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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24. 00:02 미술 이야기

친구 하나가 내 포스팅을 보더니, '해골 들어간 그림 처음본다'라는 코멘트를 날렸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내 친구같이 미술과 연이 먼 친구같은 경우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제가 연이어서 '해골 들어간 그림'에 대한 내용을 올렸었네요. 싱숭생숭한 시기에 더 심란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무도회'가 그랬듯이 오히려 그러한 그림으로 위기감에 가슴 눌리는 일없고, 오히려 무거운 마음 가볍게 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오늘은 요새 '죽음의 무도회'와 '바니타스'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네오팝'에 대해서 조사와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을 써보려고 한다.  (스포일러 경고!  오늘도 해골 이미지 많이 등장할 예정!)

'네오팝'이란 '새로운 팝아트'라는 의미로 1980년대에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팝아트적인 경향을 지칭한다. 팝아트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이용한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단, 이때엔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1960년대가 아닌 1980년대의 대중 문화를 이용한 것이 차이점이다.  대표작가로는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언급했던 제프 쿤스가 있고 그 밖에 YBA의 대표작가라고 할 수 있는 데미안 허스트, 그리고 일본의 무라카미 타카시 등을 들 수 있다. 

이전의 "요새 미술 - 즐거운 것이 좋아~"라는 포스팅에서, 요즘 미술은 심각한 주제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주제를 선호하며, 그것을 표현하는 이미지들이 대부분 대중 매체를 통해 친숙해진 것들이라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은 즉각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 미술의 주된 흐름이 이러하다보니,  작가는 더 이상 작품을 통해 심오한 의미를 담거나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지 않고, 관람객도 더 이상 작품 이면의 의미라던가 그 작품을 제작할 때의 작품의 의도라는 것에 더이상 알고 싶어하지 않고 중요시 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감춰진 의도나 의미'따윈 없다고 천명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오팝 작가들의 작품 가치는 미술사를 통틀어봐도 이만큼 높이 평가 된 적이 있나 싶고, 작가들은 나날이 높아지는 명성을 뽐내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대중들은 더 이상 팝아트 혹은 네오팝적 성향의 작품을 보고 "천박하다'거나, "저속하다"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이러한 작품들에 익숙해져왔기 때문이다. 젊은 예술가들은 더이상 가난하고 고뇌하는 빈센트 반 고흐가 아닌 성공도 하고 예술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앤디 워홀을 롤모델로 삼게 된 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그런데 말입니다~'가 등장할 대목이다.  그렇게 자타공인 표리일치 가볍고 경박함을 지향하는 듯한 이러한 팝아트와 네오팝 작가들이 실은 누구보다 '바니타스' 혹은 memento mori의 주제를 다룬 작품들을 많이 제작했다는 것이다.  

먼저, 앤디 워홀은 '재난 시리즈'로 죽음에 관한 주제를 많이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황색 언론을 통해서 구하게 되는 자극적인 사고 사진들을 실크 스크린으로 제작한 것이 그것이다.  그 속에는 오늘날같으면 검열에 걸려 실릴 수 없었을 사진들 - 사형집행용 전기의자, 사망자의 시체가 함께 찍힌 끔찍한 자동차 사고의 장면, 높은 빌딩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사람이 찍힌 사진 - 을 하나 혹은 복수의 이미지를 작품화 한 것이다.  워홀의 '재난 시리즈'는 이처럼 당시 현대사회에서 볼 수 있는 죽음과 직결되는 이미지들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해골을 사용하기도 했다. 

Andy Warhol, Skulls (1976) Acrylic paint and silkscreen on 6 canvases ; each: 383 × 483 × 18 mm, Tate Gallery

 

제프 쿤스의 경우, 물을 채운 수조에 농구 공 세 개를 띄워놓은 것이 다인  <세 개의 공, 총체적 평형 탱크 (Three Ball Total Equilibrium Tank (Two Dr J Silver Series, Spalding NBA Tip-Off)> (1985) 라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바니타스' 개념을 언급한 적이 있다. 

제프 쿤스, 세 개의 공, 총체적 평형 탱크 (Three Ball Total Equilibrium Tank (Two Dr J Silver Series, Spalding NBA Tip-Off) (1985) Glass, steel, pneumatic feet, 3 rubber basketballs and water, Tate Gallery, London 1985년 뉴욕의 개인전을 맞아 제작된 <평형> 시리즈 중 하나로 물을 채운 수조에 농구 공 세 개를 띄워놓은 것

이 작품에 대해 제프 쿤스는 ‘도달할 수 없는 상태에 대한 비극, 지속될 수 없는 부유의 상태, 인간의 정신적 평정 혹은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에 관한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누가봐도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을 재활용한 것일 뿐 인것 같은데, 그렇게 심오한 뜻이?  그가 다른 곳에서 밝혔듯, 관람객의 즉각적 감상을 겨냥했다면 할 수 없는 작가의 철학적인 설명이다. 과연 위의 작품을 보고 '바니타스' 개념을 떠올리는 관람객이 몇이나 될까?

네오팝 계열 중 가장 바니타스 개념에 집착하는 작가로는 단연 데미안 허스트이다. 커다란 수조에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가득 채운 뒤 거대한 상어를 통째로 담궈 놓은 작품으로 유명한 그는  보다 직접적으로 그리고 거의 편집증적으로 '바니타스'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상어 작품은 제목조차 거창하게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에 존재하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죽음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가 그렇고, 수십만 마리의 나비의 날개를 실제로 뜯어 모아 만든 최근의 작품이 그러하다. 그리고, 그의 바니타스 개념의 탐구의 정점에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해골이 있다.

Damien Hirst, For the Love of God (2007), platinum, diamond, human teeth, White Cube Gallery, London 그의  (2007)는 실제로 발굴된 18세기의 해골의 본을 떠서 거기에 무려 8,601개의 무결점 다이아몬드와 그 해골에 부착되었던 치아를 함께 사용해서 만든  작품. 'For the love of God'란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세상에나!' 혹은 '맙소사!'라는 정도의 부정적 감탄사가 될 것 이다. 

18세기 실제의 해골의 본을 떠서 8,601개의 무결점 다이아몬드를 박아 만든 이 <세상에나! (For the Love of God)>라는 작품은 그 자체로 17세기 네덜란드 바니타스 정물화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탐내는 금은보화를 그려놓고 역설적으로 '그렇게 인간이 탐하는 물질적인 것이 얼마나 유한하고 덧없는가'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하는 것이 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라면, 이 작품은 실제의 죽음의 결과인 해골의 형태와 거기서 발굴한 치아를 직접 사용하는 한편, 많은 인간들이 욕망하는 최고급 다이아몬드로 만든 작품이니 말이다. 일설에는 자신의 작품이 턱없이 비싸다는 비판에 '그래? 그럼 비싸게 만들어줘봐?'라며 작정하고 만들었다고도 전해지는데, 제작비만 해도 205억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비싸게 만든다 했지, 싸게 판다고는 안했다.'라며 탁월한 흥정실력을 발휘하여 결과적으로 735억에 판매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를 그렸던 작가들도 자신이 잘 그리는 주제를 선택해서 그림을 그렸던 것이지, 그런 작품을 그렸다고 그들이 모두 '현세적 물질은 유한하고 덧없는 것이니 항상 영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상기하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다고도, 그러한 주제를 전달하려고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당시 작가들로서는 교회나 귀족같은 기존 고객이 사라진 네덜란드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방편이었고, 바니타스 정물화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검소와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던 당시의 가치와 상충하는 부에 대한 욕구나 과시욕을 감춰줄만한 장치로서 그러한 도덕개념을 덧입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Rah Crawford, Artist's Skull (2015) 네오팝 작가 중 하나인 라 크로포드의 "예술가의 해골" - '예술을 만들라, 그리고는 죽어라'라는 영어문구가 타투처럼 해골위에 그려져있다. 

 

어찌되었든간에,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보면 네오팝 계열의 작가들은 '바니타스'의 주제를 무척이나 자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포스팅 "요새 미술 - 즐거운 것이 좋아~"에서 다룬 것과는 다소 상충할 수도 있다.  "심오한 것 싫어! 즐거운 것이 좋아!"가 요즘 미술의 추세가 아니었던가? 

거기에 대해서는 나는 잠정적으로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아무리 '의미'보다는 '즉각적 감각'을 우위에 두는 것이 요즈음의 추세라고는 해도 작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의미를 담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관람객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감상하는 작품에서 표면적인 감상 너머 존재하는 의미를 본능적으로 찾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작품 하나에 몇 백억에을 쉽게 호가하는 작품들을 직접 다루는 사람들만큼 역설적으로 '현세의 물질적인 것의 덧없음'에 대해서 가까이 느끼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것이 네오팝 작가들이 '바니타스'의 주제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제프 쿤스에 대한 포스팅은 이하와 같다.

 

요새 미술-제프 쿤스의 표절 사건

요새 미술 - 제프 쿤스의 표절 Jeff Koons's Plagiarism 네오팝 아티스트 혹은 차용 작가로 불리는 제프 쿤스는 마르셀 뒤샹과 앤디 워홀의 미학 (그런 것이 있다면)과 담론을 결합하여 극대화 시킨 작가라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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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인기작'의 기준, 그리고 '역사의 검증'을 통과한 작품이란 것의 의미

'역사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오늘날 생존 작가들의 작품들 중 경매에서 고가로 거래되는 작품들을 설명할 때, 특히 그 작품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을 때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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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미술 - 제프 쿤스 제 2 편~ 혹은 제 3편

얼마전 생존 작가의 작품으로서는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제프 쿤스의 작품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전에는 제프 쿤스의 표절 사건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오늘은 제프 쿤스의 표절 사건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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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미술 - 즐거운 것이 좋아~

며칠 전 제프 쿤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Playfulness' 혹은 '장난스러움'이 아닐까 하며 글을 마쳤다. 오늘 그 꼬리를 다시 잡아, 그 장난스러움은 실은 비단 제프 쿤스 작품의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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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타스 주제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하지만 해당 포스팅은 아래와 같다.

 

바니타스 정물화 - Vanitas

이번에는 저번의 ‘튤립 매니아’에 이어 ‘바니타스 정물화’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Philippe de Champaigne, Vanitas or Still Life with a Skull, 17th century. Oil on panel, 28 × 37 cm. Mus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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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잠자는 집시
2020. 3. 18. 20:29 미술 이야기

오랜만에 돌아온 '내 맘대로 작품보기' 시리즈!  시국이 시국이다보니, 또 이런 그림 하나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17세기 플랑드르의 바니타스 회화.  현세에 사람들이 탐낼 만한 것들이 다 늘어져 있는 거실의 풍경과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함께 담겨져 있다.  죽음의 무도회와 보다 전형적인 바니타스 정물화가 결합된 형태. 여기에 서민들의 삶을 풍자적으로 그렸던 풍속화적 특징이 결합되어 있다. 

엊그제 '죽음의 무도회'에 관한 글을 하나 올렸고, 그 때 이전에 올렸던 '바니타스'에 대한 글도 링크를 걸어두었다.   이 그림은 엊그제의 포스팅에서 소개되었던 '죽음의 무도회 (Danse Macabre)'와 '바니타스 정물화'의 주제를 다 포함 할 뿐 아니라,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장르화에 해당한다.

우선 '죽음의 무도회'에 관련된 면을 살펴보자.  죽음은 깃털로 장식을 한 붉은 모자를 쓰고 해골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는 죽음의 갑작스런 등장에 당황해 보이는 집주인으로 보이는 남자 앞에서 만다린을 연주하고 있다.  그림속의 그림, 화면의 왼쪽의 그림에서도 같은 장면이 그려져 있어 '죽음의 무도회'라는 주제를 반복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동시에 전형적인 바니타스 정물화의 주제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현세에서 인간들이 원하는 것들 - 금은보화, 화려한 생활, 진수성찬 등 - 을 나열해 그리는 것이 특징인데, 이 작품에는 화려하게 꾸며진 방안에 고급스러운 옷차림을 한 사람이 식탁앞에 앉아 있다. 그의 앞 마루 바닥에는 금화가 쌓여 있고, 값비싼 접시들이 넘쳐나게 늘어뜨려져 있다. 풍성한 식탁의 뒷쪽 장식장에도 금은보화가 넘쳐나고 있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이러한 화려하고 값비싼 사물들을 화면에 담아냄으로써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동시에, 그러한 현세의 부귀영화가 실은 덧없는 것이고, 진정한 가치는 신의 뜻에 따라 살아서 영생을 얻는 것에 있다는 교훈을 주고자 하는 목적에서 그려진 그림이다.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금은보화, 진수성찬 등 인간이 욕망하는 대상들을 나열하는 것도 있고, 해골이나 불이 꺼진 촛불 등 보다 직접적으로 죽음을 상징하는 사물들이 그려지기도 한다 (바니타스 정물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팅을 참고하시길). 때로는 아름답고 풍성한 꽃들이 그려지기도 하는데, 여기서 꽃은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그 아름다움이 지속되는 것은 순간에 불과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때로는 악기와 악보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덧없음'을 상징하는데, 이는 음악 역시 머물지 않고 공기 속으로 날아가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골이 연주하고 있는 악기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로 죽음과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Evert Collier의 바니타스 정물화 (1705) 화가의 자화상을 담고 있는 이 바니타스 정물화는 식탁 가득한 금은보화와 권력을 상징하는 왕관과 홀, 지구본과 칼 등이 늘어져 있다.  이러한 바니타스 정물화에서는 책들도 등장하면 이는 인간의 지적인 욕구를 나타내며 경계의 대상이 된다.  화면의 책의 한 페이지에는 라틴어로 '죽기전에는 행복을 평가할 수 없다'는 내용을 명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의 화가 중 한 명인 에버트 콜리어의 1705년 작품은 보다 전형적인 바니타스 정물화의 예라고 할 수 있다. 화가의 자화상을 담고 있는 이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식탁 가득히 인간이 욕망하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든 것들이 담겨져 있다.  금은화와 값비싼 귀금속들은 물론, 지상의 권력을 상징하는 왕관과 홀, 지구본과 칼 등도 그려놓고 있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책들도 등장하고 있는데, 주지할 사실은 바니타스 정물화에서의 책들은 성경인 경우, 현세적 사물에 대비되는 정신적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때로는 인간의 지식욕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또한 경계해야할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여기 등장한 책에는 왼쪽 페이지에는 "Sic transit gloria mundi" 오른쪽 페이지에는 "Nemo ante mortem beatus  dici potest"라는 라틴 문귀가 적혀져 있는데  이는 각각 "그러므로 지상의 영광은 지나가리라"  "아무도 죽기 전에는 누가 축복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 (즉, 미래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라는 의미이다.  화가는 이 그림의 의미를 혹시라도 그냥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물들을 그림으로 오해할까봐 이 작품의 의미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바니타스" - 지상의 것들이 얼마나 헛되고 헛된 것인가!

오늘 살펴볼 그림에는 이처럼 바니타스 정물화의 주제를 나타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에 유행하던 풍속화의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 있다. 

Jan Steen, Beware of Luxury (1663) 얀 스틴의 '사치에 대한 경계'라는 제목의 장르화. 흥청망청 살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는 것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는 풍속화이다. 흐트러진 인물들과 속된 말로 '개판'인 집안 꼴을 보여주면서 바람직하지 못한 삶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준다. 바니타스 회화의 일종의 변종과도 같은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유머와 풍자를 담고 있다.  

위의 작품은 장르화라고도 불리는 풍속화로 유명한 얀 스틴 (Jan Steen)의 작품으로  <사치에 대한 경계 (Beware of Luxury)>(1663)이다.  그림 속에는 반면교사 역할을 하고 있는 흥청망청 살고 있는 인간의 군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근면과 성실을 중시하는 개신교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바니타스 정물화와 일맥상통하는 주제가 있긴 하지만 훨씬 더 대중적이고 풍자와 유머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런 종류의 장르화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생활은 보통 바닥에 물건들이 어지럽게 늘어뜨려져 있는 모습으로 나타낸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작품에서도 보인다. 값비싼 그릇이나 금은보화, 도자기들이 찬장에도 대충 쑤셔넣어진 상태이고 바닥에 어지럽게 어질러져있다.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어지럽혀진 내 방안을 돌아보며 반성하곤 한다)  강아지나 고양이, 다른 가축들이 등장해서 인간이 먹어야 할 음식들을 먹고 있는 모습 역시, 위계질서 분명한 기독교 가치관에서 무질서를 상징하며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을 나타낸다. 이러한 장르화에서 원숭이는 허세나 어리석음 자체를 상징하거나, 잘난척하거나 허세부리는 어리석은 인간의 우화이기도 한데, 오늘 살펴보는 그림에서도 그 원숭이가 등장하여 건방지게 담배까지 피우고 있다.     

오늘 살펴본 작자미상의 17세기 장르화는 미술사적으로 깊게 연구해보기에는 자료가 풍부하지 않을지 모르나 여러가지 주제가 곁들여져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라는 면에서 '내 맘대로 작품보기'에는 아주 적합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This shall too pass~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5. 9. 00:10 미술 이야기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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