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57 Page)
2019. 1. 26. 05:18 일상 이야기

평소에는 엄청 점잖은 사람인데, 차만 타면 쉽게 흥분하고 욕설도 마다 않는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들었다.  그건 우리나라만 그런게 아닌듯, 옛날 디즈니 초창기 시절 운전으로 위법을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운행 교육용 화면으로 만들어진 것에도 등장한다. 차를 탈 때엔 평소 우리가 보던 순하고 느릿느릿한 구피였는데, 운전대를 잡는 순간 눈빛이 바뀌며 헐크 같이 변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면 안된다는 교육용이다. 


왜 운전대만 잡으면 분노조절이 안되는 것일까?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향해 욕설을 내뱉는 것은 어쩌면 놀람을 넘어선 공포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과연 난폭 운행이 분노조절 장애 있는 운전자들을 낳는 것인지, 아니면 원체 분노조절 장애 운전자가 많다보니 난폭 운행이 많아진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밀리는 상황이 많으니 짜증이 나고 여유가 없어져서 그럴 수도 있는데, 가끔 깜빡이 없이 갑자기 훅-하고 눈 앞에 차가 끼어들면 무엇보다 사고의 위험때문에 등골이 서늘하고 그 다음 순간에는 화가 확 치민다.  내 경험상 너무 놀라면 경적을 울릴 틈도 없다. 제발 그러지 좀 말았으면 좋겠다. 운전자들의 시야가 그렇게 넓거나, 모두가 그렇게 순발력이 뛰어나지 않다. 그러다 사고나면 그렇게 끼어든 운전자도 손해지 않은가?  내가 몇 번 그 차 도대체 얼마나 빨리가나 싶어 눈으로 좇으며 가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끼어든 차가 나중에는 내 뒤쪽으로 오는 것도 몇 번이나 봤다. 그래봤자 별 수 없다는 것이다. 

병목 현상있는 구간에서는 차례로 한 대씩 지나가면 될 것을 한번 양보를 시작하면 끝도 없이 같은 쪽 길에서 차들이 밀고 들어와서 난감한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결국 감정 싸움을 야기하고 서로 머리 박고 꼼짝 않는 황소 두마리 처럼 길을 막아서는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아무도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결과이다. 여하튼 운전을 하면서 '왜 저러나' 싶은 적이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초보 운전자의 경우 길 위로 나서려면 적잖은 공포를 느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차가 초보운전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작년에는 차를 몰고 가는데, 옆 라인 차의 뒷쪽에, '먼저 가, 난 이미 틀렸어'라는 문구가 있는 것을 보고 빵 터진 적이 있다. 그걸 주변에 이야기 했더니, 원체 널리 퍼진 문구였는지, '참 싱거운 사람'이라는 평도 들었다.  (내가 싱거운 건 딱히 부정 못하겠지만, 날 그렇게 놀린 사람도 처음 봤을때엔 좀 웃지 않았을까? 속으로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미국 버전을 발견했다. 직접은 아니고, 페북에서...  '열심히 가고 있잖아~'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규~' 이런 뉘앙스일텐데, 이번 경우 스티커가 아닌 차 번호판을 아예 그렇게 만들었다. (미국은 돈을 더 내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저렇게 원하는 문구를 넣을 수 있다. No.1 Daddy, No.1 Mom을 비롯해서, 의사라던가 변호사라던가 직업을 넣는 사람, 좋아하는 스포츠 팀의 이름을 넣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과연 어느 쪽이 분노에 차 뒤따라 오는 운전자들을 효과적으로 달랠 수 있을 것인가?  맥락은 비슷한 것 같은데, 우리나라 쪽이 좀 더 페이소스가 더 묻어난다고나 할까...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25. 00:30 일상 이야기

알함브라 궁전

난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내가 본 드라마는 손꼽는데, 드라마를 안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무래도 매주 그 시간 기다려서 보는게 너무 힘들어서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광고 나오는 동안 딴 짓하다가 매번 흐름을 놓치곤 하다가 시들해져서 안보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20대 초반 남녀간의 연애 드라마인데, 이건 뭐 주인공이 의사이면 병원에서, 변호사이면 법정에서 알콩달콩 연애만 하는데, 나로선 드라마에 설득당하지 못해서 딱히 공감이 되지 않아서이다. 

내가 최근 들어서 본 드라마 중에서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비밀의 숲'하고 '라이프 온 마스'였는데, 이 두 드라마는 광고 없는 스트림으로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매주 다음주를 기다렸다 본 드라마였다. 

비밀의 숲은 왜 다들 '조승우, 조승우' 하는지 알게 해 준 드라마였고, 난생처음 드라마 작가가 누구인지 이름을 찾아본 드라마였다. 단 하나의 살인 사건과 그것에 대한 해결 과정만으로 드라마 전체를 아우르며 빅 픽쳐까지 그려낸 수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라이프 온 어스'는 한국 드라마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력에 새삼 감탄한 드라마였다.  애초에 BBC의 드라마를 리메이크라고 한 것이라고 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처음에 1회 한국 드라마를 보고, 영국 건 어떻게 만들었나 궁금해져서, 힘들게 BBC 드라마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단순히 한국 사람이라서인 것일 수도 있지만, 한국 드라마 쪽이 훨씬 더 재밌고 구성이 조밀했다. 내가 전문적인 연출가도 아니라 자세한 것은 분석 내지 비평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긴 하지만, 나로서는 한국 드라마 쪽이 10점 만점에 10점이었다. 영국 드라마는 한 두편 보다가 중간에 재미없어서 관둬서 모르긴 하지만, 너무 축축 처지고 음울하기만 하고, 주연 배우의 카리스마라고 할까 흡인력이라고 할까 하는 것이 너무 약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보게 된 드라마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연말에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 두명다 재밌다고 재밌다고 한 두 드라마 중 하나였다.  다들 재미있다고 장안이 떠들썩한 'SKY캐슬'은 뒤늦게 첫 회보고서 전반적으로 주인공들의 행동설득당하지를 못해서 계속 보지 않기로 하고, '그렇다면...'하면서 오랜만에 본 드라마였는데.... 

결론만 먼저 말하자면, 실망이었다. 막장 드라마 욕하면서 본다고 하더니만, 그렇다고 딱히 중반 넘어 본 드라마 몇개 되지도 않는데, 중간에 그만두게도 안되었다.  불만이 차오르는데 끝까지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 이렇게 악평 하나 남기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을 것 같아 글이라도 하나 쓰는 것이다. 

난 겜알못이라 처음에 한 두회는 정말 참신하고 신선했다. 아, 이래서 겜 폐인이 나오는 거구나 생각도 하면서... 

'가상 현실'은 어떤 의미에서 철학적 사유를 유도하는 화두이고 많은 철학자들이 이에 주목해서 담론도 활발한 분야이다. 내가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주변의 현실에 대한 반응인데, 그 현실이 가상일 경우의 우리의 행동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늘 생각해온 인간의 정의, '인간이란, 그 주체의 경험의 결정체'라는 정의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의 주제를 듣고 혹 해서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첫 회를 보았을 때의 스페인의 아름다운 풍광도 한 몫을 했다. 다음 번 유럽 여행에는 반드시 스페인을 넣자,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회가 갈수록 시청자들을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로 아는지 매번 전회의 요약편을 회상씬 형태로 절반 이상을 채우더니, 후반으로 갈 수록 'PPL의 추억'이 되어 갔다. 덕분에 많은 별명이 생긴 것 같았다. '발암브라 궁전의 추억',  '서브웨이의 추억', '토레타의 추억' 등등.... 

그리고, 아무리 내가 게임의 전문 세계를 모른다고 해도 그렇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물론 원체 설정 자체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으니까, 어느 정도 말이 안되는 건 안되는대로 오히려 그게 드라마의 재미일 수도 있지만, 주인공들의 대처 능력이랄까 사고 처리 방식이랄까 납득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례적으로 드라마 작가의 이름을 찾아본 두번째 드라마였다. 전작과는 다른 이유로....  

왠만하면 드라마 잘 보지도 않는 1인으로서 비판으로만 가득 찬 글로 마무리 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가 이름으로 검색하다 보니, 정작 드라마 작가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거나 자부심을 느낀다거나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나보다. 그런 내용의 글을 몇 개나 뉴스 포털의 헤드라인에서 봤다.  아마 작가의 주변에는 전부 드라마 참가자들. 서로 전부 좋다 좋다 해주고 자축하는 분위기였나보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는 참 많구나, 그리고 모름지기 주변에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위험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비밀의 숲'이 '조승우', '라이프 온 마스'가 정경호의 발견이었던 드라마였다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현빈의 발견이라는 점에서 수확이었다면 수확이다.  명불허전. 솔직히 현빈이라는 배우가 나온 드라마를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분명 CG로 처리했을 장면들에서의 연기를 포함해서 미묘한 감정표현에서 참 탁월했다.  왜 다들 그렇게 '현빈, 현빈~'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반면 잘생기고 이쁜 배우들도, (맡은 역이) 너무 어버버하고, 너무 맨날 울기만 하는 것이면 매력이 반감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드라마를 보고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1. 스페인은 한번 꼭 가봐야겠다.

2. 주변에 자신에 대한 칭찬만 해주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사는 환경은 자신을 정확히 바라볼 기회를 잃을 위험이 크므로 항상 경계해야한다. 

3. 역시 드라마는 내 선호 장르는 아니다. 매주 챙겨봐야 하는 문제나, 중간의 광고 문제는 어떻게 어떻게 해결해도 역시 나랑은 잘 맞지 않는 장르이다. 

4. 무슨 일을 진행하던 예산의 안배는 중요하다. 이번 드라마처럼 스페인 로케로 초반에 예산을 때려부으면, 나중엔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진 역량의 안배도 중요하다. 초반에 너무 소진하면 일이 결국은 용두사미가 될 위험이 있다. 

5. 이 드라마가 주려는 교훈은 아마 이런 것이리라. '게임에 빠지면 건강에도 안좋고 (총이나 칼 맞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 때로는 목숨도 진짜 잃는다 (말 그대로 게임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위험이 있다).' 

그리고, 귀에 익었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 곡이 어디선가 들리면 칼든 자객이 내 주변에 없을까 휘이휘이 둘러보게 될 것 같은 건 이 드라마의 후유증이리라.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23. 00:30 일상 이야기

원예가의 일기...

이렇게 말머리를 농담삼아 올렸다가 원성을 들을까봐 참았다. 

저번에 방울 토마토의 성과에 힘입어 일전에는 슈퍼에서 산 파프리카 다듬다가 나온 씨들을 모아서 말렸다가 뿌려보았었다.

아무리 물을 줘봐도 싹이 올라올 낌새도 안보이길래, 다시한번 씨를 모아다가 다른 화분에는 그냥 마구마구 뿌려보기도 했었다.  

그리고는 습관적으로 물을 가끔 주긴 했어도 별 기대를 안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까 연한 녹색잎이 올라오더니, 며칠 새 여러개가 올라오고... 그러더니 어느새 이렇게 많이 자라 있었다. 

처음에 싹 튼 파프리카들

분갈이 하면서 씨를 더 뿌려준 후 자란 파프리카들

너의 정체는 뭐냐? 혼자 무럭무럭 크는 정체불명의 식물


중간에 키가 큰 이 놈은 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전에 방울 토마토 씨를 한 번 더 사다 뿌렸는데, 걔들은 다 죽은거 같았는데, 그 중 살아남은 한 녀석인지 아니면 파프리카 우성 종자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여하튼 본격적으로 정원을 가꾸는 이들이 보면 정말 가소롭기 짝이 없겠지만, 나로서는 기특하고 대견하고 뿌듯한 생명체들이다. 별 것 아니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뿌리내리고 생명을 키워가는 존재들을 보고 있노라면 적잖은 힐링이 된다. 

나중에 정말 본격적으로 조그마한 정원은 꼭 꾸며보고 싶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22. 05:12 일상 이야기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작년에 지인에게 받은 방울토마토 씨앗을 뿌려서 한 차례 수확을 했고, 난생처음 유실수를 키워서 얻은 터라 엄청 흥분하며 기뻐했었다. 


그리고서는 계속 키만 크는 토마토 줄기에 '내 네가 계속 자라니 물은 준다마는...'이라는 심정으로 물만 주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다보니 물을 그렇게 정성스럽게 주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물을 좀 줘보다가 아니면 그냥 갈아 엎어야지 괜히 거실 자리만 차지하고 점점 웃자라는 가지로 지저분해지기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오히려 신경을 쓰면서 물을 좀 줬더니, 얘들이 한겨울인 것을 모르고 갑자기 꽃을 막 피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한 며칠만에 보니까 여기저기서 다시 방울 토마토들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다시 감격 모드~

그래서 요새는 일주일에 한 두번씩 물을 주면서 방울토마토의 갯수를 세보면서 힐링 타임을 갖고 있다.  집에 오신 손님 한분이 원래 일년생인데 또 키우는 거 보니 신기하다고도 하시던데, 그 말씀에 힘입어 내가 정말 원예에 소질이 있는건가? 하는 중.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12. 06:01 일상 이야기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사느냐, 참느냐'가 문제다. 

우리가 추상미술에 이끌리는 이유를 뇌과학으로 풀었다는 책의 광고를 보았다.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환원주의의 매혹과 두 문화의 만남


짐정리 힘겹게 겨우 대충 끝난지 얼마 안된다.  넣을데 없는 책들 겨우겨우 밀어넣고 집어넣고 하면서, '내 집에 있는 책들 어느 정도 다 읽고 버리기 전까지 다시 내 새 책 사나 봐라' 했는데, 나왔다, 궁금한 책이...

그렇다!  도서관서 빌려 봐야지... 했는데...

도서관엔 없.다.

사느냐, 참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여기다 북마크 해놓고 조금만 더 생각해보기로......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9. 00:30 일상 이야기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도.... 내 천성이 천지개벽하게 바뀌지 않는한 엇비슷하게 살았을거 같긴하다.  어쩌면,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알기라도 한다면, 반드시 바람대로만은 되지 않았을 일을 미리 더 괴로워하며 지낼지도 모른다. 따라서, 가끔씩 내 어린 시절, 젊은 시절 그립기도 하고, 어릴 적 어리석은 판단들에 대한 후회가 남긴 하지만, 다시 살아내는 것이 더 큰일인지도 모르겠기에 난 그냥 지금 이대로 사는게 낫다 싶다. 어쩌면 어릴 때 몰랐던 것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 인생의 더 큰 묘미인지도.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내게 주어진 일이라면 열심히, 그리고 "제대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자면, 내가 인생의 전환점마다 배워야 했던 불어에 관한 경험이다. 

대학 때 교양 한 학기 배우는 '불어'라 무시하고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 배워서 땜빵해서 대~충 시험 치르고는 그걸로 나랑 불어와의 인연은 끝! 인줄 알았다.   

그런데, 대학원 입학 시험 때 한 학교는 입학 시험 때, 또 한 학교는 졸업 전까지는 또 불어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 대학 교양 불어 때 좀 열심히 할걸~' 후회를 했다. 부랴부랴 몇 달 간 알리앙스를 다니며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고, 그 때 시험을 치렀고.... 또 그로서 나랑 불어와의 인연은 이제야말로 끝! 이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미국 가서도 대학원 과정에서 불어 시험은 또 봐야 했었고, 영어랑은 다르게 실생활에서 쓸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다 까먹어버린 불어를 시험을 위해 또다시 문법책을 꺼내들고, 다시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나마, 저녁마다 '알리앙스' 쫓아다녔던 시절이 있어 기억을 되살리는데 비교적 짧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론 그 뒤로도 불어를 사용할 일은 많이 없어서 이제는 발음 규칙이나 불어 동사 규칙 같은 것만 아련히 기억에 남아 있을 뿐, 대부분 까먹어 버렸다.  그런데, 또 불어를 알고 있다면 편리한 상황에 부딪쳤다.  이번에 다시 공부를 하게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매번 문법책을 다시 펼쳐봐야 할 어중간한 단계가 아닌 제대로 된 어학으로서 기본을 다지고 싶다. 




이와 연관되어 '토익' 시험을 준비하는 어린 학생들을 보며 느꼈던 단상이 떠오른다. 예전 공공 도서관에서 토익 준비를 하느라 토익 문제집을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학생을 보고 이 중에 베스트셀러는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 난 한국에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다들 '토익 몇 점 이상'이 되어야 취업을 하네마네 하길래, 도대체 어떤 시험이길래 다들 그렇게 목숨을 거나 싶어 시험의 내용과 구성이 궁금했고 (당시 그 도서관 자리를 차지한 대부분의 학생은 '토익'을 공부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내용을 파악하기엔 토익 문제집 베스트셀러가 제격이라 여겨져서이다.  

그 학생이 건네 준 책을 살펴보니, 전반적인 시험의 구성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다.  시험 문제로 나오는 내용은 예전 내가 학교 다닐 때의 영어시험이나 토플보다는 실생활에 관련된 내용이 많았고, 독해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정도가 파악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책의 본 내용이었다. 기억 나는 것은 테니스 복 차림의 여성이 보도블럭에서 도로 쪽으로 다리를 내리고 앉아 신발을 고쳐 신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나와있었고, 아래 해석에는 '인물의 사진이 전경에 있을 때에는 현재 완료형은 답이 될 수 없다.'라는 것이 그 챕터의 주제 문구였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이제는 잊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문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람이 주어가 되어 그 사람이 행위를 하고 있다면 동작 중이기 때문에 시제 상, 행위가 완료된 것을 의미하는 현재완료형을 사용하는 것은 문법적으로 틀리기 때문일 터이다. 문법적인 내용을 이해하고 아는 것이 그 의미없는 공식들을 외우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것이 당시 내 느낌이었다. 그렇게 챕터별로 이해하자면 이해할 수 있지만, 이후에 전혀 쓰임이 있을 것같지 않은 요령들로만 채워진 그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의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일까? 책 날개에는 저자가 '미국 물 한번 먹지 않고도 토익에도 우수한 점수를 얻었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뭐, 이런 식으로 광고 문구가 있었던 것 같다.  다들 한 학기라도 해외 연수를 가거나, 혹은 하다못해 워킹 홀리데이도 간다고 하는 때였는데, 그런 때 혼자 자력으로 국내에서만 영어 공부를 해서 다들 고득점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영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은 점에서는 크게 칭찬해줄 만 한 일이다. 

문제는 그 책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과연 일 년 후, 자신들의 전공 교재나 혹은 실무에 필요한 영어 자료들을 읽을만한 실력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난 내가 지금 하는 공부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다져서, 수 년 후에도 내가 지금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난 내가 지금 하는 공부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다져서, 수 년 후에도 내가 지금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만약 어린 내가 '토익'을 공부해야만 한다면, 난 그 시험을 치르고 나서도 영어로 읽고 쓰고 하는 것이 체화되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서, 지금 내가 쏟아붓고 있는 나의 젊음이 헛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점수'만 잘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 길지 않은 내 인생의 시간을 가치있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당장 적은 노력으로 (내가 보기엔 그 베스트셀러의 공식을 외우는 노력이 실제로 영어 공부를 하는 것보다 딱히 쉬운 것같지도 않았다) 눈 앞의 성과를 꾀하는 요령은 단기적으로는 이득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손해이다. 요령으로 쌓은 지식은 쓰려고 조금만 힘을 줘도 금방 찢어지는 습자지 같아서 쓸모가 없다.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다 엇비슷하기에 기초 없이 요령만으로 이어가기엔 인생이 길고, 그것만으로 버티기엔 밑천은 금방 드러나는데, 그것을 새롭게 따라잡기엔 인생이 짧다. 

'요령 없이' 우직하게 기초를 다지는 것이 지금 당장은 어리석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장 확실한 요령이다.  시험 수준보다 좀 더 어렵게 공부하고, 내가 지금 하는 공부가 나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땜빵으로 공부하고, 그때그때 무사히 넘어갔지만, 또 다시 공부해야 하는 사람의 조언이니 믿어도 좋을 것 같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5. 00:40 일상 이야기

지난 해를 되돌아보면, 유난히 아팠던 기억이 많다. 10월 중순부터 감기 몸살로 시작해서 결국 목감기가 오래 가서 인어공주도 아닌데 목소리를 잃은 상태로 한달 넘게 지내다 결국 인후염으로 발전했다. 덕분에 한달넘게 이비인후과를 다니고 있는 상태.

솔직히 계획했던 일들을 손놓고 있는 상태인지라 다소 의기소침해진 것도 사실이다. 새해라면 무조건 밝고 희망차야 한다는 건 어쩌면 추석 상머리에서 가족들은 모두 행복해야한다는 환상인지도 모르지만, 약간의 소외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  (아래 락웰의 그림은 추수감사절에는 모든 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해야 할 것 같은 일종의 '중압감 (?)' 내지 '환상'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Norman Rockwell, Freedom from Want (1943), oil on canvas ; 116.2 × 90 cm, Norman Rockwell Museum, Stockbridge, Massachusetts

실제로,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기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행단계에서는 원체 시간을 정해서 진행하기 힘든 일이 많아서, 어떤 때에는 처음 목표일로 삼았던 기한을 훌쩍 넘기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예상외로 훨씬 빨리 끝나기도 하곤 한다. 

그래서 나름 깨달은 것은 처음 계획을 세운대로 진행이 안되더라도 그냥 꾸준히 하면된다는 것이다. 중간에 일이 지체된다고 좌절해서 내팽개치지만 않으면, 어느 순간 애당초 예정했던 기일 내에 목표를 달성하게도 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따라서, 약간 초조해진 내게 스스로 다독인다.

비록 건강상의 이유로, 또 연말의 모임들로 일정이 지체되었다고 낙심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꾸준히 하면된다. 여느때처럼 어느 순간 생각보다 훨씬 빨리 일이 휘리릭 진행되는 때가 올 것이다. 큰 틀안에서보면 그렇게 크게 늦은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라도 평상심을 가지고 꾸준히 하는 것이다.

약간 벗어나긴 하지만, 조금쯤은 상관이 있는 내용 하나를 덧붙이자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하곤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공부를 해도 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같을때에는 독에 물을 좀 더 자주 부으면 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중간에 포기하면 물은 금세 빠져버리지만, 좀 더 큰 바가지에 물을 담아 좀 더 자주 부어주다보면 밑빠진 독이라도 어느 정도는 물이 채워진다고.  

혹 아는가? 그러다 보면, 두꺼비가 밑빠진 독의 바닥을 막아주는 행운이 이 찾아올런지.  (그런 행운이 콩쥐에게만 찾아오란 법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요는 그런 행운은 물을 계속 채우려 노력하는 이에게만 찾아올 것이라는 것. 

새해 첫날 작심한 일을 제대로 못하고 사흘을 보낸 이라면 다시 작심하자. 작심삼일을 계속 하다보면 어느 정도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밑빠진 독이라고 낙담하지 말고, 좀 더 속도를 올려 좀 더 큰 바가지에 물을 담도록 하자규~ 

새해 맞이해서 또 건전하고 발전적인 내용을 하나 보태게 되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3. 00:30 일상 이야기

일전에 글을 올린 적도 있지만, 티스토리 블로그 대신 녹색 블로그로 옮길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티스토리 블로그 담당자분이 내 글을 읽으셨나?  대대적인 개선을 감행하신다는 공지를 짜잔 올리셨군~ 

이사하는 거 보통 일 아닌거 같긴 하니까, 일단 티스토리와 네이버 두쪽을 병행해서 한 두어달 운영해보기로.  조금 번거롭긴 하겠지만, 어느 쪽이 구독률이 더 좋은지 비교도 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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