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2018/10 글 목록 (4 Page)
2018. 10. 7. 01:30 미술 이야기

세상을 보는 시각은 여러가지다.  여기서 그 다양한 시각에 대해서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크게 줌인한 시각과 줌아웃한 시각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친구들끼리 모였을때, '얘는 어머님이 전라도 분이시라 음식맛이 좋다'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갱상도 사나이의 '으리'도 자주 하는 말이다.  이 밖에도 충청도 출신인 사람들은 느긋하다거나, 뭐 그 밖에도 각 지방에 대한 선입견 내지 편견을 포함한 평가는 한국 사람이라면 거기에 동의를 하든 안하든 들어보긴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거기에 반해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냥 '미국 사람' '일본 사람'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한다. 

다른 곳은 잘 모르지만, 일단 미국은 그 크기로 말하자면 남한의 백 배는 족히 되는 크기의 땅인데, 그리고 그 속에 얼마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우리는 그냥 '미국 사람들은...'이라고 특징을 지워 이야기 하곤 한다. 

참고: 

남한의 면적=9만 9538㎢
북한의 면적=12만 2762㎢
미국의 면적=951만 8323㎢
참고로 시카고 북쪽에 있는 오대호의 크기를 합하면 24만5000㎢이고, 

그 중 가장 큰 슈페리어 호 같은 경우만 해도 8만㎢이다. 

즉, 미국 면적의 크기는 
남한에 비해 105배의 크기
북한에 비해 79~80배의 크기
한반도를 합한 면적의 44배의 크기

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또 다르다.  뉴욕을 방문했다가 그 다음 행선지가 LA라고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내 평생 LA를 가본 적은 없지만, LA 사람들은 이렇다며?'라고 물어본다. 그리고 LA를 방문한 뒤, 다시 뉴욕으로 돌아갈 날짜가 언제다라고 이야기하면, '나는 한번도 뉴욕을 가본적은 없지만...'이라는 이야기를 꼭 하곤 했다. 그 뿐 아니다. Texas 사람들은... Midwest 사람들은.... 이렇게 각각 다른 지방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인상과 고정관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때에는 '한국에 가면 다 "미국 사람들"인데...'라고 생각하면서 재밌다고만 생각했었다.  

원체 미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좀 식견이 있다는 사람들도 한국과 중국, 일본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위치가 다르다는 정도는 알아도, 결국 한국은 그냥 '극동' 내지 '동양'이라는 큰 범주에 묶인다.  '미국인들'이 본국 이외의 지역에 대해 알려고 하는 노력이 부족하기도 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에 대해서 세분해서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생각해봤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린 결론은 결국은 본인에게 가까운 것에 대해서는 세분해서 살펴보고 이해하고, 자신과 먼 것일 수록 개략적으로 이해하는 인간의 본성 탓이라는 것이다. 내가 명명해보자면, '줌인과 줌아웃 법칙'인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차이들이 도드라져 보이고 멀리서 보면 공통점들이 잘 보이는 것이다. 이는 미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미술사에서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이야기 할 때, 플로렌스 (피렌체)와 베니스 (베네치아)의 미술을 선과 색으로 대비하여 설명한다. 즉, 피렌체는 색보다는 '선'을 중시하는 미술이라 소묘의 기법이 뛰어난 작가들이 많고, 베네치아의 미술은 선보다는 '색'을 중시하는 미술이라 다른 지역에 비교해서 탁월한 색상이 특징인 작가들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MICHELANGELO (1475-1564)'Ignudi detail from the Sistine Chapel Ceiling', c.1508-12 (fresco) - 선을 중시한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대변하는 작가,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천장화를 위한 수많은 드로잉 중 하나 ; 오른쪽은 완성된 모습

Titian, Bacchus and Ariadne (1520-23), The National Gallery, London  색을 중시하는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 티치아노

그러나, 이것은 줌인했을 때의 시각이고, 줌아웃해서 북유럽르네상스 (이탈리아보다 북쪽의 유럽국가, 플랑드르 지방 등)과 함께 비교해보면, 세부의 디테일을 중시하는 북쪽지방의 예술에 비해 이탈리아 미술 전반이 소묘, 즉 디세뇨 (disegno)를 중시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북유럽르네상스를 설명할 때에는 이탈리아 미술전반에 대한 특징을 다시금 언급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Jan van Eyck,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Portrait  (1434)oil on oak panel of 3 vertical boards 82.2 ×60 cm, National Gallery, London

이는 동서양 미술의 특징을 논할 때가 되면 다시 달라진다. 북유럽과 이탈리아 할 것 없이 그냥 '서양미술'.... 이처럼 우리는 줌인해서 관찰할 때와 줌아웃해서 관찰할 때의 자세가 달라지고 따라서 도출되는 결과도 달라진다.  

요는 줌인해서 보는 세상과 줌아웃해서 보는 세상이 많이 다르다는 것. 평소에는 아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세상을 가끔은 줌아웃해서 보는 것도 신선한 시각을 유지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  좀 논의가 달라지긴 하지만, 내 인생이기 때문에 가깝게 들여다보고 자세히 보이는 내 삶의 문제들도 때로는 줌아웃해서 보면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닐때도 있다는 점. 그리고 의외로 쉬운 해결책이 보이기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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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6. 01:30 영화 이야기

제목 속에는 원제가 담겨져 있지 않다. Au revoir là-haut

에콜 드 파리 (École de Paris)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하다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하나 발견. 원래 프랑스 작가 피에르 레메트르 (Pierre Lemaitre)가 쓴 소설이 원작인데 그 책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진 것. 

원작이 프랑스어인 책과 그리고 영화, 여기에 영어 번역까지 뒤섞여 제목이 무척 복잡한데, 내가 알아낸 것만 무려 5종류. 

먼저 원작과 동명 영화: 
1) Au revoir là-haut - 프랑스 작품이라 동명 소설과 같은 불어 제목이 원제. '저기 위에서 다시 만나요'라는 직역이겠으나, '죽어서 다시 만나자'라는 뜻. 이 책으로 작가 피에르 레메트르는 2013년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다. 감독은 Albert Dupontel인데, 극 중 두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2) The Great Swindle (2015) - 영어로 번역된 소설의 제목, 주인공들이 하는 일이 '거대 사기극'이긴 하지. 
3) See You Up There (2017) - 미국에서의 영화의 제목은 이렇게 소설과는 달리 원제에 충실하게 붙여졌다. 
 
4) 오르부아르 (2015) - 소설이 공쿠르 작을 받고 나서 번역된 듯한데, 한국어로는 '오흐부아 라오'가 원 발음에 근접할 듯 한데, 이렇게 번역되었다. 작가 이름 및 기타 설명 없이 이 소설과 원래 소설을 연결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5) 맨 오브 마스크 - 한국어 제목으로는 이렇게, 어중간하게 달렸다.  번역도 아니고 원어 제목을 발음대로 한 것도 아니고...  저 영화를 찾으려고 했는데, 한국어 제목을 미리 알지 않았더라면 절대 이 제목으로는 짐작도 못했으리라. 
 
영화를 한다는 광고를 본 기억이 없는데, 아마도 영화제에 출품했었던 작품이었나? 소위  상업영화 범주에 들어갈 영화는 아니므로 한국에서는 디비디가 먼저 유통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극장서 영화를 본 게 구석기 시대였나 싶은 나니까,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다.) 여하튼, 제목이야 어떻든간에, 영화를 보고나서 이 영화를 보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평은 영화 평론가들이 어디엔가 자세히 해두셨을 것이라 짐작하고, 오늘은 무엇보다 이 영화가 시각적 효과가 뛰어난 영화라는 것만 강조해두고자 한다. 앞서 밝혔듯이, 에콜 드 파리에 대해서 조사를 하다가 발견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의 파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전쟁을 좋아하는 상관 탓에 다치지 않아도 되는 큰 부상을 얼굴에 입은 주인공 에드아르와 알베르, 그와 나이와 신분은 큰 차이가 있지만 좋은 친구였던 전우 알베르가 전쟁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큰 사기를 친다는 게 큰 스포없는 대략적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라, 소설이 얼마나 시각적으로 묘사를 했는지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 영화에서는 시각적 효과가 영화의 스토리를 살리는데 큰 역할을 한다.  주인공인 에드아르가 화가 지망생이라서도 그렇겠지만, 영화에서는 시각적 아름다움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에콜 드 파리, 20세기 초 모더니즘에 관한 어휘들이 넘칠만큼 등장한다. 

감독 자신이 에두아르가 사용할 가면을 만들기 위해서 Musée du quai Branly–Jacques Chirac 를 수차례 방문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실제로 브랑쿠지, 뒤샹, 피카소의 작품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특히, 에드아르와 소녀, 그리고 알베르가 세 명이서 사기를 치기로 결심하고 즐겁게 춤을 추는 장면에서 에드아르의 스튜디오를 자세히 비추는 데, 그가 쓰고 나오는 가면들, 그리고 비춰지는 조각들은 다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연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증거'들을 발견할 때 그것을 알아채는 기쁨이란!)  

그리고, 잠시잠시 비추는 당시의 파리 풍경과 카바레, 카페등의 장면에서는 '벨 에포크'와 '세기말'을 넘나드는 명암을 잘 살리고 있고, 또한 당시에 유행했던 아르누보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에드아르가 그리는 드로잉의 화풍은 에곤 쉴레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반면, 그가 전쟁 기념비를 구상할 때 사용한 구도와 색상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흑색 회화' 시리즈의 그것처럼 불길하고 짙은 흑백이 대비되게 나타난다.  

Egon Schiele (1890-1918), Self-Portrait with Chinese Lantern Plant (1912), oil on painting ; 32.2 x 39.8 cm, Leoold Museum


극중에서, 알베르가 에드아르 아버지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인 파울린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장면은 정원 앞의 철책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데, 연대도 좀 많이 내려가고, 소장처도 프랑스가 아니긴 하지만, 왠지 마네의 '철길'을 연상시킨다. 

Édouard Manet, The Railway (1873) oil on canvas ; 93.3 cm × 111.5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또한, 미술적 안목이 없는 이들이 벌이는 공공 조각 및 기념비에 대한 비판
도 신랄한데, 결국 공공 기념비란 '추하고 진부하고 비싼 것'이라야 한다고 에드아르가 말했다고 알베르에게 전하는 어린 소녀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이 영화는 짧은 트레일러들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렇게 밝고 경쾌한 의적단의 통쾌한 복수극은 아니다.  군데군데 코믹적 요소들은 있지만.  

우선 사랑하지만 원체 복잡해지기 쉬운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있다. 한번도 보통의 전쟁영화들처럼 직접적으로 전쟁을 자세히 묘사하거나, 참상을 자세히 비추며 목소리 높여 비판하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전쟁을 통해 이익을 얻는 자들의 추악한 탐욕을 보여줌으로써  결국 전쟁이란 지배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으켜 무고한 희생을 낳게 하는 야만적 행위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도록 해준다.  

영화 <맨 오브 마스크>는 한편으로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코믹한 유머를 잃지 않고, 또 한편으로는 그 절박한 시절에 폭발하듯 꽃을 피웠던 에콜 드 파리의 예술성도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일석삼조를 이룬 작품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5. 01:30 미술 이야기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화가는 인기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의 저서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화가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저서로는 Secret Knowledge 라는 책이 있다.  원제는 Secret Knowledge: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

이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이 된 걸로 알고 있는데, 국내에서의 인기는 모르겠지만, 해외에서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책이다. 물론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니고, 엄청난 논란도 일으킨 책.  

그 책에서 그는 1430년대 이후의 많은 유명 화가들이 실은 렌즈와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렸음을 밝혔다.  대중들은 '놀랍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제까지 천재라고 여겨왔던 베르메르나 카라바조와 같은 대가들이 실은 그런 도구와 기구를 사용해서 그렸었던 것을 알게 된데서 오는 '배반감'에 대한 토로도 많았다. 

거기에 엄청난 반대들... 데이비드 호크니를 반대하는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자신이 미술교사인데, 학생들에게 한 몇 개월만 가르치면 베르메르나 카라바조 같이 그릴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한다며 반증들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폭탄 발언에 대해서는 언론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표하며, 인터뷰 방송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David Hockney, The Lost Secrets of the Old Masters: camera lucida obscura (이 곳의 댓글도 반대글이 엄청나다)


많은 논란과 관심을 불러 일으킨 그의 Secret Knowledge 의 후속편 아닌 후속편으로는 2016년 출판된  A History of Pictures: From the Cave to the Computer Screen 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어쩌다가 내가 번역하게 되어서, 출판과 동시에 번역을 진행해서 책의 출판과 거의 동시에 국내에서도 출판된 바 있다. 그 제목하야 A History of pictures 한국어로 <그림의 역사>

국내판은 여기참조. (참고로 표지도 다 데이비드 호크니께서 직접 아이패드 사용해서 그린거라 책에서 언급하심)  


그 책의 내용에는 다음번에 기회가 있으면 가끔씩 언급할테지만, 요번에는 아이패드 관련 소식만. 

캔버스 위의 회화작품 뿐 아니라, 2차원의 모든 작품들 (사진, 드로잉, 영화의 스틸...)을 언급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제목에서도 'Painting'이 아닌 소문자 p를 사용한 'pictures'로 한 그.  그 책에서 자신은 새로운 기기가 나오면 반드시 사용해 본다고, 그래서 팩스가 나왔을 때에는 팩스를 이용해서 작품을 제작해봤고, 지금은 아이패드를 이용해서 작업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참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이 책이 대담집 형식이니까, 이야기 한 것의 기록이므로)  

그 때였다. 내가 '내가 데이비드 호크니 이름을 들은 게 언젠데, 그리고 도대체 팩스 나올때 작업을 할 정도면 나이가 어느 정도 되시나?' 하고 다시 찾아본게.  1938년 생, 만으로 해도 81세 되셨다.  그 때 대단하다 싶었다.  여하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굽히지 않는, 자신이 몰두한 연구의 결과 에 대한 신념.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열심히 연구했겠는가?) 

그리고, 멈추지 않는 탐구열과 성실성. 

물론 호크니는 매 번 옥션에서 고가로 작품이 거래되는 '유명' 작가임엔 분명하나, 대중적 기호에 있어서는 호불호가 있는 작가이고, 비평계 쪽에서도 그를 인기만을 추구하는 가벼운 작가라는 평도 적잖게 있는 터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그의 원근법에 대한 관심, 동양의 산수화에서 적용된 이동하는 원근법을 적용한 풍경화가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중에 미술사적으로는 어떻게 평가될까'라며 궁금해 하던 작가였다. 하지만, 그 때 그의 열정적인 탐구심과 노력과 성실성에 대해서는 깊은 경의를 품었었다. 

David Hockney, Garrowby Hill (1998), oil on canvas ; 152.4 x 193 cm, Museum of Fine Arts, Boston

David Hockney, Road to Thwing 제작 장면, 2006년


그런데, 오늘 기사를 하나 봤다. 팔순의 그가 아이패드로 작업해서 그 결과물인 스테인드 글래스를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에 설치하기로 했다는.  (뉴스는 여기를 참고)

David Hockney and The Queen’s Window. Photo by Alan Williams.

결국, 모든 논란을 재우는 것은 성실과 끈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번 욕하고 비난하기는 싶지만, 한 분야를 열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오랫동안 연구하고 실험하고 생산물을 만들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신념을 이야기 할 수도 있으나, 진정한 신념은 끈기와 성실한 노력과 함께 성장하고 확립된다. 안그러면 x고집.)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4. 01:30 미술 이야기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니 남이 쓴 글들도 많이 읽게 된다. 

그러고서 느낀 것으로는 요새 부쩍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 나부터도 짧은 글을 여기저기 쓰기도 했고, 이 블로그에도 일상 속에서의 단상을 이야기 하면서 언급하기도 했으니.

2018년 한국에서의 삶이 복잡하긴 복잡한가보다. 

하지만, 미술사에서 논하는 1960-70년대 정점을 이룬 미니멀리즘과 생활 속의 '미니멀리즘 (?)'은 많이 다르다.  

언제 한 번 나부터라도 조용히 앉아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우선은 그게 다르다는 것은 나라도 나서서 밝혀두고 싶었다.  앞으로도 미술이랑은 관계 없이 살 것인데 그게 뭐 대수냐 하면 정말 상관없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혹시라도 앞으로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많은 미술관에 자리를 잡고 있는 미니멀리즘 작품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관련 자료를 접할 기회가 올 때, 그렇게 잘못 잡힌 개념 때문에 정확한 이해에 방해를 받을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생활 속의 '미니멀리즘'은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이 맞고 '미니멀'까지만 쓰시는 게 적확하다는 것. 그리고, '미술에서의 미니멀리즘은 개념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는 게 낫지 않나 하는 게 개인적 소견.      

그러다 접한 전시 소식이 있어 소개. 가을에 전시한번 봐도 좋을 것 같아요. (뉴스에서만 접한 것일 뿐이므로, 개인적으로는 어떠한 관련도 없고, 전시회의 퀄리티에 대해서도 모릅니다만) 

서울대 미술관 전시관에서 미니멀리즘 작품의 전시회가 열린다네요.

【서울=뉴시스】 오완석 언더페인팅 (마이너스) Underpainting (Minus)2014 불투명 무반사 유리 위에 페인트 paint on groundnon-reecting glass 150x100cm 5점 each 150x100cm 5 piece set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3. 00:49 일상 이야기

원하지도 않았는데, 매일매일 날라드는 교훈적 문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self-help 혹은 자기계발서라고 분류되는 책도 읽어본 기억이 없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그렇게 날라드는 문구나 자기계발서의 대부분의 내용들이란 결국은 모두가 알고 있는 뻔한 '좋은' 내용이고, 사실 그게 실천이 안되니 문제고, 삶이 힘든거지, 거기 적힌거 몰라서 못하는 사람은 없지 않아? 뭐 대충..., 이런 생각이었다.  


“Success is the sum of small efforts repeated day-in and day-out.”

- Robert Collier

그런데, 어느날 날라든 이 문구는 왠지 좋다고 느꼈다. 

이후, 가끔 이 문구를 떠올리곤 하는데, 내가 뭔가를 조급하게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매일매일 해야할 일이 지겹다고 느껴질 때, 이 문구를 떠올리면 조급한 맘은 가라앉고, 지겨움은 참을성으로 바뀌곤 했다.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다.  그 도움이 되어 성취한 '성공'이 세간에서 봤을때 큰 '성공'은 아니라고 할 지라도, 내 스스로에게 '성취감'을 주는 충분히 '성공'적인 일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블로그를 시작한지 한달.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이 블로그가 '정착 (?)'될 때까지, 매일 하나씩은 일상적 얘기라도 하나씩은 올리자 맘 먹어봤다.  익숙치 않은 블로그에 매일매일 글을 적어 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로버트 콜리어 아저씨의 글귀를 떠올렸다.  (알고보니, 이 분, 20세기 초에 자기계발서로 베스트셀러를 남긴 분)

그러구서 한달, 지금 보니까 올린 글이 꽤 된다.  역시 매일매일 조금씩 빠뜨리지 않고 뭔가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게 '성공'이지 성공이 별거냐.  물론 앞으로도 저 문구가 약발이 안 먹힐때까지 계속해 보리라 생각해본다.  

앞으로는 '자기 계발서'를 한번 찾아 읽어봐야 할까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2. 07:00 일상 이야기

어느 날, 페이스북에 짧은 동영상이 올라왔다. 

거기엔 한 아버지가 어린 딸아이를 안아올린 채, 거울을 마주보고 자신이 하는 말을 딸아이에게 복창하게 하는 것이었다. 

I am smart, beautiful, strong.... 

이런 식의 자기 암시법은 여러번 봐온 것이라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지만, 특이하게 여긴것은 다음 두 구절이었다. 

"I am not better than anybody.  

Nobody is better than me."

일견 서로 상충하여 모순인 것처럼 들리는 이 구절은 결국 '자존감'과 '타인에 대한 존중'에 대한 요약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말을 매일 아침 복창하며 자라난 저 소녀는 타인에 대한 존중을 할 줄 아는 자존감 충만한 어른으로 자라겠구나 싶었다. 

갑질과 을질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는 요즈음, 아침마다 어린 아이에게 저 구절을 복창시키며 키워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나만 인상깊게 본 것은 아닌듯.  유튜브에서 'father to a daughter, you are not better than...'으로 찾아보니 나.왔.다.  

그래서 이렇게 링크를 공유.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 03:30 일상 이야기

お仕事頑張って下さい~~~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내가 관찰해 본 바로는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일했고 항상 바빴다.  그런데, 내가 느낀 바로는 한국에서 일본인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이미지는 있어도 미국인들은 왠지 열심히 일한다는 이미지는 없는 것 같았다.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건 그들의 태도 때문인것 같다.  

내가 잠시 일본에 있을 때, 내 방문의 목적이 이러저러하고, 일본에 있는 동안 이런저런 일을 하고 돌아갈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열 명중 아홉 명은 '아 그러냐~'고 하고 나서는, 꼭 “Oshigoto ganbatte kudasai (お仕事頑張って下さい)”라고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흐음... 물론 글로 배울 때 그 표현의 뜻이 '일 열심히 해주세요'라는 뜻이 아닌 것은 알고, 그냥 성공을 기원한다는 식의 가벼운 격려의 의미를 담은 인사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을테지만, 막상 매번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미 열심히 하고 있는데, 뭘 더 열심히 하라는거지?'라는 의문이 맘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곤 했다.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그 문화를 체득하는 데에는 원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라면 내게 무슨 말을 해줬을까?  격려의 의미를 담아 'I hope work goes well for you.'라고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Good luck!' 정도라고 말했을 것 같다.  내가 스케줄에 쫓겨 언제까지 일을 마쳐야 한다고 했다면, 대부분은 (그렇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Take it easy.'라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지금이 글을 쓰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부터도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열의 부족에 대해 의아해하며 한편으로는 무안했던 적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만약, 나보다 높은 연배의 선생님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중간에 보고서 격려 차원의 말을 해주는 경우였다면, '열심히 하라'는 말 대신, 'Keep up the good work.' 이라는 말을 해주었으리라.  친구들이라면, 바쁘더라도 여유를 잊지말고  '쉬엄쉬엄 해'라고 하거나, 선배나 선생님의 경우에는 보통  '(잘 하고 있어) 지금처럼만 해.' 정도의 말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 이면을 살펴보자면, 미국인들의 경우, 개인차는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쿨~한 것을 지향하는 문화라서인듯하다. 따라서, 자신이 할 일이 많아 무척 바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시간에 쫓기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반해, 짧은 기간 밖에 머물지 않아 일본인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받은 인상으로 그들은 자신의 열성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러한 열의가 타인에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결과, 밖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에는 커다란 온도차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미국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영어는 할 수 있어도 문화적 차이를 잘 모르는 일본인이 'Oshigoto ganbatte kudasai'를 직역해서, 'Please do work hard.' 라고 했다면? 미국인 친구는 자신의 일이 무엇인가 크게 부족한가 엄청난 반성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역으로, 일본어를 글로만 배운 사람이 일본인 친구에게 Take it easy 이나 Keep up the good work 라는 말을 섣불리 일본어로 직역해서 말한다면?  '落ち着いて'(진정하세요) 혹은 'もっと上手に働きなさい (일을 좀 더 잘하세요)'  일본인 친구 역시 자신이 뭔가 크게 일을 잘못하고 있다고 불안해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두 친구 모두 이직을 고려해야하나 걱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언어를 안다는 것과 문화를 안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언어는 통해도, 상호문화적 차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서로 오해를 사기가 쉽다.  처음 모든 것이 낯설던 외국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자, '사람 사는 것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 곤 할 때마다, 피부에 확 닿게 느껴지는 차이... 그것이 결국 언어(만)의 익숙함 위로 덮쳐드는 문화의 차이 때문이었다.  

언어가 문화의 차이를 만드는지, 문화가 언어의 차이를 만드는지 알 수 없지만, 따라서 나라마다 '예의바른 언행'이라는 것도 차이가 있다.  물론, 그러한 차이가 오해를 낳기도 하지만, 그 차이를 이해하고자 노력만 한다면 훨씬 더 풍요로운 경험과 폭넓은 사고가 가능해질테지만 말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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