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미술 이야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111 Page)
2019. 1. 10. 00:30 미술 이야기

예전에 진주는 눈물을 상징하므로 '결혼 안 한 아가씨들은 진주 목걸이 하는게 아니다'라고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나야 진주 목걸이가 없어서 안하고 다녔기에 본의 아니게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듣는 '아가씨'가 되어버렸지만. 

원래 진주란 것이 특정 조개 속에 들어간 이물질을 몸 안에서 삭히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것이니 그러한 말이 나오게 된 내력은 짐작할 만하긴 하다. 그래서 '진주'는 때때로 각고의 노력 끝에 맺는 결실을 비유하기도 한다.  양식 진주가 등장하기 전, 진주는 100% 천연 진주였기에, 엄청나게 귀해서 한때는 다이아몬드보다도 비쌌다고도 하는데...

미술 작품 중, '진주' 하면 유명한건 역시,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1632-1675)(요즈음 표기법으로는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일 것이다. 

Johannes Vermeer, Girl with a Pearl Earring (c. 1665), oil on canvas ; 44.5 × 39 cm,  Mauritshuis, The Hague, Netherlands    [여담이지만, 베르메르의 소녀가 하고 있는 진주는 진짜 진주가 아니라, 당시에 막 개발되던 기법들로 만들어진 모조 진주다.  갈치 같은 은빛 나는 생선의 표면에서 나온 색소들을 주석에다 문질문질 채색하여 만든 것 (그게 가능하게 하는 것이 개발된 기술이란 말씀. 집에서 실험해보고 그러지 말자.)  만약 실제 저 정도 크기의 진주 귀고리라면 가격이 너무나도 어마무시 했을 것이고, 당시로선 무명 화가였던 베르메르 같은 일개 화가가 소품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늘은 베르베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가 주인공이 아니다.  그렇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우연히 발견한 이 장식품!  

'진주는 눈물'이라는 것을 이 브로치만큼 성공적으로 시각화한 작품이 있을까 싶어 좀 살펴보았다. 

             Eye Miniature, early 19th century. ©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관련기사: The Mysterious History of Lover’s Eye Jewelry)


이 브로치는 18세기말의 영국 왕 조지 4세 (George IV: 1762-1830)가 아직 왕위를 계승하기 전 프린스 조지 오브 웨일즈 (Prince George of Wales)로 불리던 왕자 시절에 짝사랑하던 여인 마리아 앤 피처버트 (Maria Anne Fitzherbert: 1756-1837)에게 연애편지에 동봉해서 보낸 선물이라고 한다. 

한 쪽 눈은 왕자의 초상에서 눈 부분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다이아로 표현한 눈물 한 방울 또로록~

여기까지만 들으면 '꺄악! 너무 로맨틱하잖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눈 한 쪽이 주는 느낌은 로맨틱하지만은 않을 뿐더러, 다소 기괴한 느낌도 없잖아 있다.  그리고 알고 보면 둘의 사랑도 그렇게까지 순애보적인 것 같지만은 않다. 

좀 들여다보면, 이들의 로맨스는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다. 

영국의 왕자가 사랑한 여인이 두 번이나 결혼했다가 두 번 다 남편을 잃은 평민 출신의 미망인인데다 카톨릭 집안 출신이라 영국 국교와는 종교도 다른 여인이라는 점.  국법으로 왕자와 결혼할 수 없는 처지의 몸이었다 한다. 하지만, 첫 눈에 이 여섯 살 연상녀에게 반한 왕자는 끈질기게 구애를 하여, 결국 둘은 비밀리에 결혼식까지 감행하지만, 왕의 집안에서 그것을 용인할 리 없었고, 국왕의 윤허가 없었기에 법적으로 둘의 결혼은 무효. 

게다가 이 왕자님이 워낙 씀씀이가 크셔서 파산 위기라 그 재정난을 이기고자 친척이자 부자인 신부를 맞이하게 되고... 이런 연유로 결혼한 둘 사이에 애정이 있을리 만무해서, 결국 첫 아이를 낳자마자 둘은 별거 상태. 왕비는 왕비대로 애인이 생기고, 왕은 왕대로 열손가락 모자라게 수많은 여인들과 연애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귀족 집안의 여성들도 결혼하지 않으면 상속권이 없고, 결혼해야만 상속을 받을 수 있는데, 상속 된 재산이 남편의 명의가 되고, 그 남편이 부인보다 먼저 죽는 경우, 부인이 아닌 자식에게로 넘어가는 것이 19세기 말까지의 법이었다. 사실 마리아 앤이 두번째 결혼을 서둘러야 했던 것도 첫번째 결혼 후 얼마되지 않아 남편이 말에서 떨어져 죽는 바람에, 아내에게 따로 재산을 남긴다는 유서를 쓸 틈이 없었기에 무일푼으로 생활고에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왕자와 인정 받지 못한 결혼을 한 그녀는 '연금을 제 때 주지 않으면, 둘의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나 문서를 공개해버리겠다'고 왕실에 협박을 해서 생활비를 받았다고도 전해진다.  

조지 4세는 문화와 예술에는 관심이 많아 '영국 최초의 신사'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지만, 한 수행원이 남긴 글에는 '백성을 생각하는 왕이나 귀족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조지 4세는 그 중에서 최악'이라는 구절이 있다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그다지 훌륭하고 인기있는 왕은 아니었던 듯하다. 좀 더 확실히 말하자면, '이기적이고 성격 나쁘고, 행실 나쁘고, 낭비벽 심한' 왕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4세의 마리아 앤 피처버트 사이의 사랑에 대한 일화들은 절절한 면들도 있다.   

마지막 왕의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피처버트가 보낸 편지를 읽고는 베게 아래 지니고 있었고, 피처버트는 피처버트대로 왕의 건강이 악화된 것은 모르고 답장이 없음에 무척이나 가슴아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위의 '눈물 한방울 똑! 진주 브로치' 선물에 대한 화답이었는지 피처버트도 자신의 눈동자가 담긴 펜던트를 선사했던 듯한데, 유언이 그 펜던트를 자신의 목에 걸어달라는 것이었다고. 그리고 조지 4세가 죽은 뒤, 마리아 앤 피처버트에게 왕실에서 귀족 작위를 수여하려 했으나, 그것은 반려하는 대신, 자신이 상복을 입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오늘 날 우리들의 눈에는 다소 기괴해 보이는 '외눈 브로치,' 혹은 Eye miniature는 당시에는 상당한 인기를 누리며 귀족들 사이에 유행을 했다. 

Memorandum Case with a Portrait of a Women's Left Eye. Courtesy of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Portrait of a Right Eye (mounted as a ring). Courtesy of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조지 4세와 마리아 앤 피처버트와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렇게 연인들이 은밀하게 주고 받았을 선물이었을 이 '외눈 브로치' (가끔 양쪽 눈이 다들어가 있는 것도 있긴하다)는 따라서, 브로치나 반지 등과 같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형식이 많다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러한 작품들의 주문 내역이나 혹은 제작자의 이력 등 배경역사가 제대로 남아 있을리 없다. 클리브랜드 뮤지엄 (Cleveland Museum of Art)이나 필라델피아 미술관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그리고 세계적인 공예 미술관인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 (Victoria and Albert Museum) 등에 이러한 작품들이 다수 소장되었다고 하는데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연구를 할래도 기록이 있어야 뭐래도 덤벼보지, 그렇다고 생존자들이 있어 녹취를 딸 수 있나...)  

글 첫머리에 다소 기괴하다고 했으나, 만약 사랑하는 이에게 그의 눈동자가 담긴, 게다가 거기 눈물 한방울 또르륵! 브로치를 받았다면 '심쿵'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 없이 남겨진 다른 'Eye miniature'들의 사연이 무척 궁금해진다. 

미래의 미술사학자나 역사학자들, 아니면 나같이 호기심 많은 후손들을 위해서 연인들이여, 은밀한 선물을 하더라도 어디엔가는 기록을 남겨주시라~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8. 01:47 미술 이야기

어제 글을 올렸다. 앞으로는 종종 '미술사적 사전 조사'없이 흥미를 일으키는 그림에 대한 글을 올려보겠노라고. 

엊그제 올린 '술취한 원숭이' 그림에 대한 글이 처음이고, 이번 글이 두 번째이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미술사 공부한 사람치고는 한국 작가를 많이 아는 편은 아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한국에서도 서양미술사를 공부했고 외국 생활이 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좀 웃긴 변명을 또 하나 붙이자면, 한국 사람의 이름은 2~3자 밖에 안되어서 상대적으로 변수가 적어서 그 점이 역으로 비슷비슷해서 외우기 힘들다는 점이다. (글로 적고 보니 참 지지부진한 변명이다)  

그런데 위의 작품은 맘에 들어 작가 이름을 검색해 봤는데, 그 작가 이름은 한번 듣고 까먹을 수가 없게 독특했다.  '이왈종' 화백.  

이름을 듣고 보니 몇 번인가 들은 적이 이름이고, 표피적인 네이버링 ('녹색창에서 검색하는 일')만 해봐도 수십 년 간 인기를 누려온 유명 작가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전 추계예대에서도 그림을 가르치셨다고. 그리고, 위와 같은 작품의 시리즈의 제목하야, ‘제주생활의 中道와 緣起’.

왠지 불교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타이틀이다. 그리고 제목에서 짐작하듯 작가는 제주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그 곳에 무려 작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도 있다고... 원체 저명한 작가이신데, 명색이 미술사 공부하면서 못 알아 봬서 죄송하기 그지 없다. (울 엄마도 가끔 어떻게 미술사 공부한 애가 '도자기의 "도" 자'도 모르느냐며 나의 안목의 부재를 탓하시는 터라, 나의 무식이 충격적이지는 않다.) 

다만, 다시 옹색한 변명을 하나 덧붙이자면, 미술사에도 여러 분야가 있고, 그 속에 몸을 담고 있으면 있을수록 어떤 면에서는 시야가 좁아져서, 예전의 개론 수업에서 알았던 타 분야의 지식은 야곰야곰 까먹어서 그렇다.  (미술사에는 크게는 한국미술사, 동양미술사, 서양미술사가 있고, 전공으로 들어가면 각각 다시 시대별로 나뉜다. 예. 고대, 르네상스, 바로크, 19세기, 모더니즘, 현대미술 등등)  

그리고 이상적으로는 갤러리 전시들 쫒아다니고, 미술계 소식은 발빠르게 찾아다니고 해야하겠지만, 현실은 내 코가 석자라 학생 때에는 세미나 수업 과제하랴 발표 준비하랴 바쁘고, 지금은 다시 내가 당면한 일들을 처리하다보면 쉽지 않다. 다시 말해, 공부를 오래할수록 자신의 분야만 파고 들게 되어서 점점 시야는 좁아지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무식하게 되게 쉽다. 

어쨌든 위의 그림을 누가 카톡의 대문 그림으로 쓰는 것을 보고 작가가 누구냐 물어서 알게된 이왈종 작가의 작품은 재미있고도 정감이 넘치는 그림이다. 알록달록하게 선명한 색상들로 그려진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누구나 한번쯤 꿈꿔본 평화롭고 여유로운 전원 생활을 시각화한 것이라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과 안정감을 선사한다.  

평화롭고 한적한, 일종의 전원시와도 같은 작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의 인물들은 골프를 치고 있기도 하고, 저 멀리 바다에는 크루즈가 떠 있기도 하고, 앞마당에는 빨간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기도 한, 엄연한 현재의 모습이다.  그러한 현대적 모습은 당의정적인 이상향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의 생활에서도 이상향을 꿈꿀 수 있음을 역설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미술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러시아 화가 샤갈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아래의 그림은 샤갈이 그리는 고향 풍경과 유사한 느낌이다. (특히 윗쪽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부분은 조형적으로도 그렇지만, 두 작가가 추억을 바탕으로 정감있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 (2011), 장지 위에 혼합재료 ; 130 x 162 cm, 현대화랑. (이미지: 현대화랑)

Marc Chagall, I and the Village (1911), oil on canvas ; 192.1 x 151.4 cm, MoMA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 (2011), 장지 위에 혼합재료 ; 130 x 162 cm, 현대화랑. (이미지: 현대화랑) (세부)

Marc Chagall, I and the Village (1911), oil on canvas ; 192.1 x 151.4 cm, MoMA (세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아닌게 아니라 이왈종 화가와 에콜 드 파리 화파를 대표하는 마르크 샤갈의 작품세계와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그의 작품이 마치 아이의 그림과 같은 천진함과 순수함이 묻어나는 그림들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이왈종은 제주도를, 샤갈은 그의 고향 비쳅스크를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두 작가 모두 판화 작품이 많다는 점도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공통점으로는, 샤갈이 에콜 드 파리 시절 1910년대부터 1985년 세상을 뜰 때까지 참 한결같은 작풍을 유지했듯이, 이왈종의 화풍도 참 한결같다는 점이다. 이는 인기 화가의 입장에서는 피치못할 상황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샤갈다운 샤갈 작품을 원했고, 이왈종스러운 이왈종의 작품을 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동어반복적 화풍은 결과적으로 비판을 야기하게 되기도 한다는 문제가 있다. 

비평적인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또 한 사람의 미술 애호가로서 동일한 화풍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작가의 작품을 끊임없이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 지켜보도록 하면서, 지금으로서는 그냥 새롭게 알게된 작품의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맘껏 빠져보기로 한다.  

이상이 나만 새롭게 알게 된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에 대한 내 맘 내키는대로 그림보기였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7. 17:26 미술 이야기

새해를 맞이해서 블로그에 글을 매일 올리겠다고 나름 결심했는데, 미술 이야기에 글을 하나 올리려면, 읽는 입장에서는 술술 읽힐지 모르겠으나~~  글을 올리는 입장에서는 상당한 조사가 필요하다.  일이 밀려 있다보니, 블로그에 올릴 글을 위한 조사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는 것이 현실.  

그런데, 또 아이러니 한 것이 연말에 지난 몇 달의 방문자 통계를 봤더니, 그렇게 조사를 해서 올린 글보다 지나가는 얘기로 올린 영화 하나에 대한 글 (맨 오브 마스크)이나 해외 미술 관련 사이트에서 본 뉴스에 대한 나의 소감을 간략하게 올린 글(뱅크시의 경매에서의 헤프닝에 대한 글)의 방문자 수가 압도적이다.  (사실 블로그 시작하고 처음에는 방문자수를 보는 방법도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는 계속 글만 올렸다. 이런 바부탱이~)  

이러한 두 가지 사항이 겹쳐지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그래도)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냥 사전 지식 없이 내가 재미있거나 좋다고 생각한 작품들을 하나씩 올려보는 거다.  물론 앞으로도 나름 조사를 해서 시간을 걸려서 쓰는 글들도 계속해서 올리겠지만, 매번 그런 자료에 근거한 글만 올리기보다는 사전 지식은 없지만, 그냥 내가 좋다고 생각되는 작품에 대해서 올려보는 시도를 해볼까 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러한 글을 쓰려는 시도가 의외로 좋은 아이디어일지도 모른다 여겨졌다.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이제까지 내가 미술 작품에 대한 글쓰기에 있어서 미술사적인 접근의 패턴 - 즉, 일련의 조사를 바탕이 선행된 글쓰기 - 에서 탈피해서 새로운 글쓰기에 대한 훈련이 될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우선 기존의 글보다는 직관이 중요하다는 점에 있어서 직관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블로그라는 공간이 어차피 독자와의 공감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했을 때, 내가 좋아하거나 재밌다고 느끼는 작품들에 대해서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앞으로 차차 내가 해당 작품들에 대한 조사를 더해서 그 작품이나 그 작품을 제작한 작가들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내 첫 감상과 직관이 그러한 '팩트'와 '배경'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재미있는 기회도 제공하리라~ 

어제 올린 원숭이 그림이 그 첫번째 예. 

앞으로 그런 글을 써볼 것이란 말씀~     

'예고' 아닌 '예고'적인 작품~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6. 00:46 미술 이야기

우연히 페북에서 발견한 그림....

Gabriel von Max, Drunken Monkey  

작자와 작품의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못하나 재미있어서 일단 올려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술먹으면 '강아지 (격조 있는 블로그이므로 좀 순화한 표현을 사용함)'라고 하지 않나?  서양에서는 다른 표현이 있는 것일까?  Gabriel Cornelius Ritter von Max (1840-1915)라는 체코 출신의 화가의 Drunken Monkey라는 제목의 그림.  구글링을 좀 해보니 원숭이를 잘그리는 화가였던듯 하다.  기법을 보아하니 정통적인 예술교육 받은 분 같고, 굳이 분류하자면, 일종의 '장르화'에 해당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르화 (genre-painting)'란 풍속화의 일종으로 귀족이나 교회가 주축이 된 대작과는 대조되는 소품 위주의 중산층의 오락을 위해 탄생한 회화장르인데, 17세기 네덜란드 중산층에 의해 많이 소비되었다)  일례로 '튤립 매니아"에 대한 글에서도 풍자화로 귀족들을 원숭이로 묘사한 그림을 하나 소개했다. (그 포스팅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교회나 궁전에 그려지거나 걸린 회화 작품은 신화나 종교적 주제를 다루고 있고, 대부분 교훈을 전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TV 프로그램으로 비유하자면, EBS나 BBC의 교양프로그램이라면, 장르화는 저녁시간 오락프로그램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 장르화가 David Teniers (1610-1690)의 "술집의 원숭이들" 시리즈로 제작된 작품들 중 하나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에서 풍속화에서나 19세기 가브리엘 폰 막스의 작품 속에서의 원숭이 둘 다 풍자와 해학의 의도가 다분하다.  거기에 특히 19세기 중반 다윈의 '종의 기원'을 발표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다윈의 학설에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도 짐작해본다.  

좀 찾아보니, 가브리엘 폰 막스라는 이 작가는 자신의 아이처럼 원숭이를 안고 그린 자화상도 있는 것이 있던데, 그렇다면 그가 실제로 원숭이를 키웠던 듯도 하지 않을까?  그리는 대상에 대한 애정을 담뿍 담아 자세히 관찰했음이 느껴지던데, 원숭이를 원체 좋아했었나보다. 그리고 그러한 그림의 내면에 면면히 흐르는 인간에 대한 풍자는 오브 가 코스로 담겨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연말연시 '지나친 음주는 몸에 좋지 않습니다.'라는 캠페인에 사용해도 손색없을 듯한.... 아니면, 이 사진 옆에 쌩쌩한 젊은이 사진하나 대비해서 넣고, '컨디*' 혹은 '헛개**'을 마신날과 마시지 않은 날.... 이렇게 비교하면서 숙취예방 내지 해소제 광고에 쓰여도 좋을 법한...  

세상에는 정말 모르는 화가들도 많고, 모르는 작가들도 많고나...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  그닥 유명화가는 아니었던 탓에, 표피적인 구글링으로는 자료를 많이 발견할 수 없다보니, 과연 그는 어떠한 화가였고, 어떠한 삶을 살았으며, 이러한 작품은 당시 화단에서 어떤 평을 받았을까? 궁금해진다.  시간이 나면 한번 찾아보고 싶어진다.   

Drunken Monkey라는 바가 현재 프라하에 있어서 검색하면 맨 먼저 뜨는 것을 보면, 성업중인듯 한데, 이것도 그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심지어, 한글로 '술취한 원숭이'를 검색해보니, 실제로 '술취한 원숭이'라는 이름의 홍탁주라는 생소한 술이 우리나라에 있다. 아~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먹거리 마실거리가 참 많고나...하는 생각도 함께 드는 날.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4. 17:24 미술 이야기

짧은 블로깅의 역사 속에서 초창기에 남긴 글 중에서 호쿠사이에 대한 글을 하나썼다.

제목하야, "해리 포터와 호쿠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물론 제목이야 읽는 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려는 의도가 다분했기에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야 않지만.... (그글을 읽으시려면 요기를 클릭!), 내용은 충분히 진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그 내용과 비슷한 기사를 발견해서 기쁜 맘에 링크를 걸어본다. 

"Older Versions of Hokusai’s ‘Great Wave’ Show Its Surprising Evolution Over Time"


다시 말하지만, 해리 포터의 교훈은 '타고난 마법사라도 훈련은 필요하다' (안그러면 빗자루 타다가 떨어진다.)   그리고 역사 속의 대가도 지리멸렬한 과정을 거쳐서 대가가 되었다.  따라서,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처음부터 잘하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꾸준히 훈련과 연습과 노력을 계속해야한다는 말씀!  새해부터 내용이 너무 계속 건전한가? ^^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2. 21. 18:25 미술 이야기

앞샹 아니고 뒤샹 전이 개막을 하네요. (아재 개그 주의!) 12월 22일~

이번 전시는 뒤샹 작품을 대량 소장하고 있는 필라델피아 미술관 주도로 기획된 순회 전시라고 들었는데, 꼭 봐야 할 것 같아요.

미술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사랑하지 않아도 되지만 알긴 알아야 하는 작가이니까요.  

그리고 미술에 관심이 있고 미술관 가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주요 작가들의 특별전은 봐주는 것이 좋아요. 세계 각곳의 주요 작품들이 오롯이 한자리에 모이는 드문 기회니까요. 혼자서 보려면, 물론 경비도 경비지만, 기억력의 한계로 소장처가 다른 작품을 비교해가며 감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휴일이 길고 잦은 연말연시 뒤샹전 관람은 어떨까요?  

(참고로 전 미술관측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광고글은 아닙니다.  예술애호가로서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냥 한마디~)

국립현대 미술관 전시소개 웹사이트는 여기를 클릭!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2. 5. 17:47 미술 이야기

미국은 쫌 멀지만 일본은 가까우니까... 

필립스 컬렉션의 소장품들을 만날 기회다 싶어서 소개합니다.  

이번 거울 일본의 토쿄 여행이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mimt.jp/pc/eng/midokoro.html?fbclid=IwAR0kQ1LkHbMyUt8KbCIE21SFkFRb8XB4BO7Dn0T-U27dOqcQpWALDFNrLD4

https://www.facebook.com/phillipscollection/photos/pcb.10156987597567369/10156987597482369/?type=3&theater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30. 00:18 미술 이야기

 

11월 26일 월요일 오후,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권위있는 경매소 도로테움 (The Dorotheum)에서 11월 28일 경매 예정이었던 르느와르의 작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에르-오귀스트 르느와르 (Pierre-Auguste Renoir)의 1895년 작품<Golfe, mer, falaises vertes (Gulf, Sea, Green Cliffs)>은 28일 경매에서 약 $131,000~$181,000 (1억4685만원~2억290만원)으로 판매될 것으로 추정된 작품이다. 

Pierre-Auguste Renoir, Gulf, Sea, Green Cliffsoil on canvas ; 27 x 40 cm. 

The Dorotheum in Vienna, which dates to 1707. A Renoir was stolen off its walls on Monday.  Credit Leonhard Foeger/Reuters

 

빈 경찰이 공개한 CCTV 화면에 잡힌 범인으로 추정되는 세명의 남성 Credit Vienna Police

이번 사건으로 경매소 측 뿐 아니라 구매를 희망했던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을 받았음에는 틀림없다.  실제로 그림을 액자에서 빼내가는 시간까지 걸린 시간은 무척 짧아 범행은 순식간에 이뤄졌다고 알려져 있다. 어떻게 경비가 삼엄했을 경매소를 그렇게 간단히 통과했는지도 미스테리다.  르느와르 작품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이고 독특한 작품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귀중할 수도 있는 이 작품을 하루빨리 경찰이 되찾기를 바랄 뿐이다. 

유명 작품과 도난 사건은 드문 일은 아니다. 

대표적 도난 사건으로 유명한 것으로는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가 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지만, 이 <절규>가 그 인기에 힘입어 1893년부터 1910년에 걸쳐 유화와 파스텔 등, 4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처음 독일어로 제목을 붙일때에는 <Der Schrei der Natur (The Scream of Nature)>, 즉 '자연의 절규'라고 명명했었다는 것도. 

진홍빛으로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해골과 같은 모습의 고통스럽게 일그러뜨린 얼굴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간략화된 선들로 현대인의 고독과 절망을 절묘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현대의 모나리자'라 불리기도 한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거의 국보 대접을 받는 이 작품들은 지금은 거의 국외로 반출이 금해져 있는 상태. 예외적으로 2015년 반고흐 뮤지엄에서 1893년 파스텔 버전이 전시된 적이 있긴하다. 

총 4점의 작품 중 2점은 오슬로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중이다. (참고: 아래 두 이미지) 

Edvard Munch  (1863-1944),  The Scream (1893)  pastel on cardboard ; 74 x 56 cm, Munch Museum  최초의 버전으로 파스텔로 스케치를 한 작품으로 기본이 되는 구도를 잘 살펴볼 수 있다.  

Edvard Munch  (1863-1944),  The Scream (1893)  oil, tempera & pastel on cardboard ; 91x 73.5 cm, National Gallery of Norway  <절규>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이고 널리 알려진 작품 일것이다.  

뭉크 뮤지엄에서는 1910년 버전 (참고: 아래 이미지)

Edvard Munch  (1863-1944),  The Scream (1910) 

tempera on panel ; 83 x 66 cm, Munch Museum  이 버전은 1910년 카드보드위에 템페라로 제작된 작품으로 2004년 도난당했다가 2006년 무사히 찾은 작품.   

 

 

Munch  (1863-1944),  The Scream (1895) Pastel on board ; 79 x 59 cm, private collection Leon Black.  이 1895년 파스텔 버전은 2012년 소더비 경매에서 $119,922,600 [약1344억원 상당]라는 높은 가격으로 Leon Black에게 판매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의 하단에는 뭉크가 작품을 구상했을 당시의 느낌을 적은 일기가 동판에 새겨져 덧붙여져 있는 점도 특징이다.  

 

뭉크의 절규 작품의 도난 사건은 1994년과 2004년 두차례 일어났다. 첫번째 1994년 도난 사건은 오슬로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일어났지만 수개월 안에 작품이 회수되었고, 2004년 도난 사건은 <절규>와 함께 <마돈나>가 뭉크 뮤지엄에서 도난당했다가 수년후 회수되었다.

 

1994년 올림픽을 맞이해서 노르웨이의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을 개최하는 관계로 뭉크의 <절규>를 기존의 전시실에서 1층에 옮겼는데, 그 틈을 타 도둑들이 사다리를 놓고 그림을 가져가는데 채 1분이 걸리지 않았고, 게다가 엉성한 보안에 감사!”라는 메모까지 남기고 갔다 한다. (범인들이 명탐정 코난 만화에 나오는 괴도 키드를 알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수개월 내에 작품은 회수 되었고, 범인은 잡혔지만, 위법수사를 이유로 범인 네명중 세명은 제대로 처벌하지도 못했다 한다. 그 중 한 명은 1988년 뭉크의 <뱀파이어>라는 작품을 훔친 전력이 있는 폴 앵겔 (Pål Enger)이었다고.      

 

1994년 도난 당시 범인들이 사용했던 사다리. 이 사다리를 타고 오슬로의 내셔널 미술관에 잠입하여 뭉크의 <절규>를 떼가고, 거기다 "엉성한 보안에 감사!"라는 메모까지 남기고 떠나는데 50여초 밖에 안걸렸다고 한다. 

  

 

2004년 도난사건의 경우엔 좀더 험악했는데, 백주 대낮에 두 명의 무장괴한이 뭉크 뮤지엄에 출몰하여 뭉크의 <마돈나><절규> 두 점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었다.  한때는 증거인멸로 작품들을 태워버렸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작품은 무사히 회수하였다.   

 

보통 이러한 미술품들의 도난 사건의 경우,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기에 미술관 측에서 은밀히 처리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서 경위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도난시 작품이 위작과 교체될 위험도 있고, 미술관 측으로서는 엄청난 손해와 비난을 감수해야하므로.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은밀히 도둑들로부터 되사는 경우까지도 있다고.  개인 경매도 그러하지만, 이러한 작업들은 모르긴 몰라도 첩보전을 방불케하리라~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