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분야를 예로 들어보자면,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도 어느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고, 소중히 여겨 작품은 물론, 그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고 보존해주지 않으면, 후대에 가서는 그 작가의 재능과 탁월함에 대해 알 길이 없다. 최근 페미니즘 관련 수업 준비를 하다보니, 결국 잊혀지거나 관심받지 못했던 여성 작가들이 후대에 가서 '발굴'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작가들에 대한 기록이나 작품들이 남아있을 때 이야기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으로 많은 페미니즘 미술사학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여성 작가라 하더라도, 그에 대한 작품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을 경우, 연구를 시작하는 것조차 용이하지가 않다는 것도.
그리고, 다이얼식 전화기나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처럼 불과 몇 십년 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당시에는 너무 당연히 다 알고 있어서 설명해두거나 기록할 필요가 없었던 것들도 불과 몇 세대가 지냈다고, '요즘 어린 친구들'은 도통 용도를 알지 못하는 물건도 많더란 것도 알게 되었다.
역사란 결국 사람들이 아끼고 기억해주는 것들이 모여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 와닿는 일러스트레이션.
오늘은 오랜만에 '내맘대로 작품보기' 시리즈에 본격적으로 한번 올려본다. 이미 유명작가이신 분이라 새삼 소개하는 의미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 맘대로 작품을 올리는 거니까. 가을이기도 하고, 특히 올해는 매일 스치듯 지나가는 가을이 아니라 제법 길게 머무르는 가을이기도 하고... 자칫 지구가 멸망 (?)할 수도 있었다는 뉴스를 뒤늦게 접하기도 했고.... 한동안 유유자적한 여행 못가보기도 했고... . 자그마한 차에 짐 척척 싣고 맘 내키는대로 여행 떠나고 싶은 내맘을 알아주는 듯한 작품이다.
인기 작가인 것치고는 그의 홈페이지나 작품의 자세한 정보가 담겨있는 정보를 찾지를 못해 발견해온 화면 만으로 평가해보자면, 아마도 주로 아크릴릭과 판화 작품을 제작하는 듯하다. 자세히 보면 가로로 짧게 뻗은 붓자국이 힘찬 그의 화풍은 회화적이면서도, 자동차 부분에서는 단순화 시킨 선 탓에 일러스트레이션 혹은 만화 풍의 인상도 있다. 각각의 작품에 담긴 풍경은 다르지만, 짐 잔뜩 올려 실은 자그마한 자동차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때로는 너른 평야로 때로는 자작나무 가득한 오솔길로 유유자적 다니는 자동차를 보노라면, 그렇게 작은 차에 몸을 싣고, 올 가을엔 꼭 한번 계획없이 훌쩍 떠나보고 싶어진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10대 청소년 둘에게 다이얼식 전화기를 보고 어떻게 전화 거는지 알아내라고 했는데 주어진 시간안에 결국 전화를 거는 것을 실패하는 것을 봤다. 한편으로는 생전 써본 적 없는 기계를 못쓰는게 이상할 건 없지만, 나로서는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 에피소드를 보니까, 얼마전 한국에서 최근에 대규모 회고전을 했던 데이비드 호크니가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했던 것이 생각났다.
이 작품에 관해서 설명을 하면서, 호크니는 이 그림 속에 백색 전화기를 넣은 이유가, 이 초상화의 주인공들이 당시 패션계를 주도하던 힙한 인물임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후대의 사람들이 저 흰색 기계의 용도를 알기나 할까?' 호크니가 덧붙인다. 그 백색 전화가 당시로서는 첨단의 기기였다는 것을 아는 것은 고사하고 말이다.
이것이 미술사가 필요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사소한 것도 기록해 버릇해야하고, 또 지난 시절의 기억들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기억하는 것들만 남기 때문이다.
p.s. 요즘 집안 정리를 하면서 예전 수첩이나 메모가 눈에 띌때가 있어서 뒤적이다보면,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겠는 것들이 간혹 있다. 분명히 그때는 중요했으니 메모를 남겼을 것이고,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어서 그냥 약자로 간략하게 적어놓은 일들일텐데 말이다. 남의 기억도 아니고 나의 기억도 이렇게 재빨리 휘발되는 마당에... 앞으로는 좀더 기록을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말씀.
난 고대 미술사에 대해서는 필수 교양으로 들어야 해서 들은 수준 밖에 되지 않지만, 고대 유물에 관한 뉴스는 꽤 관심있게 보는 편이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살았나 뭘 먹고 뭘 입고 일상을 어떻게 보냈는지 하는 이야기는 참 흥미롭다. 며칠 전 본 기사도 그러했다. 청동기 시대 사람들도 아기에게 염소나 양젖을 먹일때, 젖병을 사용했다는 기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기사에 올려진 사진이 꺄악! 너무 귀엽다. 당시 사용했던 젖병 (이라고 쓰고 토기라고 읽는다)을 재현해서 실제로 아기에게 먹여보는데 쪽쪽 잘 먹고 있는 아기의 모습. 온 정신을 집중해서 젖을 먹고 있는 아기도, 그 아기의 오동통한 볼살과 닮아있는 토기의 모습도 다 너무 사랑스럽다. 고대인들의 미감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기사에 따르면, 이 토기들은 청동기와 철기 시대 아기들의 무덤에서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아이의 부모들이 죽은 아기가 저세상에서도 굶주리지 않도록 토기들을 함께 묻어줬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부모들의 맘은 매한가지인가보다. 그 옛날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과 자식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듯 감동스럽다. 이런 인간이라는 공통분모로 겪고 공감하는 이야기들을 읽을 때마다 보편적 인류애가 샘솟곤 한다.
뭉크의 <절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미술 애호가들에게 뿐 만 아니라 그닥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 작품은 미술책에서 소개될 뿐 아니라, 광고 등에서도 수없이 차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우리를 찾아오는 <나홀로 집에>에 등장하는 맥컬리 컬킨의 앙증스러운 포즈도 그의 작품에서 따온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품을 직접 본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인데,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도 소듕한 작품이라 이 작품은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에서 외부로 반출되는 일 없이 그곳에 모셔져 있기에.
그의 이 작품 속에서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흡사 해골과도 같이 앙상한 모습의 인물은 시대말의 불안과 절망을 표상하는 것으로 평가되며, 20세기 초 등장한 표현주의의 효시로도 일컬어지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인기는 당시에도 대단해서 주문이 쇄도 했던듯, 이 작품과 유사한, 아니 거의 동일한 작품들이 다양한 매체로 남아있고, 그 중 대표적인 작품만 해도 총 4점이 현존하고 있다.
1895년의 파스텔 버전은 2012년 경매에서 무려 1억2천만 달러 (약 1470여억)에 거래되었는데, 이로써 뭉크의 작품의 인기를 재확인된 셈이었다. 물론 그의 <절규> 자체의 인기 이외에도 고가로 거래된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에는 특이하게도 액자의 하단에 당시 작품노트에 해당하는 몽크의 일기 내용이 자필로 새겨진 동판이 부착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일기란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뭉크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상황을 기록한 것으로, 일종의 작가의 작품노트라고 할 수 있다. 1892년 1월 22일의 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두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불현듯 우울감이 엄습했다. 하늘이 갑자기 핏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죽을 것 같은 피로감에 멈추어서서 난간에 기대었다. 검푸른 협만에 마치 화염 같은 핏빛 구름이 걸려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혼자서 불안에 떨면서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를 느꼈다.
이 일기 내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어왔고, 대부분 작가 개인사 혹은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심리적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예전에 읽었던 한 연구에 따르면, 이 당시 동남아시아 지역에 큰 화재가 있었는데, 그 화재가 너무나도 크고 며칠동안 계속되는 것이라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붉은 빛을 지구 반바퀴 너머 뭉크가 있던 북쪽 나라에서도 관찰 할수 있을 정도였다고. 그 연구를 읽고서 당시 나는 '내가 안봐서 모르겠네' 정도의 감상만 있었지 딱히 설득당하게 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2017년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뭉크의 <절규>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진주 구름 (nacreous clouds)'의 일종일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진주 구름은 때로는 진주처럼 아롱다롱한 빛이 나거나 때로는 붉은 빛을 감도는 구름이라고 한다. 실제로 <절규>의 배경이 온통 붉게 표현된 것은 그의 심리 반영이라기 보다는 실제의 하늘과 구름 빛을 묘사한 것일 거라는 것. 그 근거로, 뭉크의 일기에 나타난 "핏빛 구름"이라는 구절. 확실히 이 주장은 이전의 '화재설'보다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오늘은 인도네시아의 핏빛 하늘이 등장했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사진으로 본 검붉은 하늘은 확실히 아름다운 석양을 볼 때의 낭만적인 감상과는 거리가 있고, 기사에 나온 말을 빌자면 세기말적인 비전을 연상시킨다. 이 기사에 실린 사진을 보다 보니, 문득 어쩌면 진짜 뭉크가 발견했던 것이 이러한 류의 하늘은 아니었나 싶어서 기사를 좀 더 찾아 읽어봤다. 인도네시아 잠비 지방에 발생한 이 기상현상은 일종의 스모그라고 할 수 있는데, 일대 산림에 큰 화재가 일어났고, 그로 인해 미세먼지들이 발생했는데, 그 미세먼지들이 상층 대기로 이동하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현상은 화재가 원인이기는 하지만, 색상을 붉게 만든 건 화염이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어쨌든 화재가 직접적 원인은 아니긴 하지만, 하늘을 온통 붉게 만든 대기현상의 원인이 되었고, 이로써 구름이고 하늘이고 다 핏빛으로 물들게 한 것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내가 읽고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그 예전의 기사와 최근의 연구를 결합하면, 뭉크의 <절규>의 탄생이 풀리는 것은 아닐까? 왠지 대발견을 한듯 가슴이 두근두근!
P.S. 이번 인도네시아에서의 기상현상을 '미에 산란'(Mie scattering)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빛의 파장의 크기와 같은 입자들이 일으키는 빛의 산란 현상이라고. 화재가 원인인 것도 맞고, 그로 인한 스모그 현상인것도 맞고. 난 처음엔 이 산란현상과 진주 구름과 관계가 있을까 했는데, 그런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지금으로서는 두개의 가설이 생긴 셈. 만약 뭉크의 붉은 하늘이 실제의 자연현상을목격한 것에 기반하여 제작된 것이라면, 실제로 그날따라 노르웨이의 하늘에 뜬 핏빛같은 진주 구름을 봤거나, 아니면, 동남아 지역의 대규모 화재에 기인한 '미에 산란'을 목격했거나... 둘 다 그럴듯하다. 자연이나 색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이 자연현상을 보고 말세가 왔다며 불안해 하는 인도네시아 인들이 많았고,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정부측에서 해명 보도를 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화염에 휩싸인듯한 검붉은 하늘을 보고 세기말적 불안을 느끼는 것은 뭉크만이 아니라는 것. 물론, 그것이 그와 그의 작품의 위대함에 영향이 미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황금 박~쥐!는 아니고! (이게 무슨 말인지 아는 당신은 후후훗! 최소 국민학교 다닌분들~)
이탈리아 작가 모리조 카텔란 (Maurizio Cattelan)의 작품, 무려 싯가 60억원에 해당하는 황금 변기가 도난당했다는 뉴스! 블레넘 궁에서는 모리조 카텔란의 개인전 <Victory is Not an Option (승리란 불가능하다)>이 2019년 9월 12일부터 10월 27일까지 예정으로 개최되었는데, 전시가 시작된지 불과 이틀 뒤인 지난 9월 14일, 전시 중이던 그의 《미국 (America)》 (2016)이라는 금으로 만든 변기가 도난당했다는 것이다.
이 변기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18K 진짜 금으로 만든 변기는 실제로 화장실에 설치되어 관람객들이 사용할 수 있는게 포인트인 작품이다. 사람들은 농담으로 금덩이라 훔치고 싶어도 더러워서 안가져 갈 것이라 그랬는데, 설마설마 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2016년 뉴욕의 구겐하임에 이 작품 《미국》이 처음 설치되었을 때, 미국 뉴욕의 유명 미술관에 전시된 '변기'의 제목이 '미국'이라 미국인들이 불편한 심경을 표현하기도 했다. 당시 이 작품에 대해 작가는 현대의 빈부차이와 물질문명에 대한 코멘트라는 파격적 작품을 한 작가치고는 다소 판에 밖힌듯한 뻔한 주장을 한다 싶기도 하지만, 라스베이거스에 건물 전체 유리를 24K로 도금한 트럼프 호텔 (Trump International Hotel Las Vegas)을 떠올리다보면 2016년 12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것을 예견이라도 했나 싶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의 황금 사랑은 알만한 사람이 다 안다~치고, 미술사적으로 황금의 상징하는 바, 시공을 초월한 영원이라는 개념은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카텔란의 변기의 영감의 원천일 것이라 생각되는 뒤샹 오라버니의 남성 소변기 《샘 (Fountain)》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자.
마르셀 뒤샹이 1917년 약간의 참가비 ($6)만 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그런 전시에 철물점 변기를 하나 사서는 거기에 R. Mutt 라는 서명을 하고는 《샘》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하게 된다. 예술품은 '제작'이 아닌 '선택'에 뽀인트가 있다는 다소 황당한 주장과 함께.
결국 그 문턱 낮은 전시에서조차도 퇴짜를 맞았지만, 그의 황당무계한 행동은 이후 미술의 판도를 바꾸게 되었다. 이제 어떤 놀라운 작품을 봐도 현대미술의 관람객들은 '당황하지 않~고' 낯설고도 황당한 작품들을 감상할 자세가 되었다고나 할까? 10대 소년이 장난으로 SFMoMA 전시장 바닥에 안경을 벗어놓아도, 관람객들은 '당황하거나' 그걸 주워서 분실물 센터에 맡기기 보다는, 그 '작품일지도 모르는 안경' 주변에 모여 감상을 하고, 급기야 사진촬영까지 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편, 이번 소동의 핵심이 된 작품의 작가, 모리조 카텔란은 종교와 정치적 풍자가 담긴 작품들로 유명하다. 아슬아슬 위험하고도 장난스러운 작품들이 특징적인 그 작가가 창간한 잡지의 이름이 Toilet Paper~ 삐딱선을 제대로 탄 작가가 분명하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La Nona Ora》(1999)라는 작품이 있다. 유성에 맞아 쓰러진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모리조 카텔란의 이 작품 중 가장 충격적이고, 많은 논란을 야기했던 작품이다.밀납과 수지 등으로 만든 교황의 모습이 마치 진짜 사람과도 같은 모습이라 충격적인데, 일반인들에게도 그러하겠지만, 독실한 카톨릭 교인들이라면 그 충격은 배가 되리라. 이 작품의 제목인 '9번째 시간'은 예수가 돌아가신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새벽 6시에 하루가 시작된다는 관념에서 계산해서 오후 3시에 해당한다고.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그러하듯 카톨릭 종교하에서 성장한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이라 더욱 의미심장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탈리아판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인가? 아니면 오늘날 종교의 무력함을 얘기하고자 한 것인가? 실사에 가까운 교황이 유성을 맞고 쓰러진 모습 앞으로는 깨진 유리조각들이 붉은 카펫위에 흩뿌려져 있어 더욱더 실감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 밖에도 자신의 모습을 인형으로 만들거나 실제 말의 박제를 이용한 설치를 하기도 하지만, 히틀러의 초상을 이용한 작품도 인상적이다. 《Him》(2001)이라는 작품의 경우, 교복을 입은 히틀러가 무릎을 꿇고 경건히 기도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그 조각이 놓인 장소나 맥락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어설프게 작업을 했다면, 더한 비난을 받고 기억 저편에서 잊혀졌을지 모르지만, 그의 작품의 스케일이나 풍자의 강도가 워낙 강렬해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뿐더러 미술계에서의 위치도 확고한 듯하다. 자고로 삐딱선을 탈려면 제대로 타야하나보다. 이번 도난 사건도 어떻게 해결이 될 지 모르지만, 그가 언급하고 싶다던 현대의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지적의 완결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