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물병과 사자
2018. 9. 17. 07:30 미술 이야기

흔히 미의 여신 비너스는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폴리트 플랑드랭은 청년의 누드로 지극히 고요한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바닷가에 올 누드로 저런 포즈로 앉아있었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체가 표현해내는 곡선과 사색적인 포즈,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푸른색의 바다와 하늘.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고요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Hippolyte Flandrin (1809-1864), Young Man by the Sea (1836) oil on canvas ; 98 x 124 cm, Musée du Louvre, Paris


이 젊은이의 동그랗게 말린 등의 곡선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비단 나뿐은 아니었고, 그렇게 동그란 등을 가진 인물이 저 젊은이가 최초도 아니다. 


Piero della Francesca, Resurrection (c.1460) the Palazzo della Residenza, Tuscany, Italy 


초기 르네상스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부활>에서는 예수님이 다시 깨어나시는 역사적 순간을 놓치고 잠이 들어버린 안타까운 보초병들의 한명이 등을 동그랗게 말고 앉아있다. 


Piero della Francesca, Resurrection (c.1460) the Palazzo della Residenza, Tuscany, Italy, 세부 


그리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보초병과 플랑드랭의 청년에게서 영감을 받은 화가가 있으니 그가 바로 19세기말의 신인상주의자 조르주 쇠라 (1859-1891)이다. 


Georges Seurat  (1859-1891), Bathers in Asnières (1884, retouched 1887)  oil on canvas ; 201 x 300 cm, National Gallery   



일요일 강변에 물놀이를 하러 나온 청년들을 그린 <아니에르에서의 목욕하는 사람들>에는 플랭드르의 누드를 연상시키는 굽은 등의 청년이 등장한다. 


Georges Seurat, Bathers in Asnières (1884, retouched 1887)  세부



그리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보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청년도 눈에 띈다. 굽은 등과 세운 무릎, 그리고 보초가 입은 외투의 주름을 연상시키는 주름진 바지에서 쇠라가 확실히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포즈는 원경의 흰색 옷을 입은 남성에게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Georges Seurat, Bathers in Asnières (1884, retouched 1887)  세부


그리고, 아래의 작품은 아베 코야의 프린트 작품. 플랑드랭의 작품 이미지에 우타가와 쿠니요시의 문신의 이미지를 덮어 씌운것.  플랑드랭의 작품이 서구의 미를 표현했다면, 거기에 우타가와 쿠니요시의 문신을 함께 표현하여 이를 통해 동양의 아름다움을 결합한 것이라고.... ('이레즈미'라고 하는 문신.  뜯어보면 아름답긴 한데, 저 청년은 우리나라 대중탕은 출입하기 힘들 것 같다) 


Abe Koya, Inkjet print combining Young Man Beside the Sea by Hippolyte Flandrin and Ding Desun and a Snake by Utagawa Kuniyoshi. From an edition of 10.  55.9 x 43.2 cm, reproduced by permission of the artist ©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한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움을 지닌 플랑드랭의 청년의 등, 그러나.... 그것은 건강에는 좋지 않다.  정녕 건강과 아름다움은 함께 갈 수 없는 것인가~~  어쨌든 척추가 바로 잡혀야 건강하다는 사실!  바른 자세로 생활합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16. 07:14 일상 이야기

미국서 가져 온 책 상자들을 본격적으로 풀기 시작한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항상 차일피일하다가 이러다 내 살아생전에는 정리 못하지 싶어 결단을 내리고 조금씩 시작하자 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그렇게 힘든 일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상자를 열어 그 속의 책들을 꺼내보다보면, 내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책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면 분명히 내것이었는데 무척 반갑다. 그런 책들은 대부분 내가 아직 읽지 못한 것들이라 재밌는 읽을거리가 생긴것같아 설레기까지 하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줄 알았으나, 어디 박혀있는지 몰랐던 책들을 발견하게 되면, 연락 끊겼던 벗을 만난듯 반갑다. 아~ 여기 있었구나....  


이제 책꽂이에 나온 책들은 앞으로 시간을 들여 주제별로 옮겨 꽂게 되겠지만, 일단 많은 박스들을 내다버릴수 있게 되어 홀가분하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과감히 헌책들을 정리했다. 혹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된다 위안삼으며....


이렇게 미니멀라이프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 아니, 반발자국... 이 참에 헌옷이랑 다른 잡다구리 소지품들도 왕창 덜어낼 생각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15. 08:00 미술 이야기

Pieter Brueghel the Elder  (1526/1530–1569),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ca. 1558), 

oil on canvas mounted on wood ; 73.5 x 112 cm,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

 

작품의 제목은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번역하자면, <이카루스가 추락하는 장면이 담긴 풍경화>. 16세기 북유럽 르네상스 작가로 유명한 피터 브뤼헬 (父)*의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루스는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이 다이달로스로 말할 것 같으면 미노타우르스를 가둔 미로를 만든 최고의 장인이지만, 바로 그 뛰어난 재능 탓에 미로의 비밀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왕에 의해 평생 감금된 채 살아야할 운명에 처해진 인물.  탈출을 계획한 아버지가 만든 날개를 달고 시운전을 해보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너무 태양 가까이에는 가지마! 날개를 이어 붙인 밀납이 녹아버릴테니까'라고 말했건만! 그 말을 듣지 않고 좀 더 높이 좀 더 높이 하면서 우쭐거리고 신나서 날던 이카루스는 그만 밀납들이 다 녹아버려 깃털들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대로 추락해서 죽고 만다는 이야기.  

 

인간의 과욕과 오만을 경계하는 교훈을 담았다고 알려진 이야기이다. 또한, 다른 교훈도 담겨있다. 자고로 어른 말씀은 새겨들어야한다. 옛부터 어른 말씀 잘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했거늘.... 

 

16세기 르네상스 시기에 하이라이트를 받는 이탈리아를 살짝 비켜가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에서 활동했던 브뤼헬의 이 작품은 제목과는 다르게 새하얀 날개를 등에 달고 오르거나 안타깝게 추락하는 아름다운 미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전경의 중앙에는 농부가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고, 그 뒷켠으로는 양치기가 양들을 몰고 나와 풀을 먹이고 있으며, 화면에 등을 보인채 둑에 앉은 남자는낚시에 몰두하고 있다.  저 멀리 바다에는 빵빵하게 바람 맞은  돛을 한껏 올린채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는 배도 보이고,  왼쪽 원경으로는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발전한 평화로운 도시도 보인다.  도대체 이카루스는 어디에~?

 

 

자세히 보면, 낚시꾼이 자신의 낚시대와 물고기에 정신을 빼앗겨 미처보지 못한 조금 깊은 바닷쪽에 거꾸로 메다꽂혀 바다에 빠진 사람의 다리가 보인다.  그리고 좀더 자세히 보면, 밀납이 떨어져 흩어져 버린 깃털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다. 

 

놀랍게도 이 역사적, 아니 신화적 순간을 아무도 주목하기는 커녕, 알아채지도 못하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몇 분후면, 애처로운 이카루스는 물 속에 가라앉을 것인데 말이다.  그러든 말든, 사람들은 변함없이 하던 일을 할 것이다. 농부는 계속해서 밭을 맬 것이고, 양치기는 양을 돌볼 것이고, 낚시꾼은 계속 낚시를 할 것이다. 그리고 돛을 단 범선은 정해진대로 항해를 계속 할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통렬한 관찰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군중 속의 고독'을 논하기 훨씬 이전 16세기의 한 작가에 의해 한 장면으로 요약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1938년 한 영국 출신의 미국 시인에 의해 시로 다시 탄생했다.  아래는 윌리엄 오든이 벨기에의 미술관에서 브뤼헬의 작품을 보고 쓴 시이다. 

 

Musée des Beaux Arts   
W. H. Auden 

About suffering they were never wrong, 
The old Masters: how well they understood 
Its human position: how it takes place 
While someone else is eating or opening a window or just walking dully along; 
How, when the aged are reverently, passionately waiting 
For the miraculous birth, there always must be 
Children who did not specially want it to happen, skating 
On a pond at the edge of the wood: 
They never forgot 
That even the dreadful martyrdom must run its course 
Anyhow in a corner, some untidy spot 
Where the dogs go on with their doggy life and the torturer's horse 
Scratches its innocent behind on a tree. 

In Brueghel's Icarus, for instance: how everything turns away 
Quite leisurely from the disaster; the ploughman may 
Have heard the splash, the forsaken cry, 
But for him it was not an important failure; the sun shone 
As it had to on the white legs disappearing into the green 
Water, and the expensive delicate ship that must have seen 
Something amazing, a boy falling out of the sky, 
Had somewhere to get to and sailed calmly on.

 

그렇다.  농부는 뭔가가 물 속에 떨어지는 '풍덩' 소리를 들었을 지도, 살려달라는 외침을 들었을지만 모르지만, 그들의 조용한 일상을 지속해간다. 호화로운 배에 탄 사람들도 하늘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배는 경로를 바꾸는 일 없이 목적지를 향해 조용히 항해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20세기의 시인이 언급한 이래, 최근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그 누군가가 다시 언급하였다.  

그 이름이 바로 방탄 소년단 (BTS). 


그들의 '피, 땀, 눈물'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미술사적 어휘가 풍부하게 담겨 있는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나르시서스의 도상 등),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멤버 중의 한명인 뷔가 발코니의 난간에 걸쳐 앉아있다가 뛰어내리는 장면의 뒤로 비치는 풍경이 바로 부뤼겔의 <이카루스가 추락하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결과적으로 그로 야기된 인간으로서의 고독감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존재하는 인간조건인가보다.  [3분18초의 장면]

 

BTS (방탄소년단) '피 땀 눈물 (Blood Sweat & Tears)' Official MV 

물론 이카루스의 추락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방탄소년단의 뮤비는 전세계가 알아차린듯하다.  이카루스는 추락했지만, 방탄소년단은 계속 비상하고 있는듯 하다.  

 

Pieter Brueghel the Elder 는 흔히 피터 브뤼겔이라고도 표기되곤 했는데, 요새 표기법으로는 피터르 브뤼헬이라고 표기하는 듯하다.  the elder라는 꼬리가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아들도 유명한 화가. 장남인 Pieter Brueghel the younger는  환상적인 지옥의 모습을, 차남인 Jan Brueghel the younger는 아름다운 꽃을 잘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14. 08:00 일상 이야기

미국 채널 중에 Turner Classic Movie라는 영화 전문 채널이 있는데, 주로 옛날 클래식 영화를 많이 상영해주는 채널이다.  그 중에서 많이 상영되는 것이 '필름 느와르'인데,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 영화의 미장센으로 많이 이용된다는 것은 지난 번에 밝혔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나라의 방송에서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 채널 로고송이 들어가는 것처럼 미국 방송도 그런데, TCM의 경우, 영화 채널의 특징을 살려 짧은 영화같은 동영상이 중간중간에 들어간다. (그것을 영어로는 bumper라고 한다고...)  쳇 베이커 (Chet Baker)의 "Look for the Silver Lining"이 흐르면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을 애니메이션처럼 제작해서 보여준다.  


감미로운 목소리의 쳇 베이커의 재즈를 들으면서, 평화로운 호퍼의 작품 속 인물들과 풍광을 보고 있노라면, 살아 본 적 없는 그 곳과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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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13. 08:00 미술 이야기

Edward Hopper, Nighthawks (1942)  oil on canvas ; 84.1 x 152.4 cm, Art Institute of Chicago

'도시 군중 속의 고독'을 탁월하게 묘사했다고 평가받는 에드워드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다.  대중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은 이 작품은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였고, 느와르 영화 감독들이 영화의 미장센으로 많이 차용하기도 하였다.  Nighthawks라고 불리고 있으나, 원제는 'Night Hawks'였고, 이는 직역하면, '밤의 매'라는 뜻인데, 신사들이 쓰는 모자의 모양이 매의 부리와 닮아서라는 설, 혹은 nighthawk라는 단어가 올빼미족 (밤에 잠안자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는 설 등이 있다.  

일설에 따르면, 위 작품의 배경이 된건 뉴욕의 그리니치 애비뉴와 W 11가의 교차로 선상 (70 Greenwich Avenue  at West 11th Street의)의 코너에 자리한 가게라고 한다. 호퍼는 시각적 효과를 위해 실제의 모습과는 변형된 식당의 모습으로 변모시켰지만 말이다.  

한밤 중, 뉴욕의 어느 다이너 (간단한 식사와 커피와 케익 등을 파는 카페겸 식당) 안에는 4명의 사람이 있다. 그 중 한 명은 그 카페의 점원이고, 또 한명은 홀로 카페에 들른 사람, 또 하나는 남녀 커플이다. 점원과 혼밥족은 그렇다 하더라도, 일행임이 분명한 남녀도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다. 여럿이 있어도 지극히 고독하고 외로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들이 어떤 사연으로 한밤중에 그 카페에 들르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홀로 앉은 이는 실은 마주 앉은 커플 중 남자를 저격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암살범일 수도 있다 (느와르 영화에서 있을 법한 설정).   

다음 휴가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은 남녀 커플은 어쩌면 헤어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슬픈 로맨스 영화에 있을 법한 설정).  

아니면, 낮밤 바꾸어 일하지만 집안에 문제가 많아 고통받는 카페 점원의 고달픈 생활에 대한 영화 (사회비판을 겸한 성장 영화에 있을 법한 설정)일 수도 있다.  

Robert Siodmak의 1946년 작 영화 <The Killers

실제로 호퍼는 이 작품을 구상할 때, 헤밍웨이의 'The Killers'라는 1927년작 단편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 했다. 그리고, 호퍼의 작품을 미장센으로 십분 활용한 'The Killers'라는 느와르 영화가 실제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림을 감상하는 이는 이러한 상상력을 마구 펼치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아니면, 비록 한 밤 중에  그런 카페 같은 곳에 가 본 적은 없다하더라도, 분위기로 공감할 수 있는, 자신의 인생 안에서 있었던, 그런 고독의 순간에 대해 회상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회화에서의 서사를 최대한 절제하는 한편, 깊은 통찰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 외로움을 포착해내는 것이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의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보는 이들에게 그 빈 서사의 장에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려넣을 수 있도록, 또 볼 때마다 다른 기억과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봐도봐도 또 보고 싶은 그림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묘한 위안 같은 것을 받게 만든다.  아~ 나만 그렇게 외로운 건 아니었어......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를 감상하는 이들은 그 비어 있는 서사 공간에 자신의 스토리를 채워넣으면서도 인간 본연의 조건에 대한 동질감을 공유하게 됨으로써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12. 13:11 일상 이야기

1930년대말, 미국의 외딴 마을 한적하기 이를때 없는 주유소.   때는 바야흐로 해가 숲 저너머로 막 져버린 황혼, 마찬가지로 인생의 황혼길의 점원은 손님이 오긴 오는 걸까 싶은 주유소를 홀로 지키고 있다.  길은 

숲 속으로  접어들수록 어두워지고 숲은 깊어진다. 반면, 방금 해가 진 하늘은 화면의 오른쪽이 가장 밝고 왼쪽으로 갈수록 어둠이 짙다. 그리고 그 자연광은 주유소의 사무실에서 비쳐 나오는 인공광과 대비를 이루며 전체 화면에 균형을 이룬다.  

꾸미지 않고 진솔하게 그린 그림임은 분명하지만, 생각없이 그린 그림은 아니다.  작품을 보는 이는 누구라도 적막한 시골길 한 켠에 자리한 주유소, 거기서 홀로 일하는 점원의 고독과 평온함을 함께 나누게 된다. 별다른 설명없이, 여백을 남겨둠으로써 보는이가 채워가게 하는 것 그것이 그가 취한 영리한 전략이다.   

 

Edward Hopper, Gas (1940), oil on canvas ; 66.7 x 102.2 cm, MoMA 

위의 작품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들을 보유한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1882-1967)의 <주유소>라는 작품이다.  

 

나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사랑한다.  나는 호퍼의 그림을 참 좋아하지만,  항상 '그의 그림은 서툴지만 왠지 사람의 맘을 끄는 무엇이 있다'라고만 생각해 왔다.  

 

But, 그러나.....

 

그려보니 어려웠다.

내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좋아하는 건 그가 그림을 잘 그려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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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12. 08:00 일상 이야기

외국어를 사용하다 보면, 사전에는 나오지 않을테지만, 한국어로 하면 이런 뜻이겠거니 할 때가 있는데, 미국 가서 처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대표적인 표현이 'Sue me!'였다.  그리고 거기에 적합한 우리말 표현은 '배째!'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직접 듣거나 써본 경험은 없고, 시트콤에서 들은 표현이다. 친구들 사이에 '어쩜 그럴 수가 있냐?' '왜 그랬냐?' 한 사람이 막 따질때,  궁지에 몰린 상대방이 'Sue me!' 라고 다소 단호하게 말하면, 대부분 상대방이 아연실색하게 되면서 상황이 정리되는 수순으로 전개되는 식이다.  물론 한국어 표현도 실생활에서 사용해본 적은 없지만, 표현상으로 적당한 것은 '배째!'가 아닐가 싶다.  

미국은 원체 소송이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다소 언성은 높아질 경우가 있을 지언정, 보통 당사자들끼리 문제를 해결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은데, 미국은 정말 사소한 것도 직접 이야기 하기보다는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나온 표현 법이라고 생각되는데, 물론 심각하게 정말 소송을 걸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언어에 원체 관심이 많기도 했고, 외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아서였기도 하지만, 언어마다 고유의 표현들이 많은데, 그런 외국어의 표현법들과 국어와 비교를 해보면 참 흥미롭다. 

그렇게 비교를 하다보면, 많은 경우, 어디서 사나 사람 사는 것 참 비슷비슷하다 여기고 있을 때 즈음, '아~ 확실히 정말 다른 문화구나' 하는 자각을 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기도 했다.  

아주 오래된 얘기지만, 내가 어학연수 수업때 숙제로 낸 영어 작문에서, '기차를 타고 어디어디를 다녀왔다'는 표현을 하면서, 'in the train'이라고 쓴 표현을 선생님이 in 위에 빨간 가위표를 하고는 그 위에 on 이라고 고쳐준 적이 있었다. 나중에 내 교정문을 읽던 친구가 'in the train'이라고 쓰면, 마치 내가 기차 엔진 속에 쪼그리고 들어가 있는 것이 상상이 돼서 너무 귀엽다고 했다. 나는 'on the train'이라고 쓰면 마치 내가 미션 임파서블의 탐 크루즈처럼 달리는 기차의 지붕위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서로 막 웃었다.   (나중에 다른 선생님은 in 과 on 둘 다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언어가 문화의 차이를 만드는 것인지, 문화의 차이가 다른 언어를 만들어낸 것인지... 오묘하고 재밌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11. 11:00 일상 이야기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체육 시간 달리기 경주라도 할라치면, 난 누군가가 내 운동복 끄트머리를 뒤에서 잡아 끄는 것 같았고, 기록만 보면 반드시 누군가 그랬었던 것 같았다. 아니 그래야만 이해가 되는 기록을 남기곤 했었다.  못하니 싫어하고, 싫어해서 안하니 나아지지를 않고, 그런 악순환으로 여지껏 살아왔다.  숨을 안쉬고 살아갈 수 만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숨도 안쉬고 지낼지도 모르겠다 싶다. 얼마 전에 등산 가는 친구들이 함께 가자고 권해서 겁없이 따라 나섰는데, 도중에 내 다리가 스스로 로그 오프하는 현상을 경험했다. 머리로는 움직이고 싶은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심각한 운동 부족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앉아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운동은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동네 요가 학원에 신청을 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한동안 일주일에 두번 가면서 세상 운동 다하는 것처럼 뿌듯한 것도 잠시...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달 내내 안가면서 등록했다는 사실만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미국에 가서 인상깊었던 것 중에, 조깅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는 것이었다.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꼭 한 두명 씩은 내 주변을 뛰어가는 사람을 보곤 했다.  세상 호화롭게 지어놓은 학교 체육관을 가면 더했다.  국민들 운동의 생활화 범 국민 캠페인이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햄버거는 물론이고 약사에게 조제한 약을 받을 때에도, 차에서 내리는 법 없이 차창만 내리고 받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된 셈인지 차에서 내려서 세발자국만 멀어지면 죄다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신기하게 느꼈었다. 

한국에 있을 때엔 작정하고 새벽 운동을 가는사람들 이외에는 길거리에서 조깅하는 사람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 때에는 일부러 시간 내서 저러지 말고, 그냥 걸어서 음식 사러가고, 차에서 내려서 약국에 걸어들어가 약 타오고 하면 될 것을... 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는 예전만큼 전철과 버스를 이용하지 않게 되면서, 생활 속의 운동도 잘 안하게 되었다. 결국 일부러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지속적으로 계속 하려면 그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 안될텐데... 누가 운동을 좋아하면서 지속하는 방법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요새는 핸드폰 앱도 잘 나오던데, 운동하는 앱을 하나 깔아서 사용해볼까?   

#운동앱추천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