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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13. 18:52 미술 이야기

'빨간색'하면 머릿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붉은 장미꽃, 혹자는 아름다운 여인의 붉은 입술, 많은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있겠지만, 의외로 빨간색은 내가 좋아하는 자주색과 연관이 깊다. 그도 그럴것이 보라색 혹은 자주색은 빨강과 파랑의 혼색이기 때문이다.  빨간색 역시 내가 좋아하는 색상인데 (생각해보니 나는 싫어하는 색이 그닥 없는거 같네) 빨강과 자주가 절묘하게 혼합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Mark Rothko,  Untitled (Red and Burgundy Over Blue) , 1969, oil on paper mounted on board. 

'무제'라는 제목에 이어 괄호 안에 (파랑위에 빨강과 버건디)라는 제목은 내가 좋아하는 색상들이 다 모여 있어서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캔버스가 아닌 종이위에 그려진 유채라서 그런지 표면의 질감이랄까 마티에르감이 그의 다른 작품과는 좀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몇 년전 경매에도 나왔던 이 작품 이외에도 로스코의 작품은 붉은 색이 많다.  작가의 생존시에도 엄밀히 비밀을 엄수했기에, 아직도 정확한 작법이 밝혀지지 않은 로스코의 작품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각형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톤이 다양한 붉은 색이 어우러진 그의 작품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닌게 아니라 물 속에 잠겨 있는 색면이 물결의 움직임에 따라 일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한 관람자라면, 작품 앞에서 통곡을 할 것이라 작가는 말했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을 보고 '통곡'까지는 아니라도 왠지모를 울컥함을 느꼈다는 사람은 가끔 볼 수 있고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고백해두는 바이다. 빨간색 색조가 주를 이루는 그의 작품은 초기의 작품에 많고, 이후 그의 작품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1970년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파랑색이 더 강해지면서 밤하늘 같은 푸른색이나 머룬 색, 어두운 갈색을 거쳐서 점점 검은색에 가까워지게 된다.  

Mark Rothko, ‘Untitled (Red on Red),’ 1969. Courtesy Sotheby’s 다양한 빨강의 변주를 훌륭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Mark Rothko, Red, Orange, Orange on Red (1962) oil On Canvas ; 233 x 204.5 cm, Saint Louis Art Museum  이 작품은 창을 통해 석양을 바라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마크 로스코도 빨강의 변주곡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작가이긴 하지만, 미술사를 통틀어 빨강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는 뭐니뭐니 해도 앙리 마티스라고 할 것이다. 그의 1911년 작품 <붉은 스튜디오>는 야수파의 리더이자, 색채를 해방시킨 화가로 칭송받는 화가인 마티스가 얼마나 자유자재로 색상을 다루는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자연의 재현'이라는 굴레에 묶여 있던 회화에서는 사물에는 으레 정해진 '색'이 있었다. 하지만, 마티스가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얼굴 한가운데 녹색 선을 과감하게 그어버림으로써 작품 별명을 녹색 선 (Green Stripe)라고 불리게 만든 이후, 화가들은 더이상 일대일 식의 정해진 색상의 규범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마티스의 공로는 실로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 초등학생이 나무나 산을 빨갛게 색칠하고 있는 것을 본 선생님은 어린 학생에게 조용히 빨간색 크레파스 대신 초록색 크레파스를 쥐어줄지도 모르고, 아니면 학생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요새 아이한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볼 지도 모를 일이다.  

Henri Matisse, The Red Studio (1911)  빨강색 하나만으로 자신의 스튜디오를 표현한 마티스는 단연 '색채를 해방시킨 작가'로 불릴만 하다.  

[인터넷 상의 해상도와 색조가 제각각이라 마티스의 진짜 빨간색이 무엇인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MoMA의 이미지를 참고해보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 붉은 색이라면, 예전 댈러스의 유명한 콜렉터 라초프스키 (Rachofsky)의 개인 미술관인 라초프스키 하우스(The Rachofsky House)에서 본 마크 퀸 (Marc Quinn)의  <자신 (Self)>이라는 작품이다. 방 한켠에 투명한 플랙시 글래스 안에 들어가 있는 냉동 두상은 작가 마크 퀸이 자신의 얼굴 모양의 본을 뜬 뒤에, 조금씩 수혈한 자신의 피 5.6리터를 모아 액상 실리콘을 혼합해서 얼려 만든 작품이다. 냉동장치에 연결되어 얼어있는 상태로 보존된 이 작품은 둘러쌓인 공간의 흰색 벽과 대조되어 강렬한 인상이었는데, 그곳을 안내해주던 그곳의 큐레이터가 전해주는 에피소드 때문에 더더욱 내 머리 속에 각인되는 결과가 되었다.  말인 즉슨, 그 뜨거운 텍사스의 기후 속에서 냉동장치가 고장이 난 적이 있어서 한번은 그 작품이 폭발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피가 흰벽의 방 사방에 튀어서 그것을 청소하는 데도 힘들었고, 이후 작가가 다시 수혈을 거쳐 작품을 다시 만들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왜 그런 작품을 만드는지, 또 왜 그런 작품을 수집하는지 이해불능이겠지만,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본을 떠서 그 속에 한 사람의 몸 속에 존재한다는 피의 양을 사용해서 만드는 두상은 현대판 '바니타스 정물화'인지도 모른다. 

Marc Quinn, Self (1991) 작가 마크 퀸은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본을 뜬 캐스트에 자신의 피 5.6리터를 수차례의 수혈을 통해 모은 뒤 이 속에 채워서 얼려서 '자신 (Self)'라는 작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보통 인체에 존재하는 피의 양 5.6 리터라고 하는데서 착안한 5.6리터이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생과 사를 함께 언급하는 작품이라고.  피는 시간이 지나면 굳기에 액상 실리콘 등의 화학약품을 혼합해서 만들고 이 조각은 플랙시 글래스 안에 보관되고 냉동장치가 연결되어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유명한 콜렉터인 라초프스키가 댈러스에 지은 일종의 서머하우스이자 개인 미술관. 

동굴 속에서 살던 석기인들은 돌에서 추출한 황토색인 '오커(ochre)'를 사용했고, 이후 진사 혹은 주사라고 부르는 시나바 (cinnabar)라는 광물에서 붉은 색을 추출하였다. 이 시나바를 분쇄한 것을 버밀리언 (Vermilion)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이 밖에도 금과 은 다음으로 비쌌다는 카마인 (Carmine)은 특이하게도 콩처럼 생긴 벌레,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충 혹은 코치닐 (Cochineal bug)을 분쇄하여 제조했다고. 마티스가 주로 사용한 붉은 색은 화학적으로 합성한 색상으로 카드민 레드 (Cadmine Red)로 전통적인 버밀리언을 대체하기 위해 고안된 색이다. 붉은 색을 많이 사용한 로스코의 경우 리솔 (Lithol)이라는 안료를 많이 사용했는데, 이 안료의 경우 결정적으로 빛에 약한게 문제. 로스코 채플에서 천정에 난 창을 통해 자연스런 자연광이 작품에 비추도록 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가림막을 설치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색의 역사를 훑다보면 오늘날 만큼 생활 속에 다양한 색이 풍요롭게 존재하는 시기도 드물었던 것 같다. 쪼꼬마한 벌레들을 직접 잡아 으깨서 빨간색을 구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붉은 색의 옷이나 구두를 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25. 00:30 미술 이야기

한 번 시작한 순위 프로그램, 계속 진행해가고 있습니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 계속~ 쭈욱~  

전체 랭킹에 대해서 올린 포스팅은 여기를 참고!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지난 2차례 걸쳐서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에 대해서 살펴봤다. 오늘도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햐는 화가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1903-1970)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그의 작품 중 순위에 포함된 작품은 아래와 같다. 

 

인플레 고려 7위) Mark Rothko, "No. 6 (Violet, Green and Red)" (1951) $186-million (2014 private sale via Yves Bouvier) $192-millions


앞의 포스팅들 (윌렘 드 쿠닝잭슨 폴록 편 참고)에서도 밝혔지만,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들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émigré, 이민자들이었다. 마크 로스코도 본명은 Markus Yakovlevich Rothkowitz. 유태계 혈통인 그는 러시아 내에서의 반유태정서를 염려한 부모를 따라 오레곤주의 포틀랜드로 이민을 왔다. 이주 후 곧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낯선 땅, 낯선 언어 속에서 빈곤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비록 가정형편 탓에 자퇴를 하긴 했지만, 예일대학에 입학을 할 수 있을 정도였고, 어릴 때에는 출신지인 러시아의 언어는 물론, 이디시, 히브루어를 공부했고, 시나고그에서 탈무드를 배우기도 했던 로스코는 상당히 지적인 화가였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뉴욕에 이주한 후, 그는 다양한 배경의 화가 지망생들과 어울리는 한편, 당시 유행하던 실존주의와 융 심리학은 물론 키에르케고르와 니체의 철학에 심취하기도 했다.    

다른 추상표현주의자들처럼 로스코도 시그니처 스타일이 있었는데, 전형적으로 직사각형의 캔버스 위에 두 세개의 사각형이 그려진 단순한 구조다. 그의 작품을 묘사할 때는 'floating rectangles'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경계선이 명확한 사각형이 아닌 가장자리가 번져 있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마치 물 속에서 떠오르는 듯한, 그 위를 부유하는 듯한 사각형이라는 의미이다.   

'멀티폼 (multiform)'이라고 알려진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등장하게 된 것은 그가 다른 추상표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융 심리학의 영향을 반영하는 단계를 거치고 난 후, 1940년대 말, 1950년대 초였다.  

그의 회화 작법은 로스코가 생전 스튜디오에 사람을 들이기를 극도로 꺼리며 비밀을 유지한 덕분에 아직까지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그의 회화작품을 수복을 위해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짐작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밑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 천 위에 엷은 물감을 여러차례 바르는 기법을 사용했다. 따라서 흰색 캔버스 천의 흰색이 여러가지 색상의 엷은 물감이 서로 섞이는 와중에 비쳐나오면서 마치 사각형이 떠오르는 듯한 효과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주인공인 이 작품도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그려진 것인데, '이런 것을 그림이라고...'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물을 평면화 시켜버리는 사진으로가 아니라, 직접 보면 생각보다는 '복잡한'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조그만 썸네일이나 작은 사진으로 보면 그냥 사각형 두세개가 그려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 사각형 하나하나가 단색이 아닌 명도와 채도가 색상들이 여러 층에 걸쳐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엷은 물감은 밑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에 번지면서 스며들어 가장자리에는 번진 자국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floating'이라고 묘사하는 사각형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각형이 캔버스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빛에 따라 일렁거리는 물결 아래 잠겨 있다가 떠오르다가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후기에 이를수록 점점 색상이 짙고 어두워지긴 하지만, 전성기 그의 작품 속의 사각형은 밝고 아름다운 색상으로 그려진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해 일부 비평가들은 그를 'colorist'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작 본인은 그러한 평가에 대해 펄쩍 뛰면서 '내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작품앞에서 통곡을 하게될 것이라' 천명하였다. 

그의 전기를 쓴 작가 제임스 브레슬린은 서문에서, 어떻게해서 로스코의 전기를 쓰게 되었는가를 밝히고 있다. 자신이 힘든 시기였을 때, 우연히 로스코의 작품을 보고 그 앞에서 펑펑 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후 작가의 위의 언급을 읽고 로스코라는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 전기를 쓰게 되었다고. 

자신의 작품은 결국, 비극과 환희,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운명 (tragedy, ecstasy, doom)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던 로스코도 결국은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굴복한 것일까?  68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의 부호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 (Dmitry Rybolovlev)가 고갱과 로댕의 작품을 포함해, 스위스의 아트딜러 이브 부비에 (Yves Bouvier)로부터 구매한 고가의 미술품 중 하나이다.  [이들과 관련한 논란 및 법정공방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고]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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