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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5. 04:46 미술 이야기

한동안 비트 코인 신드롬에 대해서 튤립 매니아 (Tulip Mania)와 비유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오늘은 새로운 시리즈 전에 잠시 단편극 형태로 튤립 매니아와 미술사와의 관련에 대해서……


"튤립 매니아" 혹은 "튤립 광풍"이 용어를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면, 소위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라고 일컬어지던 시기, 희귀 품종의 튤립의 구근에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어 상상을 초월한 고가로 거래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렇게 과열된 투기로 일대 열풍이 일었다가, 1637년 갑자기 가격이 폭락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산하거나 빚더미에 올랐다고 한다.

1636년~37년 사이의 튤립 가격 그래프


이 사회적 현상에 대해, 역사상 최초의 투기가 관련된 버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특정 품종의 구근 하나의 가격이 크기에 따라 3,000~4,200 길더나 되었다는데, 이 가격은 당시 숙련된 기술공의 1년치 월급이 불과 300 길더였다니, 10년치 월급을 훨씬 웃도는금액이라고 한다.

작가 미상 17세기 수채화 Semper Augustus, tulip mania 당시 가장 비쌌다고 알려진 튤립의 종. 이게 사실은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돌연변이 종이라고…

 

Admirael van der Eijck from the 1637 catalog of P.Cos., sold for 1045 guilders on February 5, 1637. 1637년 1045 길더에 판매된 튤립. 이게 거의 튤립 광풍의 끝자락의 꽃. 같은 해 열기는 폭삭무너지게 되니까.

Admirael van der Eijck from the 1637 catalog of P.Cos., sold for 1045 guilders on February 5, 1637. 1637년 1045 길더에 판매된 튤립. 이게 거의 튤립 광풍의 끝자락의 꽃. 같은 해 열기는 폭삭무너지게 되니까.

이런 투기의 배경에는 우선 식물학의 발전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카롤러스 클루시우스 (Carolus Clusius)라는 분이 일찌감치 왕실의 개인교사로 일하다가 라이덴 대학의 식물학 교수로 임명되면서 식물학 연구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는데, 그 중 그가 몰두한 분야가 튤립의 연구였다고 한다. 그렇게 연구에 몰두하던 중, 그는 튤립에서 일종의 돌연변이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귀족들 사이에서는 수집벽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밝혀진 바로는 그 돌연변이로 알려졌던 희귀품종은 사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그런 모양이 나온 거라고 하는데, 당시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Carolus Clusius 1585

그리고 웃돈이 붙게 된 배경에는 튤립의 독특한 생태계도 한몫을 했다. 튤립이라는게 원체 씨를 뿌려서 제대로 된 꽃으로 자라는데 무려 4~5년이 넘게 걸린다 한다. 그리고 그렇게 키워도 씨를 받아낸 엄마 꽃과는 다른 모양의 꽃으로 자라는 게 또 함정. 그래서, 보통의 경우, 구근을 받아서 그 구근에서 꽃을 피워야 엄마 꽃과 비슷한 모양이 될 확률이 훨씬 높고, 자라는 시간도 훨씬 단축이 된다고. 그렇지만, 구근이라는게 한 꽃에서 그다지 많이 나올 수 없는 것이고, 구근에서 싹이 나서 잎과 꽃으로 완전히 자라는데 시간이 걸리니, 거기에 웃돈이 막 걸리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구근을 거래 하는 시장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밝은 태양 아래, 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꽃밭에서 우아하게 이뤄지는것도 아니었다. 거래는 음침하고 은밀한 주점의 뒷방, 담배연기로 가득한 밀실에서 암암리에 은밀하게. 그렇게 음성적인 거래였기에, 나중에 탈이 났을 때, 그 거래에 대한 보상을 받을 기회도 적었다.

어쨌든 한 십수년 네덜란드 전역에 튤립 광풍을 일으키다가 무슨일인지 갑자기 거품이 쫘악 빠지면서 갑자기 가격이 떨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서 판돈을 미리 맡겼던 중산층의 매수인들의 가정이 줄줄이 도산하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고! 국가에서 빚을 탕감하는 정책도 폈다고는 하는데, 피해자들을 다 구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동안 뜨거웠던 비트 코인의 열풍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튤립 매니아, 튤립 광풍이 역사적으로 되풀이 되는 건 아닌가 염려하는 것이었으리라.

Jan Brueghel the Elder, Flowers in a Wooden Vessel, 1603 Oil on Wood ;98 x 73 cm, Kunsthistorisches Museum

위의 그림은 유명한 화가 피터 브뤼헬 더 엘더의 아들이었던 얀 브뤼헬 더 엘더의 꽃 정물화. 아래는 아이러니하게도 튤립 광풍에 대한 희화화를 그린 브뤼헬인데, 이번엔 피터 브뤼헬 더 엘더의 손자이자 얀 브뤼헬 더 엘더의 아들인 얀 브뤼헬 더 영거의 작품. 아래의 풍자화에서는 상류층의 귀족들이 얼빠진 원숭이들로 묘사되었는데, 이들도 하나같이 튤립에 열광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중 더 얼빠진 원숭이가 튤립 꽃밭에 오줌을 누는 바람에 붙잡혀서 혼나고 있는 장면도 보이고 있다.

Jan Brueghel the Younger, A Satire of Tulip Mania (ca. 1640) 얀 브뤼겔 더 영거가 그린 ‘튤립 광풍의 풍자’화 (1640년경)

 

얀 브뤼겔 더 영거가 그린 ‘튤립 광풍의 풍자’화 (1640년경), 세부

 

Gerritsz Pot, Wagon of Fools (1637) 바보들을 태운 마차라는 제목의 이 작품을 보면 마차위의 인물들이 튤립을 잔뜩 가지고 있거나 머리에 꽂고 길을 떠나고 있는데, 상황상 이 길은 죽음으로 이르는 길이라 예상된다.

위의 그림은 튤립 광풍에 맥없이 휘둘린 사람들에 대한 풍자화. ‘바보들의 마차’라는 제목의 작품속 인물들을 보면 마차 위의 인물들은 튤립 열풍에 휩싸여 흥청망청하고 있고, 그 마차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인물들도 보인다. 그 마차가 향하고 있는 곳은 죽음의 세계. 결국 멸망의 길로 기꺼이 가고 있는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화이다. 이 작품이 그려진 것이 1637년 인걸 보면, 튤립 가격의 폭락이 있고 나서 그려진 그림일까? 아니면, 그 폭락의 직전, 폭락을 예견한 그림이었던 것일까?

Hans Bollongier (1623-72) Still Life with Flowers (1639)

위의 그림은 돌연변이 종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젬퍼 아우거스터스 튤립 Semper Augustus tulip 으로 가득 찬 화병이 그려진 작품이다. 이 이상 확실한 인생무상, ‘바니타스’* 교훈의 화병이 또 있을까 싶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튤립 시장이 폭락했던 1637년 동안은 꽃의 정물화의 제작이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거슨~~ 꽃들을 볼 때마다 튤립 때문에 돈을 잃은 사람들이 맘이 너~무 아파서 꽃 그림 조차도 보고 싶어하지 않아서였다고.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은 역사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서 지난 과오는 반복해서 범하지 않는 슬기로운 존재일까? 앞으로 비트 코인의 열풍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어차피 소심한 나는 그냥 궁금해만 하겠지만.

 

*바니타스 정물화에 대해서는 글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기회에 따로 다뤄야겠다. ^^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4. 01:00 미술 이야기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전시회에 관련해서 게재했던 글입니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 展 - 붓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블라맹크의 열정

https://www.sacticket.co.kr/SacHome/playzine/pzArticle?searchSeq=3627

지난 전시에 대한 글이기는 하나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블라맹크 작품들이 소개되었던 전시회였기에, 글로나마 좋은 화가 하나 소개 더 하자하는 맘으로 올립니다. 


붓의 흔적이 생생히 살아있는 작품들의 경우, 화면을 납작하게 표현해버리는 사진만으로는 그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  혹시나 표현주의적인 작품의 전시회를 보실 기회가 있으시다면 반드시 '직접' 가셔서 한번 전시를 보실 것을 강추합니다. 

가을이 가기전 주말에 미술관 나들이 나가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3. 00:30 일상 이야기

오늘은 페북에 연결하다가 우연히 페북에서 질문을 올린 것을 발견하였다. 
"당신은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신선한 질문이다.  한국에서 과연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일까? 새삼 궁금해진다.  내가 짐작하기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시골에서 취재를 하는 오락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만 봐도 젊은 사람들은 다 대도시로 떠나고, 고향을 지키는 것은 나이가 든 노인층 밖에 없다고 하니 말이다.  서울에서 일자리를 잡은 사람들 중에서 서울 토박이도 사실상 얼마나 되겠는가?  

나만해도 태어난 곳과는 다른 곳에서 살고 있고, 지금 여기 뿐 아니라 이곳저곳 많은 곳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는 걸.  그러다가 예전 비행기에서 만났던 분과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텍사스 오스틴에 살고 있었고. LA로 향하는 비행기였던 것 같다.  

비행기 옆자리에는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여자분이 타고 있었는데, 원래 미인이기도 했지만, 눈이 마주쳤을 때 미소짓는 모습이 무척이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자분이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옆자리에 앉은 그 분이 왠지 긴장하는 듯 해서 다시 살펴보니까, 한손에는 묵주를 들고 또 다른 한손으로는 팔걸이부분을 꽉 쥐고 있었다.  아무래도 비행기  타기를 두려워하는 분이군. 이렇게 생각하고, 그러냐고 물어보니 수줍게 웃으면서 그렇다고 했다.  내가 괜찮다면 내 손을 잡아도 된다고 했더니, 괜히 잡으랬나 후회될 정도로, ^^;;; 내 손이 으스러질 정도로 꼭 움켜잡았고, 드디어 이륙을 마치고 나서야 꼭 쥔 손을 풀고서는 무안한듯 내눈을 보고 웃었다.      

덕분에 맘의 거리가 많이 가까워져서였을까?  비행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텍사스의 작은 도시 출신이라는 그 분은 소위 하이스쿨 스윗하트, 즉 고등학교때의 커플이었던 분과 결혼해서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다 했다.  심지어 자신은 물론 남편 쪽 친척들도 거의 모두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5마일 내의 거리 안에서 살고 있다고.  친척들이며 가족들도 다 근처에 살 뿐 아니라, 자신들 부부는 둘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해서 (We enjoy each other's company.라는 표현도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평소에는 그다지 여행도 멀리 하지 않고, 그래서 살면서 비행기를 탈 일은 전혀 없었다 했다.  이번에는 일가 친척 중 유일하게 멀리 있는 친척 하나가 LA에 살고 있는데, 이번에 생일을 맞아 'Surprise Party'를 해주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자기가 대표로 그 모임에 가는 거라고.   


나는 내 주변에 이렇게 태어난 곳에서 모든 친척들이 모여 사는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이라 신기해 했고, 그녀는 그녀대로 나처럼 태어난 곳은 고사하고 태어난 나라도 아닌 곳을 여기저기 다니는 인간을 처음 만났으니 신기해 하면서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미국이라는 넓디 넓은 나라에 태어나서 살면서 삶의 반경이 5마일이었던 여인과, 비슷한 또래로 살면서 한국에서도 태어난 곳이 아닌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생활을 하고, 또 미국이라는 전혀 다른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생활을 하는 나.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면서.  서로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또 다른 삶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 이러한 감정을 교류하며 즐거운 만남을 가졌고, 이후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만남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전혀 다른 인생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해 하며 '만약 내가 다른 삶을 선택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가 있었는데, 제목이 떠오르지 않네.  과연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택하게 될까?  

오늘 우연히 던져진 질문 앞에서, '나는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지 않지만, 본인 뿐 아니라 온 가족이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는 어떤 여인을 난 만난 적이 있다'라고 대답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2. 00:30 미술 이야기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푸훗~ 하면서도 과연~ 이라며 즐겁게 공감할 한 컷 소개.

이제 인플레를 고려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술 시리즈도 끝났겠다, 이젠 이 그림에서 단순하게 나타낸 사조별로 한번씩 훑어볼까 생각 중.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1. 00:30 일상 이야기

컨텍스트에 따라 사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는 것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한 컷

특히, 중간의 한 컷을 이해하는 당신은 우후훗 현대미술 전문가~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31. 00:30 미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 계속~ 쭈욱~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가요 순위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봐 왔고, 오늘 드디어 대망의 1위 발표~  

두구두구두구두구  짠~~~ 


인플레 고려 1위) attribut ed to Leonardo da Vinci, "Salvator Mundi" (ca.1500)  $450.3-million (Christie's 2017 auction) $450.3-million (약 5,138억 상당)

예수 그리스도가 왼손에는 수정구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축복을 내리는 제스춰를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이 작품은 제목하야 '세계의 구원자, Salvator Mundi'이다. 이 작품은 1500년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다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인정하고 있는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진위 여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오늘날까지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하나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사랑 받고 있는 대부분의 유명 화가들이 생전에는 가난과 몰이해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하기 위한 고독한 투쟁을 하고, 사후에나 인정을 받곤 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러하고, 모딜리아니가 그러하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생전에 이미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을 받아 유럽의 각국의 왕실에서 스카우트 경쟁 속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살았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임종은 프랑소아 1세가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인데, 그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그가 왕과 친밀한 관계였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던 것 같다.  (바사리에 따르면 그의 임종 때, 왕이 그의 머리를 안고 손을 쥐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많은 화가들이 그 장면을 상상하여 그렸으나 그 진위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는 우리말로 하자면 팔방미인, 진정한 르네상스 맨이라고 할 수 있는데, 회화와 조각, 그리고 건축은 물론, 과학, 음악, 수학, 공학, 문학, 해부학, 지질학, 천문학, 식물학, 작문, 역사 및 지도 제작 등 그가 관심을 갖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이다. 1480년 Duke of Milan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면서 군사 공학자라고 강조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는 여러가지 무기를 고안하기도 했다.  오늘날은 화가로 알려진 그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의 다양한 관심사와 활동 중 극히 일부였을 뿐이었고, 유럽 각지의 러브콜에 이끌려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완성작은 더더욱 줄어들었다. 오늘날 확실하게 그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작품은 20여점에 불과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작품은 적으나, 그의 놀라운 그림 솜씨에 대해서는 전설처럼 여러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될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도제 시절부터 그의 실력은 남달랐다고 한다.  

Andrea del Verrocchio and Leonardo, The Baptism of Christ (1472–75) oil on panel ; 177 × 151 cm, Uffizi
Andrea del Verrocchio and Leonardo, The Baptism of Christ (1472–75) oil on panel ; 177 × 151 cm, Uffizi ; 그 세부

 

위의 작품은 초기에 그가 그의 스승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를 도와 어린 제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작품이다. 이 중에서 레오나르도가 천사 한 명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스승인 베로키오가 그린 천사가 그 동네 사는 소년같이 그렸던 것에 비해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림에는 기품과 신성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후 스승은 천사는 그리지 않았다나 어쨌다나....  (레오나르도가 그린 신성이 담긴 아름다운 천사는 아래 두명 중 어느쪽일까요?  궁금하신 분은 맨 아래 정답을 확인하세요~)   

대망의 1위를 차지한 레오나르도의 <세계의 구원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2017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황태자가 아부다비의 문화관광부를 대신해서 $451.3-millions (약 5,138억 상당)에 구입한 것으로 되어있다. 2018년 가을에는 아부다비의 루브르에서 전시된다고.   

그의 작품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있는 작품은 한 두 작품이 아닌데, 이 작품은 최근 대다수의 전문가가 진품으로 인정한 작품 중 하나이다.  최근들어 그의 작품이라고 인정받은 또 하나의 작품이 있는데, 그것은 그 유명한 모나리자의 또 다른 버전.  오랫동안 레오나르도의 위작으로 여겨졌으나, 2015년부터 16년에 거쳐 수많은 검증을 거쳐 비로서 그의 진품임을 인정 받은 작품이다. 루브르의 모나리자와 구별하여 소장자의 거처를 따 Isleworth Mona Lisa라고 불린다. 

 

 

 

Isleworth Mona Lisa,  2015~6년 전문가들에 의해 레오나르도의 작품임이 판명됨

 

사실 우리는 모두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모나리자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얼마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당시부터 유명했던 그를 둘러싼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도 원체 많고, 이후 그를 연구한 학자들은 차고 넘치면서 담론은 더욱더 증가하지만, 대중들은 이미지와 이름으로 워낙 친숙해서 모두가 알기도 전에 질려버려 그다지 더 알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가 남긴 회화의 작품 수는 얼마되지 않지만, 그가 임종을 왕의 무릎위에서 맞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생전에 높은 지위를 지녔고 거기에 걸맞는 학식과 견문을 갖춘 만능 학자로서, 이전의 장인의 위치에 있던 화가의 위치를 인문학자의 위치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위의 정답: 레오나르도가 그린 천사는 우리가 바라봤을 때, 왼쪽의 천사. 아름다운 눈빛과 곱슬거리는 빛나는 금발은 이후 그의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30. 00:30 일상 이야기

오늘도 1위 발표 전에 한 번 쉬어가는 날로 할까요?

저번에 올린 '물고기들의 화파' 다들 재미있어 하시는 것 같아 오늘도 하나 올립니다. 

저번보다는 약간 난이도가 높은 거 같죠?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29. 00:30 미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가 계속 되고 있어요.  처음에 전체 랭킹에 관한 포스팅은 요 바로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가요 순위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봐오고 있죠.  어느새, 오늘은 3위 작품을 살펴볼 시간이네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보면 3위때부터는 두둥두둥 소개할 때 음악부터 달라지던데.  ^^ 


 

인플레 고려 3위) Paul Cézanne, "The Card Players" (ca. 1890) estimated $250- to $300-million (2011 private sale)  $272 +-millions 

미술사에서는 폴 세잔 (Paul Cézanne: 1839-1906) 은 폴 고갱 (Paul Gauguin: 1848-1903),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와 함께 후기 인상파로 분류되는 화가이다.  그렇다고해서, 이들이 한날 한 장소에 모여서, '우리 오늘부터 후기 인상파 창립하는 거다! 으샤으샤!' 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을 단체 여행이라도 가서 한 방을 쓰게 했다면, '왜 하필 쟤랑 같은 방이람!' 하면서 못마땅해 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예술에서 지향하는 방향이 각각 다르고, 화풍도 많은 차이가 난다.  이들을 '후기 인상파'로 묶은 것은 이후의 미술사학자들로 순전히 분류 목적이다. 인상주의는 아니고, 그렇다고 이후에 오는 추상의 경향과는 또 다른, 그렇다고 그냥 두기에는 너무 거물들. 따라서 이렇게 모아서 '후기 인상파'

폴 세잔은 이 후기 인상파 작가들 중에서 아마도 후대 화가들에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라 할 수 있다.  20세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피카소조차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며 세잔을 칭송했고, 야수파의 거장이라고 불린 마티스도 아직 젊은 화가 시절, 결혼해서 어린 자식들까지 부양하느라 쪼들리던 시절에도 세잔의 욕녀 작품들의 소품들을 세 점이나 사 모을 정도였다.  

세잔은 생전에 이미 그의 작품이 평가를 받았지만, 초반에 파리 화단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에서 은둔아닌 은둔을 하며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다. 대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사과가 있는 정물, 생트 빅투와르 산, 목욕하는 여인들 등 시리즈 물로 주로 그렸는데, 카드 놀이 하는 사람들도 그 중 하나이다. 

세잔은 '카드 놀이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다섯점을 제작하였고, 그것은 미국에 2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필라델피아의 반즈 파운데이션, 그리고 프랑스의 오르세이 미술관, 영국의 코트올드 미술관, 이렇게 4점이 있고, 이 작품은 2011년 카타르의 왕족이 구입하므로써 유일하게 개인 소장 작품이 되었다.  

다섯 작품 중 두 명만 그려진 작품은 위의 작품을 포함 영국과 프랑스의 미술관들, 이렇게 세 작품이 있다. 그 중 크기는 가장 작지만 구도가 가장 안정되고 색상도 가장 아름답고 조화로운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은 오르세이 미술관 소장 중인 작품 (아래)으로 개론서 같은데서 대표로 실릴 때 주로 이 작품이 실리고, 이 작품은 기념 우표 제작때에도 대표로 발탁되었다. 

     

분명히 모델이 된 것은 그의 고향마을 농한기에 심심풀이로 카드놀이를 하는 농부들일터인데, 어찌된 셈인지 이들의 자세와 태도는 고요하고 분위기는 적막하고, 심지어 자세는 경건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특징때문에, 세잔의 초상화는 '인간으로 그린 정물화 (human still-life)'라고 불리는데, 이는 세잔의 관심사가 원체 인간관계가 아닌 형태들의 상호관계에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세잔도 원체 사회관계에는 서툴기도 하고 크게 관심없었던 사람이었던듯 하기도 하다.)  

원류를 따라가자면 풍속화 장르 중에 '카드 놀이 하는 사람들'이라는 소 장르가 있고, 이는 또 원류를 좇아가보면, 성서에서의 '돌아온 탕아'에서 파생된 주제이다. 하지만, 처음 착안은 그렇다고 해도 정작 세잔이 추구한 것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형태와 주변 사물이 이루어내는 조화, 형체들간이 구축해가는 구도, 이러한 것이었다는 것. 

참고로 다른 카드 놀이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들은 아래와 같다.

 메트로폴리탄 소장품

필라델피아의 반즈 파운데이션 소장품

영국의 코트올드 미술관 소장품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