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2019/05 글 목록 (2 Page)
2019. 5. 5. 00:10 일상 이야기

일자를 보니 이 '시험 문제 (?)'가 출제된 것은 2016년이니 그렇겠지만, 이 시험지가 인터넷 상에 돌아다닌 건 꽤 오래된 모양. 내가 읽은 포스팅에서 예전에 본적이 있다며 댓글 단 것을 봤지만, 난 며칠 전 처음 봤다.  처음 보자마자 문제 자체에 거부감이 !  들었는데, 답변이 명답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이 이 답변을 한 주인공이 당시 초등학교 3년생이라고.  과연 내가 초딩 3학년때 저렇게 사려깊고 인권 감수성이 발달해 있었던가?   

 

 

본문 내용:

난 행복한 사람

다음 그림을 보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그림 속의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5분간 그림을 보며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생각해 봅시다. 

문제 1. 그림 속의 장면을 자세하게 설명해 봅시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그림 속 하나하나를 상상하며 이야기해 봅시다. 

학생의 답변글: 굶은 아이가 길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배가 고파 바닥에 떨어진 빵가루를 주워 먹고 있다. 

질문2. 내 자신을 그림 속의 아이와 비교해 봅시다.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이유를 들어서 설명해 봅시다. 

학생의 답글: "남의 아픔을 보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같이 아픔을 해결해 주려하고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될 것이다." 

남의 불행을 보고서야 자신의 행복을 가늠할 수 있다는 발상자체가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질문이다.  그걸 5분이나 명상을 하라고 하다니!  그런데 어린 학생의 답변이 명답이다. 그 와중에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완벽한 어린 학생의 기특한 답변을 보고 나니, 그나마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 안도가 되는 상황이다.  질문의 발상이 어떤의미에선 (물론 나쁜 의미로) 참신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조금만 더 곰곰히 생각해보면, 주변에 그런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건 내가 예전 미국에 있을 때의 경험담이다. 

지인 부부와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이삿짐이 제 때 도착하지 않아서 애먹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을 때였다.

내가 사는 주로 진입했다는 소식 알려주는 전화 한번 놓쳤다고 이삿짐을 실은 트레일러가 이미 주를 벗어나서 돌아오려면 일주일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낭패를 겪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일이었다. 애당초 너무 저렴한 이삿짐 센터는 선택해서는 안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내게 남겨준 에피소드였다.  한 사나흘 동안, 학교는 벌써 개강을 했지, 그 사이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어, 타겟에서 싸구려 긴팔 옷을 몇벌 사야만 했던, 대략난감한 상황. 그 와중에 카디건이나 외투, 두꺼운 바지 등 다 있는데 새로 사기엔 고가의 옷가지랑 역시 다 이삿짐 속에 있는데 당장은 없는 간단한 주방기기 따위를 빌려주던 같은 과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조언을 해줘서 학교의 변호사랑 상담을 해보게 되었고, 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 오래 기다리는 일 없이 무사히 해결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삿짐을 배달하러 온 직원이라는 사람들이었다. 무슨 청소년 불량배들 같았던 두 명의 청(소)년은 책임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이 너무 대충대충 일을 했다.   건들건들 짐을 나르는 것까지는 뭐 개성이라고 봐주겠다 싶었고, 날라온 짐을 정말 아무데나 쌓아 놓는 것도 뭐 (저렴한 곳 예약한 내 탓이니) 애교로 봐준다 쳐도, 운반용 카트에 박스를 너무 높게 쌓아, 무리해서 박스들을 싣고 오다가 복도에서 와장창 무너뜨리기를 몇 번.  나르는 태도를 계속 보고 있자니 부아가 올라서 나중에 그 직원들에게 뭐라고 좀 나무랐다. 너무 무리해서 박스 쌓지 말라고, 그러다 자꾸 무너뜨리지 않냐고, 그러다 망가지면 어쩌냐고.  

처음엔 아무리 이삿짐 회사와는 문제가 있었지만, 배달하는 애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나 싶어서 팁을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성의 없이 일을 하고, 내가 항의를 해도 들은둥만둥 함부로 짐을 옮기길래, 나도 화가 많이 나서, 결국 일 끝내고 나서 '너희가 너무 일을 못해서 난 팁을 줄수가 없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제까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대꾸도 제대로 안하던 그 두 청년 중 한명이 갑자기 방언이 터졌다. 

'오~ 맨~ 빈 라딘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 무너뜨렸다고, 이슬람 인 전체를 다 탄압하는 경우!'라며 자신들의 회사가 이삿짐을 늦게 배달했다고 자기들한테 팁을 안주는 것은 부당하다며 막 항의를 했다. 그 비유가 너무 웃겨서, 나는 걔들이 알아들으리라는 기대는 없었지만, '밖에 나오면 너희들이 회사야.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해!'라고 하면서 애초에 주려던 팁의 절반 정도만 줬고, 걔들은 여전히 뾰루퉁 입이 튀어나온 상태로 돌아갔다는 얘기다. 

난 사실 지인들에게 얘기를 시작한 포인트는 이 10대 후반 혹은 기껏해야 20대 초반 어린 직원들의 이 대사에 빵 터져서 였다.  자기들이 잘못한건 생각도 안하고 비유를 해도 비유를 해도, 그렇게 정치적이고 범세계적 사건에 자신들이 받은 부당한 (?) 대우를 빗대 이야기 하다니!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부부 중 와이프, 갑자기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의 팔짱을 스을쩍 끼면서, 남편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짓더니, '우리는 미국에 와서 그런 나쁜 경험은 안해봤지.' 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 동포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살면서 나쁜 일 안 겪고 살아왔다는 일은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내 에피소드를 듣고 하는 리액션이, 내 고차원적이고 고상한 유머의 포인트를 못알아챈건 차치하고서라도, 겨우 남의 불행 (나는 솔직히 그게 그렇게까지 나쁜 경험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에 자신의 무사무탈에 안도하는 것이라니!  이후 난 그들 부부와 그다지 교류가 없이 지냈지만, 만약 계속 엮여 있다고 하더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을 것 같다. 어차피 내가 그런 얘기를 한다고 바뀔 감수성이 아니고 인격이란 하루 아침에 성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개의 인간은 깊이 들어가면 어차피 생존본능으로 똘똘 뭉친 이기적인 존재일 수 밖에 없고 나부터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변의 인간들이 다 불행한데 혼자서 행복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남의 불행으로 인해서만 자신이 행복한 상태임을 확인하는 것은 지극히 편협하고 위험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종류의 행복은 자기가 보기에 자기보다 더 '행복'해보이는 사람을 보면 깨지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5. 4. 00:10 미술 이야기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삼미신 (Three Graces)은 비너스의 수행단원들로 젊은 여성들에게 미와 매력과 활기를 부여해주는 역할을 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세분해보자면, 아글라이아 (Aglaia), 탈리아 (Thalia), 유프로진 (Euphrosyne)으로 각각 담당분야가 아래와 같다.  

아글라이아 (Aglaia) – 우아함 혹은 총명함

탈리아 (Thalia) – 젊음과 활기

유프로진 (Euphrosyne) – 환희 혹은 즐거움 

이들은 우아함, 미, 그리고 매력이라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미덕을 의인화한 것이다. ‘삼미신’은 오랫동안 많은 작품들에 자주 등장한다. 사실 여러가지 측면에서 삼미신은 이상적인 미학적 주제였다. 완벽을 상징하는 삼이라는 숫자와 아름다운 여인들이 셋이나 등장하는 그림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삼미신을 주제로 한 작품은 회화와 조각을 망라한다.    

삼미신이 등장한 작품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봄)’을 들 수 있다. 물질계와 정신계를 좌우로 나누고 그 둘을 통합하는 존재로서 비너스를 등장시킨 작품에서 삼미신은 당연히 신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

Sandro Botticelli La Primavera (Spring), (1477) Ufizzi, Florence

그 밖에도 보티첼리의 작품으로 “비너스가 삼미신과 함께 젊은 여성에게 선물을 주다’라는 프레스코 작품도 있다. 이 프레스코는 플로렌스 근교 레미라는 마을에서 1873년에서야 발견된 것이다. 메디치 가문의 일원의 결혼식 선물이라 추측된다. 

Sandro Botticelli (1445–1510), Venus and the Three Graces Presenting Gifts to a Young Woman (1486/1490), fresco ; 212 x 284 cm, Louvre  왼쪽의 네여인이 비너스와 삼미신이고, 오른쪽의 여인이 신부라고 추측된다.
Raphael, The Three Grace (1504) oil on panel ; 17 × 17 cm, Musée Condé, Chantilly, France  르네상스 3대가 중 한명인 라파엘의 소품 중에서도 삼미신은 등장한다. 가장 아름다운 성모상을 그린 화가인만큼 그의 삼미신에는 그의 성모상에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럽고도 온화한 느낌이 담겨있다.

르네상스 3대가 중 한명인 라파엘의 소품 중에서도 삼미신은 등장한다. 가장 아름다운 성모상을 그린 화가인만큼 그의 삼미신에는 그의 성모상에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럽고도 온화한 느낌이 담겨있다.   

Lucas Cranach the Elder, The Three Graces (1531) Musée du Louvre 북유럽 르네상스 작가 중 하나인 루카스 크라나흐 (부)도 삼미신은 빠뜨리지 않고 그렸다.

북유럽 르네상스 작가 중 하나인 루카스 크라나흐 (부)도 삼미신은 빠뜨리지 않고 그렸다.    

그 밖에도 고대부터의 회화나 조각 작품들도 많고, 아카데미에서도 즐겨다뤄지는 주제였다. 

1세기경의 삼미신, 폼페이의 프레스코

 

삼미신, 2세기 대리석 조각. 로마시대의 복제품.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Antonio Canova, The Three Graces (1813-16) marble ; 182 cm, Hermitage Museum

이 죽을놈의 인기! 삼미신의 인기는 도대체 식을줄을 모른다. 현대에 와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카소가 그린 ‘세 무용수’는 전통적인 삼미신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고, 니키드 상팔의 ‘삼미신’의 경우 여성작가의 해석이라는 면에서 참신하다. 

Pablo Picasso, The Three Dancers (1925) Tate Modern   피카소가 그린 ‘세 무용수’는 제목은 '무용수'이지만 전통적인 삼미신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Niki De Saint Phalle (1930-2002), The Three Graces, 3.7~4.6 m, 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 Washington D.C.  니키드 상팔의 ‘삼미신’의 경우, 기존의 삼미신 도상과 비교해봤을때, 훨씬 자유로와 보인다. 수영복 차림의 풍만한 세 여성이 마치 해변가에서 공놀이를 하거나 춤을 추는듯한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Male Gaze’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주문자나 제작자나 거의가 다 남성이었던 예술계에서 아름다운 미녀들의 앞면 측면 뒷면을 다 감상할 수 있는 삼미신은 도대체가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도상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5. 3. 18:34 일상 이야기

Albrecht Dürer, The Large Piece of Turf (1503) Watercolor, 40.8 x 31.5 cm, Albertina

요새 들어, 사람은 죽을때까지 배워야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요즘들어 베란다 화원 가꾸기를 취미로 발전시켜볼까 생각하고 식물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꽃 이름이나 관엽수의 이름을 묻는 포스팅을 볼때마다 클릭해서 확인해보면 10에 9, 아니 100에 99는 모르는 식물이다.  더 절망적인 사실은, 식물에 조예가 깊은 누군가 답글을 단 것을 읽으면서 그 식물의 이름을 앎과 동시에,  '아, 어차피 이 이름 내가 곧 까먹겠구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된게 몇 개를 제외하면 학명을 그대로 딴 거인지 어려운 이름 투성이다.  한글로 된 이름도 어떨때엔 생김새랑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아 연상암기를 할 수 없다. 히잉. 난 그래도 계속 꽃과 나무를 늘 좋아해왔다고 자부해왔는데...  걸핏하면 용량부족하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내 저렴하고 용량 적은 핸드폰 때문에 일전에 깔았던 네이버 앱도 지워버렸지만, 그 앱이 깔려 있던 그때도 찍어서 검색해보면 죄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 뿐이긴 했다. 

예전 어떤 문인이 '이름없는 들풀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식의 표현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하는 요지의 글을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세상에 이름없는 들풀이나 꽃은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라면 모름지기 자신이 소재로 삼고 있는 글에 올릴 식물의 이름 정도는 조사를 해서 파악하고 있어야지, 어떻게 그 이름 하나도 알아볼 생각않고 글을 쓸 생각을 할 수 있냐는 요지의 글이었다.  글을 읽을 당시에는, 글을 쓰는 이가 마땅히 지녀야 할 자신의 글의 내용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서 깊은 공감을 하며 읽었는데, 요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 '이름없는 들풀'이라고 쓴 작가는 분명히 찾아봤는데 막상 글을 쓸 그 순간 까먹은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하게 된다. 

새로 시작한 '원예' (라고 하기엔 너무 미미하지만) 취미 탓에 떠오른 생각.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5. 3. 18:27 일상 이야기

작년 방울토마토 씨앗과 배양토가 봉투에 들어있는 것 키워보고 열매을 수확하고서 '원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있다.  이번 봄에는 난생 처음 본격적으로 '파종'이란 것을 해본 것이 지난 4월 28일. 

인터넷에서 어림짐작해서 주문한 상토, 화분 얼추 맞아 떨어졌고, 허브는 마조람, 세이지, 레몬밤, 허브딜, 페퍼민트, 라벤더, 카모마일, 야로우.  다들 처음 보는 씨들인데, 씨라고 안했음 먼지인줄 알고 싹싹 닦아버렸을 크기의 작은 씨들이라 과연 얘들이 싹을 틔우긴 할건지.... 걱정이 됐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초근접 확대를 해야 겨우 보낼 크기이긴 하지만 새싹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맘 착한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새싹들.  화면에선 잘 안보이지만 측면에서 보면 이 작은 아이들이 또 햇빛이 들어오는 쪽으로 다 고개를 향하고 있다. 

아울러, 방울토마토 씨도 좀 더 사서 뿌리긴 했고, 파종하는 날, 예전에 뿌려둔 파프리카 씨가 막 자란건 화분이 너무 작다는 지적들이 있어서 분갈이 해줬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사시사철 길고 가늘게 계속 몇개씩 열리는 방울토마토는 아직 열매가 맺혀서 그거 다 따고 분갈이 해주려고 이번엔 안했다. 그리고 잘자라는 파프리카에 의욕 뿜뿜해서 다시 슈퍼서 파프리카 사서 먹고 남은 씨들을 모아놓고 보니 그 수가 많아서 난처하던 차에, 흙주문한데서 주문 안했는데도 보내준 계란판 같은데다가 뿌려놔줬다.  

그런데, 방울토마토 싹도 나고, 파프리카는 붐비는 데서 너른데로 오니 당장 꽃이 폈다. 

방울토마토 새싹들
파프리카 꽃

5mm 남짓한 새싹들이 살아보겠다고 햇볕 드는 창쪽을 향해 일제히 그 작은 고개를 쪼옥 빼고 있는 것을 보니 사랑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정말 생명의 신비함이라는 진부한 표현 외에 달리 더 할 말이 없다. 

오늘은 사진을 안찍었지만, 허브들도 조금씩이지만 잘들 자라고 있는 것 같다.  가성비 갑인 취미를 찾고 계시다면 식물 키우기를 적극 권하는 바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5. 2. 00:10 미술 이야기

한동안 뜸했던 '내 맘대로 작품보기'

Elena Yushina

이번에도 우연히 페북에서 발견한 그림.  사실 이 작품의 작가에 대해 알아내는데 조금 애를 먹었다. 그 페북 주인장이 작가 이름을 잘못올려서.  좀 더 검색하다가 우크라이나 작가들을 소개하는 한 웹사이트에서 그 작가의 이름이 Elena Yushina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 우크라이나 출신의 작가는 1958년생의 생존 작가이고 그 어느 웹사이트에 따르면 '인상주의자'로 분류되어 있다.  그 웹사이트에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게재되어 있던데, 전반적으로 멜랑콜리하다고나 할까 감상적이라고나 할까.  아름답게 채색된 작품들이긴 한데, 뭔가 호기심이 일어나는 작품들은 아니라는게 내 솔직한 감상이긴 했다. 하지만, 봄과 여름의 중간 햇살이 따사함과 따가움 사이에 있는 길목에 부합해서일까 ?  이 창 그림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해서 내맘대로 써보기로 맘먹게 되었다. 


내 관심사가 관심사다 보니, 똑똑한 페북은 계속 '이것도 네가 좋아할 거 같아'라며 미술 관련 사이트를 권해주곤 하는데, 그런 계정들 대부분이 작품들에 대한 정보나 의견 없이 그냥 그림들만 하나씩 올리는 곳들도 많다.  덕분에 처음보는 작품들을 접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고, 지금 이 글도 그 덕분에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페북과 핀터레스트 등에 수도 없이 올라오는 작품들은 대부분 다소 감상적인 주제에 인상주의와 사실주의적 화풍이 적당히 섞인, 장식적인 회화 작품들이 많아 커다란 감흥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작가의 작품들도 아름답긴 한데, 다른 작품들은 그런 많은 그림들과 유사한 것 같긴하다.  이 창문 그림은 결정적으로 찻잔 옆에 그려진 나비 한마리가 감성을 더해준다고도 할 수 있고,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치우치게 되는 미묘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감상적과 감성적, 결국 한끗 차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창인데, 사실 회화 작품과 창의 관계는 역사가 깊다. 

폼페이 유적에 그려진 창문을 그린 벽화 Example of First Style painting, House of Sallust, Pompeii, (B.C. 2nd C)

 고대에 건축기술이 아직 덜 발달되어 창을 빵빵 뚫지 못하던 시절, 그 갑갑한 심경을 달래고자 사람들은 벽에다 창을 통해 바라본 듯한 바깥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근법이 발전하면서 회화와 창의 메타포는 더욱더 발전을 하게 되었고, 낭만주의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앙리 마티스 등 현대의 많은 작가들이 창을 즐겨  그리곤 했다.  

개인적으로 엘레나 유시나의 창 그림을 보고 두 작품이 뇌리에 떠올랐다.  둘 다 미국 국적의 작가들로, 하나는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1882-1967)이고 또 하나는 앤드류 와이어스 (Andrew Wyeth: 1917-2009)이다.    

Edward Hopper, Evening Wind (1921) Etching, Plate: 17.6 x 21 cm ; Sheet: 24 x 27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먼저 에드워드 호퍼의 경우, 창을 즐겨 그린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의 소품 중에서, 엘레나 유시나라는 작가와 유사한 분위기의 '저녁 바람'이라는 에칭 작품이 있다.  자신의 침대위로 오르려던 나체의 여인이 창에서 불어들어온 바람에 문득 창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순간을 포착한 것 같은 작품이다.  여인은 창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어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왠지 공허하고 쓸쓸한 표정일 것 같다.  감상적 혹은 감성적 작품이다. 다만 이 작품의 경우, 매체의 특성상 흑과 백만으로 표현되어 있고 그녀의 머리칼과 벽면의 검은 색을 표현한 펜의 선의 변주와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 창 밖의 풍경의 공허함이 전체적으로 쓸쓸한 분위기의 효과를 잘 살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Andrew Wyeth, Wind from the Sea (1947), tempera on hardboard ; overall: 47 x 70 cm, framed: 66.4 x 89.5 x 7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엘레나 유시나의 창을 보고 처음 떠오른 작품은 사실 앤드류 와이어스의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작품인데, 구도나 분위기 면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보다 좀 더 그녀의 작품과 근접하다.  물론 아래에서 창을 올려다 본 듯한 엘레나 유시나의 그것에 비해, 이 그림은 그냥 성인 어른이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본 각도라는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그녀의 창이 찻잔에 내려앉은 나비때문에도 그렇지만 좀더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라면, 와이어스의 창은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다소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모습이다.  오랫동안 쓰지 않던 다락방의 창을 환기를 위해 열었을 때의 모습을 그렸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이겠지만, 낡고 삭아버린 레이스 커튼이, 제목대로라면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계산되지 않은듯 펄럭이는 거의 투명한 커튼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별 주제 없이 그려진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볼 때마다 다시 보고 싶은 느낌이 든다.  바람이나 커튼이 계산을 할수 없으니 계산되지 않은 듯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저 작품은 스냅 사진이 아니라, 작정하고 시간을 들여 그린 회화 작품이고, 그 어떤 순간을 포착하여 선택한 것은 화가일테니, 그렇게 계산되지 않게 보이는 것도 작가의 실력이다.  

사실 앤드류 와이어스의 대표작으로는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작품으로 이 작품 덕에 거의 미국 국민 화가 반열에 들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작품이 훨씬더 감동적이다.  

Andrew Wyeth, Christina's World (1948) Egg tempera on gessoed panel, 81.9 cm × 121.3 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City

엘레나 유시나의 창을 바라다보면 따뜻한 봄날의 바람이 볼을 어루만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면서, 새로운 날들에 대한 희망이 내게 불어드는 것 같다면, 앤드류 와이어스의 낡은 레이스 커튼 사이로 바깥이 내다보이는 창은 그다지 눈부실 것도 없고 어쩌면 때로는 냉혹하게 들이닥칠 수도 있는 인생의 파고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겸허함과 의연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같은 창 그림인데 이렇게 다르게 느껴진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5. 1. 00:00 미술 이야기

전시명: <대안적 언어 –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기간: 2019.4.12~2019.9.8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작품수: 회화, 조각, 사진 및 아카이브 자료 90여점

 

전시회 소개를 해달라는 열화같은 (?) 요청에 힘입어 좀 신경써서 예술계 뉴스를 살펴보다 발견한 전시회. 다시 말하지만, 내 블로그가 전시소개 블로그라고 하기엔 전문성이 좀 떨어진다.  시작한지 한참 지난 전시회 소식을 전하기 일쑤고, 그것도 엄격히 선별......은 아니고 지극히 개인 취향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리고 소개하는 전시를 내가 미리 보고 올리는 것도 아니다.  적고보니 너무 내 맘대로다. 어쨌든 그러니 감안하고 읽어보시란 말씀. 

오늘 소개할 전시회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4월 14일부터 시작된 <대안적 언어 –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이다.  (전시는 이미 시작했지만, 앞으로 한참동안 계속 하니까, 전시소개 글로서 유효한 걸로~)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개하는 아스거 욘 (Asger Jorn: 1914-1973)이라는 작가는 대부분의 한국 미술애호가들에게 생소하리라 짐작된다. 덴마크 출신인 그는 코브라 그룹 (CoBrA)라는 그룹의 대표작가로도 꼽히지만, 이 코브라라는 그룹 역시 그렇게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룹은 아니다. 여기서 ‘코브라’란 뱀이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코(Co)펜하겐, 브(Br)뤼셀, 그리고 암(A)스테르담의 머리 글자를 따 명명된 명칭이다. 그래서 영어로 표기할때, 대문자와 소문자가 들쑥날쑥하게 CoBrA이다. 1948년 결성되어 1951년 해산하여 단명한 미술 운동 그룹으로 넓은 의미에서는 전후의 아르 앵포르멜에 포함된다. 이 그룹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로는 아마 카렐 아펠 (Karel Appel: 1921-2006)일 것이다. 카렐 아펠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계기는 1955년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 개최되었던 <<새로운 세대 (The New Decade)>>라는 전시회에 소개되면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회에서는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장 뒤비페 (Jean Dubuffet), 그리고 피에르 술라주 (Pierre Soulages) 등 22명의 유럽의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된 기념비적인 전시회였다.  전후 예술의 중심지로 급부상한 미국에서 전시회를 했던 유럽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알려질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아스거 욘은 반골적이고도 혁명투사 같은 면모를 지닌 작가였고 사회참여적 작가였다. 1964년 구겐하임 어워드(현 구겐하임 펠로우십)의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하는 의사를 전보로 보냄으로써 그의 예술 활동과 언행이 일치하는 인물임을 보여주었다.

 

아스거 욘이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 선정 소식에 구겐하임측에 보낸 전보


 

아스거 욘이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 선정 소식에 구겐하임측에 보낸 전보 내용 번역:

니 돈 가지고 지옥에나 떨어져! 빌어먹을 것들아.   

상은 거부한다.

상 달라고 한 적 없다. 

격조라곤 없이 너희들의 떠들썩한 인기나 얻으려고 원치 않는 행동을 하는 어중이떠중이 예술가가 되기를 거부한다.

나는 대중들의 동의를 원하는 것이지, 웃기지도 않는 너희들의 게임에 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스거 욘의 행보는 당시 유럽 사회의 유행하는 경향을 반영하고 있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제도와 권력에 반발하는 태도를 일관하였다. 기존 아카데미의 고루한 교육과 틀에 박힌 작법을 배격하며 어린아이나 정신병자들의 작품과 같은 자유롭고도 순수한 작품을 지향했다는 면에서는 아르 앵포르멜 작가들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또 국가라는 틀 속에 갇히지 않은 국제적 연대와 창의성을 중시하는 사상은 코브라 그룹 작가들과 공유하고 있다.  또한 예술이 상품으로 전락하는 상황에 반발하며 예술과 일상생활의 접목을 꾀하는 태도는 일찍이 바우하우스에서 추구된 바 있는데, 그 역시 이러한 사상을 견지하였고 이는 SI (Situationist International)라는 그룹의 설립으로 이어진다. 이후 그는 미국과 소련으로 양분된 냉전시대의 논리에 자신이 속한 북유럽 전통예술을 연구함으로서 제3의 대안적 관점을 제공하고자 하였는데, 이를 위해 스칸디나비아 반달리즘 비교 연구소 (Scandinavian Institute of Comparative Vandalism)’ 를 설립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 유명한 ‘구겐하임 텔레그램’은 물론 ‘스칸디나비아 반달리즘 비교 연구소’의 방대한 북유럽 민속 예술의 도상 기록 사진이 공개된다고 한다.  매번 같은 음식만 차려진 밥상 같이 인기작가들의 전시만 계속되는 미술계에서 이렇게 덜알려졌으나 흥미로운 작가의 전시가 열린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무제(미완의 형태 파괴)> 122×97cm 캔버스에 유채 욘미술관소장 1962 /국립현대미술관
 ‘세속의 마리아’ (1960)
<무제 (데콜라쥬)> 64×49.1cm 상자에 부착된 찢어진 포스터 욘미술관소장 1964 /국립현대미술관

 

 ‘그려진 시’(파르파와의 협업) (1954)

posted by 잠자는 집시
prev 1 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