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제 우연히 일본 드라마을 보다가, 요새는 일본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간밧테 (頑張って)' 혹은 '頑張れ' [우리로 치면 파이팅 정도일까...]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파와 하라' (power harrassment의 일어식 표현), 즉 권력을 악용해서 남을 괴롭히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얘기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일본도 서구의 문화 혹은 서구적 사고방식으로 전이되는 것일까? 다른 것은 몰라도 일이나 직장에 대한 태도는 참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전에 내가 일본과 미국의 차이에 대해서 재밌다고 생각하던 점이었는데, 이런 현상은 왠지 서구의 사고방식이 1승? 이런 느낌적인 느낌?
오늘은 인플레를 고려한 순위 18위에 당당히 자리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 블로흐-바우어 의 초상 I" 을 살펴보는 시간이지만, 편의상 그의 작품을 한데 모아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사실 클림트에 대해서는 일전에 포스팅을 한 적이 있으므로 그 글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살펴보는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2018년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 순위 20위 안에서 빈 모더니즘을 주도했던 클림트의 작품이 무려 세 작품!!! 따로 따로 이야기 하자면 중복되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 하나로 통일해서 올리도록 한다. 그 세 작품은 아래와 같다.
인플레 고려 6위)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I (Water Serpernt II) (1904) $183.8-millions (2012 private sale) $193.1-millions
인플레 고려 14위)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135-millions (2006 Christie’s auction) $163.9-millions
인플레 고려 18위)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 $150-millions (2016 private sale via Larry Gagosian) $153.0-millions
올해 서거 100주년이라 세계 곳곳에서 행사도 많이 진행되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는 구태의연한 아카데미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고자 한 열혈 화가들의 모임인 비인 분리파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비인 모더니즘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의 예술은 프랑스에서는 '아르 누보 Art Nouveau ('새로운 예술'이라는 의미)라는 명칭으로 통용되었고,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는 '유겐트 스틸 Jugend Stil' ('젊은 스타일'이라는 뜻)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예술의 주요 작가이기도 하다.
당당히 6위를 차지한 <물뱀 II>의 경우, 클림트의 그의 '황금기'의 작품 중 하나로, 금박을 사용해서 그려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또한 다른 그의 작품의 특징인 '여인의 관능성'의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물뱀 I>이 유화 작품이 아니라는 점도 있어 두 작품의 매제의 차이가 느껴지는 점도 흥미롭다.
이 작품은 러시아의 재벌인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 (Dmitry Rybolovlev)가 고갱과 로댕의 작품들과 함께 스위스의 아트 딜러인 이브 부비에(Yves Bouvier)에게서 고가로 구매한 작품들 중 하나 이다. 이후 이 둘은 예술품의 위조, 예술품 도난, 자금 세탁 및 탈세 등의 문제에 연루되게 되는데, 이를 "부비에 사건"이라고 부른다.
6) 구스타프 클림트, <물뱀 II>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I (Water Serpernt II)" (1904) $183.8-millions (2012 private sale) 현재 가치 $193.1-millions
구스타프 클림트, <물뱀 I>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 (Water Serpernt I)" (1904)
금 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였을까? 그의 황금 빛 사랑은 남달랐는데, 찬란한 금박을 배경으로 화려하게 그려진 인물화가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이다. 여성의 묘사에 있어서 혁신을 일으킨 그의 대표작 <키스>와 <아델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1907)가 그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Gustav Klimt, The Kiss (1907), oil on canvas ; 180 x 180 cm,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이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적이 있으므로 일전에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http://sleeping-gypsy.tistory.com/52
아델 블로흐-바우어 초상 I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이 그려진 이후, 5년 후, 같은 모델을 대상으로 II를 그린 것인데, 첫번째 작품이 2006년 기록을 세우며 판매된 이후 10년 만에 두번째 작품도 나란히 기록을 세우게 된다. 아델의 경우, 구스타프가 유일하게 같은 인물을 대상으로 두번 초상화를 그린 대상이라는 점에서도 유명하다.
첫번째 초상화는 한때 나치에 의해 몰수되었다가 전후 비인의 갤러리 벨베데어 (Galerie Belvedere) 미술관에 넘겨졌다. 이후 기나긴 법정 소송 끝에 비로소 블로흐-바우어 가문이 소유권을 회복하게 되었고, 그 길로 바로 2006년의 경매에 등장. 그 해 최고가를 기록하며 에스티 로더 화장품 회사를 소유한 재벌 Ronald S. Lauder가 구매하게 되어, 그들의 소유인 뉴욕의 노이 갤러리 (Neue Galerie)에 걸리게 되었다.
두번째 초상화의 경우, 한때 오프라 윈프리가 소장했었으나 2016년 가고시안 갤러리를 통해 비공개 경매로 익명의 중국인에게 판매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4) 클림트, 아델 블로흐-바우어의 초상화 I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135-millions (2006 Christie’s auction) 현재 가치 $163.9-millions 판매자: Maria Altmann 구매자: Ronald Lauder
18) 클림트, 아델 블로흐-바우어의 초상화 II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 $150-millions (2016 private sale via Larry Gagosian) 현재 가치 $153.0-millions
이 둘의 사이에 대한 소문도 무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도 제작되었다고 하나, 원체 클림트는 에밀리 플뢰게 (Emilie Flöge: 1874-1952)를 위시해 수많은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화가였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모친이 사망할 때까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알려졌는데, 일설에는 그의 사생아가 14명이 된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신비주의를 유지하며, 인터뷰 때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받아도, '내 인생은 내 예술만큼 재미가 없다.'며 극도로 말을 아꼈었다.
클림트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보면, 초기 작품의 주제는 불안과 회의, 그리고 여인의 관능성, 혹은 죽음과 같은 무거운 주제가 주를 이루었던데 반해, 후기에 이르면, 자연을 빛의 효과와 추상적 형상을 통해 나타낸 풍경화가 주를 이루게 된다. 1908년 그는 회장을 맡기도 했던 비인 분리파에서 탈퇴를 하면서 보다 개인적인 감성과 직관에 충실한 작품활동을 하게 되는데, 자연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화풍의 변화를 갖게 된다. 인물화를 그릴 때처럼 주문자의 심기를 살피지 않아도 되어서 그랬을까? 이후에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에 심취하여 풍경화를 위주로 그리게 된다. 그의 풍경화도 오늘 살펴보는 인물화 만큼의 고액은 아니지만, 경매에서 항상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곤 한다. 아래의 작품만 해도 2006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31,375,000 (약 351억원)이라는 높은 가격에 거래가 성사되었다.
Klimt, Houses at Unterach on the Attersee (1916) oil/canvas, 110x110cm, Private Collection [Christie's - Price Realized $31,376,000 - 8 November 2006 (약 351억)]
온 종일 숲속을 그의 유니폼 같은 가운을 입고 어슬렁거리는 그를 보고 마을 사람들이 '숲속의 악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할 정도로 자연에 심취하여 많은 풍경화를 남겼고, 그의 풍경화는 에곤 쉴레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대표적 풍경화로 알려진 아래의 작품의 경우, 빨강과 녹색의 보색 대비, 치밀하고 자잘한 원색의 붓질 등에서 인상파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Gustav Klimt (1862–1918), A Field of Poppies (1907),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클림트는 상징주의 Symbolism, 아르누보 Art Nouveau, 예술공예운동 Arts and Crafts Movement, 그리고 자포니즘 Japonisme 등 20세기 초의 다양한 사조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독특한 회화 세계를 확립함으로써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지나치게 높은 그의 작품 가격에 대해서는 다소 이의가 있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그 점에 대해서만은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오늘은 그 두번째 시간. 오늘은 인플레를 적용했을 때, 2018년 현재 가장 비싸게 경매에서 거래되었던 작품으로는 19위에 해당하는 작품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시앙 프로이트의 세 습작" (1969)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 $142.4-millions (2013 Christie's auction) 현재 추정 가격 약 $149.6-millions
이 201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142.4-millions (약1천613억원)이었고, 인플레를 감안해서 계산하면 약 $149.6-millions (약1천695억) 상당하는 금액이다. 이 작품은 라스베가스의 호텔 체인을 소유한 스티브 윈 (Steve Wynn)의 전부인 (Elaine Wynn)이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909-1992)가 그의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루시앙 프로이트 (Lucian Freud: 1922-2011)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1974년 프로이트와 베이컨, Harry Diamond 사진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화가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심의 바닥에 있는 인물들을 위한 세 습작> (1944)이 발표된 이후로 전후의 가장 인기있는 작가이자, 그가 세상을 뜨는 1992년까지 생존 화가 중 가장 작품 가격이 비싼 작가로 군림하였던 작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영국 수상이었던 마가렛 테처 여사가 한 모임에서 멀리 보이는 그가 프랜시스 베이컨이라고 귀띔해주자, “아, 그 흉칙한 그림 그리는 사람~ (That man who paints those dreadful pictures).” 이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1944), Oil and pastel on Sundeala board ; 94 × 74 cm (ea), Tate Britain, London
위의 작품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심을 슬퍼하는 인물들을 묘사한 것이다. 괴물과도 같은 인물들의 침통해하는 모습은 전후의 참상과 맞물려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프랜시스 베이컨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서 불우하게 자랐다는 점, 그가 동성연애자였다는 점, 그리고 도박과 술에 찌든 생활을 했다는 개인사와 함께, 강렬하고 충격적인 인상을 주는 그의 작품, 그리고 연신 갱신하는 경매에서 높은 가격으로 팔린 작품들로 늘 화제의 중심에 있어 왔다.
대중적으로 아주 사랑받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작가들이 그의 작품에 받은 감명에 대해서 언급하였고, 특히 그의 작품에서 자신의 철학과의 교집합을 발견한 20세기의 저명한 철학자 질 들뢰즈 (Gilles Deleuze)는 <<Francis Bacon: The Logic of Sensation (프랜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 (1981; 영어번역 2002)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프랜시스의 작품에는 삼면화 형식을 취하는 작품이 다수 있는데, 원래 '삼면화'란 중세 이래, 종교화에서 많이 채택해 온 형식이다. 이를 노골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표명해 왔던 베이컨이 자주 채택했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이에 대해서는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안에서 수 차례 언급했고, 베이컨 자신도 여러 차례의 인터뷰에서 인정했듯이, 삼면화라는 양식은 서사적 narrative 이거나 삽화적 illustrative인 성격을 배제하면서도 '감각'을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베이컨이 즐겨 이용한 양식이다. 좀 쉽게 풀어서 얘기하자면, 삼면화는 만화의 컷에서처럼 연속적인 행위를 단계별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델이 지니고 있는 일종의 '기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들뢰즈의 책에는 그가 생각한 베이컨의 작품 세계가 자세히 서술되고 해석되어 있고, 상당 부분 수권에 걸쳐 출판된 베이컨의 인터뷰 내용과 중첩되는 바이다. 그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면, 들뢰즈의 책과 데이비드 실베스터와 베이컨과의 인터뷰 집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화가로서는 드물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굉장히 말을 많이 한 화가이다. 그의 전문 인터뷰어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실베스터와의 인터뷰가 책으로 1960년대부터 2002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출판되었다. David Sylvester, Interviews with Francis Bacon, 1963, 1966, 1971, 1973, 1979...1987, 1998, 2000, 2002]
그러면, 오늘의 주제가 되는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모델이 된 루시앙 프로이트는 건축가 에른스트 프로이트의 아들이자, 유명한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이며 20세기의 대표적 초상화가이다. 비록 베이컨과 프로이트는 띠동갑의 나이차이가 있었지만, 1940년대 중반 만난 이후 1960년대 말 무슨일에서인지 절연하기까지 둘은 절친으로 지냈는데, 이들의 우정은 예술계에서는 유명했다.
추구하는 예술 세계는 달랐지만, 둘은 서로의 작품에 대한 존경을 종종 표현하였고, 그 밖에도 도박과 술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공통점도 있어, 스튜디오에서 뿐 아니라 술집과 도판판에도 항상 붙어 다녔다고 전해진다. 둘다 논쟁을 좋아했기에 종종 뜨거운 논쟁을 벌이기도 하곤 했다고 전해지는데, 따라서 그들이 사이가 멀어진 1969년경 사람들은 그들이 사이가 멀어져서 놀랐다기 보다는 불같은 성격의 둘의 우정이 그때까지 지속되었다는 것에 더 놀랄 정도라고.
1952년경의 베이컨과 프로이트
프란시스 베이컨은 루시앙 프로이트의 초상화를 자주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표적 작품이 아래의 작품이다.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Portraits of Lucian Freud, 1964
베이컨의 경우 주로 사진을 통해 작업을 하였는데, "루시앙 프로이트의 세 습작"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사후, 청소 한번 하지 않았다고 알려진 그의 스튜디오에서는 그가 작업 중이던 사진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아래에는 그 예로 볼 수 있는 사진들과 작품화된 것들.
좌: 베이컨의 스튜디오에서 발견된 그가 작업중이던 사진들 중 루시앙 프로이트의 사진 (Daniel Earson 촬영), 1963; 우: 오늘의 작품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세부) (1969). Christie’s e-Catalogue에서 발췌, pp. 158-159
프랜시스 베이컨의 초상화의 특징은 일견 왜곡되고 뒤틀리게 그렸다고 여겨지나, 묘하게 모델과의 유사점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주로 사진을 가지고 작업을 했는데, 베이컨 자신이 이에 대해서 자신은 사진을 가지고 주로 작업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의 얼굴의 사진으로는 작업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즉, 사진을 보면서 그리지만, 그 사진을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그와의 관계속에서 축적된 인물의 에너지를 화폭에 옮기는 방법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루시앙 프로이트가 그린 베이컨의 초상화는 단 두작품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그가 작업하는 데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걸리는 화가이기 때문이었다. 일례로 그가 베이컨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꼬박 삼 개월 동안이나 포즈를 취했고, 그럼에도 그 작품이 완성되는 데에는 일년 반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이는 구상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나 정작 작품을 제작하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 베이컨의 제작 방식과는 차이가 난다. 1952년 완성된 프로이트가 그린 베이컨의 초상화 (아래)는 불행히도 베를린 전시회 이후 분실되어,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프로이트, 프랜시스 베이컨 (1952) - 현재 분실
또 다른 작품은 미완성 작인 프로이트의 베이컨 초상화 (아래)인데, 2008년 크리스티의 전후 현대미술 부문에서 고가로 판매되었던 작품이다. (Christie’s auction of Post-War and Contemporary Art for £5,417,250 / $9,404,346 / €6,972,001)[80억 9,201만 7,187.50 원 ; 106억 5,512만 4,018 원 ; 91억3,047만6244원으로 환산되므로, 대략 81억과 106억원 사이에 판매]
Lucian Freud (b. 1922), Portrait of Francis Bacon. Photo: Christie's Images Ltd. 2008
현대미술의 거장 두 사람이 절연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아이러니 하게도 오늘의 주인공인 "루시앙 프로이트의 세 습작"이 완성된 1969년 경에 둘의 사이가 틀어져 다시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베이컨은 프로이트의 부유함과 거만함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둘의 우정은 이전에 20여년간 유지되었기에 확실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두 작가 모두 서로의 후반기의 작품은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프로이트는 1980년대 제작된 베이컨의 작품을 '무시무시한' 것이라며 비판했다고.
개인적으로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은 혹 누군가가 내게 거실에 걸 그림으로 선물한다면 받기를 망설이겠지만 (물론 받아서 재판매하는 경우라면 응당 받겠지만서도...), 그의 전시회가 있다면 반드시 보러 가고 싶은 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축적된 에너지를 한 화면에 모두 담아내는 그의 회화적 특징은 그러기에 초상화의 경우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듯 하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나 보통 순위처럼 아래쪽 순위부터 하나씩 올라가는 식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매일 그 순위에 있는 작품을 다루지는 못하겠지만, 순차적으로 하나씩 올릴 것이다. 두둥~
먼저 오늘은빈센트 반 고흐 (1853-1890)의 <의사 가셰의 초상> (1890)과피에르-오귀스트 르느와르, <물랭 드 라 걀레트의 무도회> (1876)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저번에 밝힌 대로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2018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경매에서 팔렸던 작품 17위에 오른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과 20위에 해당하는 르느와르의 <물랭 드 라 걀레트의 무도회>는 1990년 경매에서 그해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인플레 고려 17)위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Dr. Gachet (1890) $82.5-millions (1990 Christie’s auction) (현재 154.5-millions 상당) 같은 제목의 다른 버전은 오르세이에 소장 중인 작품. 이 작품은 2006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Gustav Klimt의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이 $135-millions로 기록을 깨기 전까지 경매 판매가 1위를 고수했다.
인플레 고려 20)위 Pierre-Auguste Renoir,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oil on canvas; 78 × 114 cm. $78.1-millions (1990 Sotheby’s auction) $146.3-millions - 위의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과 함께 두 작품 모두 일본의 제지회사를 소유한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가 각각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구입하여 당시에 큰 뉴스거리였다.
먼저,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은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1990년 5월 15일 크라마스키 (Kramarsky) 가족 소장이었던 작품을 일본의 제지 회사 재벌 (大昭和製紙)의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가 US$82.5 millions (대략 한화로 950억원) 에 구입하였다. [참고로 당시의 경매가를 오늘날 인플레를 감안해서 계산을 해보면 US$154.5 millions (대략 1750억) 상당.]이 사이토 료에이라는 분은 다시 이틀후, 소더비 경매에서는 르느와르의 물랭 드 갈라트의 무도회 (Bal du moulin de la Galette)를 $78.1 millions (대략 898억원)에 구입하므로써 미술계의 큰손으로 우뚝 섰었죠. [오늘날 인플레를 감안해서 계산하면 이 작품 또한 약 US$146.3 millions (대략 1657억) 상당.]
위의 두 작품은 1990년 5월에 각각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경매에서 모두 일본의 제지 재벌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에게 판매되었다는 공통점 이외에도 두 작품 모두 다른 버전이 파리의 오르세이 미술관에 소장 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Dr Gachet (1890) Oil on canvas, 67 cm × 56 cm, Musée d'Orsay, Paris 2nd Version.
누가봐도 우울한 성격인거 같은 인물인 의사 가셰는 인기와 유명세 때문에 유독 ‘~카더라’ 통신이 많은 반 고흐의 삶의 끝자락에 화가에게 많은 의지가 되었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가셰 씨의 초상화 두 점을 비교해보면, 두 번째 버전으로 알려져 있는 오르세이 소장 중인 작품과 비교를 해보면, 필치나 색조, 그리고 세부 구도에 있어서 쉽게 구별이 된다.
크기는 동일하지만, 두 번째의 현재 소재 미상의 작품 쪽이 필치나 색상 면에서 훨씬 더 공을 들여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책도 이 작품에만 그려져 있다. 첫 번째 작품은 초창기에는 잠시 위작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었다. 현재는 두 작품 다 명실상부한 그의 작품이라고 인정받고 있고, 이 작품이 가셰 본인이 소장 중이었던 작품이라고 밝혀졌다. 참고로 그가 들고 있는 꽃은 흔히 팍스 글러브 foxglove 라고 불리는 식물로 정식 학명은 디지털리스 digitalis라고 한다. 꽃이 아름다운 이 식물은 소량씩 사용하면 심장 질환 치료에 도움이 되지만, 다량 사용하면 독이 되기도 하는 식물이라고 한다. [미드 Psych에서 이 식물을 사용한 독살 사건 케이스가 등장하기도 한다] 아마도 여기서는 책과 함께, 동종요법 의사였던 그의 직업을 나타내기 위한 지물 attribute로 사용된 것이리라. 인물의 섬세하고도 우울한 성향은 ‘블루’한 자켓의 색상으로 방점 찍고 있다. 그리고, 턱을 괸 도상 역시 알베르히트 뒤러의 ‘멜랑콜리아’에서 나타나듯이 예전부터 ‘우울’을 표현하는 포즈이기도 하다.
Albrecht Dürer, Melencolia I (1514) 24 × 18.8 cm, Minneapolis Institute of Art
개인적으로는 첫번째의 작품의 가셰 씨의 표정보다 두 번째 작품에서의 표정에서 그의 우울함 뿐 아니라 섬세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통찰력도 함께 표현된 듯 해서 더 맘에 드는 바이다. 실제로 그는 반 고흐와도 친했을 뿐 아니라,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하였고, 예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가셰 씨 말고도 반 고흐가 의사 선생님을 그린 작품이 또 하나 있다. 엄밀히 말해 당시 인턴이었던 펠릭스 레이의 초상. 유명한 고흐의 귀 절단 사건 당시 인턴이었던 펠릭스 레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처치를 하면서 고흐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귀를 다시 봉합하는 수술까지는 못했긴 했지만 말이다. 그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반 고흐는 그의 초상화를 선사했는데, 정작 그 인턴 선생님은 작품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그 그림을 닭장 수리할 때 사용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그냥 ‘개나 줘버렷!’ 하는 심정이었을까? 남에게 줘버렸다고…. 훗날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현재 이 작품은 러시아의 푸쉬킨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 작품의 가치는 무려 US$50millions에 상당한다고 하니…. 역시 사람은 안목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Van Gogh, Portrait of Doctor Félix Rey (1889) oil on canvas, Pushkin Museum
반면, 자신도 아마추어 화가였던 폴 가셰 박사는 예술에도 조예가 상당히 깊었던 듯 하다. 반 고흐 뿐 아니라 당대의 ‘아직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훗날 미술사에 기리 이름을 남기게 되는’ 화가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가졌다. 참고로 아래의 그림은 세잔이 아직 화풍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의 작품 중 하나. 제목하여 <오브르에 있는 의사 가셰의 집>. 이 시기 세잔은 이 지방에 몇 개월 체재하면서 동료이자 스승 격이던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 등과 함께 가셰 박사와 예술에 관한 토론을 자주 가졌다고 한다.
Cézanne, The House of Doctor Gachet at Auvers (c.1873) oil on canvas 46 x 38 cm Musée d'Orsay, Paris
한편,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팔렸던 작품 20위를 차지한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걀레트의 무도회>(1876)는 어떠한가? 이 작품 역시, 앞서 밝힌대로 다이쇼와 제지 명예회장이었던 사이토 료에이가 <닥터 가셰의 초상>과 함께 1990년에 구매한 작품이다. 이전에는 유명한 휘트니 가문의 일원으로 영국주재 미대사를 역임했던 존 헤이 휘트니의 소장이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이 밖에도 공통점을 꼽자면, 유사한 구도의 동일한 제목의 작품이 오르세이 미술관에 소장 중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제3회 인상주의에 전시되었다고 하는데, 인상주의 화가이자 후원자 역할을 했던 구스타브 카이유보트의 소장이었다가 1894년 프랑스 정부가 구입한 후, 룩셈부르, 루브르를 거쳐 오르세이 소장이 된 것이다.
Pierre-Auguste Renoir,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Oil on canvas ; 1.31 m x 1.75 m, Musée d'Orsay
위의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의 경우, 첫번째 버전과 두번째 버전이 명확히 밝혀졌으나, 피에르-오귀스트 르느와르의 <물랭 드 라 걀라트의 무도회>의 경우, 경매에서 팔린 작품과 오르세이 소장 작품 중 어떤 것이 오리지널이고 어떤 것이 나중에 다시 그려진 그림인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은 상태이다. 반 고흐의 작품이 구도나 세부 묘사에서 확실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인데 반해, 르느와르의 작품의 경우 경매 작품의 크기가 오르세이의 소장품에 비해 약간 작은 것을 제외하고 구도 상의 차이는 거의 없다. 따라서, 인상주의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이 둘 중 어느 작품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육안으로 봤을 때, 경매에서 판매된 작품 쪽의 묽은 물감을 이용해서 빠른 붓놀림으로 유연하게 그려진 작품이라는 차이를 알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의 인상주의 사랑은 유별나기로 유명하지만, 특히나 당시 75세였던 이 일본 재벌의 인상주의 작품에의 열정은 남달랐다. 이 분은 자신이 죽었을 때 이 작품과 함께 화장을 시켜달라는 유언을 남기겠다 천명하기도 했는데, 이 말의 여파로 논란이 너무 거세지자, 부랴부랴 ‘그 정도로 내가 이 작품을 사랑한다는 뜻’이라며 그 말을 철회하기도 했다. 자신의 사후에 일본 정부나 미술관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어떠한 염원도 이뤄지지 못했다. 두 작품 다 1996년 그의 사후 비공개 경매로 판매 되는 바람에, 1997년 이후의 소장처가 묘연하다. 이후 2007년 리포트에 따르면 <닥터 가셰의 초상>은 1997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은행가이자 미술계의 또 다른 큰 손 Wolfgang Flöttl에게 판매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프뢰틀 Flöttl은 경제적 사정 때문에 그 작품은 진작에 매각했다고 밝힌 관계로 현재 이 작품의 구매자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바 없다. 르느와르의 작품도 스위스 소장가가 구매했다고만 알려졌을 뿐. 이 아름다운 작품들은 어느 누가 가지고 있을까? 특히 <닥터 가셰의 초상>의 경우, 가뜩이나 전설에 가까운 일화들로 가득한 반 고흐의 삶과 예술에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지인에게 방울토마토와 흙이 담긴 조그만 봉지를 선물로 받았다. 건네면서, 조금 오래된 거라 싹이 틀지 모르겠다며.... 그래서, 큰 기대 없이, 마시고 난 플라스틱 커피 음료 잔 밑에 구멍을 뽕뽕 뚫고, 봉투의 흙을 담고, 그 흙에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몇 개 홈을 파 놓고, 작은 비닐 봉투 속에 담겨있던 몇 알 되지도 않아 보이던 눈꼽만한 씨 몇 알을 조심스레 나눠서 그 구멍 속에 떨어뜨려 담고서는, 흠씬 물을 뿌려 주었다. 크게 기대는 않았지만, 그래도 며칠에 한번씩 물도 주고 했더니... 싹이 꼬물꼬물 올라오는게 아닌가?! 기대없이 놔두던 플라스틱 컵속의 초록을 보고 경탄하면서 집에 있던 화분에 옮겨 주고 좀더 정성을 들였더니.... 열렸다. 토마토가....
난생처음 내 손으로 키운 유실수라니~ 너무 신기하고 나의 무관심과 무경험 속에서 방치된 상황에서도 그토록 무럭무럭 자라준 생명들이 너무 고마워서 그 뒤로는 좀 더 신경을 쓰며 살펴보았다. 그래도 딱히 달리 해준 건 없고, 그냥 물만 일주일에 한 번 주는 것을 빠뜨리지 않고 지킨 정도. 심지어 전문적인 녹색 플라스틱 대도 처음에 존재 자체를 몰랐고, 나중에 그런게 있다는 걸 알고 나서도, 그걸 어디서 사는지도 몰라서 그냥 나무 젓가락으로 지지대를 세워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묵은 방울토마토 씨들은 몇 차례의 수확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먹기도 아까운 열매들을 몇 차례 따서는 동네방네 자랑하면서 식구들에게 하나씩 하사하곤 했다. 예수님이 성찬을 나누실 때에도 이렇게 생색을 내지는 않으셨으리라.
위의 사진은 마지막 수확을 기념하여 한 컷.
그래서 재미를 붙여서 올해도 한번 하고서 이마트 원예 코너에서 비슷해보이는 방울토마토 키트를 사서 뿌려보았는데, 실패!
역시 그건 우연이었나? 나는 스스로 난 원예에 재능이 있나보다. 나름 무척 감격했었는데...
그러던 나날을 보내던 중, 슈퍼에서 산 파프리카를 요리할 때 다듬다가 나오는 씨를 보고 문득 그 씨들을 모아 말려서 나중에 뿌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서 조심스레 씨들을 모아 말려두었다.
그러고선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그 바싹 잘 마른 씨들을 실패한 방울 토마토 씨들을 심었던 곳에 다시 뿌려두었다.
그랬더니, 싹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영양제도 사서 지시사항대로 거꾸로 세워 화분 귀퉁이에 꽂아두었다. 그리고 녹색 지지대도 미리 구입. 일부는 작년의 방울 토마토 나무(?)에 나무 젓가락을 빼고 꽂아주었다.
식물은 어떠한 의미에서 대단하다. 자리를 옮겨 다닐 수 없으니, 그야말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생명을 유지하고 열매을 맺어 후손을 잇고자 노력을 한다. 인간들이 겪는 어려움에 비해서 더욱더 극한의 어려움에 맞서서 생명을 유지해온 것이다.
나는 항상 in-put과 out-put간의 간격이 긴 일만을 해왔다. 그러다가, 이렇게 비교적 단 시간에 가시적인 성과물을 접하니 성취감이 남다르다. 힐링 타임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앞으로는 '원예'를 당당히 취미란에 써넣을테다!
2018년은 1918년으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해. 그럼 1918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면,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지만,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공교롭게도 빈 모더니즘을 이끌었던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 4명이 세상을 뜬 해이기도 하다.
오토 바그너 Otto Wagner (1841-1918)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
에곤 쉴레 Egon Schiele (1890-1918)
콜로만 모저 Koloman Moser (1868-1918)
(이들이 한날 한시에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고 우연의 일치. 다만, 당시 스페인 독감이 워낙 유행해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알려져 있다. 일례로 에곤 쉴레는 당시에 유행했다는 그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는데, 이는 임신 중이던 아내가 이 독감으로 세상을 뜬 사흘 뒤였다고 한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클림트가 폐렴의 합병증으로 결국 사망했는데, 그 폐렴의 원인이 스페인 독감은 아니었나 의심해 볼 수는 있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미술사에 기리남을 인물들이 같은 해에 '서거'하기란 원체 드문 일이다.이를 계기로 빈 모더니즘도 한 풀 꺾인 것도 사실이고, 이 즈음에 공교롭게도 오스트리아의 국운이 저물어간 것도 사실이다. 당시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겠지만, 빈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한 2018년의 오스트리아 빈으로서는 널리 기리고 알려야하는 기념할 만한 해인 것이다.
오토 바그너는 현대 건축을 창시했다고도 평가받는 건축가, 콜로만 모저는 팔방미인인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이 둘은 일반 대중들에게 덜 알려져 있지만,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화가들이다. 정식으로 사제지간은 아니었지만, 에곤 쉴레는 클림트를 존경했고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둘의 사이가 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작품 세계는 상당히 달랐다. 에곤 쉴레의 경우, 지나친 외설적 표현으로 오늘날까지 일반 전시에는 제약을 받을 정도의 과감한 작품 세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물론 독특한 화풍과 필치로 개성넘치는 작품으로 그의 천재성과 재능은 충분히 평가 받고 있지만 말이다.
https://wienermoderne2018.info/en/에서 소개된 에곤 쉴레 부분의 참고 이미지들 중 하나 - '10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과감해서 미안'이라고 쓰인 종이로 '은밀한 부분'을 감춘 재치 있는 디자인이 돋보인다.
Egon Schiele (1890-1918), Self-Portrait with Chinese Lantern Plant (1912), oil on painting ; 32.2 x 39.8 cm, Leoold Museum
이에 비해 클림트의 작품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작품들로 유명하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복제품으로 널리 유통되고 전시되어 한국에서도 카페 같은 데서 한 번쯤 봤음직한 작품들이 많다.
Gustav Klimt, The Kiss, oil on canvas ; 180 x 180 cm,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클림트의 '황금기' (전성기라는 의미도 있지만, 정말 금색을 많이 사용해서 적절한 명칭)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원래는 가로와 세로가 모두 180cm인 정사각형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이다. 사랑하는 남녀의 열정적이면서 따뜻한 키스의 순간을 화려한 금색을 배경으로 장식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클림트의 이전 작품이 변태적이라며 비판 당했던 것과는 달리, 제작 당시부터 인기가 높았다고 알려져 있다. 금박과 평면성은 각각 비잔틴과 자포니즘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데, 이후 그의 대표 작품들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자리잡는다. 혹자는 남성의 머리에 얹힌 것을 월계관이라고 보고, 이를 아폴로와 다프네의 신화를 묘사한 것이라 해석하기도 하는데... 여인의 몸, 특히 다리 부분이 지면의 풀과 꽃과 물아일체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신화 속의 다프네는 구애하는 아폴로를 벗어나기 위해 도망을 치다치다, 급기야 강의 신이던 아버지에게 부탁해 님프이길 포기하고 나무로까지 변신을 하는데... 이 그림 속의 여인은 남성의 품에서 너~무 행복해보인다는 결정적으로 감정표현적 모순이 있다.
그리고, 어제 소개한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회화 작품들에 클림트의 작품이 당당하게 몇 작품이나 들어가 있는데, 둘다 성공한 사업가의 아내인 Adele Bloch-Bauer의 초상화이다. 클림트가 유일하게 같은 모델을 대상을 두번이나 초상화를 제작했다고 해서 유명하기도 하다. 나치가 몰수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후손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하는데... 이 중 1907년의 첫 초상화 작품은 현재 Neue Galerie에 전시 중이다.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현재 뉴욕의 Neue Galerie에 전시
우연의 소산이긴 하고, 거장들이 한꺼번에 세상을 등진 일은 비극적인 일이었지만, 전시회를 기획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 빈 모더니즘을 이끌었던 4 거장들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해서 오스트리아의 빈 뿐 아니라, 예술이라면 내노라 하는 대도시에서 이들과 관련한 전시를 많이 개최하고 있고, 늦게는 내년 초까지 계속 되고 있으니,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씩 여행지 미술관의 특별전을 체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The Belvedere Museum - “Egon Schiele - Pathways to a Collection” (Oct. 19, 2018 – Feb. 17, 2019) Leopold Museum - “Egon Schiele. The Jubilee show”(Feb. 23 – Nov. 4, 2018) - “Gustav Klimt”(Jun. 22 – Nov. 4, 2018) MAK – Austrian Museum of Applied Arts/Contemporary Art - “Koloman Moser. Universal Artist between Gustav Klimt and Josef Hoffmann” (Dec. 19, 2018 – Apr. 22, 2019) Bank AustriaKunstforumWien -“Japonismus” (Oct. 10, 2018 – Jan. 20, 2019)-자포니즘의영향에 대해 알아보는 전시라고 소개 됨 Klimt Villa - Gustav Klimt’s Studio -“Klimt lost” (May 5 – Dec. 30, 2018) –나치에 의해 행해진 압수를 비롯하여 소실된 클림트의 작품을 새로운 관점에서 고찰해보는 전시라고 소개 됨
평범한 직장인의 경제 관념으로서 뱅크시의 그 조그마한 작품이 15억에 달한다는 것을 알면 깜짝 놀랄 일이겠지만, 실제로 진행되는 경매의 경우, 그 거래 금액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건전한 일상의 금전 감각은 집에다 두고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금액이 밝혀지는 것은 그나마 공개 경매의 경우이고 'private auction'이라고 칭하는 비공개 경매의 경우, 그야말로 은밀한 사적인 경매라 그 금액조차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놀랄 금액으로 판매되는 작품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고, 그 작품들의 거래 가격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경매 최고가를 정리하는 기사는 매년 나오지만, 여기에는 이미 세계 유명 미술관에 소장 중인 작품들은 제외된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될 것이다. 1962년 당시 추정가격이 1억달러였다고 하는데, 이는 2017년 인플레를 고려한 금액으로 환산하면 8억1천만 달러에 해당한다. 이는 한화로 환산하면 무려 약 9천218억원. 현재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플레가 계속되고, 미술시장에서의 가격 경쟁이 계속 된다면 언젠가는 1위 자리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을 할 수 없지만 말이다.
2018년 현재, 경매에서 판매된 가장 비싼 작품들 15점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The Most Expensive Paintings in Auctions – 2018 1) Leonardo da Vinci, "Salvator Mundi" (ca.1500)$450.3-million (Christie's 2017 auction) 약5천151억에 해당 2) Willem de Kooning, "Interchange" (1955) $30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3천414억원 3) Paul Cézanne, "The Card Players" (ca. 1890) estimated $250- to $300-million (2011 private sale) 4) Paul Gauguin, "Nafea Faa Ipoipo" (1892) $210-million (2014 private sale) 약2천389억원 5) Jackson Pollock, "Number 17A" $20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2천276억원 6) Mark Rothko, "No. 6 (Violet, Green and Red)" (1951) $186-million (2014 private sale) 약2천216억원 7)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I (Water Serpernt II)" (1904) $183.8-million (2012 private sale) 약2천91억원 8) Rembrandt van Rijn, "Pendant portraits of Maerten Soolmans and Oopjen Coppit" (1634) $18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2천80억원 9) Pablo Picasso, "Les Femmes d' Alger" ("Version O") (1954-55) $179.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약2천41억원 10)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1917) $170.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약1천939억원 11) Roy Lichtenstein, "Masterpiece" (1962) $165-million (2017 private sale) 약1천877억원 12)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sur le côté gauche)" (1917) $157.2-million (2018 Sotheby's auction) 약1천789억원 13) Pablo Picasso, "Le Rêve" (1932) $155-million (2013 private sale) 약1천764억원 14)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150-million (2016 private sale) 약1천707억원 15) 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142.4-million (2013 Christie's auction) 약1천620억원
1) Leonardo da Vinci, "Salvator Mundi" (ca.1500) $450.3-million (Christie's 2017 auction) 약5천151억에 해당 - 아직 확실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라고 결정난 것은 아닌 이 작품이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으로 등극했다. 현재 아부 다비의 루브르에 전시 중이라고.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의 작품이 2018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 1위를 차지했다.
2) Willem de Kooning, "Interchange" (1955) $30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3천414억원
3) Paul Cézanne, "The Card Players" (ca. 1890) estimated $250- to $300-million (2011 private sale) - 자세한 정보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카타르의 왕족이 구입했다고 알려졌다. 언젠가 카드 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별도로 글을 올리도록 하겠지만, 세잔은 이 주제로 다수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 외의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큰 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다.
4) Paul Gauguin, "Nafea Faa Ipoipo" (1892) $210-million (2014 private sale) 약2천389억원 - 타히티의 원주민언어로 단 제목을 해석하면 '언제 결혼 할거니?'라고 한다. 문명에 찌들지 않은 이상향으로 타히티를 그리며 현대판 '전원시'를 제작한 고갱의 작품
5) Jackson Pollock, "Number 17A" $20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2천276억원
6) Mark Rothko, "No. 6 (Violet, Green and Red)" (1951) $186-million (2014 private sale) 약2천216억원
7)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I (Water Serpernt II)" (1904) $183.8-million (2012 private sale) 약2천91억원
8) Rembrandt van Rijn, "Pendant portraits of Maerten Soolmans and Oopjen Coppit" (1634) $18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2천80억원
9) Pablo Picasso, "Les Femmes d' Alger" ("Version O") (1954-55) $179.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약2천41억원
11) Roy Lichtenstein, "Masterpiece" (1962) $165-million (2017 private sale) 약1천877억원
12)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sur le côté gauche)" (1917) $157.2-million (2018 Sotheby's auction) 약1천789억원
13) Pablo Picasso, "Le Rêve" (1932) $155-million (2013 private sale) 약1천764억원
14)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 $150-million (2016 private sale) 약1천707억원 - 인플레를 고려하면, 클림트가 같은 모델을 대상으로 1907년 그린 초상화가 14위에 해당되고, 이 작품은 18위에 해당한다. 참고)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1907)$135-million (2006 Christie’s auction)$163.9-millions
15) 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 $142.4-million (2013 Christie's auction) 약1천620억원 - 1992년 세상을 뜰 때까지 생존화가로서는 작품 가격이 가장 높은 화가 중 하나였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삼면화. 그의 친구이자 화가인 루시앙 프로이트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아래의 목록은 인플레를 감안했을 때,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판매된 작품 20점의 리스트이다. 화폐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기 마련이므로, 최근에 최고가를 경신하며 판매된 작품들 10점에는 순위가 변동이 없다 (6위와 7위만 살짝 바뀜) 그리고, 20위 안에는 현재 랭킹 15위까지 다 포함 됨을 알 수 있다(2018년 현재 최고가를 기록했던 작품 11위부터 15위에 해당하는 작품은 볼드체로 표시했다.)
The Most Expensive Paintings in Auctions – 2018 1) attributed to Leonardo da Vinci, "Salvator Mundi" (ca.1500)$450.3-million (Christie's 2017 auction)$450.3-milliona 2) Willem de Kooning, "Interchange" (1955) $300-million (2015 private sale)~$310-millions 3) Paul Cézanne, "The Card Players" (ca. 1890) estimated $250- to $300-million (2011 private sale)$272 +-millions 4) Paul Gauguin, "Nafea Faa Ipoipo(When Will You Marry?)" (1892) $210-million (2014 private sale)$217-millions 5) Jackson Pollock, "Number 17A" $200-million (2015 private sale)~$206-millions 6)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I (Water Serpernt II)" (1904) $183.8-million (2012 private sale)$193.1-millions 7) Mark Rothko, "No. 6 (Violet, Green and Red)" (1951) $186-million (2014 private sale via Yves Bouvier)$192-millions 8) Rembrandt van Rijn, "Pendant portraits of Maerten Soolmans and Oopjen Coppit" (1634) $180-million (2015 private sale)$186-millions 9) Pablo Picasso, "Les Femmes d' Alger" ("Version O") (1954-55) $179.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185.2-millions 10)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1917) $170.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175.9-millions 11) Jackson Pollock's "No. 5” (1948)$140 million (2006 Sotheby’s auction)$170.0-millions 12) Willem de Kooning,Woman III(1953) (2006 private auctionvia Larry Gagosian)$166.9-millions 13) Roy Lichtenstein, "Masterpiece" (1962) $165-million (2017 private sale)$165.0-millions 14) Gustav Klimt,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1907)$135-million (2006 Christie’s auction)$163.9-millions 15) Pablo Picasso, "Le Rêve" (1932) $155-million (2013 private sale)$162.8-millions 16)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sur le côté gauche)" (1917) $157.2-million (2018 Sotheby's auction)$157.2-millions 17) Vincent van Gogh,Portrait of Dr. Gachet(1890)$82.5-million (1990 Christie’s auction) 18)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150-million (2016 private sale via Larry Gagosian)$153.0-millions 19) 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142.4-million (2013 Christie's auction)$149.6-millions 20) Pierre-Auguste Renoir,Bal du moulin de la Galette(1876)$78.1-million (1990 Sotheby’s auction)$146.3-millions
앞서 밝혔듯이 인플레를 고려해도 많은 작품들이 가격 순위면에서는 겹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가가 계속 올라서 인플레가 지속되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이하는 위의 랭킹 15에서 빠진 이미지들을 보충해서 올린다.
인플레 고려 11) Jackson Pollock's "No. 5” (1948) $140 million (2006 Sotheby’s auction) $170.0-millions
인플레 고려 12) Willem de Kooning, Woman III (1953) (2006 private auction via Larry Gagosian) $166.9-millions
인플레 고려 14)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135-million (2006 Christie’s auction) $163.9-millions, 현재 뉴욕의 Neue Galerie에 전시
인플레 고려 17)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Dr. Gachet (1890) $82.5-million (1990 Christie’s auction)
인플레 고려 20) Pierre-Auguste Renoir,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78.1-million (1990 Sotheby’s auction) $146.3-millions - 위의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과 함께 두 작품 모두 일본의 제지회사를 소유한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가 각각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구입하여 당시에 큰 뉴스거리였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을 본 소감이 어떠신지요? 앞으로 위에 언급된 작품들에 대해서 한 작가씩, 그리고 해당 작품에 대해서 한번씩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영국의 ‘올해의작가상’에해당하는것이터너프라이즈 (the Turner Prize)이다. 그런데, 18명의작가들로구성되어리버풀을근간으로활동하는에셈블(Assemble)이라는팀이 “그랜비포스트릿츠프로젝트(the Granby Four Streets Project)”로 2015년터너프라이즈수상했다.이들의작업은생활환경이열악한지역을찾아다니면서, 그곳에서공동으로낡은집을고쳐주거나, 새로집을지어주는작업을하는데, 그과정에사진이나영상등파생되는예술작품들을포함하여집을짓는행위자체까지모두그들의작업에포함된다. (도판 3)
믹스라이스의작가들이수년간에걸쳐공동체의주민들과깊은유대관계를맺고서로의신뢰관계를바탕으로작업을해왔듯, 대부분의소셜리인게이지드아트작가들도그러하다. 2014년맥아더그랜트를수상한미국작가릭로우 (Rick Lowe)도이점을분명히하고있다. 그는 LA Times의인터뷰에서이렇게밝힌다: “반드시아주오랜동안관계를발전시켜야합니다…. 어떠한공동체에뛰어들어와서, 곧바로그곳의모든복잡함을다파악할수있다고생각한다면그것은오만하고그공동체를무시하는행위가될것입니다.” 미국작가릭로우, 영국의어셈블그룹, 한국의믹스라이스모두공동작업을통해서사회문제를제기하므로써사람들에게그문제들을인식시키고, 나아가서는문제해결을모색한다는점에서공통적인목표를가지고있다고볼수있을것이다.그런점에서믹스라이스를위시한위에언급한이들의작품을소셜리인게이지드아트의범주에넣을수있을것이다.
물론 “Socially Engaged Art”라는타이틀에자체에대한비판이없는것은아니다. 모름지기작가는진공상태에사는것이아니고, 자신이속한사회와자신의환경의영향을받으며작품을제작한다.소셜리인게이지드아트, 말그대로하자면, ‘사회와관련을맺는예술’이라는뜻인데, 그렇다면그러한타이틀을달지못할예술이어디있겠는가?혹은그런기치아래에서제작되진않는예술작품들은전부사회와유리된것이라고할것인가? 그러한아이러니를의식한탓인지, 믹스라이스의작업을지칭하고자하는여러가지시도가존재한다. 이는미술사조내에서의우리가알고있는유명한 ‘주의’나사조들이실은그특정명칭이하나로정착될때까지는시간이걸렸고, 그이전에는여러가지명칭으로불렸다는것을기억해볼때, 그다지드문일은아니다. 따라서, 소셜리인게이지드아트와같은사회적, 정치적문제에대한언급을하면서대중들의관심을환기시키는예술을일컫는용어는다수존재하고아직확립된하나의합의된명칭은존재하지않는다는말이다.
4. 공공미술(Public Art)과새로운공공미술 (New Genre Public Art)
먼저, 예술가이자저자, 교육자인수잰레이시(Suzanne Lacy)가 1991년에처음만들어낸용어로“뉴장르퍼블릭아트 (New Genre Public Art),” 즉“새로운장르의공공미술”이라는용어가있다.이용어는샌프란시스코미술관에서행해진공개퍼포먼스와수잰레이시의저서『지형의자리매김: 새로운장르의공공미술 (Mapping the Terrain: New Genre Public Art)』이라는저서를통해처음소개되었다. 보통 ‘새로운’ 이라는수식어가붙는다는것은그이전이존재한다는의미인데, 실제로‘공공미술’이란단어는해당예술작품의구매자가개인이든공공단체이든, 혹은그것이설치된장소가사유지이든지공유지이든지상관없이공공영역에있는예술을지칭하는용어로폭넓게사용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