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2018/09 글 목록 (4 Page)
2018. 9. 9. 18:25 미술 이야기

친구 필라델피아에 출장을 건데, 거기서 만한 없는지 알려 달라고 하네요.

여러분은 필라델피아~’ 하면 뇌리에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크림치즈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고기를 좋아라 하신다면, 필리 치즈 스테이크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게 수도 있겠군요.  


교육열 높으신 분이라면, 아이비리그 학교 하나인유펜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있는 곳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구요.  연배가 되시는 분이라면 덴젤 워싱턴과 행크스의 영화 <Philadelphia> 떠오르실지도 모르겠네요. 최근에는 케서방이라고 불리던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재미있는 영화 <National Treasure> 배경이었다는 것에 기억이 미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실제로 필라델피아 출신이라는 친구들을 만나보면 출신지에 대한 자부심이 은연 중에 드러나는 경우가 있어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에게게? 싶지만, 역사가 일천한 미국 안에서 필라델피아는 유서 깊은 도시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미국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이 많은 곳입니다. 미국 최초의 비즈니스 스쿨인와튼,’ 미국 최초의 병원, 미국 최초의 동물원, 미국 최초의 미술학교 등등….

 

영화 얘기를 다시 돌아가보면, 많은 남자분들에게는 <필라델피아> <내셔널 트레져>보다는 <록키>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속에서 재기를 꿈꾸는 왕년의 챔피언 실베스터 스텔론이빰빠라 빰빠 빰빠~~’ 유명한 OST 울려퍼지는 가운데, 계단을 우다다다 뛰어 올라선, ‘훅훅, 훅훅, 이건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여라며 특훈에 매진하던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특훈의 현장이 바로 필라델피아 미술관 (Philadelphia Museum of Art) 건물 계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유명세에 힘입어 현재에는 록키의 커다란 동상도 세워져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 동쪽 입구]

 

록키 팬이고 미술에 딱히 관심이 없다시면 바깥 쪽에서 동상 앞에서 날리는 포즈로 사진 하나 멋있게 찍고 돌아서도 상관없겠죠.  


니면, 곳에서 방문 당시 열리는 특별전이나 맘에 드는 작품들을 골라 보셔도 상관은 없어요하지만,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미국 세번째로 미술관이고, 훌륭한 컬렉션으로 유명합니다미술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을 위해서, 혼자서 모르고 보면 휘익~ 지나칠 것만 같은 작품 점을 소개합니다.   


1. Marcel Duchamp, 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 (The Large Glass) (1915-23), oil, varnish, lead foil, lead wire, dust, two glass panels, 277.5 × 177.8 × 8.6 cm


2. Paul Cézanne (1839-1906), The Large Bathers (1906), oil on canvas ; 210.7 x 251.0 cm,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아, 그전에 잠깐~!

곳에는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 전통을 미국내에서 최초로, 성공적으로 이식했다고 평가받는 토마스 이킨스 (Thomas Eakins: 1844-1916)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요. 미국 최초의 미술학교로 유명한 펜실바니아 미술 아카데미 (Pennsylvania Academy of the Fine Arts)에서 우여곡절은 있었고 당시에는 논란을 야기한 적도 있긴 하지만, 명실공히 미국에서 미술 아카데미에서의 미술교육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미국 미술사에서 사실주의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인물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필라델피아 미술관 안에는 마르셀 뒤샹의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벌거벗겨진 신부, 심지어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작품이 있는데요. 작품의 다른 버전이라기보다는 복제품은 3각각 스톡홀름의 현대 미술관 (Moderna Museet),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 일본 동경대 코마바 미술관 소장 있습니다.   


Marcel Duchamp, 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 (The Large Glass), 1915-23, oil, varnish, lead foil, lead wire, dust, two glass panels, 277.5 × 177.8 × 8.6 cm © Succession Marcel Duchamp (Philadelphia Museum of Art)

 

공사하다 부서진 같은 구조물이기에 주변에 펜스가 없었다면 작품인지도 모르고 지나쳐버리기 십상입니다. 작품의 제목도 길긴 엄청 제목인데, 심지어 말조차 되지 않는사정이 이렇다보니, 글을 쓰거나 토론할 ~ 힘들어서 그냥 < 유리 (the Large Glass)>라고 엄청 짧은 별칭을 자주 씁니다.   


마르셀 뒤샹은 철물점에서 구입한 변기를 R. Mutt라는 서명만 채로 전시회에 출품한 것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이후, 미술관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 (?)들이 그에게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구요, 고전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요새 미술이란~’이라는 한탄을 하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죠.  


거두절미하고 이야기 하자면, 유리의 주제는 남녀간의 사랑은 힘든다정도가 될런지요. 신부의 영역인 위쪽과 남자들의 영역은 아래쪽으로 나눠져 있고, 둘은 의사소통에 많은 어려움을 보이고 있죠. 근거로는 상단과 하단은 각기 다른 유리로 만들어져 이어져 있고 가운데는 단절이 되어 있습니다. 여자가 하는 말은 남자들이 알아듣기 힘들고, 남자들의 구애는 번번히 운에 따라 성공하기도 하고 좌절되기도 합니다. 20세기 버전의 화성에서 남자, 금성에서 여자입니다.   


제목도 해괴하고 작품도 괴상하지만, 미술사 적으로 유명해서 관련된 서적이나 아티클이 너무 많은 작품입니다. 뒤샹도 그냥 가는대로 만든건 아닌 것이라는 증거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형체들 코코아 그라인더, 세개의 실린더 (독신자들에 해당) – 드로잉이 남아있고, 작품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 노트를 모아서 녹색 상자( 이름하여, ‘Green Box’)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이들은 다시 유명 미술관 소장품들이 되었구요.  


노트들을 보면, 과학에도 관심이 많던 뒤샹은 원래 작품들에 등장하는 기계들이 움직이는 것들로 만들고 싶어했던 같습니다만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유명세가 대단한 작품인 것은 이렇게 보그 표지에 아름다운 모델과 함께 실린 것만 봐도 아시겠죠?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하나의 명물은 세잔의 작품인데요. 후기 인상파의 일원이자, 모더니즘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 시리즈 가장 작품 하나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같은 주제로 많이 그린데다가 곳의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보니 통칭필라델피아 수욕도라고 부릅니다.  


[‘욕녀들이라고도 번역되는 작품은 한정된 주제로 지속적 작품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세잔의 주제들 하나죠.  세잔의 단골 주제로는 목욕하는 여인들,’ ‘상트-빅트와르 ,’ ‘사과들이 있는 정물,’ ‘카드 놀이 하는 사람들 있죠]


[세잔의 대수욕도]ㅡ통칭필라델피아 수욕도

Paul Cézanne (1839-1906), The Large Bathers (1906), oil on canvas ; 210.7 x 251.0 cm,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영화 <아저씨>의 원빈은 놈만 노린다하시지만, 세잔은 주제에 하나 꽂히면 그것만! 그렸습니다. 워낙 많은 수욕도를 그린 탓에 세계 곳곳에 비슷비슷한 수욕도 소장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뉴욕의 MoMA,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같은 필라델피아의 반즈 파운데이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가 있습니다.]    


신화나 역사에서 찾을 있는 특정 에피소드가 없고, 일견 특별할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작품은 삼각형으로 비워진 공간 가운데 멀어지는 이의 뒷모습이 너무 현대적이라, 누드로 묘사되는 여인들은 보통 여신이라는 회화적 언어와 상반됩니다. 도대체 저렇게 19세기 프랑스에 저렇게 많은 수의 여인들이 야외에서 목욕을 있는 공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누드의 여성이 저렇게 떼로 몰려 있는데, 관능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없는 작품은 세잔의 특징이라고 있는 조형성에 대한 관심이 아주 나타납니다.



최근 들어서는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건물의 레노베이션에 착수했다고 들은 같은데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도 정말 기대가 됩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8. 05:29 미술 이야기

 

카츠시카 호쿠사이 (葛飾北: 1760-1849) 세계적으로 알려진 우키요에 화가이고 

그의 대표작으로는 넘실대는 파도가 인상적인 작품이 있다. 

 

 

 

우키요- (ukiyo-e; 浮世) 우키요-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생활의 모습과 풍경을 묘사한 그림, 정확히는 목판화이다. 여기서 우키요 덧없는 세상 (浮世)’, 불교적인 사상에서 비롯한현세 의미한다. 그리고 그림이라는 한자 의 일본식 발음.   우키요에는 일본에서는 중하층민의 도락으로 여겨져 크게 인정받지 못했으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만국박람회, 국제 유통 등에 힘입어 유럽에 전파된 ,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일본풍의 유행, 자포니즘 (Japonisme) 일등공신이 되었다.

 

원체 실제로도 여러가지 기행으로도 알려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의 작품 자체가 유명하다보니, 이로 인해 생긴 가십이나카더라 통신들의 이야기들도 원체 많다. 대표적인 30개의 호를 지녔다는 . 그리고 평생 무려 93번의 이사를 했다는 , 그리고 식사를 챙기지 않은 인물임에도 그가 장수했던 이유로쿠와이라는 풀 꾸준히 먹어서라는데

 

 

[쿠와이: 그게 뭔지 몰라서 찾아보았다. 우리말로는벗풀이라고 하는데, 번역을 봐도 백과사전에 실린 사진을 봐도 뭔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통상소귀나물이라고도 한다는데, 그건 잎사귀의 모양을 보고 만들어진 이름이리라 짐작이 뿐이다.  만약 우리나라에 소문이 널리 퍼진다면….. 어느 약품회사에서 제품화하고 홈쇼핑에서는 판매를 해서 건강장수 식품으로 불티나게 팔릴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짧지 않은 인생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호가 30개라니많아도 ~ 많지 않은가?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호쿠사이가 호를 많이 가진 이면의 심리에는 작가의 자아도취적 성향도 몫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자뻑화가의 작품이 수백 지난 오늘날까지 세계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고 기억될 누가 알았겠는가?  

 

 

 

The Great Wave off Kanagawa 葛飾北斎, 『冨嶽三十六景 神奈川沖浪裏』 (1831-33) 多色刷木版画, 25.7 × 37.9 cm

 

 

 

가장 유명한 <후지산 36> 작품 카나가와의 파도라는 작품이다. 작품은 아마도 우키요에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하나일 것이다.

 

 

멀리 후지산이 보이고, 앞으로는 카나가와의 거대한 파도가 배들을 집어삼킬 넘실거리고 있다. 좁은 나룻배에 사람들은 사나운 파도에 배가 뒤집힐까 노심초사하며 바닥 쪽에 납작하게 몸을 붙이고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풍진 세상에서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이상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  

 

<후지산 36>이라는 원제를 아는 이는 많지 않지만, 무엇인가를 움켜지려는 듯한 손가락들과 같은 모양을 파도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친숙할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패러디를 만들어내는 파도의 모습은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부악36> 작품인데, 일어로 후아쿠라고 읽는 부악은 후지산의 다른 이름이다.  명승지의 풍광을 담아 시리즈로 제작된 우키요에가 유행했는데, 작품은 후지산의 풍경을 담은 46점의 작품 하나인 것이다. (판화집의 제목은 후지산 36.  36이라고 쓰고, 46점이라고 읽었다고나 할까?)

 

그의 작품의 세계적인 인기는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저택을 위시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시카고의 아트 인스티튜트,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의 LA 카운티 미술관, 호주 멜버른의 내셔널 갤러리 오브 빅토리아 서구의 유명 미술관에 두루두루 소장되어 있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호쿠사이가 타고난 재능을 지닌 화가였음은 분명하지만, 그의 인생이 시종일관 순탄한 것은 아니었고, 처음부터 완벽한 예술작품만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인 파도의 모습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강렬한 인상의 파도가 탄생한 것이었다.  (아래의 몇 작품들에서 그의 파도 모양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

대목에서, 소설 <해리 포터>에서의 값진 교훈, “아무리 타고난 마법사라도 훈련을 해야만 한다 것을 되새기게 해준다.

 

  

 

斎, Spring at Enoshima (Enoshima shunbô), from the album The Threads of the WIllow (Yanagi no ito)

 

 

 

斎, 1803年 작품 賀奈川沖本』에서의 파도 

 

斎, 1805年『おしおくりはとうつうせんのづ』서양의 서적을 보고 연구한 원근법을 도입한 작품 

 

 

 

 

(아래는 호쿠사이의 <후지산 36 카나가와의 파도> 패러디, 차용하여 재창조된 작품들의  

 

Levi’s 'Live Unbuttoned 501' campaign billboard installation, 2008 

2008년도 빌보드 광고판으로 리바이스 청바지들로 재창조된 호쿠사이의 파도 

 

 

독일 설치작가 토비아스 스텐겔의 2006 작품 <파도>, 드레스덴 소재

호쿠사이의 유명한 <후지산 36> 카나가와의 파도 차용

 

 

 

비디오 작가 워커의 단편 필름에도 호쿠사이의 파도가 등장한다.

Tim Walker, Magical Thinking, 1:09, March 2012

https://www.timwalkerphotography.com/videos/mood

 

사람들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던 일본의 에도시대, 89세까지 살았던 그의 수 많은 호 중에서는 '가쿄우진' 즉, '그림에 미친 사람'이라는 호도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6세 이래, 평생 그는 엄청난 양의 그림과 판화를 제작하며 살았다. 그런 그가 노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6세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70세 이전에 내가 그린 모든 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7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자연과 동물 그리고 식물의 패턴들을 조금 알게 되었다. 

80세가 되면 그림이 조금 더 발전하게 될 것이고, 90세가 되면 삶의 신비를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100세가 되면 훌륭한 예술가가 될 것이다. 

110세가 되면, 내가 창조한 점과 선들이 삶에 스며들게 될 것인데, 이는 이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들이 될 것이다. 

장대한 계획을 세웠던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훌륭한 예술가가 되지도, 자신이 창조한 점과 선들이 삶에 스며드는 경지에도 이르지 못한 89세가 되던 해에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거시적 안목은 실제로 '백세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성급하게 성과만을 바라고 요령을 구하려드는, 조급하기만 한 풍토 속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호쿠사이 #카나가와의파도 #우키요에 #자포니즘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8. 00:25 미술 이야기

이쁘면 모든게 다 용서된다. 이쁘면 진리다. 이쁘면 착하다.  

궁서체로 먼저 한번 써봤습니다. 이런 말, 한번쯤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후후...  이런 믿음과 동일하지는 않으나, 일맥상통한 것이 신플라톤주의라고 할수도 있지 않나 혼자 생각해본 적도 있습니다만.... 오늘은 '이쁘면 진리다'라는 화두를 따라 보티첼리의 작품 하나를 살펴볼까 합니다.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Tempera on canvas. 172.5 cm × 278.9 cm (67.9 in × 109.6 in). Uffizi, Florence


Sandro Botticelli (1445–1510), Primavera (1482) tempera ; 203 × 314 cm, Uffizi

보티첼리의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위의 두 작품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 (봄)>라고 할 수 있죠. 이 두 작품이 쌍을 이루도록 메디치가에서 주문했다는 일설이 있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프리마베라>와 <미네르바와 켄타우르스>를 한 쌍으로 묶는 설도 있습니다.

Sandro Botticelli (1445–1510), Pallas and the Centaur (ca.1482), tempera on canvas ; 205 × 147.5 cm, Uffizi

여하튼 <프리마베라>와 <비너스의 탄생>, 두 작품 다 신화 속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지만, 딱히 특정 에피소드와는 상관없는 전개라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먼저 <비너스의 탄생>은 제목과는 조금 다르게, 귀여운 아기 비너스가 탄생하는 순간...은 아니고, 이러저러 여차저차해서 파도의 거품속에서 탄생했다는 비너스가 이미 다 장성해서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파도를 타고 해안으로 도착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때, 비너스는 메디치가 소장 중인 비너스의 포즈와 유사하게, 다소곳이 몸을 가린 모습인데, 정숙한 여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명, Venus Pudica).  조신조신... 

Venus de'Medici,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Italy   통칭 '메디치가의 비너스'

한편, 비너스가 파도에 밀려 조개껍질을 타고 해안에 도착하는 장면도 고대부터 있는 도상인데, 폼페이 벽화부터 까메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남아있습니다.

Casa de la Venus en la concha Pompeii – 여기서는 비너스가 장막 같은 천으로 바람도 연출하고 있다. (펄럭이는 망토는 바람의 상징)

고대 로마시대 까메오 장식 – 재료와 주제의 적절한 결합을 보여준 탁월한 예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 Zephyr and Aura

<비너스의 탄생> 화면의 왼쪽에서는 서풍(Zephyr)이 볼 빵빵히 바람을 불어 비너스를 해안으로 인도하고 있고, 그의 품에서 미풍(Aura)도 함께 이 일을 거들고 있습니다.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Horae

오른쪽에서는 값비싸 보이는 아름다운 천을 받쳐들고 역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인이 누드의 여인에게 덮어주려는 듯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 여인은 호라 (Horae), 혹은 계절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시간의 흐름을 뜻하죠 (이 단어에서 시간 (hour)이라는 영어단어가 나온건 안 비밀). 혹자는 호라의 포즈를 기독교에서의 예수의 세례 장면과 연관시키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시시콜콜하게 신들의 이름이나, 작품의 주문 배경을 전혀 몰라도 작품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뭐 어차피 확실하지 않은 것도 많으니까요.  ^^

비너스의 모델이 된 것이 당대 최고의 미녀이자, 메디치가의 청년들 – 로렌조와 줄리아노 – 가 모두 숭배해 마지 않았다는 여인 시모네타 베스푸치 (Simonetta Cattaneo Vespucci)였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뭣이 중한디? 이렇게 이쁜데....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Venus 

메디치 가가 설립했던 아카데미에서 플라톤의 사상을 신봉하고 연구하던 일군의 학자들의 주도로 르네상스기에 널리 유행했던 것이 바로 신플라톤주의입니다. 그리스 로마의 전통과 사상을 연구, 재발견하게 되면서,어떻게 하면 중세 천년 동안 신봉해 왔던 기독교의 신앙과 사상을 버리는 일 없이조화롭게 포용할 수 있을까하는 궁리 끝에 나온 사상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런 관점에서 비너스는 그리스 로마의 신처럼 현세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을 관장하는 존재이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인간들에게 천상의 진리, 신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이해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육체적 아름다움은 제대로 감상하고 명상하기만 한다면, 궁극적으로는 더 고상한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너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처음에는 그 외면적 아름다움에 맘을 빼앗기지만, 종국에는 우리의 맘을 신성한 경지, 신성한 신의 사랑으로까지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거죠.  

따라서, 단순화 하자면, 맞는 말입니다. 적어도 신플라톤주의자에게는요, "이쁘면 진리다~"라는 말은요.  


#보티첼리 #비너스의탄생 #신플라톤주의 #우피치 #메디치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7. 15:38 일상 이야기

이게 무슨 그림인지 아시는 분?   

갓 미국에 도착해서 차도 없고 살림살이 없어 살게된 furnished apartment에서의 에피소드. 
이사 정리가 끝나고 얼마되지 않아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푹 담그고 목욕한번 하자 싶었다. 

그런데....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욕조에 난 구멍을 막는 마개가 보이지 않았다. 열심히 여기저기 찾다가 그날은 결국 포기.

담날 아침에 마당에 나와 있는 관리인에게 물어보자 싶어 불러세우긴 했으나, 막상 욕조의 마개를 뭐라고 할지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당황하니 말로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펜으로 흰종이에 쓱싹쓱싹!

그랬더니 관리인 아저씨가  'Oh, the stopper!'하더니 가느다란 스테인레스 링이 끼워진 까만 고무 마개를 가져다 주셨다 (낡은 아파트라 모든 비품이 빈티지 했다). 그러면서 재미나단 표정을 띄우며  '왜 GRE에는 안나와있던?' 하신다.  그러했다.  GRE에는 나와 있지 않았다. '스타퍼'라는... 쾌적하고 청결한 생활에는 없어서는 안될 '스타퍼'라는 단어는...  

그리고 다시 한번 시각 예술 (?)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문화가 달라도, 그림은 '시각 미술'은 의사 소통이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을.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6. 11:00 일상 이야기

이건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얼마 되지 않아 겪은 일.


한국은 핸드폰이 없으면 홍길동스러운 일이 종종 일어난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기가 힘든다. 어떨때에는 i-pin인가 하는 것과 핸드폰으로 본인 인증을 하는 옵션을 주기도 하지만, 핸펀 없는 내가 i-pin 인증을 선택해서 몇페이지씩 넘기며 공란을 채워도 맨 마지막 페이지엔 '이제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여 인증을 완성하세요'라고 나온다. (이런 xx같은!) 내가 핸드폰 있으면 왜 i-pin 같은 듣보잡을 선택했겠느냐!!! 

몇번 이렇게 힘든 일을 겪고, 당시에는 금방 계속 일본이랑 미국에 왔다갔다 할 상황이라 한동안 핸드폰 없이 버텨보려했으나, 일단 그냥 하나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핸드폰 매장을 갔다. 

친절한 점원은 자신이 내게 꼭 맞는 핸드폰을 골라주겠다며 자신의 테이블 앞으로 날 안내를 했고 몇개의 상품을 골라서 각각의 장단점을 일러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친절한 점원이 말끝마다, '어머님이 쓰시기에는~' '어머님이 쓰시기에는~' 하시는 통에, 설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일단 그의 '어머님'이 아니고, 또 내가 초등학교때 출산해도 그만한 아들은 두기 힘들게 생긴 남성이 내게 자꾸 '엄마'라고 하는건 무슨 경우인가. 

거기가 학교면 이해를 하겠다. 내가 어떤 학교를 방문했는데, 그 사람이 그 학교의 선생님이라면, 내가 자기 동료가 아닌건 확실하고, 내가 자기네 학교 학생 연령은 아닌게 확실하니까, 그냥 '어떤 학생의 어머니'겠거니 하고 짐작해도 그냥 그려려니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거기다 대고, '아니, 전 누구누구의 이모거든요, 고모거든요, 보모거든요....' 할일은 없었을거다. 

하지만, 거긴 핸드폰 매장. 내가 그에게 '어머니'로 추정받아야 할 이유는 미모로도 누를 수 없이 티나는 나의 연령대 뿐인데, 그 이유로 왜 계속 낯선 남자로부터 '어머니'로 불려야하나~ 참다가 참다가 그가 또 '어머님은~' 하길래, 고개와 함께, 내 검지를 세우고 좌우로 흔들면서, '자꾸 어머니 어머니 하지 마세요~' 그랬다. 그랬더니, 친절함을 가득 묻히고 내게 상품 소개를 하던 그 점원이 갑자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지면서, '그럼 뭐라고......(불러야하나요)' 하는게 아닌가? 그렇게 당황할줄은 몰랐고, 그런 질문에 대한 대비책도 없었던 나는 덩달아 당황하다가, '그냥....고객님 하세요!' 그랬다. 그랬더니, '아~ 고객님~이라구요~'하면서 사태는 마무리 되는가 싶었는데.... 때마침, 옆자리 점원과 고객의 대화가 들렸다: '아버님이 쓰시기에는~~이 폰이~~' 


어찌된게 여긴 죄다 가족이야~ 


듣고 가실께요.   시스터 슬레지가 부릅니다.  "We are Family."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6. 09:00 일상 이야기

요새 계속 짐정리 중이다.  

난 아무래도 '미니멀 라이프'와는 연이 멀다.  작은 도서관 만큼 책이 많은데, 이것도 엄청 버리고 난 건데...  '언젠간 필요할 자료' 'sentimental value' 이런 저런 이유로 버리질 못하다 보니, 자고 나면 책장 안에서 책이 자라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길 정도로 책이 넘쳐난다. 

작정하고 이번 기회에 대거 집을 정리하려고 하고 있다.  아직도 집안 곳곳을 채운 이삿짐 상자들을 보면서 다시 다짐한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그리고  일본에서 잠시 체재하면서 깨달은 것은 사람이 사는데 그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고, 불필요한 것들이 가득 찬 공간은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확실히 이러한 생각은 최근 유행했던 '미니멀 라이프' 사상과 상통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아이러니 하게도, 한 명이 사나 열 명이 사나 그래도 필요한 건 필요한 거라 마련해야 할 살림은 결국은 마련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난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로는 못사나보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들로 인해 '물욕'이나 물건에 대한 애착은 많이 사라진 것 같긴하다

하지만, 또 넘쳐 나는 책을 보면....  또 잡동사니 하나 정리하면서 별의별 추억을 다 떠올리곤 다시 주워 담는걸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째 오락가락 한다.   

어쨌든 올해 안엔 이룰거다.  어중간한 미니멀 라이프!  


엊그제 블로그를 열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낯익은 글이 눈에 띈다.  이게 언제 여기 실렸지?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  ^^   내 글이니 옮겨와도 상관없겠지?  오늘 생각과 일맥상통하여 링크!  (하지만, 이 글 읽고 전시장으로 달려가지는 마세요~ 재작년 글이에요~)  

http://thehyundaiculture.com/221325482176


#미니멀라이프 #미니멀리즘 #정리정돈 #덴마크디자인전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5. 19:53 미술 이야기


이 블로그의 제목과 필명의 근간이 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1897) 이야기

앙리 루소 (Henri Rouseau: 1844-1910)의 <잠자는 집시 (The Sleeping Gypsy)> (1897)

Henri Rousseau, The Sleeping Gypsy (La Bohémienne endormie) 1897. Oil on canvas; 129.5 x 200.7 cm ; Gift of Mrs. Simon Guggenheim, MoMA


때는 바야흐로 난생 처음 뉴욕을 방문했던 해의 겨울의 어느 날, 처음으로 뉴욕 현대미술관, MoMA를 방문했을 때, 나는 <잠자는 집시>라는 작품을 봤다. 전시실로 들어서자마자 생각보다 컸던 작품이 눈에 안기는 순간, 난 뭐라 형언하기 힘든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가 꽂히는 듯한 (그렇다고는 해도 가슴에 비수가 꽂혀 본 적은 없으니, 그냥 느낌상 그러할 것 같다는 의미)..... 그게 요즘 말로 하자면, '심쿵'인건지... 충격과 감동인건지... 그 당시 나로선 그 정체를 알지 못했다. 물론 그 이전까지 문학 작품을 보고 울컥하거나 통렬한 감동을 느껴본 적은 있었지만, 미술 작품을 보고 그러한 종류의 감정을 느낀 적은 난생 처음이라 당황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의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 걸까~



어느 누구도 인생을 한 줄로 요약되게 물 흐르듯 살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나라고 해서, 이 작품을 똵! 보고 그 길로 미술사로 똵! 전공을 바꿔서 그 이후로 원탁의 기사가 성배 찾듯 이 작품에 대한 열정 어린 탐구를 주욱!~ 지속적으로 했.... 이런 식으로 이어진 건 아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이 작품을 본 이후로 ‘왜 난 문학 작품이 아닌 하나의 시각 예술 작품을 보고 그토록 감동을 받았던가?’ 하는 맘으로 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었고, 이후 여차저차 결국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한편으로는 지속적으로 ‘이 작품에 감춰진 수수께끼는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늘 맘 한 켠에 묻어두고 지냈던 것 같다. 이미 미술 교과서에서 익히 보아 알고 있던 작품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대했을 때의 받았던 충격에 가까운 감동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었던 것이었단 말이었던가?...하는.


그러다가 몇 해 전 비로소 그 해묵은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풀어줄 만한 아티클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quest가 지속적이고 집요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들통이 나는 순간. 그도 그럴 것이 이 글이란, 실은 저명한 미술사학자 알버트 보임의 아주 해묵은 아티클로 내가 작정하고 찾아봤다면 진작에 발견할 수 있었을 글이었으므로...)

[Albert Boime, “Jean-Léon Gérôme, Henri Rousseau’s Sleeping Gypsy and the Academic Legacy,” Art Quarterly Vol. XXXIV: No.1 (1971): pp.3-29. [http://www.albertboime.com/Articles/20.pdf 관심이 있으신 분은 한번 읽어보시길]


이 아티클에서 알버트 보임은 19세기 유명한 아카데미 화가 장-레옹 제롬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자의 출처를 추적해가는데.....

그 글을 요약하자면,

1. 우선 화가 앙리 루소는 독학파였으나, 스스로는 아카데미 풍의 화가로 생각하였고, 자신의 화풍을 화가 윌리엄 부게로나 장-레옹 제롬의 화풍과 동일시하였다. 따라서, 루소는 이들의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2. 제롬은 열강의 식민지 개척이 한창이던 시기, 아카데미 화가의 자격으로 그 개척단을 수행하며 그곳의 자연과 생활상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내셔널지오그래픽지의 사진작가 정도의 역할이라고나 할까?) 따라서 제롬은 사자를 실제로 보고 그릴 기회가 많았다는 것.


3.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롬은 그 광활한 사막을 돌아다니는 백수의 제왕 사자를 자신과 동일시 했을 거라는 것,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유독 사자가 많이 등장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첫째, 장-레옹 제롬은 그의 이름에 사자를 뜻하는 ‘Léon’이 들어간다. ('밀림의 왕자 레오'를 떠올려보자~) 둘째로, 자신의 성인 'Gérôme'은 유명한 성인 St. Jerome과 발음이 같다.


Jean-Léon Gérôme, Saint Jérôme, 1874, oil on canvas painting, 69 x 93 cm., Städel Museum

(기독교인들을 사자굴에 집어넣어서 사자가 잡아먹지 않으면 살려주는 벌을 행했을때, 사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뽑아주었더니 사자가 성 제롬을 살려주었다는 유명한 전설. 물론 제롬도 알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주제로 그림도 그렸다.)

Jean-Léon Gérôme (1824–1904) The Two Majesties, 1883 oil on canvas; 69.22 × 128.91 cm


장-레옹 제롬의 작품에서 대부분 사자는 광활한 자연을 홀로 거닐거나 앉아서 사색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알버트 보임은 제롬이 당시 아카데미의 화가로 명성과 지위를 얻었음에도 경직된 관료주의와 주변과의 관계에서 항상 고독함을 느꼈기에 이런 그림을 그렸으리라 추측한다.

그리고, 오늘의 작품 <잠자는 집시>에서 등장하는 사자의 출처는 아마도 앙리 루소는 자신이 동일시 하던 아카데믹 화가 장-레옹 제롬의 작품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아래의 작품 <기독교 순교자들의 마지막 기도>라는 작품은 장-레옹 제롬이 주문을 받은 이래 상당한 공을 들여 오랜 기간에 걸쳐 제작한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사자는 동물들의 제왕으로서의 위엄은 가득하지만, 위협적 맹수의 모습은 아니다. 또, 지하굴을 아직 채 빠져나오지 않은 사자들도 피에 굶주린 맹수라기보다는 온순하고 조심스러운 고양이와도 같은 모습이다.

Jean-Léon Gérôme, The Christian Martyrs' Last Prayer (1863-1883), oil on canvas 150.1 x 87.9 cm


이제 <잠자는 집시>로 돌아와 보자. 루소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자도 위협적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고 호기심 많고 온순한 모습이다.
실제로 화가 루소 자신이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는 목적으로 쓴 편지에서도 그 의도를 확실히 하고 있다:

…떠돌이 흑인여성, 만다린 연주자는 물 단지를 옆에 두고 누워서, 피곤에 지쳐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사자는 우연히 그 곁을 지나다가 그녀의 냄새를 맡고 있지만, 잡아먹지는 않습니다. 달빛의 효과 탓에 매우 시적이죠. 장면은 완전히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집시는 동양 풍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루소의 <잠자는 집시>의 사자는 장-레옹 제롬의 <기독교 순교자들의 마지막 기도>의 사자들과 많이 닮아 있지 않은가?

제롬의 사자 그림들의 제작 의도는 물론 루소의 <잠자는 집시>의 의미도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직접 정글 탐험은 고사하고, 사자를 본 적도 없이, 파리의 식물원을 방문하면서 그때마다 정글을 탐험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고 하는 루소와 정글과 사막 지대를 누비며 사자를 직접 보았을 장-레옹 제롬이 사자에 대해 느꼈던 감성은 일맥상통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Jean-Léon Gérôme, Solitude, 1890


위의 작품에서는 제목마저 알기 쉽게 <고독>이다. 저명한 아카데믹 화가였던 장-레옹 제롬도 때론 비평가들의 놀림을 받던 일요화가였던 앙리 루소도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지 못하는 세상에서 외로웠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 작품이 그려진 지 100년도 훨씬 넘게 세월이 흐른 후에 루소의 작품을 봤던 나는 왜 엄청난 감동을 받았던 것일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의 경우, 그것은 아마도 ‘외로움’과 ‘안도감’의 공명이 아니었을까?

난생 처음 낯선 타국에 홀로 떨어져 생활하면서, 때때로 위험하다는 뉴욕 거리를 다니면서 불안하기도 했었던 나로서는 누워 있는 집시에게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고, 엄청난 위력을 갖추었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무방비 상태의 집시를 지켜주고 사자의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누구도 아닌 힘 쎈 사자가 나를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지켜준다니! 그 이상의 든든함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광활한 사막에 홀로 놓여진 사자와 집시 모두에게서 느껴지는 외로움… 그 와중에 웃고 있는 달님과 아련한 별 빛으로 채워진 짙푸른 밤하늘로 인해 느껴지는 시상 충만한 감성...

물론 그 이후에도 수없이 MoMA를 방문해봤고, 그 때마다 첫날의 감동을 떠올리며 다시 그 작품을 봤었고, 처음 그때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은 빛이 바래갔다. 그 전시실에 들어가면 그 자리에 그 작품이 있을 것임을, 그 방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아마 20살 언저리 뉴욕에 있던 난 외로웠고, 그 작품을 보면서 커다란 위안을 받았고, 그 작품으로 인해 무한한 안도감을 선사 받았다는 것을.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5. 08:07 일상 이야기

신이 내게 다른 것을 다 주시면서 빠뜨리고 안주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방향감각.  


그렇다.  그래서 난 길치이다.  


그렇기에 난 같은 장소를 최소한 대여섯 번을 왕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특정 장소까지의 경로를 겨우 기억한다.  여하한 이유가 없으면, 난 그렇게 어렵사리 기억한 경로를 고수한다.  하지만, 나의 또 다른 특징이 있으니 그건 네비게이터의 말은 엄청 고분고분 듣는다는 것이다.


길치인 나도 이제는 완전히 익숙한 신촌에서 집까지의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거기서도 엄청난 혼란을 겪었다. 평소엔 신촌 로터리 쪽에서 홍대 앞을 지나치거나, 동교동 사거리 쪽으로 나가서 홍대 전철역을 지나 결국은 SK 합정 주유소 앞쪽 진입로에서 강변북로를 타서 귀가하곤 하는데....


어제는 네비게이터가 홍대 쪽으로 가라길래 순순히 산울림 소극장이 있는 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르막길로 올랐다.  그런데 그때부터 방향이 점점 이상해진다.  그래서 내 딴에는 없는 방향 감각을  최대한 발휘~ 일단 강변북로 표지판을 따라 한참 운전을 했는데, 결국 내가 발견한 건 일산쪽으로 향하는 강변북로!  평소에 가는 길에서는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왼쪽은  한남대교 쪽 오른쪽은 일산 쪽 이렇게 나뉘는데, 거긴 안그런가보았다. 


그래서 일대를 약간 돌다보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신촌 일대....너 오늘 되게 낯설다~) 네비게이터가 이번엔 시청 쪽으로 가랜다~  그쪽으론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고, 방향적으로는 평소 집으로 가는 쪽의 정반대인데.... 그렇지만, 내 차의 네비게이터 양 뿐 아니라, 티맵의 네비게이터 군까지 이구동성으로 마포, 시청/광화문 쪽으로 가라고 아우성~  

결국, 아현동, 충정로, 서소문 고가차도, 세종대로, 소공로, 회현사거리, 퇴계 지하차도 옆, 퇴계로 2가, 삼일대로, 남산 1호터널 한남대교 방면, 한남대로, 독서당로, 서빙고로, 보광로, 뚝섬로, 용비교 (티맵보고 옮겨 적어봄)를 경유하여 귀가.  덕분에 터널 통과할 때 통행료를 내긴 했지만, 첨으로 가보는 길이라 신선했다.  내가 늘 다니던 길이 막혀서 교통 정보를 통합해서 네비게이터가 새로운 길을 알려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덕분에 생각보다 크게 막히지 않는 쾌적한 귀가 길이었다.   심지어 한남동 쪽 주유소 앞에서 로이 리히텐슈타인도 만났다.  Pop Art Everywhere~




정말 간 만에 이대 앞도 지나가 보고, 학교 다닐 때 버스로 오가던 아현동, 충정로 이런데도 이제는 차로 지나가 보고, 유학 전 한국에 있을 때 자주 가던 호암아트 홀, 조선호텔 앞도 지나오다 보니 감회가 새로왔다.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몽글몽글....   아마 소요시간이 평소보다 짧았다고 느꼈던건 추억따라 상념에 젖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다... 분명히 평소 집으로 가는 방향의 반대 방향이었는데... 

(잠시 갸우뚱) 
아하!~ 역시 지구는 둥근 게 틀림없다는 확신이 생겼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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