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미술 이야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110 Page)
2019. 2. 3. 00:30 미술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다음으로 유명한 작품은 아마도 노르웨이의 국민 화가라고 할 만한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전에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

Edvard_Munch, The Scream (1893) oil, tempera and pastel on cardboard, 91 x 73 cm, National Gallery of Norway

心臓の「叫び」(支援キャンペーン)원본 페이지

 

뭉크의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일본의 공익광고가 유일한 것은 아니다. 내가 본 것만 몇 가지 된다. 지금와서 찾아보니 검색이 되는 것은 방향제 광고 하나이지만 말이다.  광고를 보다보면 우리의 절규 청년의 지시대로 방향제를 얼른 플러그에 꽂아야 할 것 같지 않은가?  꽂아주니 저렇게 행복해하니 더더욱!  

90년대 글레이드 플러그 인 (콘센트식 방향제)의 광고에 사용된 뭉크의 <절규> 이미지

 

엊그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패러디하여 (예술적 평가에 대해서는 아직 뭐라 말할 수 없지만) 경제적으로는 크게 성공한 일레인 스터트번트에 대해서 언급한 김에 패러디에 대한 예를 하나 들어보았다.  아래가 엊그제 올린 두 작가의 작품들.    

Roy Lichtenstein, Crying Girl (1963), lithograph on lightweight, off-white wove paper, 40.6 cm × 61.0 cm 

Elaine Sturtevant (1926-2014), Lichtenstein, Frighten Girl (1966), oil and graphite on canvas ; 115.6 x 161.9 cm. 

  '무의미한 복제', '차용'이 하나의 특징이 된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컴퓨터 그래픽, 포토샵의 기술은 나날이 발달하다보니, 정말 누구나 다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결은 다르지만, 알고 있는 예술 작품을 광고에 활용하는 것은 적절히 이용하면 확실히 효과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패러디의 효과란 이런 것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2. 1. 00:30 미술 이야기

어제 Anish Kapoor에 대해서 글을 올리고 (어제 올린 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좀 더 검색해보았다. 인스타그램의 폐해라고나 할까?  이미지 하나 달랑 올라와 있어서 그걸 보고 오만가지 상상력의 나래를 폈으나, 그 다음 곰곰 생각해보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공공 조각을 목적으로, 그것도 알루미늄으로 만든 설치 작품이 알루미늄 호일도 아니고 그렇게 쪼그라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이후 짬짬히 다른 뉴스 사이트를 뒤져봤지만, 그랬다는 뉴스는 한 군데도 없었다. 

낚인거 같다! 거의 확실하게...

덕분에 난 '내 맘대로 작품 보기' 시리즈에 포스팅 하나 더 올리고, 블로그 읽고 아니쉬 카푸어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고 그의 작품에 공감하며 좋아했을 독자들도 있을 것이니 그닥 손해보는 일은 아니다, 위안하며.... 어제 포스팅은 그냥 두고 다시 하나 글 올리기로 한다. 

하지만, 가짜 뉴스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다시한번 경각심을 가져야겠다 생각해본다. 이게 일개 조각상의 뉴스가 아니라 좀더 중대한, 이를테면 우주인들의 지구침공이라던지 아틀란티스의 반격이라던지 이런 뉴스였는데, 내가 홀라당 믿어서 글을 퍼날랐다면 얼마나 큰 후폭풍이 있었겠는가!  (반성.반성.)

눈오는 날의 <구름 문>

 

바람으로 유명한 시카고의 한겨울, 진짜 '구름 문'의 모습.  어제 글을 읽은 분들께 혼란을 야기했다면 진정 쏴리~ 

 

사과의 의미라면 뭣하지만, 이왕 내친 김에 <구름 문>의 다른 모습도 몇 개 보너스로 올려보자면. 

이 정도 규모의 설치 작품은 사실상 제작에 있어서는 건축에 가깝다. 설계도와 함께. 

<구름 문>이 모형 단계를 지나서는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받아 제작을 했다고 알려져있다. 

위에서 바라본 <구름 문>  위에서 이렇게 바라본 적은 없지만, 하늘의 풍경도 한아름 다 담고 있는 모습은 내가 아래서 느꼈던 감상을 또 한번 확신에 가깝게 해준다.  

 

배꼽이라고도 불리는 가운데 옴폭 파인 부분에서 올려다 본 <구름 문>

 

다시한번 느끼지만, 분위기에 따라서는 세기말 적이기도 하고, 외계에서 내려온 비행선 같기도 하고, 생명체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으로 등장한 2011년 영화 <소스 코드 (Source Code)>에 SF스럽게 등장하기도 했다.  

Kapoor’s Chicago work figured in the 2011 movie “Source Code” starring Jake Gyllenhaal.

 

덧붙이자면, 아니쉬 카푸어의 <구름 문>과 너무도 흡사한 중국 짝퉁이 있어서 작가가 격노해서 소송 중이라고도 들었다... (이것도 자세히 나온 기사가 없어서 확실한 전말은 알수 없고, 어제 낚이고 난 직후라 기사의 진위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중국의 커라마이시에 있다고 하는데...  위그르어로 '검은 석유'라는 뜻의 도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전이 있는 도시라고 한다.  이 중국 작품의 작가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전해진 바에 따르면, 그 지역에서 자주 발견되는 유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름 방울들의 거품'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자세히보면, 카푸어의 작품과 유사한 큰 덩어리 주변으로 자잘한 알루미늄 반구체들이 늘어서 있는데, 작가의 말을 믿자면 (혹은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 기사를 믿자면), 기름 방울들 중에 큰 놈을 묘사한게 어쩌다 보니,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과 유사한 것이 된다.  

 

중국의 커라마이시에 설치된 '기름 방울들'이라는 제목의 설치 작품. 이 작품의 존재를 알고 아니쉬 카푸어가 격분해서 항의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설에는 소송 중이라고도 하는데 자세한 것은 알수 없지만 그가 화가 난건 이해가 된다. 

누가 봐도 비슷하다고 할 것 같은데, 아류 작가도 아니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품을 대놓고 카피하다니! 대범하다고 해야할지.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앤디 워홀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그대로 모사한  일레인 스터트번트 (Elaine Sturtevant)의 경우, 전체적인 작품세계가 그러하지 않은가?  그리고 예술계에서 실제 리히텐슈타인 작품보다 그의 작품을 모사한 스터트번트의 작품이 열 배가까이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었던 것이 현실이니까. 

Roy Lichtenstein, Crying Girl (1963), lithograph on lightweight, off-white wove paper, 40.6 cm × 61.0 cm

Elaine Sturtevant (1926-2014), Lichtenstein, Frighten Girl (1966), oil and graphite on canvas ; 115.6 x 161.9 cm. 

리히텐슈타인의 <우는 소녀>는 2007년 경매에서 $78,400에 낙찰되었다. 반면, 스터트번트가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모사한 <Lichtenstein, Frighten Girl>(1966)의 경우, 2011년 경매에서 무려 $710,500에 판매되었다. 이어, 그녀가 사망한 2014년 이 작품의 가격은 예상 최고액 $800,000을 가볍게 뛰어 넘고 $3,413,000에 팔렸다. 물론 중국의 복제품과 스터트번트의 경우 차이는 있다. 중국의 복제품의 경우, 인터뷰 (혹은 인터뷰라고 알려진 글)에서조차 아니쉬 카푸어의 이름을 언급하지도 않는 반면, 스터트번트의 경우 제목에서조차 대놓고 리히텐슈타인의 이름을 넣고 있다. 이러한 이유없는 모방, 복제를 '차용 (appropriation)'이라고 하는데,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혹 아는가, 향후 수십년 지나면 중국의 짝퉁 (?) 설치작품이 다시금 새로운 작품 경향으로 회자되면서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 어떨지...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31. 13:52 미술 이야기

이 글에는 2편이 있어요.    1편만 읽고 오류를 지적하시지 마시고~ (뭐 하셔도 괜찮습니다만), 어쨌든 2편까지 꼭 읽어주세요~ 혼란을 야기했다면 죄송합니다. 

인도계 영국작가인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아마도 시카고의 밀레니엄 파크에 설치된 <구름 문 (Cloud Gate)>라는 작품일 것이다. 나만 해도, 아니쉬 카푸어라는 외우기 힘든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 이 작품을 통해서였다.  시카고를 방문했을 때, 파리에 가면 에펠탑 앞에서 사진 찍듯이, 너나없이 모두 이 거대한 강남콩 앞에서 포즈를 취하곤 했다.  물론 나도 이 앞에서 몇 차례....  선촬영 후감상.  

공공설치인 탓에 이 작품은 당시의 기후의 변화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에 따라 비춰지는 풍경의 모습도 매번 변한다.  일단 거대한 조각품은 전통적 조각에서 느낄 수 없는 규모와 미를 전달하고 있지만, 그 아름다움을 느끼느냐 아니냐는 개인차가 있으니 패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작품은 알루미늄이라는 현대적 매체를 사용하고 형상도 도우넛 모양의 충분히 현대적 형상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전달하는 미학은 지극히 동양적이라는데 있을 것이다.  'bean'이라는 별칭처럼 도우넛 같기도 하고, 콩의 형상을 하고 있는 형태의 특징과 거대한 규모 탓에 주변의 풍경이 오롯이 다 비춰진다. 따라서 삼라만상을 다 담고 있는 우주와도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그 속에 비춘 나의 작은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우주 속에 갖힌 또다른 나와 마주하게 되고, 과연 진정한 나란 누구인가...하는 '장자의 나비'같은 생각도 하게 한다. 한편 거대한 <구름 문>과 대비되는 그 속에 비친 조그마한 내 모습에서 내 존재의 미미함을 느끼면서 철학적 사유를 하게 된다고나 할까?  

Anish Kapoor, Cloud Gate (2006), Stainless steel sculpture, 10 × 13 × 20 m,  Millennium Park, Chicago.  고광택제의 알루미늄으로 제조한 조각으로 아니쉬 카프어의 대표작. 북쪽의 마천루를 비추고 있는 모습을 동쪽에서 촬영한 것. 북쪽으로는  East Randolph Street을 따라 마천루들이 즐비하다.   

 

Anish Kapoor, Cloud Gate (2006), Stainless steel sculpture, 10 × 13 × 20 m,  Millennium Park, Chicago 

 

그러던 작품이었으나, 최근 영하를 밑도는 강추위에 이렇게 쪼그라들었다는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댓글 중에는 '이제야 작품 같아졌네.'라는 글도 있더라마는, 나같은 경우는 원상회복이 될 것인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나의 추억도 담겨 있는 조각품이 또 다시 아름답게 삼라만상을 비추어줬음 좋겠다는 바람.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은 국내에도 있다. 리움 미술관 야외 정원에 두 점과 실내에 한 점~

하늘 거울 (Sky Mirror)는 여러버전이 있고, 리움의 작품과 대동소이하다. 

예전에 안토니 곰리에 대한 글을 쓰면서 리움 미술관은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건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에도 해당이 되네요.  안토니 곰리에 대한 그 글이 궁금하신분 여기를 참고하세요.  

 

아니쉬 카푸어의 공공조각 다른 작품으로는 <하늘 거울 (Sky Mirror)> 있다.  시카고의 <구름 (Cloud Gate)> 마찬가지로 고광택제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어 하늘을 비추는 오목한 접시모양의 설치물로 여러가지 버전이 세계 곳곳에 있다.  

최초의 버전은 2001 영국 노팅엄의 웰링턴 서커스 (Wellington Circus, Nottingham, England) 설치된 것이다. 작품은 무게가 10 톤에 육박하고 6 미터 너비의 오목한 접시로 하늘을 향해 고정되어 있어, 거울과도 같은 매끈한 표면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반영한다.   버전은 2006 9 19일부터 10 27일까지 한시적으로 뉴욕의 록펠러 센터에 설치되었던 버전이 있는데, 무려 11m 지름으로 3 높이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볼록한 면은 5번가를 오목면은 록펠러 센터의 안뜰 쪽을 향해서 독특한 풍광을 제공했었다

이밖에 영구 설치로는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허미타지 미술관 (Hermitage Museum) 네덜란드 틸버그 (Tilburg) 드퐁 현대미술관 (De Pont Museum of Contemporary Art), 달라스의 AT&T Statium 있다. 그리고, 한국의 리움 미술관.  

아니쉬 카푸어, <하늘 거울 (Sky Mirror)> 2006 9 19일부터 10 27일까지 한시적으로 뉴욕의 록펠러 센터에 설치되었던 버전이 있는데무려 11m 지름으로 3 높이에 해당하는 규모

 

1980년대부터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명실공히 세계적 작가인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세계는 시기별로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시카고의 <구름 문>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 내가 한차례 아핫! 하고 아이디어에 감탄했던 작품은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승천 (Ascension)>이라는 작품.  

‘ascension’ by anish kapoor, basilica di san giorgio, venice image by oak taylor-smith

 

 

서양의 중세때부터 수도 없이 그려졌던 예수 승천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런 신박한 표현을 착안해내다니!   어떤 의미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이 가장 '리얼리즘'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쉽게도 나는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모습은 고사하고, 직접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목도한 경험도 없지만, 영혼이라는 것은 본래 형상을 지닌 것이 아니니, 만약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니시 카푸어의 작품과 가장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원을 따지자면, 뒤샹의 '남성 소변기'에서 출발했고, 이후 팝아트와 네오팝 작가들이 끊임없이 시도해온 '발상의 전환'과 '사고의 전복'을 통해 유발되는 '충격'이 예술의 목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충격 요법'을 지향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 중 하나라면, 그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참고로 아래는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그려졌던 예수 승천의 다양한 예들 중 일부.  아래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이 얼마나 참신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Rembrandt (1606–1669), The Ascension (1636), oil on canvas ; 93 x 68.7 cm, Alte Pinakothek 

 

Master of the Rabbula Gospels, The Ascension of Christ (586) Parchment, 34 × 27 cm, Biblioteca Medicea-Laurenziana

Benvenuto Tisi da Garofalo, Ascension of Christ, 1510-20. Source: Wikimedia Commons

Gebhard Fugel, Ascension of Christ (1893/94), Catholic Parish Church of St. John Baptist, Obereschach, Ravensburg

 

쪼그라든 강남콩 모양의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을 보고 써본 내맘대로 작품 보기 세번째 시간이었습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24. 00:30 미술 이야기

어제는 음악에 대한 글을 하나 올렸다. 거기에 탄력을 받아서 음악과 미술에 대한 글을 하나 올려보려한다. 

2018년 제18회 송은미술대상의 대상작으로 선정된 김준 작가의 작품은 무려 '사운드' 작품이다.  이름하여, '사운드스케이프'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의 작품이다.  사운드스케이프, 즉, Soundscape란 음악이라는 뜻의 단어 'sound'에 '-scape'라는 접미어를 붙인 단어이다. 여기서 '-scape'는 'landscape'라는 단어에서 보듯이 넓게 펼처진 경치, 풍광이라는 뜻이나, '그러한 풍광을 묘사한 그림'을 의미한다. 같은 어미를 사용한 단어로는 도시 풍경을 의미하는 cityscape, 달의 표면의 경치를 뜻하는 moonscape, 바다의 풍경이라는 뜻의 seascape 등이 있다.  따라서, '사운드스케이프 (soundscape)'란 이를테면, '소리로 표현한 풍경'이라고나 할까? 

에코시스템: 도시의 신호, 자연의 신호, 2018 12채널 사운드, 스피커, 앰프, 나무, 사진, 이미지 북, 돌, 식물 450 x 300 x 220cm [사진=송은문화재단]

신문방송학과 미디어학을 공부한 이례적 이력을 갖고 있는 김준 작가는 흔히 시각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미술에 청각을 들여온 다소 생소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 런던, 시드니, 베를린 등 여러 곳에서 수집한 소리들과 함께 그 장소에서 채집한 다양한 사물들을 서랍 속에 넣어 전시한다. 감상자는 설합을 빼고 넣는 행위를 하면서 설합 속의 사물이 위치했던 장소의 소리를 듣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작품 <에코시스템: 도시의 신호, 자연의 신호>(2018)은 관람자의 참여를 이끈다는 점, 그리고 found object의 활용한다는 점에 있어서 미술사적으로는 '다다'의 영역 속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소리'가 추가됨으로써 인간의 시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을 모두 총체적으로 활용하여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바로크적 종합예술을 구현한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바로크적 종합예술의 경험은 건축, 인테리어, 미술이 총체적인 조화를 이룬다는 개념이지만, 김준의 작품이 구현하는 바로크는 인간의 오감과 기억과 추억, 정서와 감정을 모두 통합하고자하는 '내적인 바로크'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제18회 송은미술대상전 김준, 박경률, 이의성, 전명은 2018/12/21-2019/02/28

(참고로 '송은미술대상'은 역량있는 국내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재)송은문화재단이 시행하는 공모전으로 2001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수상자들을 배출해오고 있었다.  송은문화재단은 현재 송은아트스페이스도 운영하고 있고, 수상자들의 전시가 2월말까지 진행되고 있다.)

도시와 자연에서 수집한 소리와 함께 해당 지역에서 수집한 사물들을 함께 전시하므로써 관람자들로 하여금 청각과 촉각, 시각이 함께 작용하는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관람자 각각의 기억과 추억을 소환하거나 상상력을 발현하도록 이끈다. 

많은 관람객에게는 낯선 이러한 작품은 실은 예술계에서 최근 많이 주목받고 있다.  일례로 2010년 터너 상을 수상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수잔 필립스의 작품이 있다.  2014년에는 작위까지 받은 그녀의 경우, 자신이 부르는 노래를 녹음하여 특정 장소에서 그 녹음된 음악을 트는 식의 작품을 한다. 그녀의 노래는 어떻게 들어도 가수의 음성과는 거리가 멀고, 녹음도 어떠한 보정이나 수정도 하지 않아 불안정한 음정은 물론 그녀의 호흡도 다 담겨있다.  

2010년 터너 상을 수상한 수잔 필립스의 <저지대 (the Lowlands)>라는 작품을 한번 감상해보자. 


Susan Philipsz, Lowlands (2008/2010), Clyde Walkway, Glasgow. photo: Eoghan McTigue

위의 사진은 수잔 필립스의 작품을 원래 설치했던 글래스고의 클라이드 워크웨이라는 곳, 아래는 수잔 필립스의 작품을 2010년 10월 영국의 테이트에 설치했을 때의 사진.  같은 작품을 테이트 갤러리에 설치했을 때와 원래 설치한 글래스고우의 한 다리 아래 설치했을 때 그 음악으로 인해서 감상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불러 일으켜지는 정서는 사뭇 다른 것이리라.  

1950년대 중반의 Psychogeography와도 연관되는 그녀의 작품은 지리학적 위치가 인간의 정서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측면이 그녀의 작품과 김준의 작품이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Susan Philipsz, The Distant Sound (2014), Three channel radio transmission, Installation view Moss, Norway, 2014. Photograph: Eoghan McTigue


예술의 경험을 시각에 국한하지 않고 청각과 촉각 등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하여 감상자가 인간으로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일깨운다.  인간이 갖고 있는 감각은 또한 얼마나 쉽게 주변 환경에 의해 영향받는가를 실감할 수도 있다. 이러한 총체적 경험과 자각이 김준이나 수잔 필립스의 작품을 통해 알 수 있게 되는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 이러한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왜 요즘에 들어 예술계에서 부상하고 인정받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더 생각해볼만한 흥미로운 현상이다. 



※ 참고로 2019년 제19회 송은미술대상의 공모요강에 대해서는 송은 아트스페이스의 웹사이트를 참고하기 바란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22. 08:19 미술 이야기

작년 12월 초 순경에 한 기사에서 서도호 작가의 작품이 "The Best Public Art of 2018"으로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브릿징 홈, 런던(Bridging Home, London)’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예전 그의 'Seoul Home'과 유사하구나 생각하면서, 잠깐 훑어보았다.  UAP라는 단체가 제정한 3년차 되는 상이라고 했는데, 당시에는 일단 그 단체가 뭔지 자세히 모르겠고, 3년차니까 상자체가 자리를 잡은 건 아니겠구나 하면서 그냥 지나긴 했다. 서도호는 원체 내가 관심있어 하는 작가라 일단 북마크를 해두고 나중에 다시 한번 살펴봐야지 하다가 연말 바쁜 통에 잠시 잊고 있었다. 

Do Ho Suh, Bridging Home, 2018, London. Co-commissioned by Art Night and Sculpture in the City, and curated by Fatoş Üstek.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Victoria Miro Gallery, and Gautier Deblonde (관련기사: https://www.artsy.net/article/artsy-editorial-best-public-art-2018)

오늘은 한동안 블로그 글도 못올리고 있다가 다시 '내 맘대로 작품 보기' 시리즈(?)의 두번째 시간에 올리기로 맘 먹었다. 

내가 서도호 작가의 작품과 처음 접한 것은 뉴욕에서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PS1이라는 곳에서 신생 유망 작가들의 작품들을 모아둔 전시회였다.  그 때 전시되었던 작품은 하나는 'Who Am We?'(2000)라는 작품이었고, 또 하나는 'High School Uniform'(1997)이었다.  

당시 인상은 참 참신하다는 인상과 함께, 아이러니하게 참 '한국적'이라는 느낌이었다.  라벨로 작가의 이름을 확인하기도 전이었고, 작가에 대한 정보도 없던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작가의 이름을 보고도 발음상으로는 한국 사람 이름 같지만, 작가의 성장배경, 교육과정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된 것은 한참 이후의 일이었기에 당시로는 확신을 갖지 못했었다.)  

(PS1은 Public School 1이라는 뜻인데, 폐교가 된 뉴욕의 공립학교를 미술관으로 바꾸어서 전위적인 작품들을 전시하는 곳이다.

Do Ho Suh, Who Am We? (Multi) (2000) Offset wallpaper ; sheet (each): 61 x 90.8 cm, MoMA ; 아래 사진은 위 작품의 세부 (image from MoMA)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얼굴 하나 없는데, 벽지로 제작된 이 사진첩(?)은 멀리서보면 모두가 같은 모양의 점처럼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뽀인트라고 할 수 있다.  제목도 'Who am I?'가 아니다. 'Who ARE We?'도 아니다. 'Who AM WE?'이다. 여럿이지만 하나로 뭉뚱그려진 존재들.   


Do Ho Suh, High School Uniform (1997) (인터넷에서 가져온 이미지로 내가 본 전시장의 모습은 아니지만, 대략 분위기는 전달되리라 생각한다)

아, 이 이상 한국의 교육 환경을 잘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 하는 느낌.  물론 요새는 학령인구가 줄어들어 한 반 학생 수가 소수이기도 하고, 교복 자율화를 거쳐 교복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훨씬더 다양하고 이쁜 교복들이 많지만, 국민학교를 나온 세대라면 윗 작품에서는 코딱지 만하게 얼굴이 실리던 '국민학교 졸업앨범'을 떠올릴 것이고, 아래 작품을 보면, 예전 고등학교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을 방문한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쿠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발언의 패러디 급의 문구가 유행한 적이 있었고, 그 여세를 몰아 뉴욕 빌보드에 비빔밥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리기도 했었다.  미술계에서도 저 화두에 맞춰 여러 작가들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았었던 것으로 안다.  그 고민에 결정적인 해결방법은 없었던 듯, '이제는 단청 문양과 오방색은 그만 보고 싶다' 는 소망이 생길만큼 천편일률적인 '한국적임'에 지쳤던 관람객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에 반해, 서도호의 작품에서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저 작품들을 본 외국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무엇인지 확실히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천편일률적인 규격에 맞추어 넣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임을 다 알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참신하면서도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라 크게 인상 깊었다. 벽지 작업은 앤디 워홀은 물론 로버트 고버 등 유명한 팝 작가들이 많이 사용한 작품 기법이기도 하고, 마네킹들의 설치들도 수많은 작가들이 사용한 방법이라 기법만으로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없지만 말이다.  

로버트 고버 Robert Gober 의 설치 작품 (1989)

서도호의 작품들을 두번 째로 만난 것은 수년 후의 그의 개인전이었는데, 이것도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Karma"라는 제목의 설치 작품인데, 커다란 인물의 조상을 다리 부분만 크게 만들어 갤러리 전체를 차지하게 만들어 놓고 그의 내딛는 구둣발 아래로는 어릴적 남자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초록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그마한 군인 인물상들이 그 발걸음을 떠 받치고 있는 형상이었다. 

Do Ho Suh (b.1962), Karma (2003), Urethane paint on fiberglass and resin, 389.9 × 299.7 × 739.1 cm, The Museum of Fine Arts, Houston 

두번째로 인상 깊은 작품으로는 'Some/One' (2001)이라는 애매모호한 제목의 작품으로, 얼핏 멀리서 보면 이순신 장군이 입으셨을 법한 갑옷 같은 조각품 같은데, 가까이서 보면 셀 수없이 많은 군인들의 인식표 (Dog tag)들을 이어 만든 설치 작품이었다. 

Do Ho Suh, Some/One (2001) at the Seattle Art Museum, Washington

Do Ho Suh installs Some/One (2001) at the Seattle Art Museum, Washington, 2002. Production still from the Art in the Twenty-First Century Season 2 episode, Stories, 2003. © Art21, Inc. 2003.

Do Ho Suh, Blue Green Bridge (2000), plastic figures, steel structure, polycarbonate sheets, 1137.9 x 129.5 x 61 cm, Edition of 2, LM2466 (위)와 그 세부 (아래) https://www.lehmannmaupin.com/artists/do-ho-suh  이 작품에서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대의를 위한 소의의 희생에 대해서 좀 더 확실히 표현하고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작은 군상들이 커다란 청록색의 다리를 만들기 위해 힘겨운 몸놀림으로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들에서는 공통적으로 한 명의 위인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보통 사람들이 떠받들고 희생을 해야하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한국의 현대사와 나란히 생각해보면, '군 독재의 군화에 짓밟힌 민중'이라는 이미지일 것이라는 짐작도 할 수 있게 해준다.  두번째 전시회는 작품의 모습과 형식적인 면에서는 첫번째 내가 봤던 전시회의 것들과 전혀 달랐지만,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점에서도 놀라왔다.  전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개별성과 그로 인한 개인의 희생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그러던 그의 작품 세계가 확연히 달라진 것은 그의 집 시리즈에서였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대학원과 군복무까지 마친 그가 미국에서 다시 학업을 하면서 느꼈던 '노마드'적인 정서를 담았다는 평을 얻고 있는 작품들이다. 

Do Ho Suh, Seoul Home/Seoul Home/Kanazawa Home (2012) silk, metal armature, 1457 x 717 x 391 cm, LM16332 https://www.lehmannmaupin.com/artists/do-ho-suh 

Do Ho Suh, Seoul Home/L.A. Home/New York Home/Baltimore Home/London Home/Seattle Home 1999, silk, 149 x 240 x 240 inches, Installation view at the Korean Cultural Center, Los Angeles, 1999 

이 작품들도 한편으로는 팝아트적인 어휘가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이라는 촉감과 질감의 전복을 통해 유용성을 제거함으로써, 충격과 신선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클레즈 올덴버그 (Claes Oldenburg: b.1929)가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있다. 

클레즈 올덴버그의 작품들, Soft Sculptures

서도호는 올덴버그의 촉감과 질감의 전복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땅에 굳건히 자리한 집'이 공중에 떠 있게 만듦으로서 굳건함과 부유함이라는 상반된 개념이 충돌하게 만들었다.  또한 불투명한 건축물을 재질상 거의 투명한 올 고운 모시나 명주천을 사용함으로써 투명/불투명 사이의 전복도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전복을 통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추억과 경험, 그리고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을 오가면서 느끼는 방랑자적인 입장을 투영하고 있다.  

이 작품들을 통해서 서도호는 개인적인 것으로 세계적인 것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쿠로자와 아키라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말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성장했던 한국의 한옥을 위주로 설치 작업을 했지만, 점점 더 영역을 확대해서 외국의 건축물은 물론 가전제품과 가재도구들에까지 제작하고 있다. 

Do Ho Suh,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2013) silk, metal armature, polyester fabric, metal frame, 1530 x 1283 x 1297 cm, LM22819 https://www.lehmannmaupin.com/artists/do-ho-suh


Do Ho Suh, (left) “Specimen Series: 348 West 22nd Street, APT. New York, NY 10011, USA - Toilet”; (right) “Specimen Series: 348 West 22nd Street, Apt. A New York, NY 1011, USA - Stove,” both polyester fabric. (Courtesy Do Ho Suh and Lehmann Maupin Gallery)

이번에 UAP (Urban Art Project: 뉴욕과 상하이 등 다양한 지역에 거점을 두고 공공 미술을 제작하고 있는 조직)에서 선정한 그의 작품은 그의 Seoul Home에서 발전해 온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좀 더 시간을 두고 조사를 해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고 그렇게 해보고 싶다.     

내가 블로그에 첨언할 필요도 없이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훌륭한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는 작가이지만, '내 맘대로 작품 보기' 코너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서 올려보았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15. 00:30 미술 이야기

20세기 초 초현실주의자들이 고안한 협동 작업 방식 중에는 "정교한 시체" 라는 것이 있다. 불어로는 "Cadavre exquis" 영어로는 "Exquisite Corpse"라고 불리는 이 기법의 방식은 간단하다. 

종이를 4등분하여 아코디언처럼 접는다. 함께 참여하는 작가들은 각각 주어진 종이의 1/4에 그리고 싶은 그림을 자유롭게 그린다. 원칙적으로 자신이 그리는 화면 이외 부분은 컨닝하기 없기다.  1/4 만큼의 종이를 사용하지만, 본의 아니게 자신이 그리는 그림에서의 선이 그 다음 칸에 조금씩 번지거나 삐쳐나와 보일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다음 칸에 그리는 작가는 그 선들 내지는 흔적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맘대로 그림을 그린다.  그런 식으로 각각이 위나 아래 연관없이 자유롭게 그린 그림들을 펼쳐보면, 제작 단계에서는 전혀 상관없지만, 완성된 그림에서는 서로 연결되는 '하나'의 작품이 된다.  

그러면 대략 아래와 같은 그림이 된다. 

Man Ray (Emmanuel Radnitzky), Joan Miró, Yves Tanguy, and Max Morise, Exquisite Corpse, 1928. © 2018 Man Ray Trust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ADAGP, Paris. © 2018 Sucessió Miró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ADAGP, Paris.  Courtesy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André Masson, Max Ernst, and Max Morise, Exquisite Corpse, 1927. © 2018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ADAGP, Paris. Courtesy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왜 이들이 이런 작업을 했냐고?  그건 관습과 도덕에 얽매여 있는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진정한 해방을 획득하기 위함이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인간의 정신 중에서 '의식'이라는 것은 관습에 얽매여 있어 '무의식'과 '잠재의식'이라는 본연의 정신을 억누르고 있다고 믿었다. 물론 이것은 다 프로이트 선생께 얻은 아이디어다. 이 "정교한 시체"라는 놀이와도 같은 작업 방식은 의식의 조정을 최소화 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인 것이다.  

아래는 내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그려본 작품들이다.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달리, 우리 학생들이 시도해본 작품들은 12색짜리 색연필을 나눠서 그렸기 때문에, 의식의 제한은 덜받았는지 몰라도 두 가지 색상이라는 색상의 제한을 받았음이 보인다. ㅋㅋㅋ  하지만, 마치 함께 의논하고 그린 듯한 작품들도 나와서 놀랍기도 한 작품들도 있었다.  (학생 여러분~~~ 우리, 저작권 운운하지는 맙시다~) 


심심하다면, 친구들 모였을 때 한번씩 해보세요~ 누가 압니까? 여러분들의 눌려 있던 의식이 한껏 자유로와지실지?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10. 00:30 미술 이야기

예전에 진주는 눈물을 상징하므로 '결혼 안 한 아가씨들은 진주 목걸이 하는게 아니다'라고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나야 진주 목걸이가 없어서 안하고 다녔기에 본의 아니게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듣는 '아가씨'가 되어버렸지만. 

원래 진주란 것이 특정 조개 속에 들어간 이물질을 몸 안에서 삭히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것이니 그러한 말이 나오게 된 내력은 짐작할 만하긴 하다. 그래서 '진주'는 때때로 각고의 노력 끝에 맺는 결실을 비유하기도 한다.  양식 진주가 등장하기 전, 진주는 100% 천연 진주였기에, 엄청나게 귀해서 한때는 다이아몬드보다도 비쌌다고도 하는데...

미술 작품 중, '진주' 하면 유명한건 역시,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1632-1675)(요즈음 표기법으로는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일 것이다. 

Johannes Vermeer, Girl with a Pearl Earring (c. 1665), oil on canvas ; 44.5 × 39 cm,  Mauritshuis, The Hague, Netherlands    [여담이지만, 베르메르의 소녀가 하고 있는 진주는 진짜 진주가 아니라, 당시에 막 개발되던 기법들로 만들어진 모조 진주다.  갈치 같은 은빛 나는 생선의 표면에서 나온 색소들을 주석에다 문질문질 채색하여 만든 것 (그게 가능하게 하는 것이 개발된 기술이란 말씀. 집에서 실험해보고 그러지 말자.)  만약 실제 저 정도 크기의 진주 귀고리라면 가격이 너무나도 어마무시 했을 것이고, 당시로선 무명 화가였던 베르메르 같은 일개 화가가 소품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늘은 베르베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가 주인공이 아니다.  그렇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우연히 발견한 이 장식품!  

'진주는 눈물'이라는 것을 이 브로치만큼 성공적으로 시각화한 작품이 있을까 싶어 좀 살펴보았다. 

             Eye Miniature, early 19th century. ©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관련기사: The Mysterious History of Lover’s Eye Jewelry)


이 브로치는 18세기말의 영국 왕 조지 4세 (George IV: 1762-1830)가 아직 왕위를 계승하기 전 프린스 조지 오브 웨일즈 (Prince George of Wales)로 불리던 왕자 시절에 짝사랑하던 여인 마리아 앤 피처버트 (Maria Anne Fitzherbert: 1756-1837)에게 연애편지에 동봉해서 보낸 선물이라고 한다. 

한 쪽 눈은 왕자의 초상에서 눈 부분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다이아로 표현한 눈물 한 방울 또로록~

여기까지만 들으면 '꺄악! 너무 로맨틱하잖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눈 한 쪽이 주는 느낌은 로맨틱하지만은 않을 뿐더러, 다소 기괴한 느낌도 없잖아 있다.  그리고 알고 보면 둘의 사랑도 그렇게까지 순애보적인 것 같지만은 않다. 

좀 들여다보면, 이들의 로맨스는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다. 

영국의 왕자가 사랑한 여인이 두 번이나 결혼했다가 두 번 다 남편을 잃은 평민 출신의 미망인인데다 카톨릭 집안 출신이라 영국 국교와는 종교도 다른 여인이라는 점.  국법으로 왕자와 결혼할 수 없는 처지의 몸이었다 한다. 하지만, 첫 눈에 이 여섯 살 연상녀에게 반한 왕자는 끈질기게 구애를 하여, 결국 둘은 비밀리에 결혼식까지 감행하지만, 왕의 집안에서 그것을 용인할 리 없었고, 국왕의 윤허가 없었기에 법적으로 둘의 결혼은 무효. 

게다가 이 왕자님이 워낙 씀씀이가 크셔서 파산 위기라 그 재정난을 이기고자 친척이자 부자인 신부를 맞이하게 되고... 이런 연유로 결혼한 둘 사이에 애정이 있을리 만무해서, 결국 첫 아이를 낳자마자 둘은 별거 상태. 왕비는 왕비대로 애인이 생기고, 왕은 왕대로 열손가락 모자라게 수많은 여인들과 연애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귀족 집안의 여성들도 결혼하지 않으면 상속권이 없고, 결혼해야만 상속을 받을 수 있는데, 상속 된 재산이 남편의 명의가 되고, 그 남편이 부인보다 먼저 죽는 경우, 부인이 아닌 자식에게로 넘어가는 것이 19세기 말까지의 법이었다. 사실 마리아 앤이 두번째 결혼을 서둘러야 했던 것도 첫번째 결혼 후 얼마되지 않아 남편이 말에서 떨어져 죽는 바람에, 아내에게 따로 재산을 남긴다는 유서를 쓸 틈이 없었기에 무일푼으로 생활고에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왕자와 인정 받지 못한 결혼을 한 그녀는 '연금을 제 때 주지 않으면, 둘의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나 문서를 공개해버리겠다'고 왕실에 협박을 해서 생활비를 받았다고도 전해진다.  

조지 4세는 문화와 예술에는 관심이 많아 '영국 최초의 신사'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지만, 한 수행원이 남긴 글에는 '백성을 생각하는 왕이나 귀족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조지 4세는 그 중에서 최악'이라는 구절이 있다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그다지 훌륭하고 인기있는 왕은 아니었던 듯하다. 좀 더 확실히 말하자면, '이기적이고 성격 나쁘고, 행실 나쁘고, 낭비벽 심한' 왕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4세의 마리아 앤 피처버트 사이의 사랑에 대한 일화들은 절절한 면들도 있다.   

마지막 왕의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피처버트가 보낸 편지를 읽고는 베게 아래 지니고 있었고, 피처버트는 피처버트대로 왕의 건강이 악화된 것은 모르고 답장이 없음에 무척이나 가슴아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위의 '눈물 한방울 똑! 진주 브로치' 선물에 대한 화답이었는지 피처버트도 자신의 눈동자가 담긴 펜던트를 선사했던 듯한데, 유언이 그 펜던트를 자신의 목에 걸어달라는 것이었다고. 그리고 조지 4세가 죽은 뒤, 마리아 앤 피처버트에게 왕실에서 귀족 작위를 수여하려 했으나, 그것은 반려하는 대신, 자신이 상복을 입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오늘 날 우리들의 눈에는 다소 기괴해 보이는 '외눈 브로치,' 혹은 Eye miniature는 당시에는 상당한 인기를 누리며 귀족들 사이에 유행을 했다. 

Memorandum Case with a Portrait of a Women's Left Eye. Courtesy of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Portrait of a Right Eye (mounted as a ring). Courtesy of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조지 4세와 마리아 앤 피처버트와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렇게 연인들이 은밀하게 주고 받았을 선물이었을 이 '외눈 브로치' (가끔 양쪽 눈이 다들어가 있는 것도 있긴하다)는 따라서, 브로치나 반지 등과 같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형식이 많다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러한 작품들의 주문 내역이나 혹은 제작자의 이력 등 배경역사가 제대로 남아 있을리 없다. 클리브랜드 뮤지엄 (Cleveland Museum of Art)이나 필라델피아 미술관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그리고 세계적인 공예 미술관인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 (Victoria and Albert Museum) 등에 이러한 작품들이 다수 소장되었다고 하는데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연구를 할래도 기록이 있어야 뭐래도 덤벼보지, 그렇다고 생존자들이 있어 녹취를 딸 수 있나...)  

글 첫머리에 다소 기괴하다고 했으나, 만약 사랑하는 이에게 그의 눈동자가 담긴, 게다가 거기 눈물 한방울 또르륵! 브로치를 받았다면 '심쿵'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 없이 남겨진 다른 'Eye miniature'들의 사연이 무척 궁금해진다. 

미래의 미술사학자나 역사학자들, 아니면 나같이 호기심 많은 후손들을 위해서 연인들이여, 은밀한 선물을 하더라도 어디엔가는 기록을 남겨주시라~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8. 01:47 미술 이야기

어제 글을 올렸다. 앞으로는 종종 '미술사적 사전 조사'없이 흥미를 일으키는 그림에 대한 글을 올려보겠노라고. 

엊그제 올린 '술취한 원숭이' 그림에 대한 글이 처음이고, 이번 글이 두 번째이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미술사 공부한 사람치고는 한국 작가를 많이 아는 편은 아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한국에서도 서양미술사를 공부했고 외국 생활이 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좀 웃긴 변명을 또 하나 붙이자면, 한국 사람의 이름은 2~3자 밖에 안되어서 상대적으로 변수가 적어서 그 점이 역으로 비슷비슷해서 외우기 힘들다는 점이다. (글로 적고 보니 참 지지부진한 변명이다)  

그런데 위의 작품은 맘에 들어 작가 이름을 검색해 봤는데, 그 작가 이름은 한번 듣고 까먹을 수가 없게 독특했다.  '이왈종' 화백.  

이름을 듣고 보니 몇 번인가 들은 적이 이름이고, 표피적인 네이버링 ('녹색창에서 검색하는 일')만 해봐도 수십 년 간 인기를 누려온 유명 작가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전 추계예대에서도 그림을 가르치셨다고. 그리고, 위와 같은 작품의 시리즈의 제목하야, ‘제주생활의 中道와 緣起’.

왠지 불교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타이틀이다. 그리고 제목에서 짐작하듯 작가는 제주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그 곳에 무려 작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도 있다고... 원체 저명한 작가이신데, 명색이 미술사 공부하면서 못 알아 봬서 죄송하기 그지 없다. (울 엄마도 가끔 어떻게 미술사 공부한 애가 '도자기의 "도" 자'도 모르느냐며 나의 안목의 부재를 탓하시는 터라, 나의 무식이 충격적이지는 않다.) 

다만, 다시 옹색한 변명을 하나 덧붙이자면, 미술사에도 여러 분야가 있고, 그 속에 몸을 담고 있으면 있을수록 어떤 면에서는 시야가 좁아져서, 예전의 개론 수업에서 알았던 타 분야의 지식은 야곰야곰 까먹어서 그렇다.  (미술사에는 크게는 한국미술사, 동양미술사, 서양미술사가 있고, 전공으로 들어가면 각각 다시 시대별로 나뉜다. 예. 고대, 르네상스, 바로크, 19세기, 모더니즘, 현대미술 등등)  

그리고 이상적으로는 갤러리 전시들 쫒아다니고, 미술계 소식은 발빠르게 찾아다니고 해야하겠지만, 현실은 내 코가 석자라 학생 때에는 세미나 수업 과제하랴 발표 준비하랴 바쁘고, 지금은 다시 내가 당면한 일들을 처리하다보면 쉽지 않다. 다시 말해, 공부를 오래할수록 자신의 분야만 파고 들게 되어서 점점 시야는 좁아지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무식하게 되게 쉽다. 

어쨌든 위의 그림을 누가 카톡의 대문 그림으로 쓰는 것을 보고 작가가 누구냐 물어서 알게된 이왈종 작가의 작품은 재미있고도 정감이 넘치는 그림이다. 알록달록하게 선명한 색상들로 그려진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누구나 한번쯤 꿈꿔본 평화롭고 여유로운 전원 생활을 시각화한 것이라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과 안정감을 선사한다.  

평화롭고 한적한, 일종의 전원시와도 같은 작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의 인물들은 골프를 치고 있기도 하고, 저 멀리 바다에는 크루즈가 떠 있기도 하고, 앞마당에는 빨간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기도 한, 엄연한 현재의 모습이다.  그러한 현대적 모습은 당의정적인 이상향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의 생활에서도 이상향을 꿈꿀 수 있음을 역설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미술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러시아 화가 샤갈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아래의 그림은 샤갈이 그리는 고향 풍경과 유사한 느낌이다. (특히 윗쪽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부분은 조형적으로도 그렇지만, 두 작가가 추억을 바탕으로 정감있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 (2011), 장지 위에 혼합재료 ; 130 x 162 cm, 현대화랑. (이미지: 현대화랑)

Marc Chagall, I and the Village (1911), oil on canvas ; 192.1 x 151.4 cm, MoMA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 (2011), 장지 위에 혼합재료 ; 130 x 162 cm, 현대화랑. (이미지: 현대화랑) (세부)

Marc Chagall, I and the Village (1911), oil on canvas ; 192.1 x 151.4 cm, MoMA (세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아닌게 아니라 이왈종 화가와 에콜 드 파리 화파를 대표하는 마르크 샤갈의 작품세계와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그의 작품이 마치 아이의 그림과 같은 천진함과 순수함이 묻어나는 그림들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이왈종은 제주도를, 샤갈은 그의 고향 비쳅스크를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두 작가 모두 판화 작품이 많다는 점도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공통점으로는, 샤갈이 에콜 드 파리 시절 1910년대부터 1985년 세상을 뜰 때까지 참 한결같은 작풍을 유지했듯이, 이왈종의 화풍도 참 한결같다는 점이다. 이는 인기 화가의 입장에서는 피치못할 상황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샤갈다운 샤갈 작품을 원했고, 이왈종스러운 이왈종의 작품을 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동어반복적 화풍은 결과적으로 비판을 야기하게 되기도 한다는 문제가 있다. 

비평적인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또 한 사람의 미술 애호가로서 동일한 화풍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작가의 작품을 끊임없이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 지켜보도록 하면서, 지금으로서는 그냥 새롭게 알게된 작품의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맘껏 빠져보기로 한다.  

이상이 나만 새롭게 알게 된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에 대한 내 맘 내키는대로 그림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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