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보티첼리' 태그의 글 목록
2020. 5. 12. 00:01 미술 이야기

오늘 소개할 드로잉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미켈란젤로의 장보기 목록 - 청어, 토르텔리 (라비올리의 일종으로 네모난 만두 같은것), 페넬 스프 두 그릇, 앤초비 네개, 그리고 (이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a small quarter of a rough wine' (아마도 적은 양의 정제가 안된 저렴한 와인이 아닐까싶다). 그리고 심부름을 시킬 하인이 글을 모른 관계로 알아보기 쉽게 일러스트레이션에 해당하는 드로잉을 덧붙인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글을 읽지 못하는 하인을 배려해 남긴 쇼핑 목록과 드로잉 (1518년) 

문맹인 하인에게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서 일필휘지로 슥삭슥삭 남긴 드로잉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필력이 느껴진다. 그의 대작들, 즉 시스틴 천장화나 다비드 상은 자주 접해봤기에 친숙하다면 친숙하지만, 그의 이런 생활밀착형 드로잉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신선하기 이를데 없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하지만, 천하에 없는 거장이라도 매일매일 이렇게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했구나 새삼 자각하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나랑은 무관한 옛날 옛적에 살았던 천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드로잉 하나로 그와 나와의 거리가 확 가까워진듯하다. 

미켈란젤로의 걸작 시스틴 천장화에서 '아담의 탄생' 장면
미켈란젤로의 걸작 '다비드' 상

그와 같은 천재도 이렇게 매일매일 일상이라는 것들로 채워진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면, 별 특별할 것도 없는 나도 매일매일 일상을 충실히 채워가야겠다는 각오 (?)같은 것도 생긴다. 

p.s. 이번 포스팅을 올리고나서 이전에 올린 글 하나가 생각이 났다.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아직 경제적 여유가 없던 도제 시절, 둘이 음식점 겸 숙박업소를 동업으로 잠시 경영했다는 것을...  그렇다. 미켈란젤로 뿐 아니라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두 매일매일 생활하는 생활인이었다.  뭐지? 이 말할 수 없이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친밀감은?

Leonardo da Vinci, Mona Lisa (c. 1503–1506), oil on poplar panel ; 77 × 53 cm, The Louvre Museum, Paris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4–1486). Tempera on canvas ; 172.5 × 278.9 cm (67.9 in × 109.6 in). Uffizi, Florence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2. 12:21 미술 이야기

엊그제 올린대로 내가 티스토리 블록의 편집에 익숙해질 때까지, 초기 글을 하나씩 올려보기로 했다.  얼마전까지 내가 사람들이 내 글을 얼마나 읽었는지도 몰라서 알지 못했는데, 초창기 글은 읽은 사람이 아주 적다는 것을 깨달아서이다. 그리고 현재 블로그 상태로는 전체 목록이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걸 어떻게 고쳐야 일목요연하게 목차가 보일 수 있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어서이다.  물론 새 글도 계속 올리겠지만, 묻혀있는 옛 글들도 한번씩 퍼올려 다시 싣는 걸로.

그 제목하야, 이쁘면 진리다~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https://sleeping-gypsy.tistory.com/9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8. 00:25 미술 이야기

이쁘면 모든게 다 용서된다. 이쁘면 진리다. 이쁘면 착하다.  

궁서체로 먼저 한번 써봤습니다. 이런 말, 한번쯤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후후...  이런 믿음과 동일하지는 않으나, 일맥상통한 것이 신플라톤주의라고 할수도 있지 않나 혼자 생각해본 적도 있습니다만.... 오늘은 '이쁘면 진리다'라는 화두를 따라 보티첼리의 작품 하나를 살펴볼까 합니다.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Tempera on canvas. 172.5 cm × 278.9 cm (67.9 in × 109.6 in). Uffizi, Florence


Sandro Botticelli (1445–1510), Primavera (1482) tempera ; 203 × 314 cm, Uffizi

보티첼리의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위의 두 작품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 (봄)>라고 할 수 있죠. 이 두 작품이 쌍을 이루도록 메디치가에서 주문했다는 일설이 있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프리마베라>와 <미네르바와 켄타우르스>를 한 쌍으로 묶는 설도 있습니다.

Sandro Botticelli (1445–1510), Pallas and the Centaur (ca.1482), tempera on canvas ; 205 × 147.5 cm, Uffizi

여하튼 <프리마베라>와 <비너스의 탄생>, 두 작품 다 신화 속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지만, 딱히 특정 에피소드와는 상관없는 전개라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먼저 <비너스의 탄생>은 제목과는 조금 다르게, 귀여운 아기 비너스가 탄생하는 순간...은 아니고, 이러저러 여차저차해서 파도의 거품속에서 탄생했다는 비너스가 이미 다 장성해서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파도를 타고 해안으로 도착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때, 비너스는 메디치가 소장 중인 비너스의 포즈와 유사하게, 다소곳이 몸을 가린 모습인데, 정숙한 여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명, Venus Pudica).  조신조신... 

Venus de'Medici,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Italy   통칭 '메디치가의 비너스'

한편, 비너스가 파도에 밀려 조개껍질을 타고 해안에 도착하는 장면도 고대부터 있는 도상인데, 폼페이 벽화부터 까메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남아있습니다.

Casa de la Venus en la concha Pompeii – 여기서는 비너스가 장막 같은 천으로 바람도 연출하고 있다. (펄럭이는 망토는 바람의 상징)

고대 로마시대 까메오 장식 – 재료와 주제의 적절한 결합을 보여준 탁월한 예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 Zephyr and Aura

<비너스의 탄생> 화면의 왼쪽에서는 서풍(Zephyr)이 볼 빵빵히 바람을 불어 비너스를 해안으로 인도하고 있고, 그의 품에서 미풍(Aura)도 함께 이 일을 거들고 있습니다.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Horae

오른쪽에서는 값비싸 보이는 아름다운 천을 받쳐들고 역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인이 누드의 여인에게 덮어주려는 듯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 여인은 호라 (Horae), 혹은 계절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시간의 흐름을 뜻하죠 (이 단어에서 시간 (hour)이라는 영어단어가 나온건 안 비밀). 혹자는 호라의 포즈를 기독교에서의 예수의 세례 장면과 연관시키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시시콜콜하게 신들의 이름이나, 작품의 주문 배경을 전혀 몰라도 작품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뭐 어차피 확실하지 않은 것도 많으니까요.  ^^

비너스의 모델이 된 것이 당대 최고의 미녀이자, 메디치가의 청년들 – 로렌조와 줄리아노 – 가 모두 숭배해 마지 않았다는 여인 시모네타 베스푸치 (Simonetta Cattaneo Vespucci)였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뭣이 중한디? 이렇게 이쁜데....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Venus 

메디치 가가 설립했던 아카데미에서 플라톤의 사상을 신봉하고 연구하던 일군의 학자들의 주도로 르네상스기에 널리 유행했던 것이 바로 신플라톤주의입니다. 그리스 로마의 전통과 사상을 연구, 재발견하게 되면서,어떻게 하면 중세 천년 동안 신봉해 왔던 기독교의 신앙과 사상을 버리는 일 없이조화롭게 포용할 수 있을까하는 궁리 끝에 나온 사상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런 관점에서 비너스는 그리스 로마의 신처럼 현세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을 관장하는 존재이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인간들에게 천상의 진리, 신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이해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육체적 아름다움은 제대로 감상하고 명상하기만 한다면, 궁극적으로는 더 고상한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너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처음에는 그 외면적 아름다움에 맘을 빼앗기지만, 종국에는 우리의 맘을 신성한 경지, 신성한 신의 사랑으로까지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거죠.  

따라서, 단순화 하자면, 맞는 말입니다. 적어도 신플라톤주의자에게는요, "이쁘면 진리다~"라는 말은요.  


#보티첼리 #비너스의탄생 #신플라톤주의 #우피치 #메디치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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