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2018/11 글 목록 (2 Page)
2018. 11. 14. 00:30 일상 이야기

노희영 이라는 사람이 며칠전 내가 인터넷 뉴스 보는 시간대에는 실검 1위에 올랐다. 이분은 누규?~ 하는 심정으로 찾아보니, 엊그제 이승기가 메인 MC를 보는 프로그램에 '사부'라는 형식으로 나온 모양인데, 댓글에 '꼰대'라느니 '갑질 조언'이라느니 비판이 뜨거워서 그 방영되었다던 프로그램을 한번 찾아서 봤다.

나는 그 분을 전~혀 모르고,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반감이나 동경의 감정 또한 전혀 없었는데, 그냥 방송을 보자하니, 사업에 대한 지식이나,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용어도 잘 모르니 그냥 그 사람, 참 자기 철학 뚜렷하구나 싶던데.

그 사람이 오락프로그램에 나와서 웃음기 쫙 빼고 진행한게 잘못이라면 '아주 큰' 잘못이긴 하지만, 각 출연자들에게 주는 조언도 '팩폭'이라는 생각이 들던데. 그리고 무엇보다 나부터도 나만이 가지고 있는게 무엇인가? 나다운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나름 교육적이다라는 생각까지 했는데....

그러나~~  가열찬 비판이 하도 뜨거워 실검 1위에 오르는 작금의 현실을 보니, 내가 뭘 잘못봤던 것일까? 아님 내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감상은 나이브하기 이를데 없어서 창업의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는 다 상식적인건데, TV 나와서 얄팍한 지식을 침소봉대한건지 새삼 궁금해졌다. 누가 이 분야를 아시는 분이시라면 좀 알려주시면 좋겠다. 나라도 미술사에 대해서 언론에 친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와서 막 아는 척하면 같은 분야를 공부했고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쫌 빈정 상할것 같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의 댓글에서 아이돌 가수나 MC 이승기의 감정을 다치게 했다는 이유에서의 비난이 많은 것을 보면, 짐작컨대 어린 학생들이 많지 않을까 싶은데, (팬심이라는 것에 대해 피상적으로 내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혹 그 이면에 다른 문제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어릴 때 기억이 안나서 뭐라 단정은 할 수 없지만 (솔직히 나도 그다지 어른스럽거나 지혜롭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은 단정할 수 있다), 그 때 기억은 다 사라져 버리고 개구리 올챙이 기억 못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꾸짖음을 받아 본 경험보다는, 행여 감정이 다칠까 걸맞지 않게 들려준 칭찬에만 어린 학생들이 길들여져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TV 오락프로그램이라는 것도 한몫을 하겠지. 스타들의 비굴할 정도의 친절이나 과장된 겸손이 익숙한 프로그램들이니까.)

하지만, 만약 비판의 융단 폭격을 날린 것이 어린 학생들이라면, 때론 냉정하게 들리더라도 적확한 비판을 받는 경우가 미성숙한 자신의 응석을 받아주기만 하며 책임없이 내뱉는 칭찬의 세례를 받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꼭 알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인격이 완성된 사람의 충고나 비판만 받아들이려고 들자면 평생 한번도 그럴 일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없을테니까.  상대의 인격의 완성도나 전달력의 우아함과는 무관하게 내게 도움이 되는 충고나 비판은 제대로 받아들여야만 내가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너무 진지하게 (진지충?) 오락프로그램에 대한 댓글들에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르나, 지난 수 년 간 가끔 20대 초반의 학생들과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느껴지곤 하는 면면도 있는 것 같아 잠시 시간을 내서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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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13. 00:30 영화 이야기

 

보통 리메이크 영화는 믿고 거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의 경우, 소설이 원작인 영화인 경우에도 좀 신중해지는 편이다. 특히, 내가 영화화가 되는 소설을 이미 읽었던 경우에는.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속에서 상상력을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펼쳐 두었는데, 현실 속의 배우들이 제한된 예산안에서 찍은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무대의 스케일이나 주인공의 모습들에 실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을 영화화한 경우에는 내가 자체적으로 그 영화를 거르거나, 아니면 보고는 '역시~'하고 실망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경우,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만들 수 있었던 탓일까 잘 모르겠지만, 멋진 영화들이 많다는 것도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리고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Untold Scandal, 2003)>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한국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Untold Scandal, 2003)>은 피에르 앙브로아즈 프랑소아 쇼데를로 드 라클로 (Pierre Ambroise François Choderlos de Laclos: 1741-1803)라는 기다란 이름을 가진 프랑스 혁명기의 군인 출신 소설가의 1782년 소설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에 바탕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영화가 이 서간체 소설을 직접적으로 참조했다고 보기 보다는 이 작품에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작품을 참고로 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 짐작한다.)  

혹자는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이 미술사에서는 로코코로 표현되는 귀족들의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행태'를 고발하기 위했다는 해석도 있으나, (서간체 소설답게) 소설의 끄트머리에 마담 볼랑지가 쓴 편지에서 '원래 인생이란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라고 밝히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교훈을 주려는 목적으로 집필 한 것 같지는 않다.  

오늘날은 워낙 충격적인 작품들이 많아서 그다지 놀랍지도 않을 이 작품은 당시 그 외설성으로 인해 큰 비판을 야기하기도 했다는데, 따라서 작가는 한동안 '외설 작가'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고.  정작 작가는 자신이 죽고 나서도 오랫동안 회자되는 작품을 쓰고 싶어했다고 하는데,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의 명성이 자신의 조국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 전역은 물론, 이백여년이 지난 한국에서도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Jean-Honoré Fragonard, The Swing (ca. 1767), oil on canvas ; 81 × 64.2 cm, Wallace Collection, London  

위의 그림은 당대의 퇴폐적이고 향락적이던 귀족 문화를 잘 반영해주는 작품으로, 로코코 미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이다. 이 작품에서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열심히 부인이 탄 그네의 줄을 당겨주고 있는데, 정작 아내는 젊은 애인과 눈을 맞추며 슬리퍼를 던져 밤의 밀회를 약속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당대 귀족들은 정략결혼을 하는 게 워낙 관례처럼 되어 있어 결혼 후 애인들을 만드는 것은 흉도 아닐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들키지만 말아줘.' '내 눈에만 띄지 말아줘~' 그런 분위기였다고.  프라고나르는 그런 로코코적 풍조를 유머를 담아 잘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다 암묵적으로 행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리 널리 알릴 일은 아니었음은 위 작품 왼쪽의 큐피드 상이 손가락을 입 위에 대고 '쉿~'하는 포즈를 취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로 돌아가서 얘기를 이어가자면, 앞서 밝힌대로 한국의 영화는 프랑스 소설을 직접적으로 참조했다기 보다는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던 서구의 영화를 참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대표적으로는 1959년 로제르 바딤의 프랑스 동명 영화와 1988년 영국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의 영화 <Dangerous Liasons>(불어 원제의 영어 번역)가 있다.  ('리에종'이라는 이 단어는 불어의 쓰임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영어에서는 '연락, 연결'이라는 의미 이외에 '불륜' '간통'이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점은 기억해 둘만하다.) 

1988년 작품 Stephen Frears 의 영화 <Dangerous Liasons프랑스 원제의 영어 번역이 작품인 이 작품은 고증과 시각적 효과의 조화라는 면에서 우리나라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모델 및 창작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초기 프랑스 영화는 내가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영국 감독과 미국 배우들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1988년 영화 <위험한 관계>는 고증과 시각적 효과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2003년 이재용 감독의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모델, 아니 창작의 원천은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작품이다.  

1988년 미국 영화에는 글렌 클로스, 존 말코비치, 미셸 파이퍼 등 개성파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할 뿐 아니라, 당시 화려한 프랑스 귀족들의 풍모와 생활을 보여주는 화려한 의상과 배경으로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이다.  

이에 2003년 한국의 영화는 프랑스의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조선시대로 옮겨 와서 각색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원작을 모르고서도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긴 하지만, 비교해서 보면 그 재미가 배가 되는 영화이다. 그 힌트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면서도 배경음악에는 바로크 음악이 사용되고 있다. (바로크 로코코 비슷한 시기이다.)  그리고, 미국 영화가 고증에 신경을 썼다면, 한국의 영화는 고증에서 자유롭게 상상력을 더해서 시각적으로 더 풍부한 아름다움을 가진 영화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이라고는 하지만, 영화내에서 사용되는 소품들이나 한복의 색상과 디테일들은 고증이라는 틀에서 자유롭게 현대적이면서도 상징적이고, 따라서 시각적 볼거리가 풍부해졌다. 

나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영화의 리메이크가 성공적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준 훌륭한 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술이나 시각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미국의 1988년작 영화 <위험한 관계>와 비교해 보면서 말이다. 

여담이지만,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준 예로는 최근 상영된 <라이프 오브 마스>를 들고 싶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한국 드라마 쪽이 BBC의 원작보다 훨씬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12. 00:30 일상 이야기

아래 그림에 나온 작품들 중에 읽은 작품은 몇 작품이나 되나요?


이 페이지를 방문하신 덕에 몇달정도의 시간은 절약하셨다고 느끼실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세상에 안읽은 책 참 많구나 싶으신지도.  그런 분들을 위한 위로 공연~


그리고 책 쫌 읽은 사람들이 보면 푸하하 웃을 만한 내용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11. 00:30 미술 이야기

요새 미술 - 제프 쿤스의 표절 Jeff Koons's Plagiarism 

네오팝 아티스트 혹은 차용 작가로 불리는 제프 쿤스는 마르셀 뒤샹과 앤디 워홀의 미학 (그런 것이 있다면) 담론을 결합하여 극대화 시킨 작가라고 있다.  뒤샹은 철물점의 소변기를 그대로 사서 엎어 놓더라도 작가의 선택 있었다면 작품이 되도록 하면서 예술가들로 하여금 손수무엇인가를 만들지않아도 되도록 만들었다. 워홀은 배고픈 천재 작가의 신화를 벗어던지고 성공한 예술가는 헐리우드 배우만큼의 유명세와 부를 누려도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따라서, 제프 쿤스는 한편으로는 직접 제작하는 수고없이 수많은 조수들에게 일을 시켜 제작하면서 (한때 수백명에 이른 조수들의 수를 최근 수십명 해고 했었다는 것이 뉴스가 되기도 했다), 아이디어를 짜내는 고뇌 따윈 집어치고 광고나 이미 유명한 작품들의 패러디와 차용을 해서 제작하면서, 헐리우드 스타만큼이나 유명세를 톡톡히 누리며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다.  그는 생존 화가 가장 비싼 작품을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일부러 싸구려처럼 보이게 만든 작품은 현대 미술의 수준 염려하는 진지한 미술 비평가와 애호가들에게 비판과 경멸의 대상이 되어왔다.  

 

 

Jeff Koons. Photo: Adam Berry/Getty Images. 절묘하게 잘찍은 사진. 그의 뒷쪽의 둥근 등의 모습이 마치 후광처럼 보이게 찍었다.

 

제프 쿤스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데미안 허스트와 함께 생존 작가로서는 작품 가격이 가장 높은 작가 랭킹 3위안에 드는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적 작가이다그는 애당초 키치’ (고급 미술에 대응한 개념으로 저질이고 싸구려 미술) 지향하며 의도적으로  싸구려 같고 저질인 작품들을 만들어내며 이율배반적으로 경매에서는 연이어 최고 가격으로 팔아 치워왔다

초기에는 일부러 삼류 잡지의 표지와 같은 사진을 작품으로 만들어내거나포르노 배우였던 아내와의 성관계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조각을 등신대로 만들어내는 식이었다. 1988년부터는 진부함 (Banailty)’ 시리즈물로 조각품들을 유사한 미감 (이것도 미감이라면)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기서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그의 공방에 소속한 조수들과 함께 전문 기술자들을 고용해서 말이다

그런 제프 쿤스의 의도적 저질 미술 혹은 키치 미술은 외설 논란과 함께 종종 법정 소송에 휘말리기도 해왔다. 이번에는 그의 1988 Fait d’Hiver 프랑스 의류 나프나프 (Naf-Naf) 1985년의 광고를 표절했다는 논란끝에 최종적으로 프랑스 법정에서 표절 판결을 받았다.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랭크 다비도피치 (Franck Davidovici) 제기한 소송에 쿤스가 작권 위반으로 €300,000 (£270,000) [4억원 상당] 배상하도록 최종 판결을 받았다. 아이러니 점은 제프 쿤스의 작품은 2007 크리스티 경매에서 프라다 재단이 무려 3.7 million (£2.8m) [305천만원 상당] 구매했었다는 사실이다

 

Jeff Koons,  Fait D'Hiver (1988) CREDIT:  RALPH ORLOWSKI/GETTY IMAGES EUROPE  표절 소송에서 패배한 제프 쿤스의 1988년 작품 Fait D'Hiver

 

Franck Davidovici’s original advert for Naf Naf, which he says American artist Jeff Koons plagiarised for his work Fait d'Hiver CREDIT: TELEGRAPH  제프 쿤스가 표절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 유명 의류 브랜드 나프나프의 광고

 

나프나프의 광고를 보면 젊은 여인이 밭에 누워 있는데, 설정상 눈사태의 희생양으로 보이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마치 조난자를 구조하는 세인트 버나드와 같이 돼지가 목에 럼주가 담긴 작은 통을 매고 그녀의 곁에 다가서고 있는 모습이다. 작품은 나프나프 아기 돼지 삼형제에서 벽돌집을 지었던 막내 돼지의 이름인데서 설정이리라.

 

작품 모두, 조각 작품이라는 유사점 이외에도, 프랭크 다비도비치가 주장한 바대로 소녀의 표정과 목에 통을 매단 돼지가 자신의 작품과 동일함하다. 굳이 전문가의 식견을 묻지 않더라도, 작품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도 놀랍도록 유사하다.  제프 쿤스의 경우, 추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인 , 펭귄 두마리를 덧붙였다는 점, 쿤스의 돼지가 선물 포장의 리본 같은 것을 두르고 있는 것 이외에는 여인과 돼지라는 등장인물과 구도까지 동일하다. 게다가 제목까지 ‘Fait d’Hiver’라는 동일하게 달았는데, 이는 영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The Fact of the Winter”라고 해석  있는 뜻이 명확하지는 않은 불어 단어인데, fait divers (‘짧은 뉴스라는 ) 동일한 발음에서 언어유희이다.   

 

다비도비치는 제프 쿤스의 작품의 존재를 2014 퐁피두 센터에 전시되었을 때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전시로 인해 퐁피두 센터도 2014 전시로 인해 벌금을 물게 되었다. 1988 이후 그가 유명 광고 등에서 있는 저작권이 있는 이미지들을 이용해서 제작한 쿤스의 ‘Banailty (진부함)’라는 조각 시리즈는 그의 본국인 미국에서 끊임없는 논란을 야기해왔다. 그리고 쿤스에게 프랑스에서의 소송이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에는 제프 쿤스 개인 유한회사인 Jeff Koons LLC 작고한 프랑스의 사진 작가 -프랑소아 보레 (Jean-François Bauret)에게 51백만원 (€40,000)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왼쪽) 프랑스 사진작가 Jean-François Bauret의 'Enfants' (1975)의 사진 작품 ; 오른쪽) 제프 쿤스, 도자기 작품  '나체 (Naked)' (1988) - 프랑스 법정은 제프 쿤스에게 장-프랑소아 보레에게 4만 유로를 지불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제프 쿤스의 나체 (Naked)” 1988 제작된 1미터 남짓한 도자기 조각으로 나체의 어린이가 어깨 동무를 한 채, 남자 아이의 오른손에 들려진 꽃을 여자 아이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프랑소아의 1975 사진 작품 어린이 (Enfants)”라는 사진과 몹시 유사한데, 작품은 엽서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진 작품에서는 어린이가 꽃을 들고 있지는 않고, 그냥 나란히 서서 어깨 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긴 하지만, 소녀의 숙인 고개의 모습 소년의 시선 등에서 유사하다.   

미국에서의 경우, 여러 논란들이 있었지만, 법정 소송으로 발전한 경우는 없는데 비해, 프랑스 법정은 차용미술 재벌 작가에 대해서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은 듯하다.

이는 순수 예술의 역사를 이끌어온 프랑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 이해해도 될까?

 

Art Roger, 'Strings of Puppies'   

 

Jeff Koons, Puppies   String of Puppies (1988),  polychromed wood,  106.7 x 157.5 x 94 cm  © Jeff Koons  Edition of 3 plus AP    사진 작가 아트 로저의 '줄줄이 강아지'라는 사진 작품을 쿤스가 채색 목재 조각품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소송까지는 가지 않고 '표절'이 의심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사진 작가와 법정 밖에서 합의로 매듭지었다 알려졌다. 

 

참고로 제프 쿤스의 다른 작품은 그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왠만한 패션 브랜드보다 잘 꾸며 놓았다.  그의 홈페이지 주소는 여기~ 

http://www.jeffkoons.com/

 

Welcome to jeffkoons.com | Jeff Koons

 

www.jeffkoons.com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10. 00:30 영화 이야기

BBC에서 100편의 외국 영화를 선정한 것을 발견하였다.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 

한국 영화에는 29위를 차지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눈에 띈다.  

Fritz Lang의 작품들이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13위의 'M' (1931)과 16위 'Metropolis' (1927)에 등극)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작품들이지만, 미술사와 연관해서도 당시 미술사조들과의 관련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이다.  

'화양연화'와 '중경삼림' 같은 익숙한 작품도 포함되었다.  1위와 4위를 모두 쿠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차지. ('7인의 사무라이'와 '라쇼몽').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다소 의아. 외국에서 엄청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알고 있는데...  

앞으로 봤던 작품들도 한번씩 더 찾아보고, 미처 보지 못했던 작품들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BBC Culture’s 100 greatest foreign-language films:

100. Landscape in the Mist (Theo Angelopoulos, 1988)

99. Ashes and Diamonds (Andrzej Wajda, 1958)

98. In the Heat of the Sun (Jiang Wen, 1994)

97. Taste of Cherry (Abbas Kiarostami, 1997)

96. Shoah (Claude Lanzmann, 1985)

95. Floating Clouds (Mikio Naruse, 1955)

94. Where Is the Friend's Home? (Abbas Kiarostami, 1987)

93. Raise the Red Lantern (Zhang Yimou, 1991)

92. Scenes from a Marriage (Ingmar Bergman, 1973)

91. Rififi (Jules Dassin, 1955)

90. Hiroshima Mon Amour (Alain Resnais, 1959)

89. Wild Strawberries (Ingmar Bergman, 1957)

88. The Story of the Last Chrysanthemum (Kenji Mizoguchi, 1939)

87. The Nights of Cabiria (Federico Fellini, 1957)

86. La Jetée (Chris Marker, 1962)

85. Umberto D (Vittorio de Sica, 1952)

84. The Discreet Charm of the Bourgeoisie (Luis Buñuel, 1972)

83. La Strada (Federico Fellini, 1954)

82. Amélie (Jean-Pierre Jeunet, 2001)

81. Celine and Julie go Boating (Jacques Rivette, 1974)

80. The Young and the Damned (Luis Buñuel, 1950)

79. Ran (Akira Kurosawa, 1985)

78.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Ang Lee, 2000)

77. The Conformist (Bernardo Bertolucci, 1970)

76. Y Tu Mamá También (Alfonso Cuarón, 2001)

75. Belle de Jour (Luis Buñuel, 1967)

74. Pierrot Le Fou (Jean-Luc Godard, 1965)

73. Man with a Movie Camera (Dziga Vertov, 1929)

72. Ikiru (Akira Kurosawa, 1952)

71. Happy Together (Wong Kar-wai, 1997)

70. L’Eclisse (Michelangelo Antonioni, 1962)

69. Amour (Michael Haneke, 2012)

68. Ugetsu (Kenji Mizoguchi, 1953)

67. The Exterminating Angel (Luis Buñuel, 1962)

66. Ali: Fear Eats the Soul (Rainer Werner Fassbinder, 1973)

65. Ordet (Carl Theodor Dreyer, 1955)

64. Three Colours: Blue (Krzysztof Kieślowski, 1993)

63. Spring in a Small Town (Fei Mu, 1948)

62. Touki Bouki (Djibril Diop Mambéty, 1973)

61. Sansho the Bailiff (Kenji Mizoguchi, 1954)

60. Contempt (Jean-Luc Godard, 1963)

59. Come and See (Elem Klimov, 1985)

58. The Earrings of Madame de… (Max Ophüls, 1953)

57. Solaris (Andrei Tarkovsky, 1972)

56. Chungking Express (Wong Kar-wai, 1994)

55. Jules and Jim (François Truffaut, 1962)

54. Eat Drink Man Woman (Ang Lee, 1994)

53. Late Spring (Yasujirô Ozu, 1949)

52. Au Hasard Balthazar (Robert Bresson, 1966)

51. The Umbrellas of Cherbourg (Jacques Demy, 1964)

50. L’Atalante (Jean Vigo, 1934)

49. Stalker (Andrei Tarkovsky, 1979)

48. Viridiana (Luis Buñuel, 1961)

47. 4 Months, 3 Weeks and 2 Days (Cristian Mungiu, 2007)

46. Children of Paradise (Marcel Carné, 1945)

45. L’Avventura (Michelangelo Antonioni, 1960)

44. Cleo from 5 to 7 (Agnès Varda, 1962)

43. Beau Travail (Claire Denis, 1999)

42. City of God (Fernando Meirelles, Kátia Lund, 2002)

41. To Live (Zhang Yimou, 1994)

40. Andrei Rublev (Andrei Tarkovsky, 1966)

39.  Close-Up (Abbas Kiarostami, 1990)

38. A Brighter Summer Day (Edward Yang, 1991)

37. Spirited Away (Hayao Miyazaki, 2001)

36. La Grande Illusion (Jean Renoir, 1937)

35. The Leopard (Luchino Visconti, 1963)

34. Wings of Desire (Wim Wenders, 1987)

33. Playtime (Jacques Tati, 1967)

32. All About My Mother (Pedro Almodóvar, 1999)

31. The Lives of Others (Florian Henckel von Donnersmarck, 2006)

30. The Seventh Seal (Ingmar Bergman, 1957)

29. Oldboy (Park Chan-wook, 2003)

28. Fanny and Alexander (Ingmar Bergman, 1982)

27. The Spirit of the Beehive (Victor Erice, 1973)

26. Cinema Paradiso (Giuseppe Tornatore, 1988)

25. Yi Yi (Edward Yang, 2000)

24. Battleship Potemkin (Sergei M Eisenstein, 1925)

23. The Passion of Joan of Arc (Carl Theodor Dreyer, 1928)

22. Pan’s Labyrinth (Guillermo del Toro, 2006)

21. A Separation (Asghar Farhadi, 2011)

20. The Mirror (Andrei Tarkovsky, 1974)

19. The Battle of Algiers (Gillo Pontecorvo, 1966)

18. A City of Sadness (Hou Hsiao-hsien, 1989)

17. Aguirre, the Wrath of God (Werner Herzog, 1972)

16. Metropolis (Fritz Lang, 1927)

15. Pather Panchali (Satyajit Ray, 1955)

14. Jeanne Dielman, 23 Commerce Quay, 1080 Brussels (Chantal Akerman, 1975)

13. M (Fritz Lang, 1931)

12. Farewell My Concubine (Chen Kaige, 1993)

11. Breathless (Jean-Luc Godard, 1960)

10. La Dolce Vita (Federico Fellini, 1960)

9. In the Mood for Love (Wong Kar-wai, 2000)

8. The 400 Blows (François Truffaut, 1959)

7. 8 1/2 (Federico Fellini, 1963)

6. Persona (Ingmar Bergman, 1966)

5. The Rules of the Game (Jean Renoir, 1939)

4. Rashomon (Akira Kurosawa, 1950)

3. Tokyo Story (Yasujirô Ozu, 1953)

2. Bicycle Thieves (Vittorio de Sica, 1948)

1. Seven Samurai (Akira Kurosawa, 1954)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9. 00:30 일상 이야기

Gustave Caillebotte - The Yerres, effect of rain (1875)

가을비가 어제부터 계속 내리고 있다. 

오늘 같은 날은 커다란 창이 있는 카페에 자리하고는 느긋하게 커피라도 한잔 하는 여유를 부리고 싶어진다.  비를 맞는 건 싫지만, 비를 구경하는 일은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현실은 독감 예방주사도 맞았건만, 기침 감기는 미련 덕지덕지 많은 애인처럼 일주일 넘게 나를 떠나려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은 그대로 쌓인 채, 매일매일 할 일이 더해져 간다.  

구스타브 카이유보트는 비의 효과를 표현하는 것에 관한 한 가장 탁월한 화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위의 작품은 원체 부유했던 그의 집안의 영지 중 하나에서 그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림 뒷쪽에 작게 그려진 보트도 모르긴 몰라도 카이유보트의 것이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보트 놀이를 상당히 좋아해서 조정 경기에도 열의를 올리곤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의 모습은 르느와르의 <선상의 파티>에도 그려져 있다. 

그의 좀더 유명한 작품,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이라는 작품은 19세기 말의 파리지앵들의 산책하는 장면을 포착한 작품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눈을 끄는 것은 촉촉하게 젖은 포도의 모습.  

Gustave Caillebotte - Paris Street, Rainy Day (1877)


이 비가 그치고 나면 한동안 젖은 아스팔트 위로도 낙엽들이 다닥다닥 붙어 투명한 빛을 내다가 가을은 더 깊어지고 겨울이 성큼 다가와오겠지. 어느새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영롱하고 그렇게 이 해도 저물겠지...  몸이 아프니까, 왠지 울적 우울.  

그렇지만, 가로등 불 빛 아래의 거리 모습은 아름답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8. 01:16 미술 이야기

엊그제 "단순화한 현대미술 한 컷 - Simplified Modern Art"라는 제목으로 일러스트레이션 하나를 올렸다. 내가 그린 것은 아니고, 재치 있는 그림을 늘 올려서 간혹 들러서 작품들을 구경하고는 후훗 즐거워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   (참고로 그 포스팅은 여기 http://sleeping-gypsy.tistory.com/75)

 

거기에 소개된 미술사조는 다음과 같다. 

  • Impressionism
  • Pointillism
  • Art Nouveau 
  • Fauvism
  • Expressionism
  • Cubism
  • Futurism
  • Dada
  • De Stijl 
  • Constructivism
  • Surrealism
  • Abstract Expressionism
  • Pop
  • Minimalism
  • Conceptualism  
  • Postmodern art 

 

실제로 해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하나씩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생각 중이다. 

오늘은 먼저 빅픽처 소개. 

원래 현대미술의 계보를 처음으로 만든 건 뉴욕의 현대미술관 (MoMA)의 관장이었던 알프레드 H. 바, 주니어 (Alfred H. Barr, Jr.)이다. 그가 그린 계보도는 "입체주의와 추상미술"이라는 전시회의 카탈로그의 표지에 쓰이면서 널리 알려졌고, 이후 거의 모든 개론서나 미술사 수업이 그의 분류에 따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래가 알프레드 바의 현대미술 계보도. 

Alfred H. Barr, Jr.가 제작한 모더니스트 미술사 차트 - 1936년 "큐비즘 및 추상 미술" 전시회 카탈로그 자켓으로 사용됨.   Jacket for the exhibition catalogue Cubism and Abstract Art, with a chart of modernist art history by Alfred H. Barr, Jr. Offset, printed in color. New York: The Museum of Modern Art, 1936.   ALFRED H. BARR, JR. PAPERS, THE MUSEUM OF MODERN ART ARCHIVES, NEW YORK/COURTESY MUSEUM OF MODERN ART.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7. 00:30 영화 이야기

좋아하는 영화를 꼽다보면 그 좋아함에도 여러가지 층이 있음을 알게 된다.  '로마의 휴일'처럼 매번 볼 때마다 왠지 아련하면서도 즐거워지는 영화가 있는 반면, '블레이드 러너'처럼 제목을 떠올릴 때마다 그 묵직한 감동에 맘까지 무거워지면서 '명작'이라고 꼽기엔 주저함이 없지만, 여유로운 휴일 다시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는 포함시키지 않을 영화도 있다. 물론 미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예술가의 제작 당시의 맘과는 별개로 내가 내 거실에다 걸어놓고 매일매일 보면서 가까이 두고 싶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전시회가 열린다면 반드시 가서 보고 싶긴 하지만, 내 거실에 걸라고 누가 줄까봐 겁나는 작품들도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포스터

블레이드 러너는 원래 필립 K. 딕이 "앤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감독 리들리 스콧이 1982년 "블레이드 러너"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이다.   소설에서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공감능력'인가 아닌가 하는게 주제였다고 하는데, 영화에서의 관건은 '기억' 내지 '추억'의 유무이다.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패러랠 월드 러브 스토리'와도 비슷하긴 하다. 내가 믿고 있는 기억과 추억이 실은 내 것이 아니라면,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는 대부분의 혼란과 의문은 해결되지만, 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Philip K. Dick,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Doubleday, 1968) 필립 딕의 소설 <앤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초판 커버


리들리 스콧은 워낙 유명한 감독이기도 하지만, 그가 <블레이드 러너>에 쏟은 애정도 남다른 듯 한게, 이번 기회에 찾아보니까 무려 7가지 버전이 있다.  '감독판' 혹은 '최종판'등이 상영된 버전과 함께 존재하는 영화는 적지 않지만, 이런저런 변주를 거쳐 7가지나 버전이 존재하는 영화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사태가 이렇다보니, 딱히 영화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그냥 영화보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내가 예전에 몇 번 봤던 그 <블레이드 러너>가 몇 번째 버전인지, 아니면 그 몇 번 봤던 영화가 모두 동일한 버전의 것인지도 확실하지가 않다.  (다만, 내 기억에는 유니콘을 본 기억이 확실히 있으니, 모르긴 몰라도 1992년 발표된 감독판이 아니었나 짐작만 할 뿐이다)

심지어 다시 생각해보니, 새삼스럽게도 그 '블레이드 러너'라는 것의 정확한 의미도 불분명하고, 좀 조사를 해봤으나 그 의견도 분분한듯 한데 대체로 아래와 같다. 

1. 정의의 첫번째로 등장한 것은 놀랍게도 대부분, 이 영화로 근원이 돌아오면서, 수명이 다한 레플리칸트 (외형적 모습 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감정선까지 인간과 유사하게 만들어진 인조인간)들을 처리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는 정의이다. 

2. 1번과 연결되는 정의로 칼 (blade)을 잽싸게 놀려 (run) 처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 (-er)

3. 칼날 위를 달리는 듯한 위험천만한 일을 하는 사람

4. 하반신이 불구라서 의족을 단 사람 (요새 특수 제작되는 의족들의 모습이 날렵하기도 하고, 얼음 위를 달리는 스케이트 날을 연상한 데서 온 것인 듯한데, 칼날 같은 다리를 단 사람이라는 뜻인 듯하다) 


난 소설은 읽지 못했고, 그렇게 홈을 파듯 여러 버전 섭렵하면서 영화를 연구하며 보지는 못했지만, 처음 그 영화를 봤을때 묵직한 감동과 충격을 받았고, 그 감동은 이면은 일종의 강렬한 공포감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이후로도 이런저런 이유로 한 두번 더 봤던 것 같은데, 약간씩 느낌이 다르긴 했지만, 비슷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한동안은 그 공포감의 원인을 정리할 수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는 궁극적이고도 핵심적 척도가 추상적이고 주관적이기 짝이 없는 '기억'내지 '추억'일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론, 영화에 대한 감상과 비평은 훨씬 다양하겠지만 말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와 레플리칸트, 타이렐과 레플리칸트와의 관계의 신학적 해석 등등) 

결국, 인간은 생물적으로나 물리적, 화학적으로, 또 사회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척도로 다른 방식의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가장 피부에 닿는 정의는 지난 날의 경험의 축적과 그 경험에 대한 기억으로 이뤄진 유기체라는 것이다.  극중에서 레플리칸트이었던 레이첼이 이식된 기억을 추억이라 믿으며 따라서 자신은 인간이라고 믿는 대목.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 나중에 보물 찾으러 다니시며 긴 채찍을 휘날리실 해리슨 포드가 분한 대커드가 어린 시절의 추억과 어우러진, 숲 속을 자유롭게 달리는 아름다운 유니콘의 꿈을 떠올리며 피폐한 현실에서 인간성을 회복하곤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의 종이접기로 만든 유니콘 하나로 그 인간이라는 확신이 흔들릴 때.  그건 공포영화에 가까운, 간담서늘한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영화의 키워드인, '과연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와 관계 있는 종이로 접은 유니콘.  


대커드를 관리감독하던 개프가 대커드의 가장 사적인 기억이자 추억인 유니콘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자, 결국 대커드도 그가 제거해왔던 레플리칸트, 즉 주입된 기억으로 인간이라 착각하며 사는 레플리칸트였던 것은 아닌가 하는 논란의 불씨가 되는 중요한 장면이다.  

인간이 인간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언제인가?  나라는 존재는 결국 무엇인가?  남자이냐 여자이냐, 성인이냐 아이이냐, 어떠한 직장을 갖고 어떠한 음식을 먹고, 어떠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어떠한 집에서 살다가 죽는가? 이런 모든 것이 '나'를 정의해 주는가? 그러한 공통 분모 내지는 보편적 변별 요소들을 다 제거해나가다 보면, 나는 결국 내가 태어나서 경험한 것들의 축적체이고, 그 기억과 추억은 그런 축적체의 나의 존재를 확신하게 해주는 증거들이 아닌가? 그러한 경험들로 사고와 가치관이 형성되고 나의 정신을 지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하며 살다가 죽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주변에 의한 영향으로 형성된 유약한 존재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에서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할지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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