생각할 거리를 끊임없이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과 어우러질때, 무척 아름답다.

[더 많은 이미지는 이 링크를 참조] 

그 밖에도 왠만한 건물만한 크기의 철조 구조물로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 그것을 야외에 설치하는 작업들이 있다. 이 경우 성긴 철 구조물 사이사이로 바라보는 쪽의 풍경이나 햇살이 투과되는데, 그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빛의 반사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아래 작품은 그 철 구조물을 인간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내, 네덜란드의 렐리스태드 지방의 강둑에 설치되어 있는 <Exposure>라는 작품이 있다.   현지인들이 '용변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하지만, 원체 큰 사이즈라는 점, 그리고 인간의 형상을 딴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상기되는 여러가지 감상이 생긴다.   전격의 거인이 떠오르는 이 작품은 신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보자면, 오딧세이가 떠나고 난 뒤 혼자 남은 사이클롭스가 저러고 쪼그리고 앉아 떠나는 배들을 보고 있었지 않을까...

Antony Gormley, Exposure (2010) in Lelystad/The Netherlands. photo by Herman Verheij

그리고 수년전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작품이 아래 작품인데, 같은 <Feeling Material>의 제목을 달고 시리즈 번호만 다른 이것이 현재 리움의 작품과 비교적 유사한 작품일 것이다. 

Antony Gormley (b. 1950), Feeling Material XIV (2005),  4mm square section mild steel bar ; 224.8 x 217.9 x 170.2 cm 

위의 작품은 실제 인간의 크기를 훌쩍 넘는 크기의 엉킨 철사뭉치들이 어렴풋이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주의 혼돈에서 탄생하는 인간과도 같은 모습이다.  무에서의 유가 창조되는 순간인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건가?   무질서 속의 질서감이 느껴지면서 왠지 철학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는 듯하다.  <Feeling Material>이라는 제목에서 'material'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도 다양하다. 물질, 혹은 질료 하지만, 뭔가 구체적이고 중요하다는 의미도 있지 않은가?   

다시 리움으로 돌아와보자.   아닌게 아니라, 처음에 볼 때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1 미터 남짓한 작지 않은 철사더미에서 작은 우주의 소용돌이가 보이는 듯도 하다.  저 혼돈의 끝에는 어떤 생명이 탄생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Antony Gormley, Feeling Material XXIX (2007). Stainless steel

그러나, 솔직히, 이 조그만 철사 뭉치를 보는 것 만으로, 안토니 곰리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것 같다.  더구나 애당초 이 작품을 처음 보는 이가 이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미술관에 그의 거대한 등신상을 가져다 와서 다른 작품들 사이에 좁게 끼워 세워놓은들 <Feeling Material XIV> (2005)와 같은 작품그렇다치더라도 그 자연 속의 그의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는 감동을 그대로 받을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리움은 종합선물세트인데, 때로는 잘 안팔리는 연양갱이 들어 있는 종합선물세트이므로, 양갱의 제대로 된 맛을 느끼려면, 명품 장인이 운영하는 화과점을 가서 사먹어 봐야 하듯이, 그곳에 있는 작가들을 하나씩 천천히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종합선물세트의 연양갱이 맛이 없었다고 해서, 양갱이라는 먹을거리 자체의 맛을 부정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OBE: Offic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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