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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10. 00:10 미술 이야기

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시대는 극단적으로 '시각적'인 시대이다. 

예전에 유명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방법은 단 하나, 내가 직접 그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에 가서 보는 것이다. 

물론 직접 작품을 보는 것이 예술 감상의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건 오늘날에도 적용되긴 하지만, 오늘날에는 직접 보는 것과는 다르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다. 

벨기에의  겐트시 (Ghent)시의 성 바보 성당 (St. Bavo Cathedral)에 소장된 휴버트와 얀 반 에이크 형제가 그린 '신비로운 양 (The Mystic Lamb)'(1432), 혹은 겐트 제단화로 알려진 작품만 해도 그렇다. 플랑드르의 대가로 알려진 얀 반 에이크가 그의 형과 공동작업으로 제작한 이 복잡한 제단화는 미술사 개론서에 실리는 경우에도 다면화가 접힌 상태이거나 일부만 이미지가 제공되어 전체적인 모습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직접 가서 본 경우는 없지만, 직접 간다 한들 문화유산 급인 이 작품을 관람객이 아주 가까이서 살펴 볼 기회가 있을까는 의문이다. 

그러던 이 작품이 오늘날은 게티 파운데이션의 후원으로 보수작업을 끝내서 이전과는 달리 생생하게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앱의 발달로 이제는 내 집에서 컴퓨터로 이 작품을 아주 자세하게 꼼꼼히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겐트 제단화의 닫힌 모습. 수복 전, 도중, 그리고 수복을 마친 모습. 이미지는 게티 센터의 블로그에서 가져옴.

Closer to van Eyck 라는 이 앱을 통해서는 이 걸작의 모습을 제단화가 닫힌 모습과 열린 모습을 각각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수복전과 후를 따로 살펴볼 수도 있다. 그 뿐 아니다. 적외선과 x 레이 등 을 사용해서 다양한 방법 (infrared macrophotography ; infrared reflectography ; x-radiography)으로 촬영한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놀랍지 않은가? 이는 그 옛날, 나귀 타고 작품의 물감이 마르기 전에 도착해서 직접 감상할 수 있었다한들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그것을 이제는 그냥 컴퓨터 앞에서 클릭 몇번으로 다 살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Jan van Eyck,  Ghent Altarpiece  (open), completed 1432, oil on wood, 11 feet 5 inches x 15 feet 1 inch, Saint Bavo Cathedral, Ghent, Belgium

예전 개론서나 미술교과서에서 얼핏얼핏 본 적은 있던 이 작품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되니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동과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는 현대미술에서도 볼 수 없었고, 좀 더 익숙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종류의 미감이자 표현이다.  

Jan van Eyck,  Enthroned Virgin in Ghent Altarpiece  (open), completed 1432, oil on wood, 11 feet 5 inches x 15 feet 1 inch (detail), 출처: http://legacy.closertovaneyck.be/#home  

나로서는 우리가 진정 '시각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고, 감사해야할 순간이기도 했다.  이처럼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관심사의 변화로 '시각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이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방식도 바꾸어 놓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아카데미의 살롱전 리뷰를 18세기의 유명한 비평가인 디드로가 했다고 치자. 그는 우선  그 전시를 직접 볼 수 있는 극소수의 관람자들 중 하나였고, 그 전시는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것을 잘 아는 이 노련한 비평가는 그런 독자들을 위해 '비평' 이전에 우선, 전시실 입구부터 전시장에 전시된 작품들까지 하나하나 자세히 '서술'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날 우리 눈에는 다소 장황하고 세세한 설명과 묘사, 수사법이 활용될 것이고 그 평론의 길이는 상당히 길어진다. 예전 미술사 혹은 비평의 기본은 '작품에 대한 묘사'가 처음에 놓여야 하고, 전체적 서술의 상당부분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만약 오늘날 그런 정도의 '묘사'를 페북에라도 올릴라치면 반드시 '위의 글 세줄로 요약 부탁드려욤'이라는 댓글이 달릴 것이다.

하다못해 전시회 소식을 전하는 기사만 해도 그렇다. 오늘날 기사에는 그 전시에 전시될 주요 작품 사진이 한 두점 실려야 독자들이 눈길이라도 줄 것이다. 만약 저작권이 걸린 작품이라면 하다못해 전시실 입구 사진이라도 하나 실려야 '아~ 이게 전시회 소개 글이구나~'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비평이나 미술사 글에는 '묘사'부분이 많이 축소되었다. 그건 사진 하나 '딱 보면' 다 알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는 오늘날 현대미술의 형식에도 원인이 있긴하다. 아무리 길게 묘사를 해도 르네상스 시대 고전의 서사 가득한 작품에 대한 묘사보다 몬드리안이나 도널드 저드의 작품에 대한 '묘사'는 짧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서사가 빠진 자리에 철학이나 미학의 이론이 들어온 것이리라 생각을 한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포털은 사진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매체이기도 하겠고, 블로그나 유튜브나 수많은 앱들이 '시각적' 보조 없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예전 소설이 유독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오늘날 같으면 사진 한장으로 대체될 수 있는 많은 정보들을 너무나도 자세히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고, 오늘날 독자들 눈에는 '쓸 데없는 정보' 같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그 기나긴 서술은 '안물안궁' 정보인 것이다. 

사뮤엘 리차드슨의 1740년 소설 <파멜라>의 경우, 18세기 당시 유럽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문학계에서도 영향력이 높았던 작품이다. 언젠가 언급한 바 있는 <위험한 관계>라는 소설에도 영향을 끼친 서간체 소설로 15세 소녀 파멜라의 '미투'운동이라고나 할까? 물론 시대적 지리적 차이로 인한 가치관의 차이는 상당하지만 말이다. 이 18세기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의 소설을 21세기 오늘날 독자가 읽어내자면 엄청난 인내를 요구한다. 주인공 소녀가 의자에 앉아서 자수를 하다가 자수를 놓던 천을 내려놓고 방문 쪽으로 걸어가서 방문을 여는 과정이 무려 몇 페이지에 거쳐서 서술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티브이나 영화와 같은 오락거리가 드물던 시대였고, 이러한 소설이 일할 필요없던 귀족들의 소일거리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측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정보는 시각적으로 제공되어 '한 순간에 즉각적'으로 흡수할 수 있고, 할 일 많고 바쁜 현대인에게는 맞지 않는 코드인 것이다. 

사뮤엘 리차드슨의 1740년 소설 <파멜라> - 이 글에서도 반드시 시각적 보조자료가 이렇게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피카소를 보았고 마티스를 보았기 때문에, 피렌체의 르네상스와 베니스의 르네상스의 색감과 형태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크와 로코코의 차이를 알아내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또 가끔 직접 전시실에서 마주했을 때보다 블로그나 페북에 사진으로 실린 작품이 훨씬 더 나아보이는 작품을 대할 기회가 예전보다 더 늘었다. 실제와 사진과 같은 매체를 통해 대하는 작품과의 괴리에 대해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할 필요를 못느꼈었는데 말이다. 따라서, 시각 매체가 아무리 발달한다 하더라도 직접 작품과 마주하는 경험은 예술감상에서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 2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겐트 미술관 (the Museum of Fine Arts Ghent (MSK))에서 개최되는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ca. 1390-1441)에 대한 전시회 <반 에이크. 시각의 혁명 (Van Eyck. An optical revolution)> 은 방문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미술사에 반드시 언급되는 작가치고는 남겨진 작품이 불과 20여점 밖에 되지 않는 이 북유럽 르네상스의 거장 얀 반 에이크의 작품들이 이 미술관에 다 모일 모양이다. 일전에 소개한 렘브란트 탄생 350주년 기념 전시회와 함께, 2020년 유럽을 여행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또 생겼다. 

  

 이 글 바로 전에 렘브란트 전시 소식에 대한 글을 올렸다. 관심있는 분들을 그 글도 함께 보시길.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4. 18:53 미술 이야기

요새 르네상스에 관련되어 공부와 강의를 해서였을까? 우리나라에서 조르조 바사리의 <르네상스 미술가평전>이 33년만에 재 출간된다는 뉴스가 눈에 쏙 들어왔다.   

33년만에 재출간된 ‘전설의 책’ <르네상스 미술가평전> 완간 원문보기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었으리라 생각만 했지 그 옛날에 번역이 된 적이 있었던 것도 몰랐지만, 그걸 다시 손을 봐서 어렵사리 재출간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정성이자 열정이다.  게다가 번역을 하신 분이 미술사학자도 아니시라니!  얼핏 생각해도 인기가 있거나 판매가 많이 될 책이 아닌데, 그 방대한 양의 저서를 번역했던 번역가, 그리고 근시적인 경제적 이익이 아닌 인문학의 근간을 다진다는 차원에서 출판을 결심한 출판사 모두모두 칭찬해드리고 싶다. 

<르네상스 미술가평전> 한길사

약칭 “르 비테”라고 불리곤 하는 조르조 바사리 (1511-1574)의 저서 <르네상스 미술가평전>은 르네상스기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등 대가들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다양한 일화를 덧붙여 기술한 책이다. 바사리 자신이 당대에는 꽤 알려진 화가이자 건축가였기에 유명 작가와 귀족, 궁정의 주요 인물들과의 접촉도 많았기에 직접 겪은 경험담과 일화가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당대엔 다소 유명한 화가였으나 정작 오늘날 그는 이 책으로 기억되고 '최초의 미술사가'로까지 평가되고 있고, 이 책은 최초의 미술사 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에 씌여진 책 중에 가장 많이 참조되는 책 중에 하나다.  1550년 초판 당시 피렌체 작가인 바사리는 '피렌체 예술 만만세' '피렌체 예술과 최최고' 라는 태도로 피렌체 출신이거나 피렌체에서 활동중인 예술가들 위주로만 전기를 펴냈고, 이후 폭발적 인기를 발판으로 증보판을 출판했는데, 그 증보판 격인 1568년 판에는 베네치아 화가들의 전기도 포함했고, 이것이 더 널리 읽혀오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피렌체  출신화가다 보니, 베네치아 화가들은 일관적으로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태도를 액면그대로 받아들인 후대의 미술사학자들의 태도 탓에 20세기 초반까지 미술사학에서도 베네치아 미술에 대해서는 다소 경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의 이 저서는 오늘날 중요한 미술사 자료로 평가되고 있고, 기초자료가 원체 빈약한 탓도 있겠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한 지위를 누린 화가로서 넓은 인맥과 영향력을 기반한 '측근'의 관찰정보라는 측면에서 바사리의 '미술가 평전'에 기술된 내용은 19세 중반까지는 내용 전반을 '사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전례가 없던 내용의 책을 쓰는 작가로서, 사학자로서의 자각은 가질 필요도 못느꼈고, 미술사에 대한 개념은 더더욱 없었던 상태라, 책 속에 개인적 감정 (해당작가들의 친분여부, 편견 및 질투)을 감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카더라’ 통신의 내용들도 검증없이 실은 부분이 많기에, 조심해서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하다.  

영어번역으로는  Giorgio Vasari, Lives of the Most Excell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 (1568) (1st ed. 1550)인데, 이탈리아어로는  Le Vite de' più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 architettori (이렇게 제목이 만만찮게 길다보니, 흔히들 줄여서 ‘르 비테’라고 부른다.) 

 

영어번역으로는  Giorgio Vasari, Lives of the Most Excell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 (1568) (1st ed. 1550)인데, 이탈리아어로는  Le Vite de' più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 architettori (이렇게 제목이 만만찮게 길다보니, 흔히들 줄여서 ‘르 비테’라고 부른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2. 12:21 미술 이야기

엊그제 올린대로 내가 티스토리 블록의 편집에 익숙해질 때까지, 초기 글을 하나씩 올려보기로 했다.  얼마전까지 내가 사람들이 내 글을 얼마나 읽었는지도 몰라서 알지 못했는데, 초창기 글은 읽은 사람이 아주 적다는 것을 깨달아서이다. 그리고 현재 블로그 상태로는 전체 목록이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걸 어떻게 고쳐야 일목요연하게 목차가 보일 수 있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어서이다.  물론 새 글도 계속 올리겠지만, 묻혀있는 옛 글들도 한번씩 퍼올려 다시 싣는 걸로.

그 제목하야, 이쁘면 진리다~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https://sleeping-gypsy.tistory.com/9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3. 22. 23:52 일상 이야기

한때 '알쓸신잡'이라고 '알면 쓸데없는~' 이라는 프로가 있었다. '옥탑방 문제아들'이라는 프로그램도 그렇다. 옥탑방에 모인 연애인들이 '알면 쓸데없는' 질문 10개를 다 맞추어야만 귀가할 수 있다는 룰 아래 퀴즈 푸는 프로그램이다. 말만 들어선 그러려니 할텐데, 요새 이 프로가 재밌다. 솔직히 거기서 나오는 질문들이 다 그게 질문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전혀 궁금하지도 않고, 사는데 지장도 없는 그런 질문들이다. 그런데 막상 질문으로 나오고 나면 그렇게 또 답이 궁금하다. 

미술에 대한 문제도 가끔 나오는데, 사실 진위여부는 확실하지가 않아 보이는 것도 있다. 최근 '옥탑방 문제아들'에 나온 문제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문제인 즉슨, 레오나르도가 <최후의 만찬>을 제작하는데 무려 2년 6개월이 걸렸는데, 그 중 2년 3개월은 '이것'에 소비를 했고, 채색하는 데에는 3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해답은 레오나르도가 워낙 미식가라 탁자에 올려 둘 음식의 내용을 궁리하는데 2년 3개월을 보냈다는 것. 그 설명의 내용 중, 레오나르도가 얼마나 음식에 관심이 많았냐면, 그가 또다른 르네상스의 유명 화가 '보티첼리'가 함께 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레오나르도 (1452-1519)는 왠지 밀라노와 프랑스의 궁정을 오가며 비단옷 입고 귀족들하고 노닐었을 것 같고, 보티첼리 (1445-1510)는 메디치 궁에서 지내고 있었을 것 같았는데. 설마...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야사를 다룬 사이트에서 실제로 1470년경  레오나르도나 보티첼리나 아직 베로키오의 도제시절, 용돈이 궁해서 인근 여인숙에서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했다한다. 그러다 의기투합해서 짧은 시간 "개구리 세마리 (Tre Rane)"라는 여인숙을 경영했다고 나왔다.  예전엔 레스토랑이라기 보다는 숙박업에 겸해서 음식을 파는 곳이 많았으니 '음식점을 운영했다'라는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하지만, 과연 레오나르도가 정말  그 <최후의 만찬> 식탁에 올릴 음식의 내용을 궁리하느라 2년 3개월을 보냈을까? 개인적으로는 좀 회의적이다. 

Leonardo da Vinci, Last Supper (1495-98) tempera on gesso, pitch and mastic Convent of Santa Maria delle Grazie, Milan


위의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레오나르도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는 진수성찬은 그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에서도 '빵'을 예수 그리스도의 '살'이요, '포도주'를 그의 '피'로 여기라고만 나와있지, 예수와 그의 12 제자들이 상다리 휘어지게 만찬을 즐겼다는 얘기는 없다. 그렇다고 레오나르도가 2년 3개월을 고민하며 보냈다는 말이 그냥 마냥 뻥같지는 않다. 아마도 그 시간 동안 다른 수많은 프로젝트 (하늘 나는 날개 설계하랴, 무기 설계하랴, 흐르는 냇물이랑 동물들 관찰까지...그리고 짬짬히 시체해부까지, 그는 정말 하는 일이 많았다.)를 하면서 이 작품의 구도를 고안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우리는 워낙 레오나르도의 이 작품에 익숙해져서, 마치 원래부터 <최후의 만찬> 장면은 이랬을것만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느 누구하나 실제로 이분들 모여 식사하는 것 본 사람없고, 성서에도 예수와 제자들의 식사 장면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지 않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화가의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Andrea del Castagno, Last Supper (1447) tempera on plaster (Sant'Apollonia, Florence) 

일례로 위의 작품은 초기 르네상스의 작가가 그린 최후의 만찬 장면이다. 여기서는 귀중한 분들이 식사하는 장면에 적합하게 대리석에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멋진 실내에 그리스 스핑크스 조각까지 있는 식탁과 의자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소중한 분들의 모습이 행여 가릴까 겹치지 않게 일렬로 배열하고, 배반을 한 나쁜 유다는 한 테이블에 앉히긴 괘씸하니까 테이블 반대편에 앉히기로 했다. 

이에 반해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에서는 실내와 가구를 최대한 단순화해서 인물들의 다이나믹한 심리상태에만 집중하였다.  예수님에 모든 관심이 다 쏠릴 수 있게 일점 원근법의 중심에 그를 배치시키고, 그의 자세를 통해 삼각형 형태를 이루며 안정된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식탁에는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와인잔 이외에는 보이질 않는다. 

과연 이 장면은 어떤 장면일까하는 것은 아직까지 논란 중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빵과 포도주를 나눠 장면이라기 보다는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라는 말을 한 직후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놀라운 폭탄 선언 후, 스승에 대한 애정과 염려, 그리고 충격과 공포, 분노 등으로 동요하는 제자들의 모습의 한 순간을 포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온한 그리스도의 모습과 대조되는 제자들의 감정의 소용돌이 속의 드라마가 탄생한 것이다.  반응들도 제각각이다. 오른쪽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전 아니죠?'하며 한 손으로 자신을 가르키고 있는 필립이다. 예수의 오른쪽에는 사도 요한이 눈을 감은 채 몸을 한쪽으로 기대고 있는데, 이는 도상적 표현이다. (다빈치 코드에서는 이 요한이 요한이 아니라 막달렌 마리아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Leonardo da Vinci, Last Supper (1495-98) (세부) tempera on gesso, pitch and mastic Convent of Santa Maria delle Grazie, Milan 


왼쪽의 두번째 그룹은 좀더 격렬한 감정과 심리상태가 드러난다. '대체 그 놈이 누굽니까? 아주 경을 쳐놓을테니 알려만 주십시요' 하는 듯한 베드로 (심지어 나중에 예수를 잡으러 온 군인의 귀를 자르는 행위를 암시하며 칼까지 들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뜨끔해서 밀고의 댓가로 받은 은화 주머니를 쥐고 있는 유다가 예수와 같은 접시를 집으려다 멈칫하고 있다. 또 나중에 예수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며 확인하는 토마스는 그 중요한 행동을 할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정녕 그게 하늘의 뜻입니까요?' 하고 있기도 하다.  제자들이 제각각 표현해내는 감정의 동요는 파도같은 모습의 제자들의 움직임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움직임은 식탁 저편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 식탁을 경계로 신성한 이들의 모임과 그것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이 구분지어져 있다.   

전체적인 구도의 면에서나 개별 인물들의 심리묘사 또 그들의 군집을 통해 드러나는 형식적 조화와 상징의 표현 등을 신경 쓰며 배치를 하기엔 2년 3개월도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 말고도 레오나르도는 항상 바빴다.)  식탁의 메뉴만 신경을 쓰면서 2년 3개월을 썼다는 '옥탑방의 문제아들'의 해답은 따라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웃자고 만든 오락 프로그램의 퀴즈에 너무 죽자고 달려든 것인지 모르지만, 오해는 마시라. 난 지금 너무 재미있어 하면서 문제를 푼 것이다.  난 이 프로그램이 조기 종영되거나 개편 때 소리소문 없이 없어지지 않고 오래 계속 되었음 바라는 사람 중 하나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31. 00:30 미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 계속~ 쭈욱~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가요 순위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봐 왔고, 오늘 드디어 대망의 1위 발표~  

두구두구두구두구  짠~~~ 


인플레 고려 1위) attribut ed to Leonardo da Vinci, "Salvator Mundi" (ca.1500)  $450.3-million (Christie's 2017 auction) $450.3-million (약 5,138억 상당)

예수 그리스도가 왼손에는 수정구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축복을 내리는 제스춰를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이 작품은 제목하야 '세계의 구원자, Salvator Mundi'이다. 이 작품은 1500년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다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인정하고 있는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진위 여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오늘날까지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하나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사랑 받고 있는 대부분의 유명 화가들이 생전에는 가난과 몰이해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하기 위한 고독한 투쟁을 하고, 사후에나 인정을 받곤 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러하고, 모딜리아니가 그러하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생전에 이미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을 받아 유럽의 각국의 왕실에서 스카우트 경쟁 속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살았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임종은 프랑소아 1세가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인데, 그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그가 왕과 친밀한 관계였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던 것 같다.  (바사리에 따르면 그의 임종 때, 왕이 그의 머리를 안고 손을 쥐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많은 화가들이 그 장면을 상상하여 그렸으나 그 진위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는 우리말로 하자면 팔방미인, 진정한 르네상스 맨이라고 할 수 있는데, 회화와 조각, 그리고 건축은 물론, 과학, 음악, 수학, 공학, 문학, 해부학, 지질학, 천문학, 식물학, 작문, 역사 및 지도 제작 등 그가 관심을 갖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이다. 1480년 Duke of Milan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면서 군사 공학자라고 강조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는 여러가지 무기를 고안하기도 했다.  오늘날은 화가로 알려진 그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의 다양한 관심사와 활동 중 극히 일부였을 뿐이었고, 유럽 각지의 러브콜에 이끌려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완성작은 더더욱 줄어들었다. 오늘날 확실하게 그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작품은 20여점에 불과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작품은 적으나, 그의 놀라운 그림 솜씨에 대해서는 전설처럼 여러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될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도제 시절부터 그의 실력은 남달랐다고 한다.  

Andrea del Verrocchio and Leonardo, The Baptism of Christ (1472–75) oil on panel ; 177 × 151 cm, Uffizi
Andrea del Verrocchio and Leonardo, The Baptism of Christ (1472–75) oil on panel ; 177 × 151 cm, Uffizi ; 그 세부

 

위의 작품은 초기에 그가 그의 스승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를 도와 어린 제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작품이다. 이 중에서 레오나르도가 천사 한 명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스승인 베로키오가 그린 천사가 그 동네 사는 소년같이 그렸던 것에 비해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림에는 기품과 신성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후 스승은 천사는 그리지 않았다나 어쨌다나....  (레오나르도가 그린 신성이 담긴 아름다운 천사는 아래 두명 중 어느쪽일까요?  궁금하신 분은 맨 아래 정답을 확인하세요~)   

대망의 1위를 차지한 레오나르도의 <세계의 구원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2017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황태자가 아부다비의 문화관광부를 대신해서 $451.3-millions (약 5,138억 상당)에 구입한 것으로 되어있다. 2018년 가을에는 아부다비의 루브르에서 전시된다고.   

그의 작품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있는 작품은 한 두 작품이 아닌데, 이 작품은 최근 대다수의 전문가가 진품으로 인정한 작품 중 하나이다.  최근들어 그의 작품이라고 인정받은 또 하나의 작품이 있는데, 그것은 그 유명한 모나리자의 또 다른 버전.  오랫동안 레오나르도의 위작으로 여겨졌으나, 2015년부터 16년에 거쳐 수많은 검증을 거쳐 비로서 그의 진품임을 인정 받은 작품이다. 루브르의 모나리자와 구별하여 소장자의 거처를 따 Isleworth Mona Lisa라고 불린다. 

 

 

 

Isleworth Mona Lisa,  2015~6년 전문가들에 의해 레오나르도의 작품임이 판명됨

 

사실 우리는 모두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모나리자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얼마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당시부터 유명했던 그를 둘러싼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도 원체 많고, 이후 그를 연구한 학자들은 차고 넘치면서 담론은 더욱더 증가하지만, 대중들은 이미지와 이름으로 워낙 친숙해서 모두가 알기도 전에 질려버려 그다지 더 알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가 남긴 회화의 작품 수는 얼마되지 않지만, 그가 임종을 왕의 무릎위에서 맞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생전에 높은 지위를 지녔고 거기에 걸맞는 학식과 견문을 갖춘 만능 학자로서, 이전의 장인의 위치에 있던 화가의 위치를 인문학자의 위치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위의 정답: 레오나르도가 그린 천사는 우리가 바라봤을 때, 왼쪽의 천사. 아름다운 눈빛과 곱슬거리는 빛나는 금발은 이후 그의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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