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2018/10 글 목록 (3 Page)
2018. 10. 15. 01:30 미술 이야기

일전에 올렸던 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2018'을 밝힌 후에 한 작품씩 살펴보기로 했다. 

그리고 어제 그 첫번째 글을 올렸다. 제목하야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2018-무려17위와 20위

오늘은 그 두번째 시간.  오늘은 인플레를 적용했을 때, 2018년 현재 가장 비싸게 경매에서 거래되었던 작품으로는 19위에 해당하는 작품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시앙 프로이트의 세 습작" (1969)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  $142.4-millions (2013 Christie's auction)  현재 추정 가격 약 $149.6-millions 

이 201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142.4-millions (약1천613억원)이었고, 인플레를 감안해서 계산하면 약 $149.6-millions (약1천695억) 상당하는 금액이다. 이 작품은 라스베가스의 호텔 체인을 소유한 스티브 윈 (Steve Wynn)의 전부인 (Elaine Wynn)이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909-1992)가 그의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루시앙 프로이트 (Lucian Freud: 1922-2011)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1974년 프로이트와 베이컨, Harry Diamond 사진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화가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심의 바닥에 있는 인물들을 위한 세 습작> (1944)이 발표된 이후로 전후의 가장 인기있는 작가이자, 그가 세상을 뜨는 1992년까지 생존 화가 중 가장 작품 가격이 비싼 작가로 군림하였던 작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영국 수상이었던 마가렛 테처 여사가 한 모임에서 멀리 보이는 그가 프랜시스 베이컨이라고 귀띔해주자, “아, 그 흉칙한 그림 그리는 사람~ (That man who paints those dreadful pictures).” 이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1944), Oil and pastel on Sundeala board ; 94 × 74 cm (ea), Tate Britain, London 

위의 작품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심을 슬퍼하는 인물들을 묘사한 것이다. 괴물과도 같은 인물들의 침통해하는 모습은 전후의 참상과 맞물려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프랜시스 베이컨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서 불우하게 자랐다는 점, 그가 동성연애자였다는 점, 그리고 도박과 술에 찌든 생활을 했다는 개인사와 함께, 강렬하고 충격적인 인상을 주는 그의 작품, 그리고 연신 갱신하는 경매에서 높은 가격으로 팔린 작품들로 늘 화제의 중심에 있어 왔다. 

대중적으로 아주 사랑받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작가들이 그의 작품에 받은 감명에 대해서 언급하였고, 특히 그의 작품에서 자신의 철학과의 교집합을 발견한 20세기의 저명한 철학자 질 들뢰즈 (Gilles Deleuze)는 <<Francis Bacon: The Logic of Sensation (프랜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 (1981; 영어번역 2002)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프랜시스의 작품에는 삼면화 형식을 취하는 작품이 다수 있는데, 원래 '삼면화'란 중세 이래, 종교화에서 많이 채택해 온 형식이다. 이를 노골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표명해 왔던 베이컨이 자주 채택했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이에 대해서는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안에서 수 차례 언급했고, 베이컨 자신도 여러 차례의 인터뷰에서 인정했듯이, 삼면화라는 양식은 서사적 narrative 이거나 삽화적 illustrative인 성격을 배제하면서도 '감각'을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베이컨이 즐겨 이용한 양식이다.  좀 쉽게 풀어서 얘기하자면, 삼면화는 만화의 컷에서처럼 연속적인 행위를 단계별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델이 지니고 있는 일종의 '기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들뢰즈의 책에는 그가 생각한 베이컨의 작품 세계가 자세히 서술되고 해석되어 있고, 상당 부분 수권에 걸쳐 출판된 베이컨의 인터뷰 내용과 중첩되는 바이다.  그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면, 들뢰즈의 책과 데이비드 실베스터와 베이컨과의 인터뷰 집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화가로서는 드물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굉장히 말을 많이 한 화가이다. 그의 전문 인터뷰어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실베스터와의 인터뷰가 책으로 1960년대부터 2002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출판되었다. David Sylvester, Interviews with Francis Bacon, 1963, 1966, 1971, 1973, 1979...1987, 1998, 2000, 2002]

그러면, 오늘의 주제가 되는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모델이 된 루시앙 프로이트는 건축가 에른스트 프로이트의 아들이자, 유명한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이며 20세기의 대표적 초상화가이다.  비록 베이컨과 프로이트는 띠동갑의 나이차이가 있었지만, 1940년대 중반 만난 이후 1960년대 말 무슨일에서인지 절연하기까지 둘은 절친으로 지냈는데, 이들의 우정은 예술계에서는 유명했다.  

추구하는 예술 세계는 달랐지만, 둘은 서로의 작품에 대한 존경을 종종 표현하였고, 그 밖에도 도박과 술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공통점도 있어, 스튜디오에서 뿐 아니라 술집과 도판판에도 항상 붙어 다녔다고 전해진다.  둘다 논쟁을 좋아했기에 종종 뜨거운 논쟁을 벌이기도 하곤 했다고 전해지는데, 따라서 그들이 사이가 멀어진 1969년경 사람들은 그들이 사이가 멀어져서 놀랐다기 보다는 불같은 성격의 둘의 우정이 그때까지 지속되었다는 것에 더 놀랄 정도라고.  

1952년경의 베이컨과 프로이트 

프란시스 베이컨은 루시앙 프로이트의 초상화를 자주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표적 작품이 아래의 작품이다.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Portraits of Lucian Freud, 1964

베이컨의 경우 주로 사진을 통해 작업을 하였는데, "루시앙 프로이트의 세 습작"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사후, 청소 한번 하지 않았다고 알려진 그의 스튜디오에서는 그가 작업 중이던 사진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아래에는 그 예로 볼 수 있는 사진들과 작품화된 것들.

좌: 베이컨의 스튜디오에서 발견된 그가 작업중이던 사진들 중 루시앙 프로이트의 사진 (Daniel Earson 촬영), 1963; 우: 오늘의 작품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세부) (1969). Christie’s e-Catalogue에서 발췌, pp. 158-159

좌: 루시앙 프로이트를 찍은 사진 (세부) John Deakin 촬영, (c. 1964) © The Estate of Francis Bacon; 우: 오늘의 작품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세부) (1969). Christie’s e-Catalogue에서 발췌, pp. 150-151

프랜시스 베이컨의 초상화의 특징은 일견 왜곡되고 뒤틀리게 그렸다고 여겨지나, 묘하게 모델과의 유사점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주로 사진을 가지고 작업을 했는데, 베이컨 자신이 이에 대해서 자신은 사진을 가지고 주로 작업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의 얼굴의 사진으로는 작업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즉, 사진을 보면서 그리지만, 그 사진을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그와의 관계속에서 축적된 인물의 에너지를 화폭에 옮기는 방법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루시앙 프로이트가 그린 베이컨의 초상화는 단 두작품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그가 작업하는 데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걸리는 화가이기 때문이었다.  일례로 그가 베이컨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꼬박 삼 개월 동안이나 포즈를 취했고, 그럼에도 그 작품이 완성되는 데에는 일년 반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이는 구상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나 정작 작품을 제작하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 베이컨의 제작 방식과는 차이가 난다. 1952년 완성된 프로이트가 그린 베이컨의 초상화 (아래)는 불행히도 베를린 전시회 이후 분실되어,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프로이트, 프랜시스 베이컨 (1952) - 현재 분실

또 다른 작품은 미완성 작인 프로이트의 베이컨 초상화 (아래)인데, 2008년 크리스티의 전후 현대미술 부문에서 고가로 판매되었던 작품이다. (Christie’s auction of Post-War and Contemporary Art for £5,417,250 / $9,404,346 / €6,972,001)[80억 9,201만 7,187.50 원 ; 106억 5,512만 4,018 원 ; 91억3,047만6244원으로 환산되므로, 대략 81억과 106억원 사이에 판매]

Lucian Freud (b. 1922), Portrait of Francis Bacon. Photo: Christie's Images Ltd. 2008

현대미술의 거장 두 사람이 절연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아이러니 하게도 오늘의 주인공인 "루시앙 프로이트의 세 습작"이 완성된 1969년 경에 둘의 사이가 틀어져 다시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베이컨은 프로이트의 부유함과 거만함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둘의 우정은 이전에 20여년간 유지되었기에 확실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두 작가 모두 서로의 후반기의 작품은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프로이트는 1980년대 제작된 베이컨의 작품을 '무시무시한' 것이라며 비판했다고.   

개인적으로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은 혹 누군가가 내게 거실에 걸 그림으로 선물한다면 받기를 망설이겠지만 (물론 받아서 재판매하는 경우라면 응당 받겠지만서도...), 그의 전시회가 있다면 반드시 보러 가고 싶은 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축적된 에너지를 한 화면에 모두 담아내는 그의 회화적 특징은 그러기에 초상화의 경우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듯 하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4. 01:13 미술 이야기

며칠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에 대한 글을 올렸다.  그리고 그 때, 개별 작품에 대해서 하나씩 설명하도록 하겠다고 '공약'을 걸었다.  그 공약에 대해서 기억하는 사람이 있던 없던 일단 약속은 약속이니....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에 대한 글은 여기를 참고)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나 보통 순위처럼 아래쪽 순위부터 하나씩 올라가는 식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매일 그 순위에 있는 작품을 다루지는 못하겠지만, 순차적으로 하나씩 올릴 것이다.  두둥~  

먼저 오늘은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의 <의사 가셰의 초상> (1890)과 피에르-오귀스트 르느와르, <물랭 드 라 걀레트의 무도회> (1876)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저번에 밝힌 대로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2018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경매에서 팔렸던 작품 17위에 오른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과 20위에 해당하는 르느와르의 <물랭 드 라 걀레트의 무도회>는 1990년 경매에서 그해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인플레 고려 17)위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Dr. Gachet (1890) $82.5-millions (1990 Christie’s auction)  (현재 154.5-millions 상당) 같은 제목의 다른 버전은 오르세이에 소장 중인 작품. 이 작품은 2006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Gustav Klimt의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이 $135-millions로 기록을 깨기 전까지 경매 판매가 1위를 고수했다. 

인플레 고려 20)위 Pierre-Auguste Renoir,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oil on canvas; 78 × 114 cm. $78.1-millions (1990 Sotheby’s auction)  $146.3-millions  - 위의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과 함께 두 작품 모두 일본의 제지회사를 소유한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가 각각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구입하여 당시에 큰 뉴스거리였다.  


먼저,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은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1990년 5월 15일 크라마스키 (Kramarsky) 가족 소장이었던 작품을 일본의 제지 회사 재벌 (大昭和製紙)의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가 US$82.5 millions (대략 한화로 950억원) 에 구입하였다. [참고로 당시의 경매가를 오늘날 인플레를 감안해서 계산을 해보면 US$154.5 millions (대략 1750억) 상당.] 이 사이토 료에이라는 분은 다시 이틀후, 소더비 경매에서는 르느와르의 물랭 드 갈라트의 무도회 (Bal du moulin de la Galette)를 $78.1 millions (대략 898억원)에 구입하므로써 미술계의 큰손으로 우뚝 섰었죠. [오늘날 인플레를 감안해서 계산하면 이 작품 또한 약 US$146.3 millions (대략 1657억) 상당.]

위의 두 작품은 1990년 5월에 각각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경매에서 모두 일본의 제지 재벌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에게 판매되었다는 공통점 이외에도 두 작품 모두 다른 버전이 파리의 오르세이 미술관에 소장 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Dr Gachet (1890) Oil on canvas, 67 cm × 56 cm, Musée d'Orsay, Paris 2nd Version.

누가봐도 우울한 성격인거 같은 인물인 의사 가셰는 인기와 유명세 때문에 유독 ‘~카더라’ 통신이 많은 반 고흐의 삶의 끝자락에 화가에게 많은 의지가 되었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가셰 씨의 초상화 두 점을 비교해보면, 두 번째 버전으로 알려져 있는 오르세이 소장 중인 작품과 비교를 해보면, 필치나 색조, 그리고 세부 구도에 있어서 쉽게 구별이 된다.  

크기는 동일하지만, 두 번째의 현재 소재 미상의 작품 쪽이 필치나 색상 면에서 훨씬 더 공을 들여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책도 이 작품에만 그려져 있다. 첫 번째 작품은 초창기에는 잠시 위작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었다. 현재는 두 작품 다 명실상부한 그의 작품이라고 인정받고 있고, 이 작품이 가셰 본인이 소장 중이었던 작품이라고 밝혀졌다. 참고로 그가 들고 있는 꽃은 흔히 팍스 글러브 foxglove 라고 불리는 식물로 정식 학명은 디지털리스 digitalis라고 한다. 꽃이 아름다운 이 식물은 소량씩 사용하면 심장 질환 치료에 도움이 되지만, 다량 사용하면 독이 되기도 하는 식물이라고 한다. [미드 Psych에서 이 식물을 사용한 독살 사건 케이스가 등장하기도 한다] 아마도 여기서는 책과 함께, 동종요법 의사였던 그의 직업을 나타내기 위한 지물 attribute로 사용된 것이리라. 인물의 섬세하고도 우울한 성향은 ‘블루’한 자켓의 색상으로 방점 찍고 있다. 그리고, 턱을 괸 도상 역시 알베르히트 뒤러의 ‘멜랑콜리아’에서 나타나듯이 예전부터 ‘우울’을 표현하는 포즈이기도 하다.

Albrecht Dürer, Melencolia I (1514) 24 × 18.8 cm, Minneapolis Institute of Art

개인적으로는 첫번째의 작품의 가셰 씨의 표정보다 두 번째 작품에서의 표정에서 그의 우울함 뿐 아니라 섬세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통찰력도 함께 표현된 듯 해서 더 맘에 드는 바이다. 실제로 그는 반 고흐와도 친했을 뿐 아니라,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하였고, 예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가셰 씨 말고도 반 고흐가 의사 선생님을 그린 작품이 또 하나 있다. 엄밀히 말해 당시 인턴이었던 펠릭스 레이의 초상. 유명한 고흐의 귀 절단 사건 당시 인턴이었던 펠릭스 레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처치를 하면서 고흐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귀를 다시 봉합하는 수술까지는 못했긴 했지만 말이다. 그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반 고흐는 그의 초상화를 선사했는데, 정작 그 인턴 선생님은 작품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그 그림을 닭장 수리할 때 사용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그냥 ‘개나 줘버렷!’ 하는 심정이었을까? 남에게 줘버렸다고…. 훗날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현재 이 작품은 러시아의 푸쉬킨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 작품의 가치는 무려 US$50millions에 상당한다고 하니…. 역시 사람은 안목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Van Gogh, Portrait of Doctor Félix Rey (1889) oil on canvas, Pushkin Museum

반면, 자신도 아마추어 화가였던 폴 가셰 박사는 예술에도 조예가 상당히 깊었던 듯 하다. 반 고흐 뿐 아니라 당대의 ‘아직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훗날 미술사에 기리 이름을 남기게 되는’ 화가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가졌다. 참고로 아래의 그림은 세잔이 아직 화풍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의 작품 중 하나. 제목하여 <오브르에 있는 의사 가셰의 집>. 이 시기 세잔은 이 지방에 몇 개월 체재하면서 동료이자 스승 격이던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 등과 함께 가셰 박사와 예술에 관한 토론을 자주 가졌다고 한다.

Cézanne, The House of Doctor Gachet at Auvers (c.1873) oil on canvas 46 x 38 cm Musée d'Orsay, Paris

한편,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팔렸던 작품 20위를 차지한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걀레트의 무도회>(1876)는 어떠한가? 이 작품 역시, 앞서 밝힌대로 다이쇼와 제지 명예회장이었던 사이토 료에이가 <닥터 가셰의 초상>과 함께 1990년에 구매한 작품이다. 이전에는 유명한 휘트니 가문의 일원으로 영국주재 미대사를 역임했던 존 헤이 휘트니의 소장이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이 밖에도 공통점을 꼽자면, 유사한 구도의 동일한 제목의 작품이 오르세이 미술관에 소장 중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제3회 인상주의에 전시되었다고 하는데, 인상주의 화가이자 후원자 역할을 했던 구스타브 카이유보트의 소장이었다가 1894년 프랑스 정부가 구입한 후, 룩셈부르, 루브르를 거쳐 오르세이 소장이 된 것이다.

Pierre-Auguste Renoir,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Oil on canvas ; 1.31 m x 1.75 m, Musée d'Orsay

위의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의 경우, 첫번째 버전과 두번째 버전이 명확히 밝혀졌으나, 피에르-오귀스트 르느와르의 <물랭 드 라 걀라트의 무도회>의 경우, 경매에서 팔린 작품과 오르세이 소장 작품 중 어떤 것이 오리지널이고 어떤 것이 나중에 다시 그려진 그림인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은 상태이다. 반 고흐의 작품이 구도나 세부 묘사에서 확실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인데 반해, 르느와르의 작품의 경우 경매 작품의 크기가 오르세이의 소장품에 비해 약간 작은 것을 제외하고 구도 상의 차이는 거의 없다. 따라서, 인상주의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이 둘 중 어느 작품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육안으로 봤을 때, 경매에서 판매된 작품 쪽의 묽은 물감을 이용해서 빠른 붓놀림으로 유연하게 그려진 작품이라는 차이를 알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의 인상주의 사랑은 유별나기로 유명하지만, 특히나 당시 75세였던 이 일본 재벌의 인상주의 작품에의 열정은 남달랐다. 이 분은 자신이 죽었을 때 이 작품과 함께 화장을 시켜달라는 유언을 남기겠다 천명하기도 했는데, 이 말의 여파로 논란이 너무 거세지자, 부랴부랴 ‘그 정도로 내가 이 작품을 사랑한다는 뜻’이라며 그 말을 철회하기도 했다. 자신의 사후에 일본 정부나 미술관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어떠한 염원도 이뤄지지 못했다. 두 작품 다 1996년 그의 사후 비공개 경매로 판매 되는 바람에, 1997년 이후의 소장처가 묘연하다. 이후 2007년 리포트에 따르면 <닥터 가셰의 초상>은 1997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은행가이자 미술계의 또 다른 큰 손 Wolfgang Flöttl에게 판매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프뢰틀 Flöttl은 경제적 사정 때문에 그 작품은 진작에 매각했다고 밝힌 관계로 현재 이 작품의 구매자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바 없다. 르느와르의 작품도 스위스 소장가가 구매했다고만 알려졌을 뿐. 이 아름다운 작품들은 어느 누가 가지고 있을까? 특히 <닥터 가셰의 초상>의 경우, 가뜩이나 전설에 가까운 일화들로 가득한 반 고흐의 삶과 예술에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3. 01:41 일상 이야기

벌써 작년의 일이다.

지인에게 방울토마토와 흙이 담긴 조그만 봉지를 선물로 받았다. 건네면서, 조금 오래된 거라 싹이 틀지 모르겠다며.... 그래서, 큰 기대 없이, 마시고 난 플라스틱 커피 음료 잔 밑에 구멍을 뽕뽕 뚫고, 봉투의 흙을 담고, 그 흙에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몇 개 홈을 파 놓고, 작은 비닐 봉투 속에 담겨있던 몇 알 되지도 않아 보이던 눈꼽만한 씨 몇 알을 조심스레 나눠서 그 구멍 속에 떨어뜨려 담고서는, 흠씬 물을 뿌려 주었다. 크게 기대는 않았지만, 그래도 며칠에 한번씩 물도 주고 했더니...
싹이 꼬물꼬물 올라오는게 아닌가?! 기대없이 놔두던 플라스틱 컵속의 초록을 보고 경탄하면서 집에 있던 화분에 옮겨 주고 좀더 정성을 들였더니.... 열렸다. 토마토가....

난생처음 내 손으로 키운 유실수라니~ 너무 신기하고 나의 무관심과 무경험 속에서 방치된 상황에서도 그토록 무럭무럭 자라준 생명들이 너무 고마워서 그 뒤로는 좀 더 신경을 쓰며 살펴보았다. 그래도 딱히 달리 해준 건 없고, 그냥 물만 일주일에 한 번 주는 것을 빠뜨리지 않고 지킨 정도. 심지어 전문적인 녹색 플라스틱 대도 처음에 존재 자체를 몰랐고, 나중에 그런게 있다는 걸 알고 나서도, 그걸 어디서 사는지도 몰라서 그냥 나무 젓가락으로 지지대를 세워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묵은 방울토마토 씨들은 몇 차례의 수확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먹기도 아까운 열매들을 몇 차례 따서는 동네방네 자랑하면서 식구들에게 하나씩 하사하곤 했다. 예수님이 성찬을 나누실 때에도 이렇게 생색을 내지는 않으셨으리라.

위의 사진은 마지막 수확을 기념하여 한 컷.

그래서 재미를 붙여서 올해도 한번 하고서 이마트 원예 코너에서 비슷해보이는 방울토마토 키트를 사서 뿌려보았는데, 실패!

역시 그건 우연이었나? 나는 스스로 난 원예에 재능이 있나보다. 나름 무척 감격했었는데...

그러던 나날을 보내던 중, 슈퍼에서 산 파프리카를 요리할 때 다듬다가 나오는 씨를 보고 문득 그 씨들을 모아 말려서 나중에 뿌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서 조심스레 씨들을 모아 말려두었다.


그러고선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그 바싹 잘 마른 씨들을 실패한 방울 토마토 씨들을 심었던 곳에 다시 뿌려두었다.

그랬더니, 싹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영양제도 사서 지시사항대로 거꾸로 세워 화분 귀퉁이에 꽂아두었다. 그리고 녹색 지지대도 미리 구입. 일부는 작년의 방울 토마토 나무(?)에 나무 젓가락을 빼고 꽂아주었다.

식물은 어떠한 의미에서 대단하다. 자리를 옮겨 다닐 수 없으니, 그야말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생명을 유지하고 열매을 맺어 후손을 잇고자 노력을 한다. 인간들이 겪는 어려움에 비해서 더욱더 극한의 어려움에 맞서서 생명을 유지해온 것이다.

나는 항상 in-put과 out-put간의 간격이 긴 일만을 해왔다. 그러다가, 이렇게 비교적 단 시간에 가시적인 성과물을 접하니 성취감이 남다르다. 힐링 타임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앞으로는 '원예'를 당당히 취미란에 써넣을테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2. 01:30 일상 이야기

2018년은 1918년으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해. 
그럼 1918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면,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지만,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공교롭게도 빈 모더니즘을 이끌었던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 4명이 세상을 뜬 해이기도 하다.  

  • 오토 바그너 Otto Wagner (1841-1918)  

  •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 

  • 에곤 쉴레 Egon Schiele (1890-1918) 

  • 콜로만 모저 Koloman Moser (1868-1918)

(이들이 한날 한시에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고 우연의 일치.  다만, 당시 스페인 독감이 워낙 유행해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알려져 있다. 일례로 에곤 쉴레는 당시에 유행했다는 그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는데, 이는 임신 중이던 아내가 이 독감으로 세상을 뜬 사흘 뒤였다고 한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클림트가 폐렴의 합병증으로 결국 사망했는데, 그 폐렴의 원인이 스페인 독감은 아니었나 의심해 볼 수는 있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미술사에 기리남을 인물들이 같은 해에 '서거'하기란 원체 드문 일이다.  이를 계기로 빈 모더니즘도 한 풀 꺾인 것도 사실이고, 이 즈음에 공교롭게도 오스트리아의 국운이 저물어간 것도 사실이다.  당시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겠지만, 빈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한 2018년의 오스트리아 빈으로서는 널리 기리고 알려야하는 기념할 만한 해인 것이다. 

이를 기념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홈페이지가 여기.

https://wienermoderne2018.info/en/


오토 바그너는 현대 건축을 창시했다고도 평가받는 건축가, 콜로만 모저는 팔방미인인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이 둘은 일반 대중들에게 덜 알려져 있지만,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화가들이다. 

정식으로 사제지간은 아니었지만, 에곤 쉴레는 클림트를 존경했고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둘의 사이가 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작품 세계는 상당히 달랐다. 에곤 쉴레의 경우, 지나친 외설적 표현으로 오늘날까지 일반 전시에는 제약을 받을 정도의 과감한 작품 세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물론 독특한 화풍과 필치로 개성넘치는 작품으로 그의 천재성과 재능은 충분히 평가 받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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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ienermoderne2018.info/en/에서 소개된 에곤 쉴레 부분의 참고 이미지들 중 하나 - '10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과감해서 미안'이라고 쓰인 종이로 '은밀한 부분'을 감춘 재치 있는 디자인이 돋보인다.

Egon Schiele (1890-1918), Self-Portrait with Chinese Lantern Plant (1912), oil on painting ; 32.2 x 39.8 cm, Leoold Museum 

이에 비해 클림트의 작품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작품들로 유명하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복제품으로 널리 유통되고 전시되어 한국에서도 카페 같은 데서 한 번쯤 봤음직한 작품들이 많다.    

Gustav Klimt, The Kiss, oil on canvas ; 180 x 180 cm,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클림트의 '황금기' (전성기라는 의미도 있지만, 정말 금색을 많이 사용해서 적절한 명칭)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원래는 가로와 세로가 모두 180cm인 정사각형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이다. 사랑하는 남녀의 열정적이면서 따뜻한 키스의 순간을 화려한 금색을 배경으로 장식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클림트의 이전 작품이 변태적이라며 비판 당했던 것과는 달리, 제작 당시부터 인기가 높았다고 알려져 있다. 금박과 평면성은 각각 비잔틴과 자포니즘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데, 이후 그의 대표 작품들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자리잡는다.  

혹자는 남성의 머리에 얹힌 것을 월계관이라고 보고, 이를 아폴로와 다프네의 신화를 묘사한 것이라 해석하기도 하는데...  여인의 몸, 특히 다리 부분이 지면의 풀과 꽃과 물아일체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신화 속의 다프네는 구애하는 아폴로를 벗어나기 위해 도망을 치다치다, 급기야 강의 신이던 아버지에게 부탁해 님프이길 포기하고 나무로까지 변신을 하는데... 이 그림 속의 여인은 남성의 품에서 너~무 행복해보인다는 결정적으로 감정표현적 모순이 있다.   

그리고, 어제 소개한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회화 작품들에 클림트의 작품이 당당하게 몇 작품이나 들어가 있는데, 둘다 성공한 사업가의 아내인 Adele Bloch-Bauer의 초상화이다.  클림트가 유일하게 같은 모델을 대상을 두번이나 초상화를 제작했다고 해서 유명하기도 하다.  나치가 몰수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후손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하는데... 이 중 1907년의 첫 초상화 작품은 현재 Neue Galerie에 전시 중이다.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현재 뉴욕의  Neue Galerie에 전시 

우연의 소산이긴 하고, 거장들이 한꺼번에 세상을 등진 일은 비극적인 일이었지만, 전시회를 기획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  빈 모더니즘을 이끌었던 4 거장들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해서 오스트리아의 빈 뿐 아니라, 예술이라면 내노라 하는 대도시에서 이들과 관련한 전시를 많이 개최하고 있고, 늦게는 내년 초까지 계속 되고 있으니,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씩 여행지 미술관의 특별전을 체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보다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오스트리아 빈 측에서 준비한 것 같은 이들의 홈페이지를 체크해 보세요.
https://wienermoderne2018.info/en/

(그리고 뉴욕에 가시는 분은 Neue Galerie에 가보시는 것도 좋을듯해요~) 

The Belvedere Museum “Egon Schiele - Pathways to a Collection” (Oct. 19, 2018 – Feb. 17, 2019)
Leopold Museum 
“Egon Schiele. The Jubilee show”  (Feb. 23 – Nov. 4, 2018) 
“Gustav Klimt”  (Jun. 22 – Nov. 4, 2018)
MAK – Austrian Museum of Applied Arts/Contemporary Art “Koloman Moser. Universal Artist between Gustav Klimt and Josef Hoffmann” (Dec. 19, 2018 – Apr. 22, 2019)
Bank Austria Kunstforum Wien - Japonismus” (Oct. 10, 2018 – Jan. 20, 2019)  - 자포니즘의 영향에 대해 알아보는 전시라고 소개 됨 
Klimt Villa - Gustav Klimt’s Studio - “Klimt lost” (May 5 – Dec. 30, 2018) – 나치에 의해 행해진 압수를 비롯하여 소실된 클림트의 작품을 새로운 관점에서 고찰해보는 전시라고 소개 됨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1. 01:30 미술 이야기

며칠 전 경매에서 소더비 경매에서의 해프닝에 대해서 짧은 글을 썼다.  

http://sleeping-gypsy.tistory.com/49

평범한 직장인의 경제 관념으로서 뱅크시의 그 조그마한 작품이 15억에 달한다는 것을 알면 깜짝 놀랄 일이겠지만, 실제로 진행되는 경매의 경우, 그 거래 금액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건전한 일상의 금전 감각은 집에다 두고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금액이 밝혀지는 것은 그나마 공개 경매의 경우이고 'private auction'이라고 칭하는 비공개 경매의 경우, 그야말로 은밀한 사적인 경매라 그 금액조차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놀랄 금액으로 판매되는 작품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고, 그 작품들의 거래 가격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경매 최고가를 정리하는 기사는 매년 나오지만, 여기에는 이미 세계 유명 미술관에 소장 중인 작품들은 제외된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될 것이다. 1962년 당시 추정가격이 1억달러였다고 하는데, 이는 2017년 인플레를 고려한 금액으로 환산하면 8억1천만 달러에 해당한다. 이는 한화로 환산하면 무려 약 9천218억원. 현재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플레가 계속되고, 미술시장에서의 가격 경쟁이 계속 된다면 언젠가는 1위 자리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을 할 수 없지만 말이다.   

2018년 현재, 경매에서 판매된 가장 비싼 작품들 15점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The Most Expensive Paintings in Auctions – 2018
1) Leonardo da Vinci, "Salvator Mundi" (ca.1500)  $450.3-million (Christie's 2017 auction)  약5천151억에 해당 
2) Willem de Kooning, "Interchange" (1955) $30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3천414억원
3) Paul Cézanne, "The Card Players" (ca. 1890) estimated $250- to $300-million (2011 private sale) 
4) Paul Gauguin, "Nafea Faa Ipoipo" (1892) $210-million (2014 private sale)  약2천389억원
5) Jackson Pollock, "Number 17A" $20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2천276억원
6) Mark Rothko, "No. 6 (Violet, Green and Red)" (1951) $186-million (2014 private sale) 약2천216억원
7)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I (Water Serpernt II)" (1904) $183.8-million (2012 private sale) 약2천91억원 
8) Rembrandt van Rijn, "Pendant portraits of Maerten Soolmans and Oopjen Coppit" (1634) $18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2천80억원
9) Pablo Picasso, "Les Femmes d' Alger" ("Version O") (1954-55) $179.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약2천41억원
10)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1917)  $170.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약1천939억원
11) Roy Lichtenstein, "Masterpiece" (1962) $165-million (2017 private sale)  약1천877억원
12)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sur le côté gauche)" (1917) $157.2-million (2018 Sotheby's auction)  약1천789억원
13) Pablo Picasso, "Le Rêve" (1932) $155-million (2013 private sale)  약1천764억원 
14)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  $150-million (2016 private sale)  약1천707억원 
15) 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  $142.4-million (2013 Christie's auction)  약1천620억원

 

1) Leonardo da Vinci, "Salvator Mundi" (ca.1500)  $450.3-million (Christie's 2017 auction)  약5천151억에 해당 - 아직 확실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라고 결정난 것은 아닌 이 작품이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으로 등극했다.  현재 아부 다비의 루브르에 전시 중이라고.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의 작품이 2018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 1위를 차지했다. 

2) Willem de Kooning, "Interchange" (1955) $30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3천414억원

3) Paul Cézanne, "The Card Players" (ca. 1890) estimated $250- to $300-million (2011 private sale) - 자세한 정보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카타르의 왕족이 구입했다고 알려졌다.  언젠가 카드 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별도로 글을 올리도록 하겠지만, 세잔은 이 주제로 다수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 외의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큰 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다. 

4) Paul Gauguin, "Nafea Faa Ipoipo" (1892) $210-million (2014 private sale)  약2천389억원  - 타히티의 원주민언어로 단 제목을 해석하면 '언제 결혼 할거니?'라고 한다. 문명에 찌들지 않은 이상향으로 타히티를 그리며 현대판 '전원시'를 제작한 고갱의 작품

5) Jackson Pollock, "Number 17A" $20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2천276억원

6) Mark Rothko, "No. 6 (Violet, Green and Red)" (1951) $186-million (2014 private sale) 약2천216억원

 

7)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I (Water Serpernt II)" (1904) $183.8-million (2012 private sale) 약2천91억원 

8) Rembrandt van Rijn, "Pendant portraits of Maerten Soolmans and Oopjen Coppit" (1634) $18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2천80억원

9) Pablo Picasso, "Les Femmes d' Alger" ("Version O") (1954-55) $179.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약2천41억원

10)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1917)  $170.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약1천939억원

 

11) Roy Lichtenstein, "Masterpiece" (1962) $165-million (2017 private sale)  약1천877억원

12)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sur le côté gauche)" (1917) $157.2-million (2018 Sotheby's auction)  약1천789억원

13) Pablo Picasso, "Le Rêve" (1932) $155-million (2013 private sale)  약1천764억원 



14)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  $150-million (2016 private sale)  약1천707억원  - 인플레를 고려하면, 클림트가 같은 모델을 대상으로 1907년 그린 초상화가 14위에 해당되고, 이 작품은 18위에 해당한다.  참고)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135-million (2006 Christie’s auction)   $163.9-millions

15) 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  $142.4-million (2013 Christie's auction)  약1천620억원 - 1992년 세상을 뜰 때까지 생존화가로서는 작품 가격이 가장 높은 화가 중 하나였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삼면화. 그의 친구이자 화가인 루시앙 프로이트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아래의 목록은 인플레를 감안했을 때,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판매된 작품 20점의 리스트이다.  화폐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기 마련이므로, 최근에 최고가를 경신하며 판매된 작품들 10점에는 순위가 변동이 없다 (6위와 7위만 살짝 바뀜) 그리고, 20위 안에는 현재 랭킹 15위까지 다 포함 됨을 알 수 있다(2018년 현재 최고가를 기록했던 작품 11위부터 15위에 해당하는 작품은 볼드체로 표시했다.)

The Most Expensive Paintings in Auctions – 2018
1) attributed to Leonardo da Vinci, "Salvator Mundi" (ca.1500)  $450.3-million (Christie's 2017 auction) $450.3-milliona  
2) Willem de Kooning, "Interchange" (1955) $300-million (2015 private sale)  ~$310-millions
3) Paul Cézanne, "The Card Players" (ca. 1890) estimated $250- to $300-million (2011 private sale)  $272 +-millions 
4) Paul Gauguin, "Nafea Faa Ipoipo (When Will You Marry?)" (1892) $210-million (2014 private sale)  $217-millions
5) Jackson Pollock, "Number 17A" $200-million (2015 private sale)  ~$206-millions
6)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I (Water Serpernt II)" (1904) $183.8-million (2012 private sale)  $193.1-millions
7) Mark Rothko, "No. 6 (Violet, Green and Red)" (1951) $186-million (2014 private sale via Yves Bouvier) $192-millions
8) Rembrandt van Rijn, "Pendant portraits of Maerten Soolmans and Oopjen Coppit" (1634) $180-million (2015 private sale)  $186-millions
9) Pablo Picasso, "Les Femmes d' Alger" ("Version O") (1954-55) $179.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185.2-millions
10)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1917) $170.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175.9-millions
11) Jackson Pollock's "No. 5” (1948)  $140 million (2006 Sotheby’s auction)   $170.0-millions
12) Willem de Kooning, Woman III (1953) (2006 private auction via Larry Gagosian)   $166.9-millions
13) Roy Lichtenstein, "Masterpiece" (1962) $165-million (2017 private sale)   $165.0-millions
14)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135-million (2006 Christie’s auction)   $163.9-millions
15) Pablo Picasso, "Le Rêve" (1932) $155-million (2013 private sale)   $162.8-millions
16)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sur le côté gauche)" (1917) $157.2-million (2018 Sotheby's auction)  $157.2-millions
17)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Dr. Gachet (1890) $82.5-million (1990 Christie’s auction)
18)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  $150-million (2016 private sale via Larry Gagosian)  $153.0-millions
19) 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  $142.4-million (2013 Christie's auction)  $149.6-millions
20) Pierre-Auguste Renoir,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78.1-million (1990 Sotheby’s auction)  $146.3-millions


앞서 밝혔듯이 인플레를 고려해도 많은 작품들이 가격 순위면에서는 겹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가가 계속 올라서 인플레가 지속되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이하는 위의 랭킹 15에서 빠진 이미지들을 보충해서 올린다.  

인플레 고려 11) Jackson Pollock's "No. 5” (1948)  $140 million (2006 Sotheby’s auction)   $170.0-millions

인플레 고려 12) Willem de Kooning, Woman III (1953) (2006 private auction via Larry Gagosian)   $166.9-millions

인플레 고려 14)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135-million (2006 Christie’s auction)   $163.9-millions, 현재 뉴욕의  Neue Galerie에 전시

인플레 고려 17)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Dr. Gachet (1890) $82.5-million (1990 Christie’s auction)

인플레 고려 20) Pierre-Auguste Renoir,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78.1-million (1990 Sotheby’s auction)  $146.3-millions  - 위의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과 함께 두 작품 모두 일본의 제지회사를 소유한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가 각각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구입하여 당시에 큰 뉴스거리였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을 본 소감이 어떠신지요?  앞으로 위에 언급된 작품들에 대해서 한 작가씩, 그리고 해당 작품에 대해서 한번씩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0. 01:30 미술 이야기

어제에 이어 '믹스라이스'에 대한 글 Part II


3. 현대미술의 다양한 모습 – 셜리 인게이지드 아트사회 참여 미술

이제껏 살펴본 바와 같이 믹스라이스의 작품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고스스로가 현대미술을 어느정도 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도 아주 친숙한 형태의 예술은 아니다이러한 작품을 하는 믹스라이스가 2016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고이는 세계적인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국의 ‘올해의 작가상 해당하는 것이 터너 프라이즈 (the Turner Prize)이다그런데, 18명의 작가들로 구성되어 리버풀을 근간으로 활동하는 에셈블(Assemble)이라는 팀이 “그랜비  스트릿츠 프로젝트(the Granby Four Streets Project)” 2015 터너 프라이즈 수상했다.  이들의 작업은 생활 환경이 열악한 지역을 찾아다니면서그곳에서 공동으로 낡은 집을 고쳐주거나새로 집을 지어주는 작업을 하는데 과정에 사진이나 영상  파생되는 예술작품들을 포함하여 집을 짓는 행위 자체까지 모두 그들의 작업에 포함된다. (도판 3)

도판 3) Assemble

이러한 류의 새로운 경향의 예술을 지칭하는 많은 이름들이 존재한다가장 대표적인 명칭으로는 소셜리 인게이지드 프랙티스 (Socially Engaged Practice), 번역하자면, ‘사회 참여 운동’ 정도가  것이다약칭하여 소셜 프랙티스 혹은 소셜리 인게이지드 아트 (Socially Engaged Art)라고도 칭하는데공동체와 관련된 문제제기를 의도로 하는 활동을 포괄하는 일련의 예술을 통칭한다. 2004년부터 실행된 터너 프라이즈를 주간하는 테이트 모던 갤러리의 홈페이지에 개재된 용어 해설에 따르면대부분 협업으로 이뤄지며 공동체와의 공동작업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이는 대부분 봉사활동 (outreach program)이나 교육 프로그램의 결과인 경우가 많고사회 운동과 관련이 깊은 이러한 예술 형태의 가장 특징적 요소는 사회참여적 요소이고 따라서 정치적 이슈를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믹스라이스의 작가들이 수년간에 걸쳐 공동체의 주민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서로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작업을 해왔듯대부분의 소셜리 인게이지드 아트 작가들도 그러하다. 2014 맥아더 그랜트를 수상한 미국작가  로우 (Rick Lowe) 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그는 LA Times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다  반드시 아주 오랜동안 관계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어떠한 공동체에 뛰어 들어와서곧바로  곳의 모든 복잡함을  파악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만하고  공동체를 무시하는 행위가  것입니다.”  미국 작가  로우영국의 어셈블 그룹한국의 믹스라이스 모두 공동 작업을 통해서 사회문제를 제기하므로써 사람들에게  문제들을 인식시키고나아가서는 문제해결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믹스라이스를 위시한 위에 언급한 이들의 작품을 소셜리 인게이지드 아트의 범주에 넣을  있을 것이다.

물론 “Socially Engaged Art”라는 타이틀에 자체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모름지기 작가는 진공상태에 사는 것이 아니고자신이 속한 사회와 자신의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작품을 제작한다.  소셜리 인게이지드 아트 그대로 하자면, ‘사회와 관련을 맺는 예술이라는 뜻인데그렇다면 그러한 타이틀을 달지 못할 예술이 어디 있겠는가?  혹은 그런 기치 아래에서 제작되진 않는 예술작품들은 전부 사회와 유리된 것이라고  것인가그러한 아이러니를 의식한 탓인지믹스라이스의 작업을 지칭하고자 하는 여러가지 시도가 존재한다이는 미술 사조내에서의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주의 사조들이 실은  특정 명칭이 하나로 정착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고 이전에는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렸다는 것을 기억해볼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다따라서소셜리 인게이지드 아트와 같은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대중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예술을 일컫는 용어는 다수 존재하고 아직 확립된 하나의 합의된 명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4. 공공 미술(Public Art) 새로운 공공미술 (New Genre Public Art)

먼저예술가이자 저자교육자인 수잰 레이시(Suzanne Lacy) 1991년에 처음 만들어낸 용어로  장르 퍼블릭 아트 (New Genre Public Art),”  새로운 장르의 공공 미술이라는 용어가 있다.   용어는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에서 행해진 공개 퍼포먼스와 수잰 레이시의 저서 지형의 자리매김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 (Mapping the Terrain: New Genre Public Art)이라는 저서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다보통 ‘새로운’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은  이전이 존재한다는 의미인데실제로 공공 미술이란 단어는 해당 예술작품의 구매자가 개인이든 공공단체이든혹은 그것이 설치된 장소가 사유지이든지 공유지이든지 상관없이 공공 영역에 있는 예술을 지칭하는 용어로 폭넓게 사용되어왔다.

공공 미술 (Public Art)라는 용어는 유래를 따져 거슬러 올라가보면먼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당시  정부가 구민정책이자 선전정책인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도시의 미화작업에 예술가들을 대거 고용하여 벽화등을 제작하도록  것에서 찾아볼  있다이러한 미국의 공공 미술은 1970년대에 이르러 전기를 맞게 된다먼저 1960년대 활발했던 인권운동의 결과공공 장소에 대한 대중의 권리의식의 대두하게 되는데서 원인을 찾을  있다 시기는 도시 재개발 프로그램이 시작되고예술계에서는 대지미술미니멀리즘  작품들이 등장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로잘린드 크라우스를 위시한 미술사가와 비평가들의 연구등에 힘입어 예술계와 문화계 전반에 걸쳐 조각의 개념에 대한 재검토를 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1977 공공 아트 기금 (Public Art Fund) 조성되고, 1979 건축 속의 예술 프로그램(Art-in-Architecture Program) 실행되면서미국 전역에 걸쳐 연방 기관의 건축물에는 반드시 미술작품을 함께 조성해야만 하도록 하게 된다.  (비슷한 예로우리나라의 대형 건물앞의 조각품들대표적인 예로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망치질하는 남자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것이다공공 미술은 이러한 대형 건물 앞의 조형물과 동일시 되면서다시 미술계에서는 이처럼 단순히 장식에 머무는 공공 미술에 대한 비판적 반성도 일어나게 된다. 

한편으로는 기념비특정인물을 기리기 위한 조각상그리고 특정 장소에 설치하기 위해 장소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 예술 사이트 스페시픽 아트 (Site-Specific Art)라는 새로운 경향의 예술이 대두함에 따라 이에 대한 미학적 논의도 활발해졌다거기에 1989 리처드 세라 (Richard Serra: 1938-) 기울어진  (Tilted Arc)” 철거를 둘러싸고 법정소송이 일어나게 된다이에 따라공공 미술의 정의와 의의나아가서 작가의 권한과 대중의 권리에 대한 미학적정치적인 논의가 뜨겁게 펼쳐지게 되고사회전반에 걸친  논란을 겪게 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기울어진  대표적인 후기 미니멀 아트 작가인 리처드 세라가 건축 속의 예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의뢰를 받아 뉴욕 맨하탄의  연방 정부의 건물 (the Jacob K. Javits Federal Building)  광장 (Foley Federal Plaza) 설치하게  작품이다. (도판 4) 

도판 4) Richard Serra, Tilted Arc

논란의 발단은 건물의 광장을 가로지르며 놓여진 강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세라의 조각이  건물과 주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생활의 방해가 된다는 여론으로 철수하기로 결정하게 되면서 일어난 것이다.  이에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Site-Specific Art’  장소에 놓이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따라서다른 장소에 옮겨진다면  작품의 의의가 상실되어버리므로 작품의 이전을 반대한데서 시작한다많은 예술계의 인사들이 작가의 편을 들어 언론과 학술 발표를 통해 창작의 자유를 옹호하고작가의 의도를 존중할 것을 피력했다하지만이에 반해그곳에서 매일매일을 생활하는 이들의 실질적인 불편함그리고 녹슬어 흉물로 변해버린 거대한 강철 덩어리를 봐야하는 시각적인 괴로움을 호소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아반대의견도 거셌고 청문회도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공공 미술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인 대중의 공익을 위하지 못하는 세라의 작품은 존재가치가 있냐는 것이었다.

결국 여론에 밀려 그의 조각은 철거되는 것으로 일은 일단락 되었지만이후로도 공공 미술의 역할과 의의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는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으로 논의 되고 있는 상황이다. 1991 수잰 레이시가 “공공미술이란 공원이나 광장에 놓여진 조각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새로운 장르의 공공 미술 (New Genre Public Art)”이라는 용어를 창조해  이는 어쩌면 리처드 세라의 조각을 염두에 두고  발언일지도 모른다 과연 예술 작품은 작가의 의도를 존중하고 예술의 자율성을 위해서  광장에 계속 두는 것이 옳았던 것인가아니면예술 작품도 작가도 사회의 일부로서 존재할 뿐이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불편과 혐오감을 주는 것이라면 철거된 것이 정답이었던 것인가?  철거 자체가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행동이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공 미술에 대한 리처드 세라의 조각품 사건은 해결점을 제시했다기 보다는 쟁점을  많이 남겼다고   있다.

수잰 레이시가 정의한 새로운 장르 공공 미술 해당한 일련의 작품이 발표된 대표적인 전시회로는 1993  《활동중인 문화컬쳐  액션 (Culture in Action)》인데시카고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팀의 그룹들이 모여 8개의 프로젝트를 이행하였다복잡다단한 이들의 활동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롭고  그룹의 관심사도 다양하다 예를 들면메리 제인 제이콥 (Mary Jane Jacob) 스컬프쳐 시카고(Sculpture Chicago) 공공미술에 대한 재해석 노력도시 빈민지역의 건설에 대한 관심그리고 마크 디용 (Mark Dion) 시카고 도시 생태 활동 그룹 (Chicago Urban Ecology Action Group) 보여주는 시카고에 국한되지 않는 광범위한 지역의 자연과 생태학에 대한 관심 등이 그것이다이들 그룹의 작업은 믹스라이스의 작업과 마찬가지로 다양하고 다채롭고예술 작품으로서의 형식이나 주제면에서도 상응하는 점이 많다 일일이 비교 설명하기는 지면이 부족하기에여기서는 참여한 그룹중 하나의 명칭이 ‘Sculpture Chicago’이라는 점만 지적하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여기서 ‘Sculpture’ 조각이고 ‘Chicago’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도시 시카고이다하지만  단어의 조합의 의미는 모호하다여기서의 ‘sculpture’ 명사로 읽기보다는 시카고를 조각하라 동사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그들 전시의 이름이 ‘Culture in Action,’ ‘행동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믹스라이스가 섞여 있는  아닌 쌀을 섞어라라는 뜻에 가까우리라는 추측이  타당하게 여겨지는 대목이다.      

 

5. 나가며

소셜리 인게이지드 아트혹은 소셜 프랙티스커뮤니티 아트사회적 전환 (Social Turn), 액티비스트 아트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지만공통적인 특징은 대체로 1) 프로젝트 팀을 이뤄서 작업한다는 . 2) 사회적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작업을 한다는  3) 쉽게 정의내리기 힘든 다양한 형식과 주제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등을   있다.  사회와 정치에 대한 비판은 이미 다다의 포토 몽타쥬에서도 목격했기에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있고성격은 때로 다를 수가 있다 하더라도 공공 미술의 역사도   편이라 새롭다고는   없다만화나 낙서 (graffiti) 팝아트 작가들이 이미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놓았기에 새삼스럽지는 않다.  그리고  소련 등의 공산주의 국가의 정치적 선전용으로 제작된 포스터 등의 예에서 보듯 예술이 정치적 이념을 띄고 있는 예도 많이 보아왔다그리고 무엇보다 순수 예술이란 엄밀한 의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있다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관람자의 입장에서 소셜리 인게이지드 아트는 일견 낯설고 새롭다고 여겨지다가도주제나 형식적 측면에서만 보면 친숙하게 여겨지는 부분들이 많다 

이들의 작품이 낯설어지는 부분은 오히려 예술가와 관람객과의 역할과 관계 문제그리고 예술 시장에서의 상품으로서의 예술 작품의 가치 문제에 있다믹스라이스는 영화에서의 감독과 같은 존재인가 (분명  관점은 부정할 것이라 짐작한다아니면 그냥 (해당 지역의 주민들과공동 제작자라고 불릴 것인가아니면페스티벌에 동참하는 참가자로서의 관람객인가?  그들의 작품은 어디서부터이며 어디까지인가페스티벌에서의 노래대화도 작품에 포함되는가아니면그러한 일련의 활동을 기록으로 남긴 메모사진영상  일정한 포멧을 지닌것으로 한정해야  것인가그리고 그들의 작품은 구입한다거나 소장한다 의미가 통할 것인가아니면후원한다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9. 01:30 미술 이야기

이 글은 작년에 쓴 글로 2016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 중 "믹스 라이스"라는 팀에 관한 것이다.  기존에 알고 있는 회화나 조각, 심지어 설치미술이나 비디오 아트가 아닌 복합적이고도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팀'의 작품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현대미술에 익숙하지 않으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글이다. 

하지만, 대략이라도 현대미술이 얼마나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소개한다는 차원에서 가끔씩 아주~현대적 미술에 대해서도 쓸까 생각중인데, 이 글이 그 첫 포문을 여는 글이 되겠다. 

이하는 작년의 글을 그대로 옮기는 식으로~~

 

믹스라이스올해의 작가상 2016 수상 작가의 장소’, ‘주거 대한 고찰

 

작년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올해의 작가상》전에는 회화, 조각, 설치, 사진, 영상 다채로운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 4김을, 백승우, 함경아, 믹스라이스 작품이 전시되었다.  

《올해의 작가상 2016》전( 2016.08.31 - 2017.02.19) 

전시 소개에 관해서는 여기를 참조

 

《올해의 작가상》전이라는 전시회는 원류를 따져 올라가보면,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대표적인 전시로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정기적으로 개최되었던 《올해의 작가》전을 모태로 하고 있다. 이를 국립현대미술관이 SBS 문화재단의 협력을 통해, 2012년부터 독창성과 역량을 갖춘 작가들을 후원하는 수상제도로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다.  어느덧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올해의 작가상》전은 재능있는 작가들의 발굴을 통해 한국현대미술의 발전을 모색해가면서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표 수상제도로 제대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위치의 《올해의 작가상》에서는 1 심사를 통과한, 위에 언급한 4팀의 작가들 , 2016 10 2 심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2016년의 수상자로 믹스라이스 선정하였다.  믹스 라이스 조지은과 양철모라는 두명의 작가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으로 지난 15 동안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와 재개발에 대한 이슈를 지속적으로 다루어 왔다. 

 

 

 

1. 그룹 명칭에 대한 고찰; 믹스라이스 (Mixrice), mixed rice 혹은 Mix Rice!

 

먼저믹스라이스라는 그룹명을 먼저 살펴보자.  잡지 <미술세계> 2016 11월호에 실린 작가 양철모의 인터뷰에 따르면, ‘믹스라이스비빔밥이라는콩글리쉬라고 밝혔다. 그리고 아시아가 문화권이라서 이러한 용어를 사용했음을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2002년부터 이미 프로젝트 팀이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던 조지은 작가에 이어, 2003  자신도 가담하며 공동작업을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팀의 명칭에 대한 양철모 작가의 의견을 십분 존중하더라도, 애시당초 정확히 어떠한 의도로 프로젝트 명을 정했는지,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정한 명칭에 내포되었을 다양한 의미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만약비빔밥이라는 정확하고도 단일한 의미를 전달하기를 원했다면믹스라이스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의견을 빌자면, 우리의 단어 선택은 우리의 잠재의식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 작품에서 작가의 의도만이 중요한게 아니라 관객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중요하고 작품의 의미에 포함된다는 의견 받아들인다면, 프로젝트 팀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면 생각해보자, 믹스라이스인가?

 

첫째,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작가가 초기 작품 활동에서 주력했던 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해볼 있을 것이다. 빵과 밥이라는 이분법으로 생각해 보자면, 확실히 쌀은, 작가의 말맞다나, 아시아 문화권을 대유하는 것으로 이해할 있다. 그리고 믹스라이스라는 그룹명이 영어도 한국어도 아니라는 , 그래서 단어자체의 의미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점은 작가가 처음 주목했던 아시아계 노동자 이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묘하게 맞물려들어간다고도 있다. 국보다는 경제적 상황이 좋지않은 동남아 국가에서 들어와 한국에서 불법체류라는 상태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분명 한국인은 아니고, 그렇다고 당당하게 외국인임을 주장하지 못한다는 불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해석은, 단어가 콩글리쉬 혹은 브로큰 잉글리쉬일 경우, 그것이 의도 조어이든 아니든간에 단어자체가 주는 반향은 이처럼섞임혹은어울림이란 쉽지않다는 것을 자체로 드러내준다.  상대방의 언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오용하기 쉽고 의미도 왜곡되기 쉬울 것이다.  물론 그러한 왜곡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잠시 유보해봐야 한다.  낯선 문화의 몰이해 속에 아름다운 오해가 탄생하고 그것은 또다른 의미의 창조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해석도 물론 가능하다.  그룹명이 믹스드 라이스 (Mixed rice), 잡곡이라는 이미 여러 종류의 쌀이 섞여 있는 상태가 아닌 동사로서의 ‘mix’ 사용한 명령문으로서의 믹스 라이스 (Mix rice), 이제는쌀을 섞으라 의미로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룹명을 통해서 작가들은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동일성에 주목하여 우리 모두 더불어 살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것은 아닌가 생각해 있다.  물론 이러한 해석 말고도 또다른 해석들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은믹스라이스 작품활동의 다양성과도 상통한다는 것도 염두에 둘만하다.

 

2. 믹스라이스의 다양한 작품 세계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형태의 프로젝트 팀을 이루어, 마찬가지로 낯선 듀오 그룹명으로 활동한믹스라이스 작품행보 또한 현대미술에 아주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들에게는 낯선 것일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믹스라이스는 조지은과 양철모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으로, 이처럼 작가가 아닌 명이상의 작가들이 프로젝트라는 것은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일컫는 일련의 현대미술의 형태로,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예술작품에 대한 일종의 대안이라고 있다.  믹스라이스는 이에 머물지 않고 작가 이외에도 이주 노동자들과의 협업을 통한 작업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제작해왔다.  속에는 사진, 영상, 벽화, 퍼포먼스와 같은 기존의 예술의 범주에 넣을 있는 것도 있지만,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 핫케이크, 포츈 쿠키의 제작, 주민들과 함께 개최한 페스티벌 작품의 유형을 쉽게 정의할 없는 작품들도 많다.  (자세한 내용은 믹스라이스 홈페이지를 참조해보자. http://mixrice.org/)

 

성남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믹스라이스의 작품은 소외되어 망각된 도시와 그곳에서 생활하는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2006 마석가구단지의 이주민공동체와의 협업을 통해 불법체류 중인 이주민들의 인권문제와 그들의 열악한 생활상을 조명하는 작품이 있다.  (도판 1) 믹스라이스의 작업의 특징은전지적 작가로서 작품을 기획하고 감독하는 위치가 아닌 이주민들과의 협업을 통해 완성해가는 것에 있다고 있다. 때로는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이들과 작업을 하기도 하고, 이주민들의 속내를 그대로 반영하기 위한 글들을 작업화하기도 한다.

도판 1) 마석 단지 페스티벌 

 

믹스라이스는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무분별한 도시의 재개발 운동으로 야기되는 사회문제에도 시선을 돌려 작품활동을 하였다. 최근에는 2 채널 영상으로 제작된 《덩굴연대기》에서 있듯이,  나무들의이식(移植)’ 문제를 조명하면서, 도시 재개발과 맞물려 자행되는 변두리 지역 나무들의 무차별적이고도 비자발적인 이식문제를 다룬다.  해묵은 나무들은 오랫동안 자리에서 지역의 풍경이자 나아가서는 공동체의 일부로서 역사를 이루며 함께해 왔던 존재이다.  이들을 무분별하게 파헤쳐 새로 건축된 아파트 단지의 조명을 위해 옮겨심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는 환경문제이자 생태학의 문제에 대한 언급인 동시에, 여러가지 주변 상황들 때문에 자신들의 오랜 보금자리를 떠날 밖에 없는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의 이주 (移住)’ 상황의 은유로도 읽을 있다.  이러한 식물의이식 대한 관심은 비디오 작품 아니라, 실제 재개발 지역에서 채취한 식물들을 갤러리의 거대한 흰벽에 세심하게 늘어붙이는 작업과 같은 설치작업으로도 이뤄지고 있다. 

 

또한이주 문제에 대해서는 재개발 지역에서 파낸 갤러리의 바닥에 깔고집을 위한 으로 재배치하는 설치도 감행한다.  바닥에는 노끈등으로 구획을 만들어주방,’ ‘거실,’ ‘안방등의 푯말을 세워두었는데, 이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1970년대 아파트 개발 초기의 분양 당시, 농지로 사용하던 땅에 그런식으로 구획해두고 재개발을 위한 토지 매매가 이뤄지던 것을 풍자하여 재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도판 2)

도판 2) 아주 평평한 공터 

 

일견 일관성이 없어보이는 믹스라이스의 작업은 자세히 들여보면, ‘거주이주,’ ‘동일성차이,’ 그로 인해 생겨나는 경계그리고 나아가서는정체성 대한 질문으로 일관되게 이어져 왔다는 것을 있다.  그리고, 일견 생활과 밀접하여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듯한 그들의 작품은 실은 무척이나 심오한 철학적 주제에 닿아있다는 것을 있다.  글에서는 이처럼 생활에 밀접하면서도 철학적인 믹스라이스의 작품은 묘하게도 독일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1889-1976) 건물, 거주, 사고” ("Building Dwelling Thinking")라는 글의 제목을 떠올리게 한다. (Martin Heidegger, ‘Building Dwelling Thinking’, in Poetry, Language, Thought (NY: Harper & Row, 1971), pp. 145–61.)

 

독어로는 'Bouen Wohnen Denken'이라는 제목인건물, 거주, 사고라는 에세이는 원래 1951 하이데거가 건축가들이 주축이 되어 열린 '인간과 우주'라는 주제의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강연을 글로 옮긴 것이다.  과연 작가 믹스라이스가 하이데거의 저작에 친숙한지 특히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의 에세이의 내용은 지난 수년간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믹스라이스의 작품의 주제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일견 일관성있어 보이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다소 상충하는듯도 보이는 믹스라이스의 작품 속에 내재한 복잡한 질문들도 하이데거가 논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과 상통하고 있다.

 

과연 60여년전에 독일 철학자의 에세이가 어떤 식으로 오늘날 한국의 프로젝트 팀의 작품을 비추어주는 렌즈가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믹스라이스를 다루는 방송국의 다큐멘터리에서 언급한혐오의 시대 예술의 역할이라는 부제에서 일말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2017 1 22 일요일 11 5 방영, SBS 아트멘터리남을 위한 행진곡’)  하이데거의 글이 씌여진 시대도혐오의 시대 겪고 전후 이제 화해를 모색하던 시기였을 것이고, 이는 2017년의 오늘날의 현실과도 일맥상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이데거의 에세이건물, 거주, 사고 1951 건축가들을 위주로 심포지움의 강의를 내용으로 한다. 강의에서 하이데거는 건축의 개념과 거주의 개념을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해 나가는데 이는 오늘날 믹스라이스가 제기하는 문제와 연결해 보면 흥미롭다.  장소(place)’ 무시하고건물(building)’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었을 건축가들이 모여 개최한 심포지움에서 하이데거는 모름지기건물주거 차이를 명백히 하며, ‘거주한다는 (dwelling) 건물 (building) 선행한다 다소 이색적인 주장을 한다.

 

거주하는 (dwelling) 이라는 개념은 거주의 주체가 어디에소속된다는 (belonging)’ 의미하고 따라서 거주의 주체의정체성 (identity)’ 나아가서는진정성 (authenticity, 독어로는 Eigentlichkeit)’이라는 개념과 연결되는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있다.  달리 말하면, ‘거주라는 것은 진정한 존재 (authentic existence)’라는 개념에서 출발하여 발전되는 것이고, 우리가 진정성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과도 상통한다고 있는 있는것이다.  결국 장소 (혹은 거처) 주거에 대한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결여했을 정체성과 의미를 부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이데거의 사상대로라면, 주거란 정체성, 자신, 혹은 의미자체에 대한 감각을 잃을 위험이 있는 현대성에 대한 해독제가 있다.   

 

하지만, 고정된 장소를 전제로하는 주거는 정체성을 지켜주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는 유용하지만, 본질적으로 배타적이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개념이라고 봤을때 중대한 문제를 야기한다.  정체성은 우리에게 고정된 정체성을 부여하고, 과거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취해진 것으로 미래와의 진정한 관계를 방해하는 본질적으로 후진적인 방향성을 내표하고 있다고도 있기 때문이다.

 

장소로 인해서 생성된 정체성은 장소의 경계 내에 있는우리라는 소속감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으로서우리 속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장소에서 제외시킨다. 정체성이 바로 장소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정체성은 상당부분 장소의 개념에 의존하며우리 통제 밖에 있게 된다.  주거장소 개념을 강조하고 특성적 정체성을 기반으로배타성 정당성을 부여한 점이 하이데거가 나치즘에 동조한 역사적 증거 내지 근거로 비판 받고 있다는 점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믹스라이스의 작품들이 다루고 있는 지난 십수년 동안의 다양한 작품들에 드러난 장소와 거주에 관한 논의는 상반된 문제의식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수있다.  믹스 라이스의 재개발 문제와 식물의 이식의 과정에 촛점을 맞춘 최근의 작품이주거 부여하는정체성 관한 문제라면, 그보다 이전의 마석가구단지 페스티벌을 필두로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는 바로 주거의 고정성으로 인해 야기된배타성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이 당하는 불이익에 대한 문제,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아 확실히는 알수 없으나 아마도) 원치 않는 곳으로 이식 되는 식물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대한 문제와 타국에서 한국에 옮겨와 자리잡고자 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있을 것인가?

 

앞서 밝혔듯, 장소와 거주라는 개념을 소속감과 정체성을 연관시킬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이때, 정체성은 차이를 배제하고, 마찬가지로 장소와 거주라는 개념도 그런 점에서 봤을때에는 배타적일 밖에 없다. 그렇다면 하이데거의 논지는 배타성으로 점철되어 있는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의 1957년의정체성의 원칙 (The Principle of identity)”라는 글에서 그는 정체성에 대해 화해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정체성의 의미를함께 소속하는 (belonging together)’에서 찾는데, 여기서함께 (together)’ 중점을 것인가, 아니면소속됨(belonging)’ 중점을 둘것인가에 따라 차이가 야기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함께 모인이들과의 단결을 강조하게 되면서 단일성이 중시되고, ‘소속됨 강조하게 되면 구성원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게 되므로자율성 인정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나아가서 정체성이란 동일성에 머물것이 아니라, 함께 소속하는 주변의 사물 (여기에서는 믹스라이스의 작품에서의 나무를 떠올리게 된다)들과 인간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라고 논한다.  하이데거의 말을 빌자면, (Earth), 하늘, 유한자 (mortals) (divinities)라는 4(Fourfold) 요소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다양성과 조화의 예를 블랙포레스트 농가에서의 생활을 예로 들며 하이데거는 (강의) 마치고 있는데, 이는 믹스라이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견 상충하는듯 보이는 자연과 인간의 문제, 외국의 이주민과 재개발 지역 주민의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점의 모색 보다는 문제제기의 단계인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어떠한 장소에 소속한다는 것은 인간존재의 본질이자, 속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 만큼이나 주거와 소속,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영원히 계속 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믹스라이스가 제기해 여러가지 방향으로 향한듯 보이는 복잡한 문제들이 실상은 서로의 특이성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소속감을 지니고 주거 있는 조화로운 지점에서 해답을 구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글이 길어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나머지를 올리기로 할게요~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8. 00:18 미술 이야기

예술계의 홍길동이라고 할까 쾌걸 조로라고 할까?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 (Banksy)가 또 사고를 쳤다. (상황은 여기서 확인!)

사건은 10월 5일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의 유명 작품 '풍선을 든 소녀 (Girl with Balloon)가 1백4만 파운드, 한화로 15억을 훌쩍 넘는 가격에 팔리고 난 직후에 일어났다.  직후에 뱅크시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작품이 경매에 나와 팔리게 되면 작동하도록 이 작품에 분쇄기를 장치했음을 밝혔다고 한다.  물론 이는 당시 경매에서 작품이 조각조각 분쇄되는 장면을 보고 진정으로 놀라는 관중들의 모습이 담긴 인스타그램들과 함께 여러 뉴스에 게재되었다. 

물론, 이 상황 자체가 과연 어떻게 가능했는지 여러가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1. 분쇄기가 액자 속에 장치가 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과연 경매를 준비하는 측에서는 액자에 끼워져 있는 작품을 사전에 살펴보지 않았던 것일까? - 경매 이전 작품의 상태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서 한번쯤은 작품을 액자에서 빼보지는 않았던 것일까? 게다가 작품과 액자 무게 외에 그 정도의 장치가 되어 있었다면 작품은 이상할 정도로 상당한 무게였을텐데 말이다.

2. 그 분쇄기는 왜 작품의 절반 정도밖에 분쇄가 진행되지 않은 것일까?  전부다 분쇄되었다면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되었을텐데, 지금 상태로는 미묘하다.  예상했던 대로, 구매자는 이 상태의 작품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 작품은 이 상태로 또 거래가 될 것이라 짐작된다. 

3. 그 분쇄기를 장치하고 나서 경매에서 판매될 때까지 수년은 걸렸을텐데, 과연 그 분쇄기는 어떻게 작동했던 것일까?  - 뱅크시의 정보원 (?)이 그 작품의 소재를 계속 추적해오다가 소더비 경매장에 잠입하여 경매가 이뤄지는 순간 원격 조정장치의 스위치를 눌렀던 것일까?   건전지 없이 그런 작동을 할 수 있는 장치가 있나? 전기 장치는 잘 모르지만, 여하튼 미스테리다. 

경매 관련자들을 깜쪽같이 속였다 치고, 지치지 않는 건전지 에너자이저를 써서 성공적으로 경매사가 경매봉을 두드리는 순간 분쇄기를 작동시켰다 치자.  방법이야 어떻게 되었든, 이번 사건은 미술사에 또 다른 역사를 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퍼포먼스라고도 볼 수 있는 이번의 사건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터무니 없기까지 한 천문학적인 금액들이 오가는 경매에서의 작품거래에 대한 반항의 메시지를 보내는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유명세에 따른 작품 가격이 높아지고 하는 미술계의 통례에 반대하기 위해 자신(들)의 얼굴이나 구체적인 이력을 밝히지 않아 왔던 것이다.  

뱅크시에 대해서는 아직도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애당초에 그 (혹은 복수의 작가군단?)가 익명으로 활동한 것은 그(들)의 작품이 영국 브리스톨 거리에 그리피티를 그리는 것을 시작해서인데, 영국에서 거리에 낙서를 하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법적인 제재를 피하기 위해서라고도 알려져 있다. 물론 위에 밝힌대로 미술계의 통상적인 관례에 대한 반항이라는 설도 있다.  (일부 웹사이트에서는 그가 1974년 영국 출생이라고 밝힌 곳도 있는데, 대부분의 미술관련 사이트에서는 여전히 그에 대해서 밝혀진 것이 없다고 씌여있다.) 

후에 그리피티 이외에도 꾸준하게 기발한 활동을 해온 그의 작품은 많은 논란과 함께 경매에서의 작품의 가격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자세한 활동은 그의 홈페이지를 참고하라.  http://www.banksy.co.uk/out.asp)

다분 정치적이고, 반전주의, 반자본주의적 메시지로 가득한 그의 작품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익명으로 활동하는 그의 명성에 편승해 뱅크시를 자처하는 작품도 적지 않고, 그에 대해 '내 작품 아님'을 홈페이지에서도 밝히기도 한다. (한번 더 꼬아서 생각하자면, 이러한 의사표명 또한 그의 자작극이 아닌가 의심하게도 된다. 왜냐하면, 익명으로 작품활동하는 것 자체가 '작품에 따라다니는 작가의 이름'이라는 관례에 대한 반항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애당초 굳이 저렇게 주인 찾아주기 식의 성명서를 낼 필요가 있나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몸으로 반자본주의적이고 반체제적인 작품을 하는 그가 미술시장에서 몸값을 높이게 된것은 어찌된 영문인걸까? 

일례로 2003년 제작되었던 Bomb Hugger라는 그래피티 작품의 경매 경과를 살펴보자. 




Sotheby's London 

Date:2010-02-11 

Lot Number :284 

Low Estimate :$39,200[+92%]* 

High Estimate :$54,800[+37%]* 

Hammer Price :$75,200 

Sold For :$92,250*



2010년 2월 11일자 경매를 보면 이 작품의 최종 가격은 최저 예상 가격 4만불을 가볍게 넘어 최종가는 9만2천불, 한화로 1억이 넘는 금액에 거래가 되었다.   애당초 미술 작품에 터무니 없는 가격을 매기는 이러한 미술 시장에 대한 비판은 경매서 고가로 팔린 작품을 거리에서는 60불에 파는 행위를 하거나 직접적으로 아래와 같은 작품을 제작하는 등, 여러차례 그의 작품 속에서 언급되었다. 

Banksy – I Can’t Believe You Morons Actually Buy This Shit, 2007  '너희같은 멍청이들이 정말로 이런 쓰레기를 사다니, 나는 당최 믿을 수가 없다.'는 제목으로 경매장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이쯤 되면, 그의 작품 값을 올리는 것은 미술 시장이자 미술계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가깝게는 앤디 워홀의 팝아트, 좀 거슬러 올라가면 마르셀 뒤샹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다. 

Banksy, Soup Cans (2006) EHC Fine Art 앤디 워홀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건가? 현대미술가들은 스프캔이라는 상품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미술사 적으로 보면, 이는 마르셀 뒤샹이 1917년 한 전시회에 철물점에서 구입한 남성용 소변기에 R. Mutt라는 서명만 하고, '샘 (The Fountain)'이라는 제목으로 출품을 한 것에 비견될 만한 사건이 되지 않을까?    

애시당초 참가비만 내면 전시를 허용하는 허술한 전시회에 출품했음에도 당시에는 그가 출품한 변기는 출품이 거절 당했다.  이후, 작가는 작품을 '제작'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기만 해도 되는 것이라는 면죄부 (?)를 받게 되는 미술사적인 일대사건으로 기록되게 되는 것이다. 이후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그 면죄부로 얼마나 많은 작품들을 '선택'해왔던가. 

이번 뱅크시의 첩보전을 방불케할 '퍼포먼스'는 미술사적으로 또 다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경매에서 작품의 가격을 매겨 유통하는 과정에 대한 반항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 퍼포먼스 자체는 또 다른 형태의 예술 형태로 자리잡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절반쯤 분쇄기를 통과한 그 작품은 이번 경매가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될지도. 

한편, 뱅크시가 자신(들)의 인스타그램에 사전에 분쇄기를 설치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해당 경매에서 작품이 순식간에 분쇄되어 액자밑으로 흘러내리는 과정을 촬영한 것을 올리면서 "The urge to destroy is also a creative urge" - Picasso라는 구문을 함께 실었다. 이는 항상 자신의 이전의 작품과는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창조를 추구했던 피카소가 '창조적인 진공청소기'라 불렸던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천명했다고 볼 수도 있다.  미술계의 황금만능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을 했지만, 그 미술계에서 최고가를 갱신하며 그러한 시스템을 만끽한 피카소에 대해서는 별 저항이 없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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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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