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2018/11 글 목록 (3 Page)
2018. 11. 6. 01:19 미술 이야기

 

이번에는 저번의 튤립 매니아 이어 바니타스 정물화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Philippe de Champaigne, Vanitas or Still Life with a Skull, 17th century. Oil on panel, 28 × 37 cm. Musée de Tessé, Le Mans

 

바니타스라는 라틴어는 영어로는 ‘vanity’ 해당하지, 용어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Vanity of vanities, saith the Preacher,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라는 전도서의 도입부 (Ecclesiastes 1:2;12:8)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니타스 회화 혹은 바니타스 정물화는 특정 종류의 정물화 장르를 지칭하는 용어로, 성서의 구절과 연관하여, 기독교적인 가치의 영원함에 비해서 세속적 삶은 덧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상징적인 사물들을 그린 정물화라고 정의해볼 있다. 

 

장르는 네덜란드의 황금기라고 있는 17세기의 네덜란드 사실주의 화가들이 발전시켰는데, 이런 의미로 일종의 기독교 예술이라고도 . 

 

이렇게 배경에는 잠시 유럽의 역사를 살펴보자. 

시기는 유럽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종교 카톨릭 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반발해 야기된 종교 개혁과 이에 따라 카톨릭 교회의 -종교개혁 대한 반작용으로 이어지는 시기였다. 네덜란드의 경우, 카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의 식민지 통치에 대한 반발로 적극적으로 개신교를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1620-1650 사이 네덜란드의 부유하고 신실한 중산층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로 돌아선 네덜란드는 이후 칼뱅이 가세해서 이상 부를 축적하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이전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보다 어렵다 배워왔다면, 이제는 운명은 신에 의해 이미 결정되었으므로 현세에서 주어진 직업 충실해야 한다고 배우게 된다. 그리고 현세의 부귀는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라고 여기게 되면서 보다 부위 축적에 대해서 이전보다 훨씬 당당하게 여길 있게 것이다.  

 

신이 17세기 네덜란드의 국운에 축복을 증거하셨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해상무역과 도시화로 인해 생활이 윤택해진 중산층이 많이 늘어난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주로 상공업에 종사했던 이들은 이전의 귀족이나 교회의 관직자들과 같이 오랫동안 철학이나 예술을 공부하여 조예를 쌓을 만한 시간이나 여력은 없었지만, 예술애호에의 열정은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적 여유를 갖게  중산층은 이제까지 귀족과 왕실가족의 전유물이라고만 여겼던 예술 작품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꼈음에 분명하다 조사에 따르면 중상류층의 가정에는 평균 53점의 작품을보통 중산층의 가정도 평균 7점의 작품은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이는 작품 크기가 비교적 작았음을 감안하더라도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비교해봐도 상당한 소장량이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산층이 고객의 주를 이루는 가운데, 바니타스 정물화가 유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여러가지 상황이 겹쳐서 일어난 사회 현상이라고  .  

 

먼저 이전까지의 주된 후원자의 위치가 갑자기 공백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과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를 받아들인 네덜란드에서는 교회 등에서의 성상 (聖像) 금지되었다는 것을 지적할 있다.   

 

당시 화가의 입장으로서는 이제까지의 주요 고객층 (?)이었던 교회와 귀족층을 잃게 되면서 이를 대체할 고객층 확보를 모색하는 한편, 이전까지의 노골적으로 종교적이어야만 했던 주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던 중에 개발한 장르라고 수도 있다. 또한 수요자 층의 입자이었던 신교도 중산층으로서는 금욕적인 신교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시각적 즐거움과 현세적 성공에 대한 과시를 죄책감 없이 있는 절묘하고 적절한 주제였을 것이다.   

 

이전의 대형 커미션의 경우에는, 규모에 있어서나 아카데미에서의 정한 위계에서나 단연 장중한 역사화 역사 상의 주요 사건을 묘사하거나, 신화상의 영웅담을 담은 그림이 일순위였다. 그러나, 이제는 일상 생활을 묘사한 소규모의 장르화, 풍경화, 정물화로 옮겨가게 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성상을 금지하는 교리와도 관련되는 것이지만, 주문자의 관심사를 반영한 것이리라. 새로운 후원자들은 상공업에 종사하는 중산층, 이들의 관심사는 생활 밀착형 회화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캘빈주의의 영향으로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허용되었다고 하나, 검약함은 강력한 미덕으로 자리하고 있었기에, 부를 쌓은 중산층들이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와는 상충되는 . 여기에 멋진 변칙이 들어가게 된다. 이를테면 풍성한 과일과 꽃이 담긴 정물화라도 사치에 탐닉한 어떤 것으로 표현되는 것만 아니면 된다.’ 이런식이다.    

 

따라서, ‘바니타스 정물화 네덜란드 황금기의 번영과 부를 만끽함과 동시에 인생의 덧없음과 도덕성을 상기하는 균형을 획득한 장르화로 자리잡게 된다.    

 

바니타스 회화의 주제로 사용된 주제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가장 대표적이자 원론적인 바니타스 정물화에 주로 다루는 사물들은 단연 해골, 모래시계, 척도계, 시계, 촛불, 인간의 유한함, 피할수 없는 죽음을 상기시키는 대상물이다.  이를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네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주제라고도 일컫기도 한다.  

2) 금은 보화, 금화, 지갑직접적으로 부를 상징

3) 파이프, 와인 글래스, 주사위, 트럼프 카드현세적 즐거움을 상징

4) , 잉크병과 , 지도, 망원경, 지구본현세적 지식을 상징한다.  흔히 탈속적이라고도 여길수 있는 지성에의 추구도 현세적 욕망에 포함시켰다는 점이 흥미롭다.

5) 때로는 악기와 악보를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음악이 머물지 않고 날아가버리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소재들은 엄격히 나눠져서 그려졌다기 보다는 여러가지 소재들을 경우에 따라 섞어서 그린 그림이 많다.  그리고 화가에 따라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는 차원에서 전문화가 이뤄지기도 한다.  

 

외에도, 껍질을 벗기다 레몬 같은 경우, 속껍질 알갱이들까지 표현한 섬세함과 정확한 묘사에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레몬의 상징은신산한 인생 대한 상징이라고. 물론 이면에는 화가가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다.

 

바니타스 회화를 보면 지상에서 인간들이 욕망하는 것들, 현세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 명예, 권력 등이 얼마나 질없는가, 그리고 인간은 결국 죽음을 피할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사물들을 묘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각각의 사물들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유명한 바니타스 정물 화가들에는 누가 있을까? 하렘 (Haarlem), 델프트 (Delft), 라이덴 (Leiden), 이트렉트 (Utrecht), 도르드렉트 (Dordrecht) 암스텔담 (Amsterdam) 등지에서 널리 유행했고, 화가들도 대부분 네덜란드인이었다.  

 

대표작가들로는 Jan Davidszoon de Heem (1606–1684, 혹은 Jan Davidsz de Heem 이라고도 표기됨), Willem Kalf (1622-93), Willem Claesz Heda (1594-1681), Abraham Hendriksz van Beijeren (c. 1620-1690 혹은 Beyeren이라고도 표기됨)이 있다. 

 

이들은 보통 가족 간에 기술을 전수하는 가내 기업 형태라, 아들 형제들이 함께 화가로 활동한 경우도 많기에 동일한 성을 가진 작가들이 엄청 많다.  게다가 외국어 중에서는 영어에만 익숙한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에게 이들의 이름의 발음이란 무척이나 어렵고 추측하기도 쉽지 않다 (나도 포함해서).  여기에 영어식 표기와 발음까지 섞이면 더더욱 혼란은 가중된다. 러니, 이번에는 그냥 그림들만 쭈욱 살펴보는 걸로~.  ^^;;;  


아래는 해골모래시계척도계시계촛불꽃 등의 메멘토  (Memento Mori) 주제를 다룬 정물화의 예들

Pieter Claesz, Vanitas Still Life with Oil Lamp and Writing Utensils (1628)

 

 

Jan Davidsz. de Heem  (1606–1683/1684), Vase of Flowers (ca. 1645), oil on canvas ; 69.6 × 56.5 cm, National Gallery of Art

 

 금은 보화금화지갑 – 직접적으로 부를 상징 - 등이 등장하는 정물화의 예

Evert Collier  (ca. 1640-1708), Vanitas Still-life (1705) oil on canvas ; 98 x 124 cm

Abraham van Beyeren (1620/21–1690), Still Life with Lobster and Fruit, probably early 1650s, Oil on wood; 96.5 x 78.7 cm

Jan Davidsz. de Heem (1606–1683/1684), A Table of Desserts (1640), oil on canvas ; 149 x 203 cm, Louvre   이러한 잔치 음식들을 그린 바니타스 정물화를 특화하여 네덜란드어로는 “Pronkstilleven”, 영어로 말하면 ‘ostentatious', 'ornate' 또는 'sumptuous' still-life라고 하는데, ‘사치스러운 정물화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독특한 정물화는 1640 년대 앤트워프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한 스타일이다.  

 

Antonio de Pereda  (1611-1678), Allegory of Vanity (1632-36) oil on canvas ; 139.5 x 174 cm, Kunsthistorisches Museum  - 바니타스 정물화에 등장하는 소재들의 종합선물 같은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해 스페인 작가에 의해 그려진 스페인의 바로크 작품에 해당한다. 이처럼 남 유럽 쪽의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천사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5. 04:46 미술 이야기

한동안 비트 코인 신드롬에 대해서 튤립 매니아 (Tulip Mania)와 비유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오늘은 새로운 시리즈 전에 잠시 단편극 형태로 튤립 매니아와 미술사와의 관련에 대해서……


"튤립 매니아" 혹은 "튤립 광풍"이 용어를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면, 소위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라고 일컬어지던 시기, 희귀 품종의 튤립의 구근에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어 상상을 초월한 고가로 거래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렇게 과열된 투기로 일대 열풍이 일었다가, 1637년 갑자기 가격이 폭락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산하거나 빚더미에 올랐다고 한다.

1636년~37년 사이의 튤립 가격 그래프


이 사회적 현상에 대해, 역사상 최초의 투기가 관련된 버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특정 품종의 구근 하나의 가격이 크기에 따라 3,000~4,200 길더나 되었다는데, 이 가격은 당시 숙련된 기술공의 1년치 월급이 불과 300 길더였다니, 10년치 월급을 훨씬 웃도는금액이라고 한다.

작가 미상 17세기 수채화 Semper Augustus, tulip mania 당시 가장 비쌌다고 알려진 튤립의 종. 이게 사실은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돌연변이 종이라고…

 

Admirael van der Eijck from the 1637 catalog of P.Cos., sold for 1045 guilders on February 5, 1637. 1637년 1045 길더에 판매된 튤립. 이게 거의 튤립 광풍의 끝자락의 꽃. 같은 해 열기는 폭삭무너지게 되니까.

Admirael van der Eijck from the 1637 catalog of P.Cos., sold for 1045 guilders on February 5, 1637. 1637년 1045 길더에 판매된 튤립. 이게 거의 튤립 광풍의 끝자락의 꽃. 같은 해 열기는 폭삭무너지게 되니까.

이런 투기의 배경에는 우선 식물학의 발전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카롤러스 클루시우스 (Carolus Clusius)라는 분이 일찌감치 왕실의 개인교사로 일하다가 라이덴 대학의 식물학 교수로 임명되면서 식물학 연구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는데, 그 중 그가 몰두한 분야가 튤립의 연구였다고 한다. 그렇게 연구에 몰두하던 중, 그는 튤립에서 일종의 돌연변이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귀족들 사이에서는 수집벽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밝혀진 바로는 그 돌연변이로 알려졌던 희귀품종은 사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그런 모양이 나온 거라고 하는데, 당시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Carolus Clusius 1585

그리고 웃돈이 붙게 된 배경에는 튤립의 독특한 생태계도 한몫을 했다. 튤립이라는게 원체 씨를 뿌려서 제대로 된 꽃으로 자라는데 무려 4~5년이 넘게 걸린다 한다. 그리고 그렇게 키워도 씨를 받아낸 엄마 꽃과는 다른 모양의 꽃으로 자라는 게 또 함정. 그래서, 보통의 경우, 구근을 받아서 그 구근에서 꽃을 피워야 엄마 꽃과 비슷한 모양이 될 확률이 훨씬 높고, 자라는 시간도 훨씬 단축이 된다고. 그렇지만, 구근이라는게 한 꽃에서 그다지 많이 나올 수 없는 것이고, 구근에서 싹이 나서 잎과 꽃으로 완전히 자라는데 시간이 걸리니, 거기에 웃돈이 막 걸리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구근을 거래 하는 시장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밝은 태양 아래, 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꽃밭에서 우아하게 이뤄지는것도 아니었다. 거래는 음침하고 은밀한 주점의 뒷방, 담배연기로 가득한 밀실에서 암암리에 은밀하게. 그렇게 음성적인 거래였기에, 나중에 탈이 났을 때, 그 거래에 대한 보상을 받을 기회도 적었다.

어쨌든 한 십수년 네덜란드 전역에 튤립 광풍을 일으키다가 무슨일인지 갑자기 거품이 쫘악 빠지면서 갑자기 가격이 떨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서 판돈을 미리 맡겼던 중산층의 매수인들의 가정이 줄줄이 도산하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고! 국가에서 빚을 탕감하는 정책도 폈다고는 하는데, 피해자들을 다 구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동안 뜨거웠던 비트 코인의 열풍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튤립 매니아, 튤립 광풍이 역사적으로 되풀이 되는 건 아닌가 염려하는 것이었으리라.

Jan Brueghel the Elder, Flowers in a Wooden Vessel, 1603 Oil on Wood ;98 x 73 cm, Kunsthistorisches Museum

위의 그림은 유명한 화가 피터 브뤼헬 더 엘더의 아들이었던 얀 브뤼헬 더 엘더의 꽃 정물화. 아래는 아이러니하게도 튤립 광풍에 대한 희화화를 그린 브뤼헬인데, 이번엔 피터 브뤼헬 더 엘더의 손자이자 얀 브뤼헬 더 엘더의 아들인 얀 브뤼헬 더 영거의 작품. 아래의 풍자화에서는 상류층의 귀족들이 얼빠진 원숭이들로 묘사되었는데, 이들도 하나같이 튤립에 열광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중 더 얼빠진 원숭이가 튤립 꽃밭에 오줌을 누는 바람에 붙잡혀서 혼나고 있는 장면도 보이고 있다.

Jan Brueghel the Younger, A Satire of Tulip Mania (ca. 1640) 얀 브뤼겔 더 영거가 그린 ‘튤립 광풍의 풍자’화 (1640년경)

 

얀 브뤼겔 더 영거가 그린 ‘튤립 광풍의 풍자’화 (1640년경), 세부

 

Gerritsz Pot, Wagon of Fools (1637) 바보들을 태운 마차라는 제목의 이 작품을 보면 마차위의 인물들이 튤립을 잔뜩 가지고 있거나 머리에 꽂고 길을 떠나고 있는데, 상황상 이 길은 죽음으로 이르는 길이라 예상된다.

위의 그림은 튤립 광풍에 맥없이 휘둘린 사람들에 대한 풍자화. ‘바보들의 마차’라는 제목의 작품속 인물들을 보면 마차 위의 인물들은 튤립 열풍에 휩싸여 흥청망청하고 있고, 그 마차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인물들도 보인다. 그 마차가 향하고 있는 곳은 죽음의 세계. 결국 멸망의 길로 기꺼이 가고 있는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화이다. 이 작품이 그려진 것이 1637년 인걸 보면, 튤립 가격의 폭락이 있고 나서 그려진 그림일까? 아니면, 그 폭락의 직전, 폭락을 예견한 그림이었던 것일까?

Hans Bollongier (1623-72) Still Life with Flowers (1639)

위의 그림은 돌연변이 종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젬퍼 아우거스터스 튤립 Semper Augustus tulip 으로 가득 찬 화병이 그려진 작품이다. 이 이상 확실한 인생무상, ‘바니타스’* 교훈의 화병이 또 있을까 싶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튤립 시장이 폭락했던 1637년 동안은 꽃의 정물화의 제작이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거슨~~ 꽃들을 볼 때마다 튤립 때문에 돈을 잃은 사람들이 맘이 너~무 아파서 꽃 그림 조차도 보고 싶어하지 않아서였다고.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은 역사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서 지난 과오는 반복해서 범하지 않는 슬기로운 존재일까? 앞으로 비트 코인의 열풍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어차피 소심한 나는 그냥 궁금해만 하겠지만.

 

*바니타스 정물화에 대해서는 글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기회에 따로 다뤄야겠다. ^^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4. 01:00 미술 이야기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전시회에 관련해서 게재했던 글입니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 展 - 붓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블라맹크의 열정

https://www.sacticket.co.kr/SacHome/playzine/pzArticle?searchSeq=3627

지난 전시에 대한 글이기는 하나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블라맹크 작품들이 소개되었던 전시회였기에, 글로나마 좋은 화가 하나 소개 더 하자하는 맘으로 올립니다. 


붓의 흔적이 생생히 살아있는 작품들의 경우, 화면을 납작하게 표현해버리는 사진만으로는 그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  혹시나 표현주의적인 작품의 전시회를 보실 기회가 있으시다면 반드시 '직접' 가셔서 한번 전시를 보실 것을 강추합니다. 

가을이 가기전 주말에 미술관 나들이 나가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3. 00:30 일상 이야기

오늘은 페북에 연결하다가 우연히 페북에서 질문을 올린 것을 발견하였다. 
"당신은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신선한 질문이다.  한국에서 과연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일까? 새삼 궁금해진다.  내가 짐작하기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시골에서 취재를 하는 오락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만 봐도 젊은 사람들은 다 대도시로 떠나고, 고향을 지키는 것은 나이가 든 노인층 밖에 없다고 하니 말이다.  서울에서 일자리를 잡은 사람들 중에서 서울 토박이도 사실상 얼마나 되겠는가?  

나만해도 태어난 곳과는 다른 곳에서 살고 있고, 지금 여기 뿐 아니라 이곳저곳 많은 곳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는 걸.  그러다가 예전 비행기에서 만났던 분과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텍사스 오스틴에 살고 있었고. LA로 향하는 비행기였던 것 같다.  

비행기 옆자리에는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여자분이 타고 있었는데, 원래 미인이기도 했지만, 눈이 마주쳤을 때 미소짓는 모습이 무척이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자분이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옆자리에 앉은 그 분이 왠지 긴장하는 듯 해서 다시 살펴보니까, 한손에는 묵주를 들고 또 다른 한손으로는 팔걸이부분을 꽉 쥐고 있었다.  아무래도 비행기  타기를 두려워하는 분이군. 이렇게 생각하고, 그러냐고 물어보니 수줍게 웃으면서 그렇다고 했다.  내가 괜찮다면 내 손을 잡아도 된다고 했더니, 괜히 잡으랬나 후회될 정도로, ^^;;; 내 손이 으스러질 정도로 꼭 움켜잡았고, 드디어 이륙을 마치고 나서야 꼭 쥔 손을 풀고서는 무안한듯 내눈을 보고 웃었다.      

덕분에 맘의 거리가 많이 가까워져서였을까?  비행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텍사스의 작은 도시 출신이라는 그 분은 소위 하이스쿨 스윗하트, 즉 고등학교때의 커플이었던 분과 결혼해서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다 했다.  심지어 자신은 물론 남편 쪽 친척들도 거의 모두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5마일 내의 거리 안에서 살고 있다고.  친척들이며 가족들도 다 근처에 살 뿐 아니라, 자신들 부부는 둘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해서 (We enjoy each other's company.라는 표현도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평소에는 그다지 여행도 멀리 하지 않고, 그래서 살면서 비행기를 탈 일은 전혀 없었다 했다.  이번에는 일가 친척 중 유일하게 멀리 있는 친척 하나가 LA에 살고 있는데, 이번에 생일을 맞아 'Surprise Party'를 해주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자기가 대표로 그 모임에 가는 거라고.   


나는 내 주변에 이렇게 태어난 곳에서 모든 친척들이 모여 사는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이라 신기해 했고, 그녀는 그녀대로 나처럼 태어난 곳은 고사하고 태어난 나라도 아닌 곳을 여기저기 다니는 인간을 처음 만났으니 신기해 하면서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미국이라는 넓디 넓은 나라에 태어나서 살면서 삶의 반경이 5마일이었던 여인과, 비슷한 또래로 살면서 한국에서도 태어난 곳이 아닌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생활을 하고, 또 미국이라는 전혀 다른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생활을 하는 나.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면서.  서로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또 다른 삶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 이러한 감정을 교류하며 즐거운 만남을 가졌고, 이후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만남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전혀 다른 인생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해 하며 '만약 내가 다른 삶을 선택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가 있었는데, 제목이 떠오르지 않네.  과연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택하게 될까?  

오늘 우연히 던져진 질문 앞에서, '나는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지 않지만, 본인 뿐 아니라 온 가족이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는 어떤 여인을 난 만난 적이 있다'라고 대답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2. 00:30 미술 이야기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푸훗~ 하면서도 과연~ 이라며 즐겁게 공감할 한 컷 소개.

이제 인플레를 고려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술 시리즈도 끝났겠다, 이젠 이 그림에서 단순하게 나타낸 사조별로 한번씩 훑어볼까 생각 중.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1. 00:30 일상 이야기

컨텍스트에 따라 사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는 것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한 컷

특히, 중간의 한 컷을 이해하는 당신은 우후훗 현대미술 전문가~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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