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물병과 사자
2018. 11. 23. 00:14 일상 이야기

말을 배우기 시작한 조카가 하루는 '엄마, 무서우면 얘기해. 내가 지켜줄께.' 했다는 말을 올케가 했다.  그게 너무 귀엽고도 기특해서, 조카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나는?' 그랬더니, 제법 의연한 표정을 한 네 살짜리 조카가 망설임 없이 '고모도 지켜줄께.' 그랬다. 올케와 나는 도대체 저 말을 어디서 배웠나 신기해 했다.  누굴 지켜줄 입장은 아닌 조그마한 아이가 어떤 맥락에서 저런 단어를 익혔지? 

그 의문은 얼마 있다가 풀렸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 중에, '지구야, 지켜줄께.'가 있었다. 신기한 건 자세히는 몰라도 이 아이가 '지켜준다'라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또래의 아이들이 자신이 배운 단어는 어디서든 꼭 써본다는 것이다.  여섯 살 먹은 꼬마가 '내 평생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야.'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경우다.  그래서 예부터 아이들 앞에서는 냉수도 함부로 마시지 말라하지 않았는가.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의 행동과 언어는 그 부모의 언행이 반영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부모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막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아이가 부모의 언행을 보고 배운 것이 거의 확실하다. 아직 인격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니까 교정의 여지가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교육하는 부모의 언행과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과연 그 교정의 기회가 주어질 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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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22. 15:10 일상 이야기

미국에 있을 때 추석이 되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잘지내냐는 안부와 함께 타향에서 송편이나 챙겨먹냐며 외롭더라도 잘지내라며.  덕분에 간만에 정다운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난 솔직히 그다지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들이 다 명절이라고 고향 가고 송편 빚고 차례지내고 했다면 나도 쓸쓸한 느낌에 가족들 생각이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추석은 미국에서는 평일. 누군가 일러주지 않으면 모르고 지냈을지도 모른다. 

반면, Thanksgiving 이라 불리는 추수감사절 때에는 한국에서는 아무런 상관없는 날이지만, 미국에서는 꽤 큰 명절이다.  11월 4째주 목요일이라 정해져 있기에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금요일도 그냥 쉬다보니, 나흘의 연휴가 주어진다.  집집마다 차이는 있지만, 칠면조 구이를 하고, 고구마와 머시멜로우를 섞어 만든 다소 정체불명의 음식도 하고, 크렌베리 소스를 만든다. 그리고 보통 후식으로는 펌프킨 파이를 준비하는데, 이는 나중에 식탁에 낼 때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씩 얻어서 낸다.  경우에 따라 추수감사절 전날부터 가족들이 모이는 경우도 있지만, 당일 가족들이 하는 약간 늦은 점심 식사가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날은 다들 모여 준비한 음식들을 나누어 먹으며 느긋한 시간을 함께 보낸다.  저녁 식사 때에도 비슷한 메뉴.  그리고 남은 터키는 다음날 샌드위치 속에 넣어서 먹곤 한다 칠면조를 요리하는 방법은 집집마다 달라서 마당에 커다란 찜통같은 솥을 걸고 그 속에 기름을 채워 통째로 튀겨내는 집도 있고, 요리용 종이 봉투 속에 칠면조를 넣어 '촉촉하게' 요리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추수감사절은 시기 상으로는 대학원에서는 기말을 향해 나가는 시기. 유학 초반에는 준비해야할 발표와 기말 페이퍼로 늘 맘은 무거운 상태인 경우가 많긴 했지만, 나중에 학기 수업과정이 끝나고 나서는 아닌게 아니라 쓸쓸한 느낌도 들고 고향 생각도 나고 그랬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전화 한통 메일 하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이 언제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추수감사절 때마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벽을 긁거나 베겟잇을 눈물로 흠뻑 적시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유학을 간 이후에 매년 추수감사절 식사에 누군가에게 초대받고는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연휴라고 편히 쉴 수 없는 학생의 처지였기에 그 때에는 초대 받으면 받는대로 응하면서도 맘이 바빴다. 한두번은 예의가 아닌듯 해서 거절하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상대방의 초대가 빈말이 아니라 몇 번이고 간곡한 초대이다 보니, 나중에는 그런게 그렇게 낯설지는 않게 느껴졌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날 추수감사절 식사에 초대를 해 준 사람들은 다양했다.  학과 친구도 있었고, 과 친구는 아니라도 거기서 사귄 친구들도 있었다. 학과 교수님도, 타과 교수님도 있었고, 직장 동료도, 직장 상사도 있었다.  심지어 타주에 있는 친구의 고향의 집까지 가서 그 집에서 머문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명절 날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함께 불러 쇠는 일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미국에 있는 동안, 거의 매년 난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서 명절을 함께 보내곤 했다.  그때마다 난 노먼 락웰의 그림을 떠올리기도 했다. 물론 집집마다 풍경은 다 다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커다란 파티가 이뤄지기도 했다.  

날짜를 보니 오늘이 추수감사절이다.  혹시 미국에 거주하는 친척을 둔 분들은 거기서 쇠지 않는 추석이 아니라 오늘 안부 전화를 한번 해주시라.  원래 주변의 사람들이 즐거울 때 사람은 외로워지는 법이니까.   

그리고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에서도 명절, 가족이 아닌 친구들을 한번씩 초대하는 건 어떨까?  실제 초대 받아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덕분에 난 자칫 벽을 긁거나 베겟잇을 적시는 일 없이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고, 그들의 말을 내가 곧이 곧대로 믿자면, 가족끼리의 모임도 좋지만, 내가 참석을 해서 색다르고 즐거웠다는 말을 했다.  명절의 모습도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어 가고 있으니 이런저런 다양한 명절의 풍경도 즐거울 것 같다.   

아래는 Doris Lee의 Thanksgiving (1930-40). 좀 더 현실적인 추수감사절 풍경에 가까울지도.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20. 21:33 옛날 이야기

어릴 때 안데르센 전집이 집에 있어서 그 속의 이야기들은 빠짐없이 읽었었다.  그 시절 읽었던 안데르센 동화 중에서는 지금 곱씹어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많다.  안데르센 동화 중 잘 알려진 인어공주 이야기만 해도 너무 비극적이라 '동화'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그나마 그건 재미라도 있지, 개중에는 정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내용이 많다.  이를 테면, "작은 클라우스와  큰 클라우스", 이 이야기는 어린이가 읽기엔 지나치게 길면서 내용은 또 정말 재미없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생각하기엔 가장 의미 불분명한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공주와 완두콩" 이야기이다.  

스토리의 전개는 이러하다. 

어느 왕국의 왕자는 '진정한' 공주와 결혼하고 싶어했는데, 항상 결정적 순간에 진정한 공주가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식사 예절을 제대로 모른다거나, 아름답지 않다거나.... 왕자는 선을 보는 공주들에게서 결정적 순간에 티를 발견하고는 번번히 실망하고 퇴짜를 놓고는 한다.  그러던 중, 어느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날,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비에 흠뻑 젖은 젊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남루한 행색임에도 거만하다고 할 정도로 당당하게 자신을 '진짜 공주'라고 주장하며 그 궁전에서 하루밤 묵게 해달라고 이야기한다. 왕자는 당황했지만, 폭풍우 치는 밤, 곤궁에 처한 사람을 야박하게 쫓아낼 수 없었기에 왕자는 시종들에게 시켜 잠자리를 마련하라고 시킨다.  매트리스 12장에 오리털이불 12장을 깐 아주 푹신푹신한 이부자리를 말이다.  

그 다음날, 왕자가 그 여인에게 잠자리는 어떠했냐고 물으니 그녀로부터 등에 뭔가 배겨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자, 왕자는 높이 쌓인 매트리스를 다 들어내고 그 맨 아래에 깔린 완두콩을 집어 올린다. 그러면서 '음하하하', 그 까칠한 여인에게 '당신처럼 예민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라며 '인정!'하며 둘이 결혼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사실 어릴때 그 이야기를 읽었을 때, ??????!!!!!!! 이런 느낌이었고, 지금 다시 그 스토리를 떠올려도 느낌이 별반 다르지 않다.  정말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지 않은가?  까칠하고 예민함이 공주의 척도라니!  




대학 때였다. 친구랑 대화에 몰두하고 있는 내 어깨를 누군가가 뒤에서 톡톡 쳤는데, 나는 그 이야기 도중이라 미처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뒷쪽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은 둔해서 못알아차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약간 발끈해가지고는, 그쪽으로 고개를 홱 돌려 방금 '둔하다'는 발언을 한 친구를 쏘아보면서 내가 말했다. "아냐~ 난 완두콩 공주야~"  

그 순간 나는 내가 그 오랜 세월 그 얘기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랐고, 그 얘기를 들은 애들 중에 그 얘기를 알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그리고 다들 안데르센의 그 동화의 특이함과 허망함에 대해서 말하면서 한참 깔깔대고 즐거워했다. 그리고 한동안 내 별명은 '완두콩 공주'가 되었다. 

재작년 9월 12일 저녁 8시 반 정도, 경주에 지진이 크게 났을 때, 난 내 방 책상 앞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 방바닥이 꿀렁거리고 책상이 흔들거리는 느낌을 느꼈다. 잠시 놀라서 정지 장면처럼 앉아 있다가, 잠시 후 방 밖으로 뛰어나가 '지금 흔들렸지?"라고 가족들의 동의를 구했으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후 인터넷에 지진 소식이 올라와서 경주에 지진이 크게 있었고, 서울에도 약간의 여파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어제 새벽에는 흔들림에 잠이 깼다. 그 흔들림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오늘 잠시 잊고 있다가 찾아보니까, 어제 대전에 새벽 3시반쯤 지진이 있었다.  폭풍우나 지진이 오기 전에는 야생동물들이 부산하게 피난을 간다고 하는데, 내가 동물적 본능이 뛰어난 건가?  어찌 되었건 어제는 유난히 진동과 흔들거림의 시간이 길었고, 그 탓에 잠을 설쳤다.  그 덕분에 요새 가뜩이나 체력 저조한데, 오늘은 컨디션이 더 안좋았다.  

친구들은 '공주' 그 대목이 심히 걸린다 하겠지만, 난 '완두콩 공주'인가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18. 00:30 미술 이야기

어제는 에드워드 호퍼의 "찹 수이"라는 작품의 경매소식. 내가 좋아라 하는 작가의 소식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 글은 요기!

그리고 오늘은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의 경매 소식!  데이비드 호크니 역시 나의 짧은 블로그 역사 내에 등장한 바 있는 분!  '개인적으로 흥미있어 하는 작가인데,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의 왕성한 탐구열과 실험 정신에 있어서 경의를 표하는 바'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바 있다. 

호크니에 대한 글은 요기!

물론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 1937-)는 지난 수십년 그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도 있고 유명하기도 작가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온 작가이다.  그리고 며칠전 11월 15일 뉴욕 크리스티 전후 현대미술 작품 경매에서 $90.3-millions [약 1,022억 상당]에 판매되었다.  

흔히 경매에서 천문학적 금액으로 거래가 있었다는 것을 뉴스로 접할 때마다 '과연 작품의 가치는 무엇으로 정해지는가?' 그리고 '과연 그 작품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떠오르고, 종종 토론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정확한 해답은 여기서 내릴 수 없고 의문만 가중할 뿐인지도 모르지만, 거기에 관련해서 생각할만한 정보가 있다. 

이 작품은 1972년 처음 판매될 때에는 불과 $18,000 [약2,037만원 상당]에 판매되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6개월 이내에 2배 이상의 금액인 $50,000 [약5,660만원 상당]에 판매되었다. 그러던 것이, 반세기만에 가격이 무려 1800여배가 뛴 것이다.   과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새삼 궁금해진다. 


David Hockney (b. 1937),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1972). Acrylic on canvas ; 213.5 x 305 cm 

작품의 제목은 "화가의 초상 (두 인물이 있는 풀장)"(1972년 작)은 당시 미국 화가 피터 슐레진저 (Peter Schlesinger)와 수영을 하고 있는 인물 2명이 그려져 있다.  호크니는 그와 연인관계로 있던 5년간 그를 모델로 한 작품도 많이 남겼지만, 그가 회화적으로 특히 관심이 있었던 것은 물에 대한 관심, 혹은 물의 움직임과 그에 따른 빛의 굴절과 이미지의 반영에 관한 것이었던 것이었다.  

Preparatory photograph for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Le Nid-du-Duc, 1972 © David Hockney


런던의 켄싱턴 가든에서 그의 당시 연인이었던 피터 슐레진저의 사진을 찍고 있다. 이 사진의 모습을 바탕으로 "화가의 초상 (두 인물이 있는 풀장)"(1972년 작)의 오른쪽 인물을 그렸다. Film still from A Bigger Splash, 1974. Photo: Jack Hazan / Buzzy Enterprises Ltd


호크니는 1963년 LA를 여행한 이래, 그곳의 태양과 풀장에 매료되어 이후 1976년 LA로 거주지를 마련하였다. 현재에는 런던과 LA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비슷한 주제의 작품으로는 "A Bigger Splash" (1967년 작)라는 작품이 있다. ('splash'는 동사로는 '(액체 따위가) 튀기다'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명사로 사용되었고,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풍덩' 혹은 '첨벙' 정도에 해당하는 의성어이다.)   


A Bigger Splash, 1967


호크니는 다작의 화가일 뿐 아니라, 글을 통해 자신의 예술관과 예술에 대한 관심사에 대해서 밝히는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해오고 있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기록해오고 있다.  덕분에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해서는 많은 것들이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오늘의 주인공인 "화가의 초상화 (두 인물이 있는 풀장)" 만큼 자세히 기록되어 잘 알려진 작품은 드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에 대해서는 1988년 출판한 데이비드 호크니에 의한 <<데이비드 호크니: 나의 초창기 시절 David Hockney by David Hockney: My Early Years >>이라는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1971년부터 73년에 걸쳐 영국 감독인 잭 하잔 (Jack Hazan)의 A Bigger Splash 라는 호크니의 1967년 작품과 동명인 영화에서도 작품의 제작 과정이 잘 담겨져 있다.  (이 영화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픽션 영화로 당시 호크니의 거처이자 작업실이 있던 영국의 노팅힐을 배경으로 그의 연인이자 동료 화가였던 피터 슐레진저와의 1970년부터 1973년사이의 순탄치 못했던 연애사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호크니는 1974년 Gregory Evans를 만나 1976년 LA로 이주할 때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이후 계속 함께하고 있으며 그의 동업자이기도 하다.)   


영화의 스틸 중 하나로 호크니가 작업 중인 장면을 담고 있다.  Still from the film ‘A Bigger Splash’. Photo: Jack Hazan/Buzzy Enterprises Ltd via David Hockney and Christie’s


뉴욕 크리스티 경매 프리뷰 장면, Sept. 13, 2018.


나로서는 경매에서 그토록 고가로 거래되는 작품들의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은 설명할 길 없고, 엊그제의 경매의 결과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일부 비평가들이 논하듯, 위의 작품이 동성애자로서의 심리적 갈등을 잘 나타내고 있는지, 혹은 이 시대 최고의 걸작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하지만 산뜻한 초록 계열로 산뜻하게 그려진 LA의 풍경과 햇살 받아 일렁이는 풀장에서 느껴지는 쾌적함.  그리고 그러한 풍경과 풀장과 조화를 이루며 절묘하게 배치된 두 인물은 시각적 균형을 제공한다. 그와 동시에 정지 화면에 있는 듯한 수영하는 인물, 그리고 경직되어 서있는 듯한 뻣뻣한 인물들의 모습으로 인해 긴장감이 만들어 지고 있음은 알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 절묘한 긴장감은 두 인물 사이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있을 수도 있으나,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왠지 모르게 경쾌한 풍경과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영리하게 계산된 즐겁고 아름다운 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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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17. 00:30 미술 이야기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1882-1967)에 대해서는 나의 길지 않은 블로그 역사 중에서도 몇번이나 다루었다.  개인적으로도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대중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나 평판도 인기도 좋은 작가이기 때문에 할 말이 원체 많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그의 매니저이자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그의 부인 조세핀 (별칭 Jo)이 그의 사후 대부분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하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그의 주요 작품들은 휘트니 미술관에서 많이 소장하고 있고, 유명한 "나이트 호크스(Nighthawks)"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워낙 인기 있는 화가인데다가 그의 주요 작품들은 이미 유명 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라 그의 작품이 경매에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2018년 11월 13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찹 수이 (Chop Suey)"(1929년 작)이 $91,875,000 (약 1,040억 상당)에 판매되었다.  이로서 이 작품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중 가장 비싼 작품이 되었다. 역대 경매가로 비교해보자면,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가격 47위에 해당하는 마크 로스코의 "주황, 빨강, 노랑 (Orange, Red, Yellow)" (1961년작)의 바로 뒤를 잇는 48위에 해당하게 된다. [마크 로스코의 "주황, 빨강, 노랑"은 2012년 같은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86.9-millions [인플레 고려가격 $92.6-millions]에 판매된 바 있다] 

호퍼의 "찹 수이"는 식당 안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테이블에서 마주한 두 여인이 화면의 주를 이룬다. 두 여인 모두 화가의 아내인 조세핀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밝혀진 바에 따르면 호퍼가 생전에 자주 가던 뉴욕시의 콜럼버스 서클에 위치한 저가의 중국 음식점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dward Hopper, Chop Suey (1929)  oil on canvas ; 81.3 × 96.5 cm

 

작품의 제목이 된 찹 수이 (Chop Suey)는 미국화된 중국 음식의 이름 중 하나이자, 그림 속의 간판으로 미루어 식당의 이름이기도 하다.  중국 음식이 현지화 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찹수이는 그런 관점에서는 미국식 자장면. 조리법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의 잡채와 비슷한 음식이다.  찹 수이란 원래 雜碎에서 나온 단어로 미국인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대중적인 음식에 속한다.  조리법도 비교적 간단해서 고기나 해산물, 그리고 잘게 썬 야채를 볶다가 간장, 참기름, 피쉬 소스, 칠리 페이스트 등 여러가지 소스를 넣어 후루룩 볶은 stir fry라는 총칭으로 불리는 조리법을 사용한 요리다.  

 

이러한 대중적 음식, 그리고 그 요리 이름을 딴 음식점, 그리고 그 속의 마주한 두 인물.  미국의 일상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그의 기존 작품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호퍼의 작품은 당시 미국의 일상과 풍경이긴 하나,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도심의 일요일 오전 풍경이나 깊은 밤의 간이 식당, 그리고 변두리의 한적한 주유소 등, 현대인의 고독을 도드라지게 표현되게 그려왔다. 따라서, 이 "찹 수이"라는 작품은 호퍼로서는 예외적으로 작품 속에 그려진 인물들이 모두 일행이 있다는 점이 차이가 있는데, 따라서 이 작품은 호퍼의 작품 중에는 가장 따뜻한 작품이라고도 평가되기도 한다. 

Edward Hopper, Chop Suey (1929) oil on canvas ; 81.3 × 96.5 cm  세부 화면 왼쪽 가장자리 중간의 여인의 측면이 절묘하게 잘려나간 것도 재미있는 한 측면. 

 

오랜 시간 생계를 위해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다가 매니저의 역량이 탁월한 아내 조를 만나면서 작품 판매가 순조로워지면서 호퍼는 후반의 작가 생활 동안 경제적으로는 성공한 화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과묵하고 내성적인 호퍼는 연극과 영화를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던 그가 극장에 자주 가는 것이 가장 큰 사치라고 밝힐 정도로 경제적인 성공 후에도 검소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작품에서도 드러나는 그의 세계관은 부귀영화나 세속적 가치에 대한 추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러한 호퍼가 지금 살아서 자신의 자그마한 작품이 1천억도 훌쩍 넘는 가격에 거래된 것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이하는 보너스 이미지들

Hopper,  Early Sunday Morning (1930), oil paint, canvas ; 89.4 × 153 cm 

  

Hopper, Lighthouse  Hill (1927) , oil on canvas ; 71.76 x 100.33 cm, Dallas Museum of Art, Dallas, TX

 

Hopper, Gas (1940), oil on canvas ;  66.7 x 102.2 cm, MoMA

 

 

Hopper, Automat (1927), oil on canvas ; 71.4 × 91.4 cm,  Des Moines Art Center, Des Moines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15. 00:30 일상 이야기

건강이 최고라는 말은 누구나 다 한번씩 하고 들어본 상투적인 말이지만, 뼈저리게 절감하는 순간은 내 몸이 정말 아플 때이다. 

감기라는 감기는 종류별로 돌아가면서 하다보니 앓기 시작한지 한달이 넘어간다. 이미 잡혀 있던 일정들에도 앞으로의 계획에도 많은 차질이 생긴다.  

아프면 일단 떨어진 체력만큼 자신감이 떨어진다.  매사가 뜻대로 안 이뤄지다보니 우울해지고, 비관적이 되기 쉬운 것같다. 그리고, 생활이나 삶의 질도 떨어진다. 

긍정적인 측면은 내가 언젠가 끄적였듯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던 일상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짧게 약간 아플 때엔 그런 기특한 생각도 들더니만, 장기전으로 가다보니 좀 힘이 빠진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매일 하나씩은 올리자 했는데, 그렇게 해온지 돌아보니 두달이 조금 넘었다. 그닥 뚜렷한 명분 없이 그냥 일단 시작했으니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먼저 건강을 좀 회복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횟수를 조금 줄이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인듯하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14. 00:30 일상 이야기

노희영 이라는 사람이 며칠전 내가 인터넷 뉴스 보는 시간대에는 실검 1위에 올랐다. 이분은 누규?~ 하는 심정으로 찾아보니, 엊그제 이승기가 메인 MC를 보는 프로그램에 '사부'라는 형식으로 나온 모양인데, 댓글에 '꼰대'라느니 '갑질 조언'이라느니 비판이 뜨거워서 그 방영되었다던 프로그램을 한번 찾아서 봤다.

나는 그 분을 전~혀 모르고,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반감이나 동경의 감정 또한 전혀 없었는데, 그냥 방송을 보자하니, 사업에 대한 지식이나,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용어도 잘 모르니 그냥 그 사람, 참 자기 철학 뚜렷하구나 싶던데.

그 사람이 오락프로그램에 나와서 웃음기 쫙 빼고 진행한게 잘못이라면 '아주 큰' 잘못이긴 하지만, 각 출연자들에게 주는 조언도 '팩폭'이라는 생각이 들던데. 그리고 무엇보다 나부터도 나만이 가지고 있는게 무엇인가? 나다운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나름 교육적이다라는 생각까지 했는데....

그러나~~  가열찬 비판이 하도 뜨거워 실검 1위에 오르는 작금의 현실을 보니, 내가 뭘 잘못봤던 것일까? 아님 내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감상은 나이브하기 이를데 없어서 창업의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는 다 상식적인건데, TV 나와서 얄팍한 지식을 침소봉대한건지 새삼 궁금해졌다. 누가 이 분야를 아시는 분이시라면 좀 알려주시면 좋겠다. 나라도 미술사에 대해서 언론에 친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와서 막 아는 척하면 같은 분야를 공부했고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쫌 빈정 상할것 같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의 댓글에서 아이돌 가수나 MC 이승기의 감정을 다치게 했다는 이유에서의 비난이 많은 것을 보면, 짐작컨대 어린 학생들이 많지 않을까 싶은데, (팬심이라는 것에 대해 피상적으로 내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혹 그 이면에 다른 문제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어릴 때 기억이 안나서 뭐라 단정은 할 수 없지만 (솔직히 나도 그다지 어른스럽거나 지혜롭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은 단정할 수 있다), 그 때 기억은 다 사라져 버리고 개구리 올챙이 기억 못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꾸짖음을 받아 본 경험보다는, 행여 감정이 다칠까 걸맞지 않게 들려준 칭찬에만 어린 학생들이 길들여져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TV 오락프로그램이라는 것도 한몫을 하겠지. 스타들의 비굴할 정도의 친절이나 과장된 겸손이 익숙한 프로그램들이니까.)

하지만, 만약 비판의 융단 폭격을 날린 것이 어린 학생들이라면, 때론 냉정하게 들리더라도 적확한 비판을 받는 경우가 미성숙한 자신의 응석을 받아주기만 하며 책임없이 내뱉는 칭찬의 세례를 받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꼭 알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인격이 완성된 사람의 충고나 비판만 받아들이려고 들자면 평생 한번도 그럴 일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없을테니까.  상대의 인격의 완성도나 전달력의 우아함과는 무관하게 내게 도움이 되는 충고나 비판은 제대로 받아들여야만 내가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너무 진지하게 (진지충?) 오락프로그램에 대한 댓글들에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르나, 지난 수 년 간 가끔 20대 초반의 학생들과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느껴지곤 하는 면면도 있는 것 같아 잠시 시간을 내서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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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13. 00:30 영화 이야기

 

보통 리메이크 영화는 믿고 거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의 경우, 소설이 원작인 영화인 경우에도 좀 신중해지는 편이다. 특히, 내가 영화화가 되는 소설을 이미 읽었던 경우에는.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속에서 상상력을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펼쳐 두었는데, 현실 속의 배우들이 제한된 예산안에서 찍은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무대의 스케일이나 주인공의 모습들에 실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을 영화화한 경우에는 내가 자체적으로 그 영화를 거르거나, 아니면 보고는 '역시~'하고 실망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경우,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만들 수 있었던 탓일까 잘 모르겠지만, 멋진 영화들이 많다는 것도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리고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Untold Scandal, 2003)>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한국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Untold Scandal, 2003)>은 피에르 앙브로아즈 프랑소아 쇼데를로 드 라클로 (Pierre Ambroise François Choderlos de Laclos: 1741-1803)라는 기다란 이름을 가진 프랑스 혁명기의 군인 출신 소설가의 1782년 소설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에 바탕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영화가 이 서간체 소설을 직접적으로 참조했다고 보기 보다는 이 작품에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작품을 참고로 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 짐작한다.)  

혹자는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이 미술사에서는 로코코로 표현되는 귀족들의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행태'를 고발하기 위했다는 해석도 있으나, (서간체 소설답게) 소설의 끄트머리에 마담 볼랑지가 쓴 편지에서 '원래 인생이란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라고 밝히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교훈을 주려는 목적으로 집필 한 것 같지는 않다.  

오늘날은 워낙 충격적인 작품들이 많아서 그다지 놀랍지도 않을 이 작품은 당시 그 외설성으로 인해 큰 비판을 야기하기도 했다는데, 따라서 작가는 한동안 '외설 작가'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고.  정작 작가는 자신이 죽고 나서도 오랫동안 회자되는 작품을 쓰고 싶어했다고 하는데,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의 명성이 자신의 조국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 전역은 물론, 이백여년이 지난 한국에서도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Jean-Honoré Fragonard, The Swing (ca. 1767), oil on canvas ; 81 × 64.2 cm, Wallace Collection, London  

위의 그림은 당대의 퇴폐적이고 향락적이던 귀족 문화를 잘 반영해주는 작품으로, 로코코 미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이다. 이 작품에서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열심히 부인이 탄 그네의 줄을 당겨주고 있는데, 정작 아내는 젊은 애인과 눈을 맞추며 슬리퍼를 던져 밤의 밀회를 약속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당대 귀족들은 정략결혼을 하는 게 워낙 관례처럼 되어 있어 결혼 후 애인들을 만드는 것은 흉도 아닐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들키지만 말아줘.' '내 눈에만 띄지 말아줘~' 그런 분위기였다고.  프라고나르는 그런 로코코적 풍조를 유머를 담아 잘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다 암묵적으로 행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리 널리 알릴 일은 아니었음은 위 작품 왼쪽의 큐피드 상이 손가락을 입 위에 대고 '쉿~'하는 포즈를 취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로 돌아가서 얘기를 이어가자면, 앞서 밝힌대로 한국의 영화는 프랑스 소설을 직접적으로 참조했다기 보다는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던 서구의 영화를 참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대표적으로는 1959년 로제르 바딤의 프랑스 동명 영화와 1988년 영국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의 영화 <Dangerous Liasons>(불어 원제의 영어 번역)가 있다.  ('리에종'이라는 이 단어는 불어의 쓰임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영어에서는 '연락, 연결'이라는 의미 이외에 '불륜' '간통'이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점은 기억해 둘만하다.) 

1988년 작품 Stephen Frears 의 영화 <Dangerous Liasons프랑스 원제의 영어 번역이 작품인 이 작품은 고증과 시각적 효과의 조화라는 면에서 우리나라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모델 및 창작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초기 프랑스 영화는 내가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영국 감독과 미국 배우들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1988년 영화 <위험한 관계>는 고증과 시각적 효과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2003년 이재용 감독의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모델, 아니 창작의 원천은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작품이다.  

1988년 미국 영화에는 글렌 클로스, 존 말코비치, 미셸 파이퍼 등 개성파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할 뿐 아니라, 당시 화려한 프랑스 귀족들의 풍모와 생활을 보여주는 화려한 의상과 배경으로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이다.  

이에 2003년 한국의 영화는 프랑스의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조선시대로 옮겨 와서 각색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원작을 모르고서도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긴 하지만, 비교해서 보면 그 재미가 배가 되는 영화이다. 그 힌트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면서도 배경음악에는 바로크 음악이 사용되고 있다. (바로크 로코코 비슷한 시기이다.)  그리고, 미국 영화가 고증에 신경을 썼다면, 한국의 영화는 고증에서 자유롭게 상상력을 더해서 시각적으로 더 풍부한 아름다움을 가진 영화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이라고는 하지만, 영화내에서 사용되는 소품들이나 한복의 색상과 디테일들은 고증이라는 틀에서 자유롭게 현대적이면서도 상징적이고, 따라서 시각적 볼거리가 풍부해졌다. 

나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영화의 리메이크가 성공적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준 훌륭한 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술이나 시각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미국의 1988년작 영화 <위험한 관계>와 비교해 보면서 말이다. 

여담이지만,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준 예로는 최근 상영된 <라이프 오브 마스>를 들고 싶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한국 드라마 쪽이 BBC의 원작보다 훨씬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