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59 Page)
2018. 10. 26. 00:30 일상 이야기

오늘은 쉬어가는 코너~~  

이제까지 다룬 작가와 작품들도 몇몇 보이죠?  보고 아항~ 하시나요?  

저랑 개인적으로 아는 작가는 아니지만, 재치 넘치는 만화를 계속 올리는 분이라 가끔 보면 후훗~  재밌어요.  

제목은 물고기의 무리를 'school'이라고 하는데서 착안해서 이런 재밌는 그림을 올렸네요.  

여러분도 오늘은 이제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서 한번쯤 쉬면서 복습~ 리뷰~ 정리~ 해보세요~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20. 00:30 일상 이야기

우연히 'Why do Koreans~?' 라는 디지털 콘텐츠가 있는데, 외국인들이 한 질문 중 첫 번째가 왜 한국인들은 첫 만남에 웃지 않죠?” 였다라는 기사를 읽었다. 사실 이런 얘기는 나도 사적인 자리에서도 몇 번 들어봤다. 

나도 미국 가서 얼마 되지 않아서 첨 보는 사람들간의 'Hi~'를 교환하는 문화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고, 그게 이와 비슷한 맥락의 의문이라고 생각하기에 거기에 대해서 적어볼까 한다.  (문화 연구자들과 얘기해본 적도 없고, 그냥 나혼자 일정기간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므로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 우선 처음 느낀 것은 내가 한국에서 살던 곳과 내가 살기 시작한 미국의 도시에서의 인구차이였다.  서울은 하루종일 처음 만나는 사람과 만나서 다 미소를 교환하면서는 일상생활을 진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점심 때즈음 되면 안면근육의 마비가 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살던 도시는 그 주의 주도 였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이들과 마주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큰 도시임에도 인구가 비교적 적고, 대부분은 차를 이용해 이동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산책이라도 나갈라치면, 한 2-30분 길 위에 아무도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보면, 미소짓게 된다. 저 쪽 앞에서 한 사람이 맞은편에서 오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게 되면. 그리고 내심 진심 살짝 반갑기도 하다. 아, 한국서 사람들이 굳은 표정으로 다니고, 눈을 마주치는 이들에게 'Hi~'라고 한마디 건네거나, 미소를 교환하지 않는 이유는 첫 만남의 빈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러한 생각이 내 안에서 설득력을 얻은 것은 내가 뉴욕에 갔을 때이다. 처음엔 낯설기만 하던 '낯선 사람과의 미소 교환'에 이제 막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그런데, 거기서는 처음보는 이들에게 미소를 띄면, '뭐야? 너 나 아니?'하는 듯한 눈길이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마주보고 웃어주는 건 '시골 관광객'뿐이라는 얘기를 소위 '뉴요커'들에게 들은 것은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난 후였다.  결국 뉴욕은 서울 같은 곳이었다. 거기도 엄청난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대도시이고, 거리며 지하철이며 버스며 항상 붐빈다. 거기서 매번 낯선 사람들과 미소를 교환하다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친.다. 

2)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생각할 때는, 문화 차이인데, 한국인들이 타인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너그러운 문화라는 점이 작용하는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한국은 공동체 의식이랄까, 우리와 남의 구분이랄까? 이런게 좀 강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차도 있고, 가정이나 조직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관점을 줌 아웃해서 전반적인 한국인으로 생각해봤을 때의 이야기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우리'의 영역 속에 들어온 사람들은 '확대된 나'이다. 남들에게는 무관심해도 일단 '남 아닌 우리'가 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물론 간이나 쓸개를 직접 빼주는 사람은 본 적도 없고 그랬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실제로는 절대 그래서는 안되겠지, 건강에 안좋으니까...)  

따라서, 잠재의식 속에서 한국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고 평가 기간을 가져야 한다. 내가 만나는 이 사람이 '우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남'으로 남을 사람인가? 그래서 선뜻 웃지 못하는 것이다. 일단 웃고 나면 이젠 '간이고 쓸개고 빼줘야' 할 일만 남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왜 한국인들은 첫 만남에 웃지 않죠?'라고 질문했던 외국인들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한국 사람들은 처음엔 무뚝뚝한데, "일단 알고나면," "일단 친해지면," 무척이나 친절하고 정이 많다.'라고 평가를 덧붙일 것이라 믿는다.  어느 지점, 그가 '우리'라고 평가받는 그룹에 포함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경험한 미국의 경우는 국가의 구성 자체가 다민족 다문화를 기반으로 했고, 그 때문에 개성과 차이를 존중하고자 하는, '개인주의'가 지배적인 나라이다. 따라서, '우리'도 있고 '조직'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 유대가 우리나라 같지 않고, 따라서 결국은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가 강하다. 따라서, 개체로서 또 다른 개체인 인간을 만나면, 일단 상대에게 자신이 우호적인 존재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사는데 이롭다.  그러다보니, 처음 보는 사람을 보면 일단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 미소의 의미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첫 만남에 웃는 것에 그다지 부담이 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처음 미국 갔을 때, 은행인가 관공서인가에서 미소를 교환하고 날씨 얘기부터 자신이 이혼한 얘기까지 갑자기 다 쏟아내더니, 기다리던 순서가 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한 여인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물론 그 사람의 경우는 미국인 중에서도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카페나 음식점, 마트나 거리에서 미소를 교환하고 나서 바로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내가 당시 받은 인상으로 따지면, '나 따위는 "아웃 오브 안중"'인 듯한 반응을 너무도 많이 겪었다.  

따라서, 첫 만남에 웃는 것만으로 외국인들이 더 친절하다거나 더 인성이 좋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  다만, '미소'의 무게가 다를 뿐이다.  그리고 처음 무뚝뚝했지만, 나중에 친절하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별이 더 '정이 깊다'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유보해봐야 될 판단이다. 

한국인들이 '우리'에 갖는 이러한 결속감과 유대감에서 한국인의 '정'이라는 것이 나온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물론 동일한 민족으로 한 국가를 이룬 사람으로서는 그 안의 일원에게는 커다란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는 일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오류나 부정은 그 연대감 때문에 선뜻 지적하거나 고치기 힘들다는 것은 큰 단점이 아닐까 생각한 적은 있다.  또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소외감을 줄 수 있는 정서 체계이기도 하다. 

만약 어떠한 외국인이 'Why do Koreans~?'라며 첫만남에 웃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 내지 불만을 이야기 하면, 난 위와 같이 설명해줄 것이다. 물론 다 설명해주려면, 그때 내가 가진 시간이 좀 많아야겠지만....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7. 00:03 일상 이야기

お仕事頑張ってください라는 일본어 표현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은 여기를 클릭!)

그런데, 어제 우연히 일본 드라마을 보다가, 요새는 일본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간밧테 (頑張って)' 혹은 '頑張れ' [우리로 치면 파이팅 정도일까...]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파와 하라' (power harrassment의 일어식 표현), 즉 권력을 악용해서 남을 괴롭히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얘기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일본도 서구의 문화 혹은 서구적 사고방식으로 전이되는 것일까?  다른 것은 몰라도 일이나 직장에 대한 태도는 참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전에 내가 일본과 미국의 차이에 대해서 재밌다고 생각하던 점이었는데, 이런 현상은 왠지 서구의 사고방식이 1승?  이런 느낌적인 느낌?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3. 01:41 일상 이야기

벌써 작년의 일이다.

지인에게 방울토마토와 흙이 담긴 조그만 봉지를 선물로 받았다. 건네면서, 조금 오래된 거라 싹이 틀지 모르겠다며.... 그래서, 큰 기대 없이, 마시고 난 플라스틱 커피 음료 잔 밑에 구멍을 뽕뽕 뚫고, 봉투의 흙을 담고, 그 흙에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몇 개 홈을 파 놓고, 작은 비닐 봉투 속에 담겨있던 몇 알 되지도 않아 보이던 눈꼽만한 씨 몇 알을 조심스레 나눠서 그 구멍 속에 떨어뜨려 담고서는, 흠씬 물을 뿌려 주었다. 크게 기대는 않았지만, 그래도 며칠에 한번씩 물도 주고 했더니...
싹이 꼬물꼬물 올라오는게 아닌가?! 기대없이 놔두던 플라스틱 컵속의 초록을 보고 경탄하면서 집에 있던 화분에 옮겨 주고 좀더 정성을 들였더니.... 열렸다. 토마토가....

난생처음 내 손으로 키운 유실수라니~ 너무 신기하고 나의 무관심과 무경험 속에서 방치된 상황에서도 그토록 무럭무럭 자라준 생명들이 너무 고마워서 그 뒤로는 좀 더 신경을 쓰며 살펴보았다. 그래도 딱히 달리 해준 건 없고, 그냥 물만 일주일에 한 번 주는 것을 빠뜨리지 않고 지킨 정도. 심지어 전문적인 녹색 플라스틱 대도 처음에 존재 자체를 몰랐고, 나중에 그런게 있다는 걸 알고 나서도, 그걸 어디서 사는지도 몰라서 그냥 나무 젓가락으로 지지대를 세워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묵은 방울토마토 씨들은 몇 차례의 수확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먹기도 아까운 열매들을 몇 차례 따서는 동네방네 자랑하면서 식구들에게 하나씩 하사하곤 했다. 예수님이 성찬을 나누실 때에도 이렇게 생색을 내지는 않으셨으리라.

위의 사진은 마지막 수확을 기념하여 한 컷.

그래서 재미를 붙여서 올해도 한번 하고서 이마트 원예 코너에서 비슷해보이는 방울토마토 키트를 사서 뿌려보았는데, 실패!

역시 그건 우연이었나? 나는 스스로 난 원예에 재능이 있나보다. 나름 무척 감격했었는데...

그러던 나날을 보내던 중, 슈퍼에서 산 파프리카를 요리할 때 다듬다가 나오는 씨를 보고 문득 그 씨들을 모아 말려서 나중에 뿌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서 조심스레 씨들을 모아 말려두었다.


그러고선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그 바싹 잘 마른 씨들을 실패한 방울 토마토 씨들을 심었던 곳에 다시 뿌려두었다.

그랬더니, 싹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영양제도 사서 지시사항대로 거꾸로 세워 화분 귀퉁이에 꽂아두었다. 그리고 녹색 지지대도 미리 구입. 일부는 작년의 방울 토마토 나무(?)에 나무 젓가락을 빼고 꽂아주었다.

식물은 어떠한 의미에서 대단하다. 자리를 옮겨 다닐 수 없으니, 그야말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생명을 유지하고 열매을 맺어 후손을 잇고자 노력을 한다. 인간들이 겪는 어려움에 비해서 더욱더 극한의 어려움에 맞서서 생명을 유지해온 것이다.

나는 항상 in-put과 out-put간의 간격이 긴 일만을 해왔다. 그러다가, 이렇게 비교적 단 시간에 가시적인 성과물을 접하니 성취감이 남다르다. 힐링 타임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앞으로는 '원예'를 당당히 취미란에 써넣을테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2. 01:30 일상 이야기

2018년은 1918년으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해. 
그럼 1918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면,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지만,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공교롭게도 빈 모더니즘을 이끌었던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 4명이 세상을 뜬 해이기도 하다.  

  • 오토 바그너 Otto Wagner (1841-1918)  

  •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 

  • 에곤 쉴레 Egon Schiele (1890-1918) 

  • 콜로만 모저 Koloman Moser (1868-1918)

(이들이 한날 한시에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고 우연의 일치.  다만, 당시 스페인 독감이 워낙 유행해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알려져 있다. 일례로 에곤 쉴레는 당시에 유행했다는 그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는데, 이는 임신 중이던 아내가 이 독감으로 세상을 뜬 사흘 뒤였다고 한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클림트가 폐렴의 합병증으로 결국 사망했는데, 그 폐렴의 원인이 스페인 독감은 아니었나 의심해 볼 수는 있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미술사에 기리남을 인물들이 같은 해에 '서거'하기란 원체 드문 일이다.  이를 계기로 빈 모더니즘도 한 풀 꺾인 것도 사실이고, 이 즈음에 공교롭게도 오스트리아의 국운이 저물어간 것도 사실이다.  당시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겠지만, 빈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한 2018년의 오스트리아 빈으로서는 널리 기리고 알려야하는 기념할 만한 해인 것이다. 

이를 기념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홈페이지가 여기.

https://wienermoderne2018.info/en/


오토 바그너는 현대 건축을 창시했다고도 평가받는 건축가, 콜로만 모저는 팔방미인인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이 둘은 일반 대중들에게 덜 알려져 있지만,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화가들이다. 

정식으로 사제지간은 아니었지만, 에곤 쉴레는 클림트를 존경했고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둘의 사이가 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작품 세계는 상당히 달랐다. 에곤 쉴레의 경우, 지나친 외설적 표현으로 오늘날까지 일반 전시에는 제약을 받을 정도의 과감한 작품 세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물론 독특한 화풍과 필치로 개성넘치는 작품으로 그의 천재성과 재능은 충분히 평가 받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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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ienermoderne2018.info/en/에서 소개된 에곤 쉴레 부분의 참고 이미지들 중 하나 - '10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과감해서 미안'이라고 쓰인 종이로 '은밀한 부분'을 감춘 재치 있는 디자인이 돋보인다.

Egon Schiele (1890-1918), Self-Portrait with Chinese Lantern Plant (1912), oil on painting ; 32.2 x 39.8 cm, Leoold Museum 

이에 비해 클림트의 작품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작품들로 유명하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복제품으로 널리 유통되고 전시되어 한국에서도 카페 같은 데서 한 번쯤 봤음직한 작품들이 많다.    

Gustav Klimt, The Kiss, oil on canvas ; 180 x 180 cm,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클림트의 '황금기' (전성기라는 의미도 있지만, 정말 금색을 많이 사용해서 적절한 명칭)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원래는 가로와 세로가 모두 180cm인 정사각형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이다. 사랑하는 남녀의 열정적이면서 따뜻한 키스의 순간을 화려한 금색을 배경으로 장식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클림트의 이전 작품이 변태적이라며 비판 당했던 것과는 달리, 제작 당시부터 인기가 높았다고 알려져 있다. 금박과 평면성은 각각 비잔틴과 자포니즘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데, 이후 그의 대표 작품들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자리잡는다.  

혹자는 남성의 머리에 얹힌 것을 월계관이라고 보고, 이를 아폴로와 다프네의 신화를 묘사한 것이라 해석하기도 하는데...  여인의 몸, 특히 다리 부분이 지면의 풀과 꽃과 물아일체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신화 속의 다프네는 구애하는 아폴로를 벗어나기 위해 도망을 치다치다, 급기야 강의 신이던 아버지에게 부탁해 님프이길 포기하고 나무로까지 변신을 하는데... 이 그림 속의 여인은 남성의 품에서 너~무 행복해보인다는 결정적으로 감정표현적 모순이 있다.   

그리고, 어제 소개한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회화 작품들에 클림트의 작품이 당당하게 몇 작품이나 들어가 있는데, 둘다 성공한 사업가의 아내인 Adele Bloch-Bauer의 초상화이다.  클림트가 유일하게 같은 모델을 대상을 두번이나 초상화를 제작했다고 해서 유명하기도 하다.  나치가 몰수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후손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하는데... 이 중 1907년의 첫 초상화 작품은 현재 Neue Galerie에 전시 중이다.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현재 뉴욕의  Neue Galerie에 전시 

우연의 소산이긴 하고, 거장들이 한꺼번에 세상을 등진 일은 비극적인 일이었지만, 전시회를 기획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  빈 모더니즘을 이끌었던 4 거장들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해서 오스트리아의 빈 뿐 아니라, 예술이라면 내노라 하는 대도시에서 이들과 관련한 전시를 많이 개최하고 있고, 늦게는 내년 초까지 계속 되고 있으니,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씩 여행지 미술관의 특별전을 체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보다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오스트리아 빈 측에서 준비한 것 같은 이들의 홈페이지를 체크해 보세요.
https://wienermoderne2018.info/en/

(그리고 뉴욕에 가시는 분은 Neue Galerie에 가보시는 것도 좋을듯해요~) 

The Belvedere Museum “Egon Schiele - Pathways to a Collection” (Oct. 19, 2018 – Feb. 17, 2019)
Leopold Museum 
“Egon Schiele. The Jubilee show”  (Feb. 23 – Nov. 4, 2018) 
“Gustav Klimt”  (Jun. 22 – Nov. 4, 2018)
MAK – Austrian Museum of Applied Arts/Contemporary Art “Koloman Moser. Universal Artist between Gustav Klimt and Josef Hoffmann” (Dec. 19, 2018 – Apr. 22, 2019)
Bank Austria Kunstforum Wien - Japonismus” (Oct. 10, 2018 – Jan. 20, 2019)  - 자포니즘의 영향에 대해 알아보는 전시라고 소개 됨 
Klimt Villa - Gustav Klimt’s Studio - “Klimt lost” (May 5 – Dec. 30, 2018) – 나치에 의해 행해진 압수를 비롯하여 소실된 클림트의 작품을 새로운 관점에서 고찰해보는 전시라고 소개 됨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3. 00:49 일상 이야기

원하지도 않았는데, 매일매일 날라드는 교훈적 문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self-help 혹은 자기계발서라고 분류되는 책도 읽어본 기억이 없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그렇게 날라드는 문구나 자기계발서의 대부분의 내용들이란 결국은 모두가 알고 있는 뻔한 '좋은' 내용이고, 사실 그게 실천이 안되니 문제고, 삶이 힘든거지, 거기 적힌거 몰라서 못하는 사람은 없지 않아? 뭐 대충..., 이런 생각이었다.  


“Success is the sum of small efforts repeated day-in and day-out.”

- Robert Collier

그런데, 어느날 날라든 이 문구는 왠지 좋다고 느꼈다. 

이후, 가끔 이 문구를 떠올리곤 하는데, 내가 뭔가를 조급하게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매일매일 해야할 일이 지겹다고 느껴질 때, 이 문구를 떠올리면 조급한 맘은 가라앉고, 지겨움은 참을성으로 바뀌곤 했다.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다.  그 도움이 되어 성취한 '성공'이 세간에서 봤을때 큰 '성공'은 아니라고 할 지라도, 내 스스로에게 '성취감'을 주는 충분히 '성공'적인 일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블로그를 시작한지 한달.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이 블로그가 '정착 (?)'될 때까지, 매일 하나씩은 일상적 얘기라도 하나씩은 올리자 맘 먹어봤다.  익숙치 않은 블로그에 매일매일 글을 적어 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로버트 콜리어 아저씨의 글귀를 떠올렸다.  (알고보니, 이 분, 20세기 초에 자기계발서로 베스트셀러를 남긴 분)

그러구서 한달, 지금 보니까 올린 글이 꽤 된다.  역시 매일매일 조금씩 빠뜨리지 않고 뭔가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게 '성공'이지 성공이 별거냐.  물론 앞으로도 저 문구가 약발이 안 먹힐때까지 계속해 보리라 생각해본다.  

앞으로는 '자기 계발서'를 한번 찾아 읽어봐야 할까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2. 07:00 일상 이야기

어느 날, 페이스북에 짧은 동영상이 올라왔다. 

거기엔 한 아버지가 어린 딸아이를 안아올린 채, 거울을 마주보고 자신이 하는 말을 딸아이에게 복창하게 하는 것이었다. 

I am smart, beautiful, strong.... 

이런 식의 자기 암시법은 여러번 봐온 것이라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지만, 특이하게 여긴것은 다음 두 구절이었다. 

"I am not better than anybody.  

Nobody is better than me."

일견 서로 상충하여 모순인 것처럼 들리는 이 구절은 결국 '자존감'과 '타인에 대한 존중'에 대한 요약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말을 매일 아침 복창하며 자라난 저 소녀는 타인에 대한 존중을 할 줄 아는 자존감 충만한 어른으로 자라겠구나 싶었다. 

갑질과 을질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는 요즈음, 아침마다 어린 아이에게 저 구절을 복창시키며 키워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나만 인상깊게 본 것은 아닌듯.  유튜브에서 'father to a daughter, you are not better than...'으로 찾아보니 나.왔.다.  

그래서 이렇게 링크를 공유.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 03:30 일상 이야기

お仕事頑張って下さい~~~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내가 관찰해 본 바로는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일했고 항상 바빴다.  그런데, 내가 느낀 바로는 한국에서 일본인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이미지는 있어도 미국인들은 왠지 열심히 일한다는 이미지는 없는 것 같았다.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건 그들의 태도 때문인것 같다.  

내가 잠시 일본에 있을 때, 내 방문의 목적이 이러저러하고, 일본에 있는 동안 이런저런 일을 하고 돌아갈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열 명중 아홉 명은 '아 그러냐~'고 하고 나서는, 꼭 “Oshigoto ganbatte kudasai (お仕事頑張って下さい)”라고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흐음... 물론 글로 배울 때 그 표현의 뜻이 '일 열심히 해주세요'라는 뜻이 아닌 것은 알고, 그냥 성공을 기원한다는 식의 가벼운 격려의 의미를 담은 인사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을테지만, 막상 매번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미 열심히 하고 있는데, 뭘 더 열심히 하라는거지?'라는 의문이 맘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곤 했다.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그 문화를 체득하는 데에는 원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라면 내게 무슨 말을 해줬을까?  격려의 의미를 담아 'I hope work goes well for you.'라고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Good luck!' 정도라고 말했을 것 같다.  내가 스케줄에 쫓겨 언제까지 일을 마쳐야 한다고 했다면, 대부분은 (그렇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Take it easy.'라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지금이 글을 쓰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부터도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열의 부족에 대해 의아해하며 한편으로는 무안했던 적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만약, 나보다 높은 연배의 선생님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중간에 보고서 격려 차원의 말을 해주는 경우였다면, '열심히 하라'는 말 대신, 'Keep up the good work.' 이라는 말을 해주었으리라.  친구들이라면, 바쁘더라도 여유를 잊지말고  '쉬엄쉬엄 해'라고 하거나, 선배나 선생님의 경우에는 보통  '(잘 하고 있어) 지금처럼만 해.' 정도의 말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 이면을 살펴보자면, 미국인들의 경우, 개인차는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쿨~한 것을 지향하는 문화라서인듯하다. 따라서, 자신이 할 일이 많아 무척 바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시간에 쫓기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반해, 짧은 기간 밖에 머물지 않아 일본인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받은 인상으로 그들은 자신의 열성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러한 열의가 타인에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결과, 밖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에는 커다란 온도차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미국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영어는 할 수 있어도 문화적 차이를 잘 모르는 일본인이 'Oshigoto ganbatte kudasai'를 직역해서, 'Please do work hard.' 라고 했다면? 미국인 친구는 자신의 일이 무엇인가 크게 부족한가 엄청난 반성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역으로, 일본어를 글로만 배운 사람이 일본인 친구에게 Take it easy 이나 Keep up the good work 라는 말을 섣불리 일본어로 직역해서 말한다면?  '落ち着いて'(진정하세요) 혹은 'もっと上手に働きなさい (일을 좀 더 잘하세요)'  일본인 친구 역시 자신이 뭔가 크게 일을 잘못하고 있다고 불안해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두 친구 모두 이직을 고려해야하나 걱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언어를 안다는 것과 문화를 안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언어는 통해도, 상호문화적 차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서로 오해를 사기가 쉽다.  처음 모든 것이 낯설던 외국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자, '사람 사는 것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 곤 할 때마다, 피부에 확 닿게 느껴지는 차이... 그것이 결국 언어(만)의 익숙함 위로 덮쳐드는 문화의 차이 때문이었다.  

언어가 문화의 차이를 만드는지, 문화가 언어의 차이를 만드는지 알 수 없지만, 따라서 나라마다 '예의바른 언행'이라는 것도 차이가 있다.  물론, 그러한 차이가 오해를 낳기도 하지만, 그 차이를 이해하고자 노력만 한다면 훨씬 더 풍요로운 경험과 폭넓은 사고가 가능해질테지만 말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