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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8. 04:34 미술 이야기

백화점을 가도 쇼핑을 나온 손님들보다 매장 직원 수가 더 많은 진풍경이 연일 연출되는 기현상이 계속되는 요즈음... 프라다 매장이 너무 가고 싶다면? 

해외여행 가능한 국가가 제한적이고 그나마 그때그때 다르고,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자가격리 2주를 입국과 출국시 감내해야하는 요새 쉬운 일은 아니지만, 텍사스의 마르파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프라다 매장은 어떠신지?

엘름그린 앤 드라그셋 ( Elmgreen & Dragset), <Prada Marfa>, 텍사스의 외진 지역인 마르파에 설치한 가상의 프라다 매장 

다만 그곳에서 프라다 상품을 구입할 수 없다는 게 함정. 사방에 아무 것도 없는 사막지역인 이곳에 자리한 프라다 매장이라 궁금증이 막 솟구치지 않는가?

넓디 넓은 텍사스의 한 구석,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프라다 매장.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 프라다 매장을 눈 앞에 두고 들어가보지도, 프라다 신상을 살 수도 없다니?! 그 매장은 실제 매장이 아니라 설치 작품이기 때문이다.  프라다 마르파는 엘름그린 앤 드라그셋 (Elmgreen & Dragset)이라는 명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공동작업으로 2005년 제작하여 영구 설치 작품이다. 마르파는 텍사스의 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텍사스 오스틴과 댈러스에 몇년 살았던 나도 들어본 적 한번 없는 변두리 지역이다. 작가들은 이 작품을 "팝 건축 랜드 아트 프로젝트 (pop architectural land art project)"이라고 묘사했다. 실제로 미국의 건축가 로널드 라엘 (Ronald Rael)과 버지니아 산 프라텔로 (Virginia San Fratello)의 협조로 실현된 작품이다.

제작 경비는 $120,000 (약 1억 4천만원 정도)였고, 원래 의도는 일체의 보수 작업 없이 처음의 상태로 둠으로써 세월과 함께 주변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낡아가는대로 놔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누군가가 외벽에 낙서를 하고, 내부 물건들을 다 훔쳐가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본의 아니게 수정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곳은 관광명소로 자리잡게 되어 수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방문하게 이르렀고, 유명 연예인들도 방문하여 그들의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다.

프라다 마르파 앞에서 인증샷을 남긴 유명 가수 비욘세

(포스트모더니즘 작품답게 뭐라 부르기 애매한) 이 조각 (?) 작품은 원룸 형식의 프라다 매장처럼 제작하면서 외벽은 흰 스터코 석회벽으로 만들고 주변 삼면은 울타리를 둘러 마무리하고, 매장 안 쪽에는 (프라다 측에서 기증을 받은) 실제 프라다 제품들을 전시한 것이다.  물론 완벽한 건축물은 아니기 때문에 가게 앞쪽의 문은 실제로 드나들 수 있도록 작동하는 문은 아니다. '엘름그린 앤 드라그셋'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작가들은 덴마크 출신의 마이클 엘름그린 (Michael Elmgreen)과 노르웨이 출신의 잉가르 드라그셋 (Ingar Dragset)으로 둘은 1995년 이래 공동작업을 해오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작가들이다. 현재 베를린을 기점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주로 건축의 양식을 택한 조각/건축 작품을 제작하는데, 이렇게 제작된 가상의 공간을 통해 풍자가 담긴 유머와 위트를 담아 사회문화적 이슈를 언급하는 방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2013년에는 영국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을 가상의 건축가 노만 스완의 저택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하기도 했고, 2015년에는 서울의 플라토 미술관 (예전의 로댕미술관)을 철학가 질 들뢰즈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아 공항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2015년 서울의 플라토 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 <<Aéroport Mille Plateaux>> 엘름그린 앤 드라그셋이 플라토 미술관 전체를 가상의 공항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천개의 고원 공항'이라는 의미의 전시회 제목은 <천개의 고원>이라는 철학가 질 들뢰즈의 저서에서, 그리고 그의 유명한 '유목민'이라는 개념에서 공항이라는 아이디어를 가져왔으리라.  
새벽녁의 프라다 마르파
인스타그램의 인증샷 코너로 자리잡은 프라다 마르파. 왼쪽 옆에 서 있는 말 한 마리가 아~ 텍사스군! 하는 느낌을 완성시켜주고 있다. 

과연 그들의 작품은 '조각'인가 '건축물'인가? 그들의 작품은 '설치 미술'인가 '대지 미술'인가?  아니면, '개념 미술'인가?  그들의 '가상 공간 만들기'라는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던 장 보드리야르의 '하이퍼리얼리티'라는 개념과도 상통한다는 면에서 명실공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이들의 인스타그램의 화면을 장식한 프라다 마르파.  언제 찍었나 누가 어떻게 찍었냐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른 그의 작품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의 셀카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다른 각도 다른 시각의 프라다 마르파의 모습을 몇 개 더 보너스로 싣는다.

아쉬운대로, 답답한 요새 사진으로라도 쇼핑도 하고 여행도 하는 기분 만끽하십사~ 올려봅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20. 9. 1. 19:20 미술 이야기

아이스크림 트럭에 친숙한 미쿡 아이들이 봤다면 통곡을 할 장면이 연출되었다.  다행히 진짜 아이스크림 트럭은 아니고, PET (Polyethylene terephthalate)라고하는 플라스틱 수지로 만들어진 작품.  2006년 호주의 시드니 한 해변가에 등장한 독특한 작품이다. 

James Dive (the Glue Society), Hot With a Chance of a Late Storm

회화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각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굳이 규정 짓자면, 설치 작품이라고 불릴만한 작품이다.  <<더운 날씨, 늦게 폭풍우의 가능성 있음 (Hot With a Chance of a Late Storm)>>이라는 제목이고, 개인 작가가 아닌, '접착제 협회'라고 번역해야하나?  "글루 소사이어티 (The Glue Society)"라는 그룹의 작품이다. (일부 기사에는 그 그룹에 속하는 제임스 다이브(James Dive)라는 작가의 작품이라고도 나와있다).  1998년 설립된 이 그룹의 경우 전직 광고 제작자였던 조나단 니본 (Jonathan Kneebone)과 게리 프리드만 (Gary Freedman)이 설립한 크리에이티브 콜렉티브 (예술가 공동체)로 뉴욕과 시드니에 회사를 두고 있다. 이 그룹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작업을 하고 있어서 미디어 작업부터 그래픽 디자인과 조각, 설치, TV 광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환경문제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작품 역시,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듯 하다.   일례로 최근 글루 소사이어티의 작품으로 알려진 '오렌지나 캐논볼 (Orangina Canonball)' (2013)이라는 작품은 오렌지나라는 음료수의 광고로 사용된 미디어 작품이다. 

오렌지나 캐논볼 Orangina Canonball (2013)

www.youtube.com/watch?v=YYK9DUcPQug

글루소사이어티의 멤버들의 협작으로 제작된 오렌지나 캐논볼.  '오렌지나'라는 음료수의 광고로 사용되었다. Orangina Canonball (2013) concept by fred & farid, paris, produced by wanda, paris, directed by the glue society’s gary freedman.

 

James Dive (the Glue Society), Hot With a Chance of a Late Storm

 

이 글루 소사이어티 혹은 제임스 다이브라는 작가가 제작한 플라스틱 수지 작품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우선 모더니즘 시대라면 작가의 이름이 이렇게 불분명한 경우란 상상하기 드물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은 피카소 아니면 마티스 혹은 에콜 드 파리 작가들의 작품입니다'라고 설명하는 경우를 상상할 수나 있는가?  위의 작품의 원료인 PET 역시 전통적으로 조각의 재료로 사용되는 제품은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예술은 모더니즘 시대의 예술과는 확고한 중심이 없다는 것, 그리고 기본이 되는 규범이 부재하거나 그러한 틀을 부정하는 것으로 간략히 요약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조각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와서는 모더니즘 시대 규정되어왔던 딱딱한 틀을 탈피하려는 노력의 와중에 '장르의 파괴'가 큰 특징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회화와 조각 사이의 구분이 애매해지고, 더이상 '캔버스에 유화'나 '대리석'과 같은 명확한 매체의 사용도 드물어졌다.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옆 라벨에는 '혼합매체'라고 표기된 것이 더 많아진 연유다. 그리고, 조각이라고 규정짓기 애매한 '설치 미술'도 늘어났기 때문.  그리고 이 '글루 소사이어티'의 여타 작품들을 봐도 장르를 규정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열심히 부정하려는 틀과 장르, 규범. 그런데 모더니즘식으로 규정된 수업의 내용으로는 그 범주를 어렴풋이나마 만들어서 진행시켜야한다는 점. 그것이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점 중에 하나라고 수업을 준비하면서 생각해보았다.  

James Dive (the Glue Society), Hot With a Chance of a Late Storm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3. 06:57 미술 이야기

리움은 사립 미술관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술관일 것이다.  몇 차례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리움은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다.  현대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작가들, 혹은 남길 화가들의 작품들이 비교적 빠짐없이 적어도 한 작품씩 다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그 작품들이 다 개론서에 실릴 법한, 그 작가의 장점이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대표작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대표작들은 이미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덜 알려진 작품들이라도 실제 구매를 한다고 생각해보면 그 가격은 천문학적 금액이므로 대표작들을 골라서 소장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이해는 된다. 또 장점은 개론서나 여타 미술관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아~ 이런 작품도 있었구나 하고 감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한번은 상설 전시관을 한 바퀴 돌다가 우연히 천장을 쳐다봤는데, 거기엔 이런 작품이 있었다. 

Antony Gormley, Feeling Material XXIX (2007). Stainless steel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공사하다가 남은 철사를 미처 치우지 못했나 할 철사 뭉치.  아니, 설마....하며 라벨을 보니 맞.았.다. 그것은 안토니 곰리 (Antony Gormley: 1950~)의 작품이었다. 

안토니 곰리는 1980년대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영국의 중견 조각가이자 설치 작업가이다. 1994년,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그래도 현대미술 분야에서는 가장 권위있는 상 중에 하나인 터너 프라이즈를 수상한 이래 다양한 수상 경력을 쌓아가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다.  2014년에는 기사작위도 받아서 이제는 Sir Antony Mark David Gormley, OBE*이다.  이제는 영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그의 작품들이 소장되고, 많은 명소들에 그의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현재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그의 공식홈페이지는 여기를 클릭!]

2014년 4월 15일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기사작위를 수여받는 안토니 곰리 (photo by Jonathan Brady/PA Wire)

공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고 작가 자신이 밝히고 있는 그의 작품은 실존 철학, 불교 사상 등의 영향이 보이는 심오한 작품들이 많다. 그 중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라고 느낀 작품은 작가의 신체를 철로 주조한 동상들이 수없이 해변가에 늘어서 있는 <Another Place>이다.

Antony Gormley, Another Place, Crosby Beach, Liverpool/England 

이 작품은 리버풀 지역의 크로스비 해변에 철로 주조한 동상 100점을 모두 얼굴이 바다 쪽을 향하도록 하여 설치한 작품이다.  작가의 나체를 그대로 본 뜬 이 설치는 유럽에서 두 번 전시한 적도 있는데, 한때에는 외설논란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2007년 이후에는 이곳에서 영구 설치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위의 사진 처럼 해변가에 세워진 동상도 있으나, 밀물 때엔 상당부분 동상이 잠기게 되는 것도 있는데,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끼도 끼면서, 파티나 혹은 버디그리라고 불리는 녹청이 끼게 된다. 이런 경우,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시간과 자연이 된다. 

그 곳을 찾은 방문자들은 이들 조각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조각에 옷을 입히거나 하면서 색다른 연출을 한뒤 촬영하거나 해서 그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하는데, 그 자체로 또 다른 작품으로 변신한다. 이 때 동상들은 출연자이기도 하면서 배경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그냥 그곳을 지나는 이들과 바다를 지나는 배와 함께 서 있는 동상을 찍은 사진들을 찍기도 하는데, 그 자체로 또 다른 작품이 된다.   특히, 어떤 작품들은 얼마전 여기 블로그에 올렸던 호쿠사이의 우키요에 속의 파도 그림과 같은 미학과 철학이 담긴듯 하기도 하다. 

크로스비 해안에 설치된 곰리의 작품 <Another Place> 그 자체, 그리고 또 그것을 촬영한 사진들. 그 속에는 세월의 흐름과, 자연의 변화, 또 그 곳을 찾은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어우러져 끊임없이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며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매번 다른 컨텍스트를 만들어낸다. 자연과 인공,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의 조건, 숙명, 동과 정, 생과 사... 수 많은 생각할 거리를 끊임없이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과 어우러질때, 무척 아름답다.

[더 많은 이미지는 이 링크를 참조] 

그 밖에도 왠만한 건물만한 크기의 철조 구조물로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 그것을 야외에 설치하는 작업들이 있다. 이 경우 성긴 철 구조물 사이사이로 바라보는 쪽의 풍경이나 햇살이 투과되는데, 그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빛의 반사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아래 작품은 그 철 구조물을 인간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내, 네덜란드의 렐리스태드 지방의 강둑에 설치되어 있는 <Exposure>라는 작품이 있다.   현지인들이 '용변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하지만, 원체 큰 사이즈라는 점, 그리고 인간의 형상을 딴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상기되는 여러가지 감상이 생긴다.   전격의 거인이 떠오르는 이 작품은 신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보자면, 오딧세이가 떠나고 난 뒤 혼자 남은 사이클롭스가 저러고 쪼그리고 앉아 떠나는 배들을 보고 있었지 않을까...

Antony Gormley, Exposure (2010) in Lelystad/The Netherlands. photo by Herman Verheij

그리고 수년전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작품이 아래 작품인데, 같은 <Feeling Material>의 제목을 달고 시리즈 번호만 다른 이것이 현재 리움의 작품과 비교적 유사한 작품일 것이다. 

Antony Gormley (b. 1950), Feeling Material XIV (2005),  4mm square section mild steel bar ; 224.8 x 217.9 x 170.2 cm 

위의 작품은 실제 인간의 크기를 훌쩍 넘는 크기의 엉킨 철사뭉치들이 어렴풋이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주의 혼돈에서 탄생하는 인간과도 같은 모습이다.  무에서의 유가 창조되는 순간인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건가?   무질서 속의 질서감이 느껴지면서 왠지 철학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는 듯하다.  <Feeling Material>이라는 제목에서 'material'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도 다양하다. 물질, 혹은 질료 하지만, 뭔가 구체적이고 중요하다는 의미도 있지 않은가?   

다시 리움으로 돌아와보자.   아닌게 아니라, 처음에 볼 때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1 미터 남짓한 작지 않은 철사더미에서 작은 우주의 소용돌이가 보이는 듯도 하다.  저 혼돈의 끝에는 어떤 생명이 탄생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Antony Gormley, Feeling Material XXIX (2007). Stainless steel

그러나, 솔직히, 이 조그만 철사 뭉치를 보는 것 만으로, 안토니 곰리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것 같다.  더구나 애당초 이 작품을 처음 보는 이가 이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미술관에 그의 거대한 등신상을 가져다 와서 다른 작품들 사이에 좁게 끼워 세워놓은들 <Feeling Material XIV> (2005)와 같은 작품그렇다치더라도 그 자연 속의 그의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는 감동을 그대로 받을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리움은 종합선물세트인데, 때로는 잘 안팔리는 연양갱이 들어 있는 종합선물세트이므로, 양갱의 제대로 된 맛을 느끼려면, 명품 장인이 운영하는 화과점을 가서 사먹어 봐야 하듯이, 그곳에 있는 작가들을 하나씩 천천히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종합선물세트의 연양갱이 맛이 없었다고 해서, 양갱이라는 먹을거리 자체의 맛을 부정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OBE: Offic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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