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2019/01 글 목록 (3 Page)
2019. 1. 7. 17:26 미술 이야기

새해를 맞이해서 블로그에 글을 매일 올리겠다고 나름 결심했는데, 미술 이야기에 글을 하나 올리려면, 읽는 입장에서는 술술 읽힐지 모르겠으나~~  글을 올리는 입장에서는 상당한 조사가 필요하다.  일이 밀려 있다보니, 블로그에 올릴 글을 위한 조사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는 것이 현실.  

그런데, 또 아이러니 한 것이 연말에 지난 몇 달의 방문자 통계를 봤더니, 그렇게 조사를 해서 올린 글보다 지나가는 얘기로 올린 영화 하나에 대한 글 (맨 오브 마스크)이나 해외 미술 관련 사이트에서 본 뉴스에 대한 나의 소감을 간략하게 올린 글(뱅크시의 경매에서의 헤프닝에 대한 글)의 방문자 수가 압도적이다.  (사실 블로그 시작하고 처음에는 방문자수를 보는 방법도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는 계속 글만 올렸다. 이런 바부탱이~)  

이러한 두 가지 사항이 겹쳐지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그래도)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냥 사전 지식 없이 내가 재미있거나 좋다고 생각한 작품들을 하나씩 올려보는 거다.  물론 앞으로도 나름 조사를 해서 시간을 걸려서 쓰는 글들도 계속해서 올리겠지만, 매번 그런 자료에 근거한 글만 올리기보다는 사전 지식은 없지만, 그냥 내가 좋다고 생각되는 작품에 대해서 올려보는 시도를 해볼까 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러한 글을 쓰려는 시도가 의외로 좋은 아이디어일지도 모른다 여겨졌다.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이제까지 내가 미술 작품에 대한 글쓰기에 있어서 미술사적인 접근의 패턴 - 즉, 일련의 조사를 바탕이 선행된 글쓰기 - 에서 탈피해서 새로운 글쓰기에 대한 훈련이 될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우선 기존의 글보다는 직관이 중요하다는 점에 있어서 직관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블로그라는 공간이 어차피 독자와의 공감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했을 때, 내가 좋아하거나 재밌다고 느끼는 작품들에 대해서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앞으로 차차 내가 해당 작품들에 대한 조사를 더해서 그 작품이나 그 작품을 제작한 작가들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내 첫 감상과 직관이 그러한 '팩트'와 '배경'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재미있는 기회도 제공하리라~ 

어제 올린 원숭이 그림이 그 첫번째 예. 

앞으로 그런 글을 써볼 것이란 말씀~     

'예고' 아닌 '예고'적인 작품~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6. 00:46 미술 이야기

우연히 페북에서 발견한 그림....

Gabriel von Max, Drunken Monkey  

작자와 작품의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못하나 재미있어서 일단 올려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술먹으면 '강아지 (격조 있는 블로그이므로 좀 순화한 표현을 사용함)'라고 하지 않나?  서양에서는 다른 표현이 있는 것일까?  Gabriel Cornelius Ritter von Max (1840-1915)라는 체코 출신의 화가의 Drunken Monkey라는 제목의 그림.  구글링을 좀 해보니 원숭이를 잘그리는 화가였던듯 하다.  기법을 보아하니 정통적인 예술교육 받은 분 같고, 굳이 분류하자면, 일종의 '장르화'에 해당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르화 (genre-painting)'란 풍속화의 일종으로 귀족이나 교회가 주축이 된 대작과는 대조되는 소품 위주의 중산층의 오락을 위해 탄생한 회화장르인데, 17세기 네덜란드 중산층에 의해 많이 소비되었다)  일례로 '튤립 매니아"에 대한 글에서도 풍자화로 귀족들을 원숭이로 묘사한 그림을 하나 소개했다. (그 포스팅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교회나 궁전에 그려지거나 걸린 회화 작품은 신화나 종교적 주제를 다루고 있고, 대부분 교훈을 전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TV 프로그램으로 비유하자면, EBS나 BBC의 교양프로그램이라면, 장르화는 저녁시간 오락프로그램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 장르화가 David Teniers (1610-1690)의 "술집의 원숭이들" 시리즈로 제작된 작품들 중 하나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에서 풍속화에서나 19세기 가브리엘 폰 막스의 작품 속에서의 원숭이 둘 다 풍자와 해학의 의도가 다분하다.  거기에 특히 19세기 중반 다윈의 '종의 기원'을 발표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다윈의 학설에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도 짐작해본다.  

좀 찾아보니, 가브리엘 폰 막스라는 이 작가는 자신의 아이처럼 원숭이를 안고 그린 자화상도 있는 것이 있던데, 그렇다면 그가 실제로 원숭이를 키웠던 듯도 하지 않을까?  그리는 대상에 대한 애정을 담뿍 담아 자세히 관찰했음이 느껴지던데, 원숭이를 원체 좋아했었나보다. 그리고 그러한 그림의 내면에 면면히 흐르는 인간에 대한 풍자는 오브 가 코스로 담겨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연말연시 '지나친 음주는 몸에 좋지 않습니다.'라는 캠페인에 사용해도 손색없을 듯한.... 아니면, 이 사진 옆에 쌩쌩한 젊은이 사진하나 대비해서 넣고, '컨디*' 혹은 '헛개**'을 마신날과 마시지 않은 날.... 이렇게 비교하면서 숙취예방 내지 해소제 광고에 쓰여도 좋을 법한...  

세상에는 정말 모르는 화가들도 많고, 모르는 작가들도 많고나...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  그닥 유명화가는 아니었던 탓에, 표피적인 구글링으로는 자료를 많이 발견할 수 없다보니, 과연 그는 어떠한 화가였고, 어떠한 삶을 살았으며, 이러한 작품은 당시 화단에서 어떤 평을 받았을까? 궁금해진다.  시간이 나면 한번 찾아보고 싶어진다.   

Drunken Monkey라는 바가 현재 프라하에 있어서 검색하면 맨 먼저 뜨는 것을 보면, 성업중인듯 한데, 이것도 그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심지어, 한글로 '술취한 원숭이'를 검색해보니, 실제로 '술취한 원숭이'라는 이름의 홍탁주라는 생소한 술이 우리나라에 있다. 아~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먹거리 마실거리가 참 많고나...하는 생각도 함께 드는 날.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5. 00:40 일상 이야기

지난 해를 되돌아보면, 유난히 아팠던 기억이 많다. 10월 중순부터 감기 몸살로 시작해서 결국 목감기가 오래 가서 인어공주도 아닌데 목소리를 잃은 상태로 한달 넘게 지내다 결국 인후염으로 발전했다. 덕분에 한달넘게 이비인후과를 다니고 있는 상태.

솔직히 계획했던 일들을 손놓고 있는 상태인지라 다소 의기소침해진 것도 사실이다. 새해라면 무조건 밝고 희망차야 한다는 건 어쩌면 추석 상머리에서 가족들은 모두 행복해야한다는 환상인지도 모르지만, 약간의 소외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  (아래 락웰의 그림은 추수감사절에는 모든 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해야 할 것 같은 일종의 '중압감 (?)' 내지 '환상'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Norman Rockwell, Freedom from Want (1943), oil on canvas ; 116.2 × 90 cm, Norman Rockwell Museum, Stockbridge, Massachusetts

실제로,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기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행단계에서는 원체 시간을 정해서 진행하기 힘든 일이 많아서, 어떤 때에는 처음 목표일로 삼았던 기한을 훌쩍 넘기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예상외로 훨씬 빨리 끝나기도 하곤 한다. 

그래서 나름 깨달은 것은 처음 계획을 세운대로 진행이 안되더라도 그냥 꾸준히 하면된다는 것이다. 중간에 일이 지체된다고 좌절해서 내팽개치지만 않으면, 어느 순간 애당초 예정했던 기일 내에 목표를 달성하게도 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따라서, 약간 초조해진 내게 스스로 다독인다.

비록 건강상의 이유로, 또 연말의 모임들로 일정이 지체되었다고 낙심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꾸준히 하면된다. 여느때처럼 어느 순간 생각보다 훨씬 빨리 일이 휘리릭 진행되는 때가 올 것이다. 큰 틀안에서보면 그렇게 크게 늦은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라도 평상심을 가지고 꾸준히 하는 것이다.

약간 벗어나긴 하지만, 조금쯤은 상관이 있는 내용 하나를 덧붙이자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하곤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공부를 해도 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같을때에는 독에 물을 좀 더 자주 부으면 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중간에 포기하면 물은 금세 빠져버리지만, 좀 더 큰 바가지에 물을 담아 좀 더 자주 부어주다보면 밑빠진 독이라도 어느 정도는 물이 채워진다고.  

혹 아는가? 그러다 보면, 두꺼비가 밑빠진 독의 바닥을 막아주는 행운이 이 찾아올런지.  (그런 행운이 콩쥐에게만 찾아오란 법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요는 그런 행운은 물을 계속 채우려 노력하는 이에게만 찾아올 것이라는 것. 

새해 첫날 작심한 일을 제대로 못하고 사흘을 보낸 이라면 다시 작심하자. 작심삼일을 계속 하다보면 어느 정도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밑빠진 독이라고 낙담하지 말고, 좀 더 속도를 올려 좀 더 큰 바가지에 물을 담도록 하자규~ 

새해 맞이해서 또 건전하고 발전적인 내용을 하나 보태게 되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4. 17:24 미술 이야기

짧은 블로깅의 역사 속에서 초창기에 남긴 글 중에서 호쿠사이에 대한 글을 하나썼다.

제목하야, "해리 포터와 호쿠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물론 제목이야 읽는 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려는 의도가 다분했기에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야 않지만.... (그글을 읽으시려면 요기를 클릭!), 내용은 충분히 진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그 내용과 비슷한 기사를 발견해서 기쁜 맘에 링크를 걸어본다. 

"Older Versions of Hokusai’s ‘Great Wave’ Show Its Surprising Evolution Over Time"


다시 말하지만, 해리 포터의 교훈은 '타고난 마법사라도 훈련은 필요하다' (안그러면 빗자루 타다가 떨어진다.)   그리고 역사 속의 대가도 지리멸렬한 과정을 거쳐서 대가가 되었다.  따라서,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처음부터 잘하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꾸준히 훈련과 연습과 노력을 계속해야한다는 말씀!  새해부터 내용이 너무 계속 건전한가? ^^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3. 00:30 일상 이야기

일전에 글을 올린 적도 있지만, 티스토리 블로그 대신 녹색 블로그로 옮길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티스토리 블로그 담당자분이 내 글을 읽으셨나?  대대적인 개선을 감행하신다는 공지를 짜잔 올리셨군~ 

이사하는 거 보통 일 아닌거 같긴 하니까, 일단 티스토리와 네이버 두쪽을 병행해서 한 두어달 운영해보기로.  조금 번거롭긴 하겠지만, 어느 쪽이 구독률이 더 좋은지 비교도 할 겸...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2. 00:30 옛날 이야기

새해 인사를 주고 받는 연말연시. 친구 하나가 보내준 메시지에 아기 돼지 삼형제 그림이 담겨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처음 그 새해 메시지를 만든 이는 "아기 돼지 삼형제"의 이미지를 이용한 것이리라. 

아기 돼지 삼형제. 아기 돼지가 지은 집을 형상화한 옷을 입고 있다. https://www.londonnewsonline.co.uk/an-imaginative-retelling-of-the-classic-fairy-tale-three-little-pigs-go-west/

아기 돼지 삼형제 그림을 보고 아 2019년이 돼지해구나 알게되었고, 아기 돼지들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게 되었다. 맘이 즐거워진 김에 옛날에 그림책으로도 읽었고, 디즈니 만화로도 보았던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를 잠시 떠올려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왜 돌아간지에 대한 힌트는 디즈니 만화에 나와있다. 잔혹동화인가? ㅎㅎ) 세 형제는 각각 자신의 집을 짓기로 한다. 

벽에 '아버지'라고 적힌 팻말 위에 걸린 소시지 그림..... RIP 아부지....


첫째는 지푸라기로 집을 짓고, 둘째는 나뭇가지, 그리고 세째는 벽돌로 집을 짓기 시작한다. (맨 위의 그림의 돼지 삼형제가 입고 있는 옷은 각각의 집을 지은 재료를 나타내준다.)

당연히, 첫째 형의 지푸라기 집이 제일 먼저 후다닥 완성, 그다음이 둘째형의 가지를 엮어 만든 집이 완성된다. 막내의 집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짓는 집이라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렸고, 이렇게 더디게 집을 짓는 세째를 보며 두 형들은 막내의 요령없음을 비웃고는, 자신들은 띵가띵가 둠칫둠칫 파티 타임. 

누가 뭐라든 벽돌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 집을 짓는 막내 아기 돼지

이 때 배고프고 흉악하기 그지 없는 늑대가 나타나 이 형제들을 차례로 잡아 먹을 생각을 하는데.....   아기 돼지 세마리는 각자 자신의 집으로 후다닥 도망을 가서 숨는다.  이들이 몰랐던 것은 이 늑대가 폐활량이 엄청났다는 사실. 첫째의 집도, 둘째의 집도 큰 심호흡 후에 후우~~ 한방에 다 날라가버린다. 

첫째와 둘재 아기 돼지의 집이 홀라당 날아가버린 장면. 두 형이 이때까지 업신여기던 동생네로 도망가는 장면 


첫째와 둘째가 허둥지둥 세째의 집으로 도망을 가서 숨겨달라고 애원을 하고, 맘씨 좋은 세째는 자신의 집을 짓는 모습을 미련퉁이 밤퉁이 무시하고 놀렸건만, 그 두형을 자신의 집에 숨겨준다.

늑대는 다시 한번 자신의 폐활량을 뽐내~~려고 했지만, 이번엔 벽돌집이 워낙 단단하게 지어졌기에 이 아기 돼지들은 다 무사했다는 이야기.

사실 아기 돼지 삼형제에는...............내가 가끔 학생들에게도 들려주는 이야기 두 가지의 중요한 교훈이 담겨져 있다.  

1. '내가 쉽다고 여기는 일은 남들에게도 쉽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는...

2. 그리고 기초를 쌓기까지가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는 단계지만 가장 중요한 단계라는....

2019년 새해 시작에 이러한 교훈적인 그림을 받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새해에는 기초에 충실한, 그래서 처음에는 더디게 느껴지지만 단단한 벽돌집을 짓는 한해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준다.

아자 아자 아자~~~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1. 00:01 일상 이야기

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취하는 나이에 대한 태도가 왠지 좀 불편하다.  

프로그램의 주된 시청자 층이 10-20대의 젊은이라고 가정해서 그런걸까?  4-50 정도 된 출연자가 몇 나오면, '둘 나이 합해서 100세'라는 자막이 으레 붙기 마련이다.  그 정도야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마치 50대가 지나면 마치 살 날이 얼마 안남은 것 같은 대접을 과장되게 하는 것도 심심찮게 본다. 

나는 이러한 나이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희화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불편하다. 

첫번째로는 4-50대의 출연자를 두고 '노인네'라고 공공연히 부르거나 자막에 내거는 일견 불손한 태도는 어쩌면 일종의 코믹 릴리프 일 수도 있다.  평소에 4-50대의 소위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소위 '꼰대짓'을 했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그 세대들에 대한 꼬집기를 통해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이를 무기 삼아 자신보다 어리다는 이유만을 내세워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이를 누르려는 태도는 참 못난 행동이다. 나이에 따라 언어와 호칭이 달라지는 문화권에서는 완전히 사라지기 힘든 일인지.... 개인적으로는 논쟁이나 싸움에서 '너 몇살이야?'라고 상대방에 묻는 지점에서 그는 사실 항복의 백기를 흔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죽 다른 것으로 내세울 게 없으면 기껏해야 상대보다 먼저 태어난 것으로 상대를 누르려 하는 것인가?  이는 나이 들어가는 세대들이 경계해야 할 태도 중에 하나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런식으로 희화화 함으로써 젊은 세대가 실생활에서 구세대에게 당해온 것들에 대한 억울함의 표출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따라서, 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그런 식의 '나이 먹은 사람들'에 대한 홀대 (?)를 볼 때마다 현실에서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나이가 깡패'인 사회인가 생각하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런 의식은 결국 '나이 차별'을 야기하고 이는 어느 누구도 행복 할 수 없을텐데 싶어서 말이다.  

두번째로는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게 나이로 규정지어 나이 50이면 이미 '뒷방 노인네' 이라고 어느 정도는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불편하다. 다들 말로는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건 그렇게 가정해야 팔리는 상품을 선전하는 때 뿐인 것 같다. 현실적으로 4-50대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힘들다고 여기고,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실제로 50대 중반이면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일까? 주변에서 이 나이즈음해서 스스로를 인생을 다 살아낸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개인적으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시간적인 기한이 있어 어느 시간이 지나면 통과 의례처럼 지나는 것들은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아이가 태어나 어느 정도 되면 첫 걸음을 떼고, 어느 정도 되면 말을 시작하고 하는 것이라거나, 사회적으로는 초등학교 입학 후 졸업하면 중학교 입학과 졸업하는 것 등이다.  성장기의 어린이들은 나이 먹으면서 키가 크고 성인의 경우 노화가 진행된다.  사회적으로 어느 조직이든 먼저 그 조직에 들어가서 경력을 쌓은 이들에 대해서는 존중한다. 그건 어쩔 수 없고 어떤 의미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어디 사는게 맘 먹은대로, 시간표대로 진행되는 것이던가?  인생은 생각과는 다르게 수많은 우연으로 이뤄지는 것의 비율이 계획대로 이뤄지는 것보다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너무 나이 별로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삶의 시간표를 단정해놓고 지내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인생은 우리 모두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전제로 살지만, 그것이 언제 내게 닥칠지는 모른다. '이 나이에~' 라고 생각하고 남은 시간을 보내기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 너무 '젊다'.  '내 나이 10년만 젊었어도~'라며 한탄하며 10년을 더 산 사람은 10년 후에 '내가 20년만 젊었어도~'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나이에 또 다시 '내 나이 10년만 젊었어도~'라고 한탄하며 지낼 것이다.   

우리는 내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죽는 나이가 정해져 있다면, 연령대별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내야 할 지를 사회적 규범으로 대략적으로 규정해도 크게 문제될 게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것이 어떤 의미 인생의 묘미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으면서 말이다. 

'나이'에 연연해하지 않고 그렇게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치열하게 살다가 마지막을 담담히 맞이하는 것.  그것이 내일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100세 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대에 맞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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