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학기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정규 강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제반 사항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구체적인 스케줄에 대해서는 다시 포스팅을 올리겠습니다. 한동안 포스팅이 뜸했는데, 정규 강의 준비가 바쁘기도 바빴고, 개인적으로는 알게모르게 '코로나 블루'도 있었던 듯 합니다. 아무래도 나는 언택보다는 컨택이 익숙한 옛날 사람인가봐요.
사진 작품이 많은 캐나다 출신 작가인 제프 월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계의 주요 작가 중 한명이다. 그의 <갑작스런 돌풍 (호크사이 작품을 따라서)> (1993)은 일본의 우키요에 작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크사이의 잘 알려진 작품을 라이트박스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로 '재현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호크사이의 작품을 빌어서 어떤 것을 비판하고자는 의도는 보이지 않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패러디 (Parody)라고 하기보다는 패스티쉬 (Pastiche)라고 할 수 있다. 패러디는 예전부터 문학에서 시작되어 폭넓게 사용되어 온 기법이라면 패스티쉬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접어들어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기법이라고 할 수 있고, 넓은 의미에서는 '전용 (Appropriation)'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것이 패러디인가? 무엇이 패스티쉬인가?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정규 수업에 자세히 다뤄보고자 하지만, 오늘은 일단 시각적으로 감상해보는 걸로!
Jeff Wall, <A Sudden Gust of Wind (after Hokusai)>, (1993) Transparency on lightbox ; 25 × 39.7 × 34 cm, Tate
Katsushika Hokusai (1760–1849), Yejiri Station, Province of Suruga. Part of the series Thirty-six Views of Mount Fuji, no. 35. (c. 1832), woodblock color print ; 24.3 x 36.3 cm, Brooklyn Museum
패러디와 패스티쉬의 차이에 대해서는 논의할 점이 많겠지만, 일단 쉽게 접근해서 공통점을 하나 들어보자면, 둘다 원작을 알고 있을 때, 작품을 즐기는 재미가 훨씬 커진다는 점.
<후지산36경>이라는원제를아는이는많지않지만, 무엇인가를움켜지려는듯한손가락들과같은모양을한파도의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친숙할 것이다. 많은작가들이패러디를만들어내는파도의모습은오늘날까지도끊임없이재생산되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부악36경>중한작품인데, 일어로후아쿠라고읽는부악은후지산의다른이름이다.명승지의풍광을담아시리즈로제작된우키요에가유행했는데, 이작품은후지산의풍경을담은 46점의작품중하나인것이다. (판화집의제목은후지산 36경.36이라고쓰고, 46점이라고읽었다고나할까?)
그의이작품의 세계적인 인기는클로드모네의지베르니저택을위시해, 뉴욕의메트로폴리탄미술관, 시카고의아트인스티튜트, 그리고로스앤젤레스의 LA 카운티미술관, 호주멜버른의내셔널갤러리오브빅토리아등서구의유명미술관에두루두루소장되어있다는것에서잘드러난다.
호쿠사이가 타고난 재능을 지닌 화가였음은 분명하지만, 그의 인생이 시종일관 순탄한 것은 아니었고, 처음부터 완벽한 예술작품만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인 파도의 모습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강렬한 인상의 파도가 탄생한 것이었다. (아래의 몇 작품들에서 그의 파도 모양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
사람들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던 일본의 에도시대, 89세까지 살았던 그의 수 많은 호 중에서는 '가쿄우진' 즉, '그림에 미친 사람'이라는 호도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6세 이래, 평생 그는 엄청난 양의 그림과 판화를 제작하며 살았다. 그런 그가 노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6세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70세 이전에 내가 그린 모든 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7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자연과 동물 그리고 식물의 패턴들을 조금 알게 되었다.
80세가 되면 그림이 조금 더 발전하게 될 것이고, 90세가 되면 삶의 신비를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100세가 되면 훌륭한 예술가가 될 것이다.
110세가 되면, 내가 창조한 점과 선들이 삶에 스며들게 될 것인데, 이는 이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들이 될 것이다.
장대한 계획을 세웠던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훌륭한 예술가가 되지도, 자신이 창조한 점과 선들이 삶에 스며드는 경지에도 이르지 못한 89세가 되던 해에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거시적 안목은 실제로 '백세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성급하게 성과만을 바라고 요령을 구하려드는, 조급하기만 한 풍토 속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