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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9. 15. 08:00 미술 이야기

Pieter Brueghel the Elder  (1526/1530–1569),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ca. 1558), 

oil on canvas mounted on wood ; 73.5 x 112 cm,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

 

작품의 제목은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번역하자면, <이카루스가 추락하는 장면이 담긴 풍경화>. 16세기 북유럽 르네상스 작가로 유명한 피터 브뤼헬 (父)*의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루스는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이 다이달로스로 말할 것 같으면 미노타우르스를 가둔 미로를 만든 최고의 장인이지만, 바로 그 뛰어난 재능 탓에 미로의 비밀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왕에 의해 평생 감금된 채 살아야할 운명에 처해진 인물.  탈출을 계획한 아버지가 만든 날개를 달고 시운전을 해보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너무 태양 가까이에는 가지마! 날개를 이어 붙인 밀납이 녹아버릴테니까'라고 말했건만! 그 말을 듣지 않고 좀 더 높이 좀 더 높이 하면서 우쭐거리고 신나서 날던 이카루스는 그만 밀납들이 다 녹아버려 깃털들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대로 추락해서 죽고 만다는 이야기.  

 

인간의 과욕과 오만을 경계하는 교훈을 담았다고 알려진 이야기이다. 또한, 다른 교훈도 담겨있다. 자고로 어른 말씀은 새겨들어야한다. 옛부터 어른 말씀 잘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했거늘.... 

 

16세기 르네상스 시기에 하이라이트를 받는 이탈리아를 살짝 비켜가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에서 활동했던 브뤼헬의 이 작품은 제목과는 다르게 새하얀 날개를 등에 달고 오르거나 안타깝게 추락하는 아름다운 미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전경의 중앙에는 농부가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고, 그 뒷켠으로는 양치기가 양들을 몰고 나와 풀을 먹이고 있으며, 화면에 등을 보인채 둑에 앉은 남자는낚시에 몰두하고 있다.  저 멀리 바다에는 빵빵하게 바람 맞은  돛을 한껏 올린채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는 배도 보이고,  왼쪽 원경으로는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발전한 평화로운 도시도 보인다.  도대체 이카루스는 어디에~?

 

 

자세히 보면, 낚시꾼이 자신의 낚시대와 물고기에 정신을 빼앗겨 미처보지 못한 조금 깊은 바닷쪽에 거꾸로 메다꽂혀 바다에 빠진 사람의 다리가 보인다.  그리고 좀더 자세히 보면, 밀납이 떨어져 흩어져 버린 깃털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다. 

 

놀랍게도 이 역사적, 아니 신화적 순간을 아무도 주목하기는 커녕, 알아채지도 못하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몇 분후면, 애처로운 이카루스는 물 속에 가라앉을 것인데 말이다.  그러든 말든, 사람들은 변함없이 하던 일을 할 것이다. 농부는 계속해서 밭을 맬 것이고, 양치기는 양을 돌볼 것이고, 낚시꾼은 계속 낚시를 할 것이다. 그리고 돛을 단 범선은 정해진대로 항해를 계속 할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통렬한 관찰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군중 속의 고독'을 논하기 훨씬 이전 16세기의 한 작가에 의해 한 장면으로 요약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1938년 한 영국 출신의 미국 시인에 의해 시로 다시 탄생했다.  아래는 윌리엄 오든이 벨기에의 미술관에서 브뤼헬의 작품을 보고 쓴 시이다. 

 

Musée des Beaux Arts   
W. H. Auden 

About suffering they were never wrong, 
The old Masters: how well they understood 
Its human position: how it takes place 
While someone else is eating or opening a window or just walking dully along; 
How, when the aged are reverently, passionately waiting 
For the miraculous birth, there always must be 
Children who did not specially want it to happen, skating 
On a pond at the edge of the wood: 
They never forgot 
That even the dreadful martyrdom must run its course 
Anyhow in a corner, some untidy spot 
Where the dogs go on with their doggy life and the torturer's horse 
Scratches its innocent behind on a tree. 

In Brueghel's Icarus, for instance: how everything turns away 
Quite leisurely from the disaster; the ploughman may 
Have heard the splash, the forsaken cry, 
But for him it was not an important failure; the sun shone 
As it had to on the white legs disappearing into the green 
Water, and the expensive delicate ship that must have seen 
Something amazing, a boy falling out of the sky, 
Had somewhere to get to and sailed calmly on.

 

그렇다.  농부는 뭔가가 물 속에 떨어지는 '풍덩' 소리를 들었을 지도, 살려달라는 외침을 들었을지만 모르지만, 그들의 조용한 일상을 지속해간다. 호화로운 배에 탄 사람들도 하늘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배는 경로를 바꾸는 일 없이 목적지를 향해 조용히 항해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20세기의 시인이 언급한 이래, 최근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그 누군가가 다시 언급하였다.  

그 이름이 바로 방탄 소년단 (BTS). 


그들의 '피, 땀, 눈물'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미술사적 어휘가 풍부하게 담겨 있는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나르시서스의 도상 등),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멤버 중의 한명인 뷔가 발코니의 난간에 걸쳐 앉아있다가 뛰어내리는 장면의 뒤로 비치는 풍경이 바로 부뤼겔의 <이카루스가 추락하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결과적으로 그로 야기된 인간으로서의 고독감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존재하는 인간조건인가보다.  [3분18초의 장면]

 

BTS (방탄소년단) '피 땀 눈물 (Blood Sweat & Tears)' Official MV 

물론 이카루스의 추락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방탄소년단의 뮤비는 전세계가 알아차린듯하다.  이카루스는 추락했지만, 방탄소년단은 계속 비상하고 있는듯 하다.  

 

Pieter Brueghel the Elder 는 흔히 피터 브뤼겔이라고도 표기되곤 했는데, 요새 표기법으로는 피터르 브뤼헬이라고 표기하는 듯하다.  the elder라는 꼬리가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아들도 유명한 화가. 장남인 Pieter Brueghel the younger는  환상적인 지옥의 모습을, 차남인 Jan Brueghel the younger는 아름다운 꽃을 잘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13. 08:00 미술 이야기

Edward Hopper, Nighthawks (1942)  oil on canvas ; 84.1 x 152.4 cm, Art Institute of Chicago

'도시 군중 속의 고독'을 탁월하게 묘사했다고 평가받는 에드워드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다.  대중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은 이 작품은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였고, 느와르 영화 감독들이 영화의 미장센으로 많이 차용하기도 하였다.  Nighthawks라고 불리고 있으나, 원제는 'Night Hawks'였고, 이는 직역하면, '밤의 매'라는 뜻인데, 신사들이 쓰는 모자의 모양이 매의 부리와 닮아서라는 설, 혹은 nighthawk라는 단어가 올빼미족 (밤에 잠안자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는 설 등이 있다.  

일설에 따르면, 위 작품의 배경이 된건 뉴욕의 그리니치 애비뉴와 W 11가의 교차로 선상 (70 Greenwich Avenue  at West 11th Street의)의 코너에 자리한 가게라고 한다. 호퍼는 시각적 효과를 위해 실제의 모습과는 변형된 식당의 모습으로 변모시켰지만 말이다.  

한밤 중, 뉴욕의 어느 다이너 (간단한 식사와 커피와 케익 등을 파는 카페겸 식당) 안에는 4명의 사람이 있다. 그 중 한 명은 그 카페의 점원이고, 또 한명은 홀로 카페에 들른 사람, 또 하나는 남녀 커플이다. 점원과 혼밥족은 그렇다 하더라도, 일행임이 분명한 남녀도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다. 여럿이 있어도 지극히 고독하고 외로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들이 어떤 사연으로 한밤중에 그 카페에 들르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홀로 앉은 이는 실은 마주 앉은 커플 중 남자를 저격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암살범일 수도 있다 (느와르 영화에서 있을 법한 설정).   

다음 휴가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은 남녀 커플은 어쩌면 헤어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슬픈 로맨스 영화에 있을 법한 설정).  

아니면, 낮밤 바꾸어 일하지만 집안에 문제가 많아 고통받는 카페 점원의 고달픈 생활에 대한 영화 (사회비판을 겸한 성장 영화에 있을 법한 설정)일 수도 있다.  

Robert Siodmak의 1946년 작 영화 <The Killers

실제로 호퍼는 이 작품을 구상할 때, 헤밍웨이의 'The Killers'라는 1927년작 단편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 했다. 그리고, 호퍼의 작품을 미장센으로 십분 활용한 'The Killers'라는 느와르 영화가 실제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림을 감상하는 이는 이러한 상상력을 마구 펼치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아니면, 비록 한 밤 중에  그런 카페 같은 곳에 가 본 적은 없다하더라도, 분위기로 공감할 수 있는, 자신의 인생 안에서 있었던, 그런 고독의 순간에 대해 회상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회화에서의 서사를 최대한 절제하는 한편, 깊은 통찰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 외로움을 포착해내는 것이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의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보는 이들에게 그 빈 서사의 장에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려넣을 수 있도록, 또 볼 때마다 다른 기억과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봐도봐도 또 보고 싶은 그림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묘한 위안 같은 것을 받게 만든다.  아~ 나만 그렇게 외로운 건 아니었어......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를 감상하는 이들은 그 비어 있는 서사 공간에 자신의 스토리를 채워넣으면서도 인간 본연의 조건에 대한 동질감을 공유하게 됨으로써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9. 18:25 미술 이야기

친구 필라델피아에 출장을 건데, 거기서 만한 없는지 알려 달라고 하네요.

여러분은 필라델피아~’ 하면 뇌리에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크림치즈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고기를 좋아라 하신다면, 필리 치즈 스테이크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게 수도 있겠군요.  


교육열 높으신 분이라면, 아이비리그 학교 하나인유펜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있는 곳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구요.  연배가 되시는 분이라면 덴젤 워싱턴과 행크스의 영화 <Philadelphia> 떠오르실지도 모르겠네요. 최근에는 케서방이라고 불리던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재미있는 영화 <National Treasure> 배경이었다는 것에 기억이 미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실제로 필라델피아 출신이라는 친구들을 만나보면 출신지에 대한 자부심이 은연 중에 드러나는 경우가 있어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에게게? 싶지만, 역사가 일천한 미국 안에서 필라델피아는 유서 깊은 도시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미국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이 많은 곳입니다. 미국 최초의 비즈니스 스쿨인와튼,’ 미국 최초의 병원, 미국 최초의 동물원, 미국 최초의 미술학교 등등….

 

영화 얘기를 다시 돌아가보면, 많은 남자분들에게는 <필라델피아> <내셔널 트레져>보다는 <록키>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속에서 재기를 꿈꾸는 왕년의 챔피언 실베스터 스텔론이빰빠라 빰빠 빰빠~~’ 유명한 OST 울려퍼지는 가운데, 계단을 우다다다 뛰어 올라선, ‘훅훅, 훅훅, 이건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여라며 특훈에 매진하던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특훈의 현장이 바로 필라델피아 미술관 (Philadelphia Museum of Art) 건물 계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유명세에 힘입어 현재에는 록키의 커다란 동상도 세워져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 동쪽 입구]

 

록키 팬이고 미술에 딱히 관심이 없다시면 바깥 쪽에서 동상 앞에서 날리는 포즈로 사진 하나 멋있게 찍고 돌아서도 상관없겠죠.  


니면, 곳에서 방문 당시 열리는 특별전이나 맘에 드는 작품들을 골라 보셔도 상관은 없어요하지만,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미국 세번째로 미술관이고, 훌륭한 컬렉션으로 유명합니다미술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을 위해서, 혼자서 모르고 보면 휘익~ 지나칠 것만 같은 작품 점을 소개합니다.   


1. Marcel Duchamp, 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 (The Large Glass) (1915-23), oil, varnish, lead foil, lead wire, dust, two glass panels, 277.5 × 177.8 × 8.6 cm


2. Paul Cézanne (1839-1906), The Large Bathers (1906), oil on canvas ; 210.7 x 251.0 cm,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아, 그전에 잠깐~!

곳에는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 전통을 미국내에서 최초로, 성공적으로 이식했다고 평가받는 토마스 이킨스 (Thomas Eakins: 1844-1916)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요. 미국 최초의 미술학교로 유명한 펜실바니아 미술 아카데미 (Pennsylvania Academy of the Fine Arts)에서 우여곡절은 있었고 당시에는 논란을 야기한 적도 있긴 하지만, 명실공히 미국에서 미술 아카데미에서의 미술교육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미국 미술사에서 사실주의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인물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필라델피아 미술관 안에는 마르셀 뒤샹의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벌거벗겨진 신부, 심지어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작품이 있는데요. 작품의 다른 버전이라기보다는 복제품은 3각각 스톡홀름의 현대 미술관 (Moderna Museet),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 일본 동경대 코마바 미술관 소장 있습니다.   


Marcel Duchamp, 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 (The Large Glass), 1915-23, oil, varnish, lead foil, lead wire, dust, two glass panels, 277.5 × 177.8 × 8.6 cm © Succession Marcel Duchamp (Philadelphia Museum of Art)

 

공사하다 부서진 같은 구조물이기에 주변에 펜스가 없었다면 작품인지도 모르고 지나쳐버리기 십상입니다. 작품의 제목도 길긴 엄청 제목인데, 심지어 말조차 되지 않는사정이 이렇다보니, 글을 쓰거나 토론할 ~ 힘들어서 그냥 < 유리 (the Large Glass)>라고 엄청 짧은 별칭을 자주 씁니다.   


마르셀 뒤샹은 철물점에서 구입한 변기를 R. Mutt라는 서명만 채로 전시회에 출품한 것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이후, 미술관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 (?)들이 그에게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구요, 고전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요새 미술이란~’이라는 한탄을 하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죠.  


거두절미하고 이야기 하자면, 유리의 주제는 남녀간의 사랑은 힘든다정도가 될런지요. 신부의 영역인 위쪽과 남자들의 영역은 아래쪽으로 나눠져 있고, 둘은 의사소통에 많은 어려움을 보이고 있죠. 근거로는 상단과 하단은 각기 다른 유리로 만들어져 이어져 있고 가운데는 단절이 되어 있습니다. 여자가 하는 말은 남자들이 알아듣기 힘들고, 남자들의 구애는 번번히 운에 따라 성공하기도 하고 좌절되기도 합니다. 20세기 버전의 화성에서 남자, 금성에서 여자입니다.   


제목도 해괴하고 작품도 괴상하지만, 미술사 적으로 유명해서 관련된 서적이나 아티클이 너무 많은 작품입니다. 뒤샹도 그냥 가는대로 만든건 아닌 것이라는 증거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형체들 코코아 그라인더, 세개의 실린더 (독신자들에 해당) – 드로잉이 남아있고, 작품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 노트를 모아서 녹색 상자( 이름하여, ‘Green Box’)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이들은 다시 유명 미술관 소장품들이 되었구요.  


노트들을 보면, 과학에도 관심이 많던 뒤샹은 원래 작품들에 등장하는 기계들이 움직이는 것들로 만들고 싶어했던 같습니다만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유명세가 대단한 작품인 것은 이렇게 보그 표지에 아름다운 모델과 함께 실린 것만 봐도 아시겠죠?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하나의 명물은 세잔의 작품인데요. 후기 인상파의 일원이자, 모더니즘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 시리즈 가장 작품 하나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같은 주제로 많이 그린데다가 곳의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보니 통칭필라델피아 수욕도라고 부릅니다.  


[‘욕녀들이라고도 번역되는 작품은 한정된 주제로 지속적 작품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세잔의 주제들 하나죠.  세잔의 단골 주제로는 목욕하는 여인들,’ ‘상트-빅트와르 ,’ ‘사과들이 있는 정물,’ ‘카드 놀이 하는 사람들 있죠]


[세잔의 대수욕도]ㅡ통칭필라델피아 수욕도

Paul Cézanne (1839-1906), The Large Bathers (1906), oil on canvas ; 210.7 x 251.0 cm,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영화 <아저씨>의 원빈은 놈만 노린다하시지만, 세잔은 주제에 하나 꽂히면 그것만! 그렸습니다. 워낙 많은 수욕도를 그린 탓에 세계 곳곳에 비슷비슷한 수욕도 소장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뉴욕의 MoMA,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같은 필라델피아의 반즈 파운데이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가 있습니다.]    


신화나 역사에서 찾을 있는 특정 에피소드가 없고, 일견 특별할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작품은 삼각형으로 비워진 공간 가운데 멀어지는 이의 뒷모습이 너무 현대적이라, 누드로 묘사되는 여인들은 보통 여신이라는 회화적 언어와 상반됩니다. 도대체 저렇게 19세기 프랑스에 저렇게 많은 수의 여인들이 야외에서 목욕을 있는 공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누드의 여성이 저렇게 떼로 몰려 있는데, 관능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없는 작품은 세잔의 특징이라고 있는 조형성에 대한 관심이 아주 나타납니다.



최근 들어서는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건물의 레노베이션에 착수했다고 들은 같은데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도 정말 기대가 됩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8. 00:25 미술 이야기

이쁘면 모든게 다 용서된다. 이쁘면 진리다. 이쁘면 착하다.  

궁서체로 먼저 한번 써봤습니다. 이런 말, 한번쯤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후후...  이런 믿음과 동일하지는 않으나, 일맥상통한 것이 신플라톤주의라고 할수도 있지 않나 혼자 생각해본 적도 있습니다만.... 오늘은 '이쁘면 진리다'라는 화두를 따라 보티첼리의 작품 하나를 살펴볼까 합니다.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Tempera on canvas. 172.5 cm × 278.9 cm (67.9 in × 109.6 in). Uffizi, Florence


Sandro Botticelli (1445–1510), Primavera (1482) tempera ; 203 × 314 cm, Uffizi

보티첼리의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위의 두 작품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 (봄)>라고 할 수 있죠. 이 두 작품이 쌍을 이루도록 메디치가에서 주문했다는 일설이 있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프리마베라>와 <미네르바와 켄타우르스>를 한 쌍으로 묶는 설도 있습니다.

Sandro Botticelli (1445–1510), Pallas and the Centaur (ca.1482), tempera on canvas ; 205 × 147.5 cm, Uffizi

여하튼 <프리마베라>와 <비너스의 탄생>, 두 작품 다 신화 속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지만, 딱히 특정 에피소드와는 상관없는 전개라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먼저 <비너스의 탄생>은 제목과는 조금 다르게, 귀여운 아기 비너스가 탄생하는 순간...은 아니고, 이러저러 여차저차해서 파도의 거품속에서 탄생했다는 비너스가 이미 다 장성해서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파도를 타고 해안으로 도착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때, 비너스는 메디치가 소장 중인 비너스의 포즈와 유사하게, 다소곳이 몸을 가린 모습인데, 정숙한 여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명, Venus Pudica).  조신조신... 

Venus de'Medici,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Italy   통칭 '메디치가의 비너스'

한편, 비너스가 파도에 밀려 조개껍질을 타고 해안에 도착하는 장면도 고대부터 있는 도상인데, 폼페이 벽화부터 까메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남아있습니다.

Casa de la Venus en la concha Pompeii – 여기서는 비너스가 장막 같은 천으로 바람도 연출하고 있다. (펄럭이는 망토는 바람의 상징)

고대 로마시대 까메오 장식 – 재료와 주제의 적절한 결합을 보여준 탁월한 예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 Zephyr and Aura

<비너스의 탄생> 화면의 왼쪽에서는 서풍(Zephyr)이 볼 빵빵히 바람을 불어 비너스를 해안으로 인도하고 있고, 그의 품에서 미풍(Aura)도 함께 이 일을 거들고 있습니다.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Horae

오른쪽에서는 값비싸 보이는 아름다운 천을 받쳐들고 역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인이 누드의 여인에게 덮어주려는 듯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 여인은 호라 (Horae), 혹은 계절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시간의 흐름을 뜻하죠 (이 단어에서 시간 (hour)이라는 영어단어가 나온건 안 비밀). 혹자는 호라의 포즈를 기독교에서의 예수의 세례 장면과 연관시키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시시콜콜하게 신들의 이름이나, 작품의 주문 배경을 전혀 몰라도 작품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뭐 어차피 확실하지 않은 것도 많으니까요.  ^^

비너스의 모델이 된 것이 당대 최고의 미녀이자, 메디치가의 청년들 – 로렌조와 줄리아노 – 가 모두 숭배해 마지 않았다는 여인 시모네타 베스푸치 (Simonetta Cattaneo Vespucci)였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뭣이 중한디? 이렇게 이쁜데....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Venus 

메디치 가가 설립했던 아카데미에서 플라톤의 사상을 신봉하고 연구하던 일군의 학자들의 주도로 르네상스기에 널리 유행했던 것이 바로 신플라톤주의입니다. 그리스 로마의 전통과 사상을 연구, 재발견하게 되면서,어떻게 하면 중세 천년 동안 신봉해 왔던 기독교의 신앙과 사상을 버리는 일 없이조화롭게 포용할 수 있을까하는 궁리 끝에 나온 사상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런 관점에서 비너스는 그리스 로마의 신처럼 현세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을 관장하는 존재이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인간들에게 천상의 진리, 신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이해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육체적 아름다움은 제대로 감상하고 명상하기만 한다면, 궁극적으로는 더 고상한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너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처음에는 그 외면적 아름다움에 맘을 빼앗기지만, 종국에는 우리의 맘을 신성한 경지, 신성한 신의 사랑으로까지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거죠.  

따라서, 단순화 하자면, 맞는 말입니다. 적어도 신플라톤주의자에게는요, "이쁘면 진리다~"라는 말은요.  


#보티첼리 #비너스의탄생 #신플라톤주의 #우피치 #메디치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5. 19:53 미술 이야기


이 블로그의 제목과 필명의 근간이 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1897) 이야기

앙리 루소 (Henri Rouseau: 1844-1910)의 <잠자는 집시 (The Sleeping Gypsy)> (1897)

Henri Rousseau, The Sleeping Gypsy (La Bohémienne endormie) 1897. Oil on canvas; 129.5 x 200.7 cm ; Gift of Mrs. Simon Guggenheim, MoMA


때는 바야흐로 난생 처음 뉴욕을 방문했던 해의 겨울의 어느 날, 처음으로 뉴욕 현대미술관, MoMA를 방문했을 때, 나는 <잠자는 집시>라는 작품을 봤다. 전시실로 들어서자마자 생각보다 컸던 작품이 눈에 안기는 순간, 난 뭐라 형언하기 힘든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가 꽂히는 듯한 (그렇다고는 해도 가슴에 비수가 꽂혀 본 적은 없으니, 그냥 느낌상 그러할 것 같다는 의미)..... 그게 요즘 말로 하자면, '심쿵'인건지... 충격과 감동인건지... 그 당시 나로선 그 정체를 알지 못했다. 물론 그 이전까지 문학 작품을 보고 울컥하거나 통렬한 감동을 느껴본 적은 있었지만, 미술 작품을 보고 그러한 종류의 감정을 느낀 적은 난생 처음이라 당황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의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 걸까~



어느 누구도 인생을 한 줄로 요약되게 물 흐르듯 살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나라고 해서, 이 작품을 똵! 보고 그 길로 미술사로 똵! 전공을 바꿔서 그 이후로 원탁의 기사가 성배 찾듯 이 작품에 대한 열정 어린 탐구를 주욱!~ 지속적으로 했.... 이런 식으로 이어진 건 아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이 작품을 본 이후로 ‘왜 난 문학 작품이 아닌 하나의 시각 예술 작품을 보고 그토록 감동을 받았던가?’ 하는 맘으로 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었고, 이후 여차저차 결국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한편으로는 지속적으로 ‘이 작품에 감춰진 수수께끼는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늘 맘 한 켠에 묻어두고 지냈던 것 같다. 이미 미술 교과서에서 익히 보아 알고 있던 작품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대했을 때의 받았던 충격에 가까운 감동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었던 것이었단 말이었던가?...하는.


그러다가 몇 해 전 비로소 그 해묵은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풀어줄 만한 아티클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quest가 지속적이고 집요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들통이 나는 순간. 그도 그럴 것이 이 글이란, 실은 저명한 미술사학자 알버트 보임의 아주 해묵은 아티클로 내가 작정하고 찾아봤다면 진작에 발견할 수 있었을 글이었으므로...)

[Albert Boime, “Jean-Léon Gérôme, Henri Rousseau’s Sleeping Gypsy and the Academic Legacy,” Art Quarterly Vol. XXXIV: No.1 (1971): pp.3-29. [http://www.albertboime.com/Articles/20.pdf 관심이 있으신 분은 한번 읽어보시길]


이 아티클에서 알버트 보임은 19세기 유명한 아카데미 화가 장-레옹 제롬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자의 출처를 추적해가는데.....

그 글을 요약하자면,

1. 우선 화가 앙리 루소는 독학파였으나, 스스로는 아카데미 풍의 화가로 생각하였고, 자신의 화풍을 화가 윌리엄 부게로나 장-레옹 제롬의 화풍과 동일시하였다. 따라서, 루소는 이들의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2. 제롬은 열강의 식민지 개척이 한창이던 시기, 아카데미 화가의 자격으로 그 개척단을 수행하며 그곳의 자연과 생활상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내셔널지오그래픽지의 사진작가 정도의 역할이라고나 할까?) 따라서 제롬은 사자를 실제로 보고 그릴 기회가 많았다는 것.


3.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롬은 그 광활한 사막을 돌아다니는 백수의 제왕 사자를 자신과 동일시 했을 거라는 것,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유독 사자가 많이 등장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첫째, 장-레옹 제롬은 그의 이름에 사자를 뜻하는 ‘Léon’이 들어간다. ('밀림의 왕자 레오'를 떠올려보자~) 둘째로, 자신의 성인 'Gérôme'은 유명한 성인 St. Jerome과 발음이 같다.


Jean-Léon Gérôme, Saint Jérôme, 1874, oil on canvas painting, 69 x 93 cm., Städel Museum

(기독교인들을 사자굴에 집어넣어서 사자가 잡아먹지 않으면 살려주는 벌을 행했을때, 사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뽑아주었더니 사자가 성 제롬을 살려주었다는 유명한 전설. 물론 제롬도 알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주제로 그림도 그렸다.)

Jean-Léon Gérôme (1824–1904) The Two Majesties, 1883 oil on canvas; 69.22 × 128.91 cm


장-레옹 제롬의 작품에서 대부분 사자는 광활한 자연을 홀로 거닐거나 앉아서 사색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알버트 보임은 제롬이 당시 아카데미의 화가로 명성과 지위를 얻었음에도 경직된 관료주의와 주변과의 관계에서 항상 고독함을 느꼈기에 이런 그림을 그렸으리라 추측한다.

그리고, 오늘의 작품 <잠자는 집시>에서 등장하는 사자의 출처는 아마도 앙리 루소는 자신이 동일시 하던 아카데믹 화가 장-레옹 제롬의 작품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아래의 작품 <기독교 순교자들의 마지막 기도>라는 작품은 장-레옹 제롬이 주문을 받은 이래 상당한 공을 들여 오랜 기간에 걸쳐 제작한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사자는 동물들의 제왕으로서의 위엄은 가득하지만, 위협적 맹수의 모습은 아니다. 또, 지하굴을 아직 채 빠져나오지 않은 사자들도 피에 굶주린 맹수라기보다는 온순하고 조심스러운 고양이와도 같은 모습이다.

Jean-Léon Gérôme, The Christian Martyrs' Last Prayer (1863-1883), oil on canvas 150.1 x 87.9 cm


이제 <잠자는 집시>로 돌아와 보자. 루소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자도 위협적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고 호기심 많고 온순한 모습이다.
실제로 화가 루소 자신이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는 목적으로 쓴 편지에서도 그 의도를 확실히 하고 있다:

…떠돌이 흑인여성, 만다린 연주자는 물 단지를 옆에 두고 누워서, 피곤에 지쳐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사자는 우연히 그 곁을 지나다가 그녀의 냄새를 맡고 있지만, 잡아먹지는 않습니다. 달빛의 효과 탓에 매우 시적이죠. 장면은 완전히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집시는 동양 풍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루소의 <잠자는 집시>의 사자는 장-레옹 제롬의 <기독교 순교자들의 마지막 기도>의 사자들과 많이 닮아 있지 않은가?

제롬의 사자 그림들의 제작 의도는 물론 루소의 <잠자는 집시>의 의미도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직접 정글 탐험은 고사하고, 사자를 본 적도 없이, 파리의 식물원을 방문하면서 그때마다 정글을 탐험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고 하는 루소와 정글과 사막 지대를 누비며 사자를 직접 보았을 장-레옹 제롬이 사자에 대해 느꼈던 감성은 일맥상통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Jean-Léon Gérôme, Solitude, 1890


위의 작품에서는 제목마저 알기 쉽게 <고독>이다. 저명한 아카데믹 화가였던 장-레옹 제롬도 때론 비평가들의 놀림을 받던 일요화가였던 앙리 루소도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지 못하는 세상에서 외로웠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 작품이 그려진 지 100년도 훨씬 넘게 세월이 흐른 후에 루소의 작품을 봤던 나는 왜 엄청난 감동을 받았던 것일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의 경우, 그것은 아마도 ‘외로움’과 ‘안도감’의 공명이 아니었을까?

난생 처음 낯선 타국에 홀로 떨어져 생활하면서, 때때로 위험하다는 뉴욕 거리를 다니면서 불안하기도 했었던 나로서는 누워 있는 집시에게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고, 엄청난 위력을 갖추었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무방비 상태의 집시를 지켜주고 사자의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누구도 아닌 힘 쎈 사자가 나를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지켜준다니! 그 이상의 든든함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광활한 사막에 홀로 놓여진 사자와 집시 모두에게서 느껴지는 외로움… 그 와중에 웃고 있는 달님과 아련한 별 빛으로 채워진 짙푸른 밤하늘로 인해 느껴지는 시상 충만한 감성...

물론 그 이후에도 수없이 MoMA를 방문해봤고, 그 때마다 첫날의 감동을 떠올리며 다시 그 작품을 봤었고, 처음 그때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은 빛이 바래갔다. 그 전시실에 들어가면 그 자리에 그 작품이 있을 것임을, 그 방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아마 20살 언저리 뉴욕에 있던 난 외로웠고, 그 작품을 보면서 커다란 위안을 받았고, 그 작품으로 인해 무한한 안도감을 선사 받았다는 것을.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4. 11:13 미술 이야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오늘 티스토리 초대받아서 일단 블로그 개설.... 블로그 제목은 "물병과 사자"로, 그리고 필명은 "잠자는 집시"로.... 아는분은 아시겠지만,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에서 따온 것...보다 정확히는 그 작품의 묘사에서 따온 것.



드넓은 사막을 홀로 걷던 집시는 들고 다니던 만다린과 물병을 내려놓고, 단장은 손에 쥐고 있는 채로 지친 몸을 모래 바닥에 누이자마자 깊은 단잠에 빠져버렸다.  어디선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사자. 맹수 중 맹수인 사자가 하지만 어쩐 일인지 집시를 발견하고서도 킁킁거리며 냄새만 맡고 있을 뿐, 집시를 날름 잡아먹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삭막하고 위험한 사막에서 불침번을 자처하며 집시를 지켜주고 있는 듯하다.  '물병과 사자'는  사막에서 집시의 생명을 지켜주는 존재.... 잠자는 집시는 유난히 아름다운 음악을 만다린으로 연주하며 행복해하는 관람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달콤한 꿈을 꾸고 있고, 그러한 사자와 집시를 너그러운 미소로 내려다보는 보름달이 높이 뜨면서 사막의 밤은 깊어져간다.         


#앙리루소 #잠자는집시 #MoMA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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