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2019/08 글 목록 (2 Page)
2019. 8. 11. 14:04 미술 이야기

오늘의 '내 맘대로 작품보기'는 며칠 전에 다룬 '초록색의 이야기'와 연결이 된다.  

Armand Point (1860-1932), Reminiscing by the Pond (1893) oil on canvas ; 87.3 x 53.3 cm.

프랑스 상징주의자 아르망 프왕의 <연못가의 회상>(1893)이라는 작품.  오똑한 콧날이 돋보이는 옆얼굴의 아름다운 여인이 지긋이 눈을 감고 손에 든 아이리스 꽃 한송이의 향기를 맡으며 회상에 젖어있다. 그녀의 드레스는 물론 정원, 그리고 수목의 그림자가 드리운 연못까지 죄다 초록이다. 낭만주의적 분위기가 뿜뿜 풍기는 이 작품에서는 며칠전의 초록색의 치명적 독성이 연상되지는 않는다.  죽음을 연상시키지도 않고, 화면 속의 여인이 키르케와 같은 팜므 파탈인 것 같지 않다. 

페북에 게시된 이 작품 아래 누군가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를 떠올린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초록색을 입은 여인은 단연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가 으뜸.

Dante Gabriel Rossetti, The Day Dream (1880) oil on canvas ; 158.7 × 92.7 cm, Victoria and Albert Museum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8. 10. 15:50 미술 이야기

어느새 다섯번째 색깔 이야기 - 파랑에서 시작해서 자주, 빨강, 초록에 이어 오늘은 노랑.

참고로 이제까지 내가 언급한 색의 시리즈:

파란색의 역사와 티파니의 청록색

 

파랑색의 역사와 티파니의 청록색

구글 어스에서 마우스를 잘못 놀려 바다 쪽으로 커서가 움직여서 확대 화면이 되기라도 하면 컴퓨터 스크린에 검푸른 색만 가득할 때가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난 그렇게 화면 전체가 검푸른 색이 될 때 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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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혹은 자주색의 역사

 

보라색 혹은 자주색의 역사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제 파랑색에 관한 글을 쓰다가 자유연상 작용으로 오늘 보라색에 대해서도 쓰게 되었다. 어제 파랑색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색상이라고 밝힌 바가 있고, 나도 파랑색을 좋아한다고 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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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의 역사와 다양한 작품 이야기

 

빨강색의 역사와 다양한 작품 이야기

'빨강색'하면 머릿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붉은 장미꽃, 혹자는 아름다운 여인의 붉은 입술, 많은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있겠지만, 의외로 빨강색은 내가 좋아하는 자주색과 연관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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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그 치명적 색의 역사

 

초록색, 그 치명적 색의 역사

우연히 시작한 '색에 대한 이야기'의 네번째 시리즈 (?) [시리즈가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네번째니까 나름 시리즈] 봄에 돋아오르는 새싹과 새순들만큼 가슴설레게 하는게 또 있을까? ['신록'이라는 단어를 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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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색깔들을 차례로 써왔다면 오늘은 약간은 구색 맞추는 경향이 없잖아 있...

노란색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기는 왠지 그렇다 싶은데는, 지난 번 초록색에 대한 글을 쓰면서 잠시 언급했지만, 인쇄 체계에서 사용되는 CMYK에서 Y가 노란색이고, 삼원색에도 들어가는 것이 노란색이고... 많은 화가들이 사랑한 노란색이다보니 중요한 색이기도 하고, 말할 거리도 많고...  노란색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왠지 색깔의 이야기가 완결이 안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컬러인쇄의 기본이 되는 4색: 사이안 (cyan), 마젠타 (magenta), 노랑 (yellow), 검정색(key혹은 black). 이 네가지가 각각 혼합되어 2차색인 빨강, 초록, 파랑이 만들어진다. 

   

노란색을 사랑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화가로는 단연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이다. 그의 유명한 해바라기 시리즈는 대놓고 노란색이 많지만, 그 밖에도 그의 화면에는 노란색이 많이 사용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수많은 해바라기 시리즈 중 한 작품. 배경까지 노란색으로 한 작품. Vincent van Gogh (1853–1890), Sunflowers (F.458), repetition of the 4th version (yellow background) (August 1889)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1853–1890), The Night Café, 1888. Yale University Art Gallery, New Haven, Connecticut

워낙 유명한 화가이고 인기있는 작가이다보니, 그의 노란색 사랑에 대한 연구도 많았고, 그에 대한 글도 쏟아져 나왔다. 혹자는 빈센트 반 고흐가 ‘황시증 (Xanthopsia)’이라고 하는 안질환을 앓았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즉 노란색 필터 안경을 눈에 쓰고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은 증상을 앓았다는 것이다. 또 혹자는 그러한 황색에 민감한 그의 시각을 정신병과 연결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신병을 앓는 환자들이 유난히 황색을 즐겨사용한다는 임상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안과나 정신과나 내 영역을 훌쩍 벗어나는 분야라 뭐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빈센트 반 고흐가 사용한 노란색의 활기와 명료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에는 깊은 공감.

대중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미술계에서는 또 반 고흐 못지않게 노란색을 사랑했고, 탁월한 노란색의 발색을 화면위에서 구현했던 것으로 유명한 작가가 또 한 명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윌리엄 터너 (J.M.W. Turner: 1775-1851)이다. 연배상으로는 고흐보다 거의 80년 가까이 앞서는 선배이다.  오늘 날 19세기에 이미 정확한 형상의 묘사보다는 폭풍우가 치는 바닷가의 '분위기'만을 강조해서 표현함으로써 표현주의와 추상의 선구자로서 칭송받는 이 작가의 노란색 사랑은 각별하다. 

 

해양화가로도 잘 알려진 J.M.W 터너.  눈부신 노랑색으로 표현된 바다 위로 비추는 태양의 빛은 강렬하다.  
J. M. W. Turner, 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 (1838) oil on canvas ; 91 × 122 cm, National Gallery, London

특히, 터너가 사랑한 노란색은 '인디언 옐로우 (Indian Yellow)'라고 해서, 망고잎과 물만 먹인 소의 오줌에서 추출한 노란색이었다고 하는데, 이후 동물학대를 금한다는 이유로 생산이 중단된 색이라고.  (다이어트 한다고 한가지 음식만 줄기차게 먹어야만 하는 원푸드 다이어트 해본 사람은 알것이다. 한 가지만 먹고사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아름다운 색을 포기하더라도 소들이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살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화가들은 이 색상이 단종되는 것을 무척 슬퍼했다고 한다.) 

노란색에 대한 글을 적으면서 곰곰 생각해봤는데, 난 노란색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닥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굳이 노란색을 선택해야한다면 '겨자색'이라고 불리는 노란색 계열의 색은 좋아하지만 최우선으로 선택하는 색은 아니고 말이다. 내가 노란색에 감명받은 적은 단 한번. 어느 가을, 집 근처 공원에 외로이 서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 노란 은행잎이 죄다 바닥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노란색이 일종의 반사판 효과를 일으켜서 은행나무의 일대가 환해진 것을 본 때이다.  그 날은 조금 우울한 날이었는데, 그 광경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아!'하는 낮은 탄성이 흘러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 기분이 갑자기 확 밝아진 느낌을 받았던 기억도. 이후로도 노랑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때의 그 아름다운 풍광.  모르긴 몰라도 영화나 사진에서 이탈리아의 투스카니 지방의 가을 풍경도 노랑이 아름답던데, 기회가 되면 그곳을 여행해보고 싶다~ 작은 차 하나 몰고 구릉지를 오르고 내리며~   세상에는 다양한 노란색이 존재한다는 것을 참고하시라 표를 하나 올리며 오늘의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컴퓨터 해상도에 따라 색의 채도는 천차만별이니 참고하시길~

다양한 노란색의 종류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8. 7. 00:15 미술 이야기

우연히 시작한 '색에 대한 이야기'의 네번째 시리즈 (?) [시리즈가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네번째니까 나름 시리즈] 

봄에 돋아오르는 새싹과 새순들만큼 가슴설레게 하는게 또 있을까?  ['신록'이라는 단어를 썼더니, 학생들이 '연륜이 묻어나온다'며 꺄르르꺄르르] (정녕 너희들은 피천득 선생님을 모른단 말이냐!)   난 보라색 계열 중에는 검정색이 섞인 짙은 자주색 계열을 더 좋아하지만, 초록은 아주 쨍하고 선명한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자연속에서 발견하는 '신록'은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지만 말이다. 

물감으로 만드는 초록색이야 파랑과 노랑색을 섞으면 된다는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면 다 알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초록색에 대해서 좀 조사를 하다보니, 의외로 초록색은 화학과정에서 생산된 것이 많아서 놀랐다. 뿐 만 아니다. 초록색은 단순히 화학과정으로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화학 염료 중에서는 유독성이 가장 높은 색이라는 것이다.  영어로도 'green'은 “to grow”라는 의미의 동사“growan”에서 나온 단어일 뿐 아니라, '초록'하면 제일 먼저 딱 떠오르는 것이 나뭇잎이라 생명력과 자연과 관련이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말이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19세기 말 에콜 드 파리의 화가들과 파리지엥들이 사랑해마지 않았던 술 압생트, 이후 독성이 강해서 유통이 금지되었던 술의 색깔도 초록색이었다! 

 

반 고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전해지는 독성 강한 술 "압생트 Absinthe" 드가를 위시한 에콜 드 파리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도 자주 등장한 술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읽은 패션 관련 잡지에서 원래 패션계에서는 초록색을 금기로 여긴다는 글을 읽고 좀 의아했었던 기억이 났다. 어떤 배우가 행사장에서 초록색 드레스로 등장한 것을 '용기 있는 행동'으로 치부하면서 말이다.  최근 패션 관련 기사에서도 '금기에서 유행색이 된 초록색'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초록을 패션에서 금기한 역사가 깊은 모양이다.   

관련기사: Fashion’s most feared colour – how green went from taboo to trendy

2018년 S/S 패션을 소개하는 패션지의 사진 SPRING 18: GUCCI, MARNI, BALENCIAGA, LOEWE. IMAGE COURTESY OF VOGUE

그 잡지의 기사에 따르면, 패션 잡지에서 녹색을 꺼려하는 이유는 인쇄 기법 (CMYK printing)과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녹색을 금기시하는데에는 더 깊은 역사가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초록색을 처음 쓴 것은 고대 이집트인들로, 그들은 공작석 (Malachite)에서 녹색 염료를 추출해서 사용했다. 그들은 오시리스 신을 그릴때 얼굴을 초록색으로 그렸는데, '위대한 초록 (Great Green)'이라 불렀다 한다.  하지만 이들의 초록에 대한 인상은 이후 서구에 이어지지 않았던 듯 하다. 

오시리스 신은 전통적으로 얼굴을 초록색을 칠했고, '위대한 초록색'이라 불렀다고.

공작석은 르네상스 시대에도 계속해서 초록색의 염료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그 예가 페루지노가 사용한 <예수 탄생>(1503)에서의 목자의 셔츠에 사용된 초록색이다. 물론 뒤쪽 벽에도 톤이 다른 녹색이 사용되어 있다.  이후로도 초록은 오늘처럼 염료가 다양하지 않던 시절에 즐겨 사용되던 색상 중에 하나였다.  이는 19세기 말, 자연에서 모티브를 주로 따오던 아르누보의 예술 작품들 속에서도 계속 되었다. 초록은 자주 사용되었고, 이 경우엔 자연을 연상시키기 위해 사용되었음은 물론이다. 

Perugino, Nativity (1503) Museo Pinacoteca di S.Francesco, Montefalco, Italy  물론 모든 초록색이 악마를 그릴때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페루지노가 그린 <예수 탄생>의 장면에서 그의 탄생을 경배하는 목자의 의상에 초록색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사용된 것이 공작석이다. 
Michael Pacher (1435–1498), Saint Wolfgang and the Devil (1471-75) oil on panel ; 103 x 91 cm, Alte Pinakothek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초록색과 연상되는 것들이 그다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서구에서 악마는 초록색이었다. 일견 안정되고 안전한 것과 같은 색으로 위장하고 있는 악마는 우리가 악의 유혹에 쉽사리 빠질 수 있다는 것에서 생겨난 연상일까? 성인의 로브가 붉은색인 것에 선명하게 대비되는 악마의 초록색 피부가 인상적이다. 만약 이것이 동양에서 그려진 것이라면 성인이 초록색의 의상이고, 악마의 피부색이 붉은 색이 아닐까? (어릴적 내가 본 동화책 속에서 머리에 뿔이 나고 뾰족한 이를 가진 도깨비는 죄다 빨강색이었다.) 직접적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동양에서 나무와 숲, 산은 사색의 공간이자 도인의 거처이자 세속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공간으로 여겨졌지만, 서구의 숲은 마녀가 사는 위험한 공간이었다는 점에서도 서양인들의 사고 방식 안에서 초록색은 위험하고 악한 것이라는 연상이 자라왔나보다.  이러한 녹색 공포와 악몽은 18세기에 접어들면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화된다.   

1775년 스웨덴의 화학자 칼 빌렘 쉴르 Carl Wilhelm Scheele가 초록색의 염료를 발명하게 되고, 이를 '쉴즈 그린 (Scheele's Green)'이라 불렸다.  저렴하여 빅토리안 시대 널리 사용되었던 이 밝고 아름다운 초록색의 염료가 비소를 다량 함유하여 치명적 독성이 있었다.  일설에는 이 염료를 이용해 만든 녹색 벽지가 나폴레옹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하고, 녹색을 즐겨 입던 지체 높으신 공작 부인이 피부염을 앓았다는 기록도 있다. 

나폴레옹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Sheele's Green

일견 생명과 자연을 연상시키는 색이 실은 치명적 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치명적 매력을 가지고 있으나 결국 유혹에 빠진 남성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팜므 파탈'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 독소를 함유한 섬유, 그리고 그로 인해 연상되는 팜므 파탈. 이 때문일까? 소위 하이패션계에서는 매년 다양한 색상으로 새로운 유행색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초록색은 암암리에 오래도록 금기색이 되어왔었던 것이다. 

오디세우스를 유혹하였던 마녀 키르케가 독을 만들어내는 모습. 청명하게 맑은 초록색이 치명적인 독이 들어있는 것과 아름다운 모습의 키르케가 실은 냉혹한 마녀라는 것이 어우러져 신비로우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John William Waterhouse, Circe Invidiosa (1892) oil on canvas ; 180.7 x 87.4 cm, Art Gallery of South Australia, Adelaide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키르케 인디비오사> (1892)의 경우, 마녀의 대명사인 키르케가 동굴 속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며 물에 독을 섞는 모습을 매혹적으로 그리고 있다.  낭만주의적 성향의 라파엘전파의 경우 유난히 팜므 파탈의 이미지가 많다.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가 그린 프로세르피네는 대지의 여신의 딸로 너무 예뻐서 지하의 신이자 죽음의 신인 하데스에게 납치되었고, 그곳에서 석류알 4알 먹는 바람에 거기서 풀려나서도 일년에 4개월은 저승에서 머물러야했다. 팜므 파탈은 아니지만, 죽음의 세계와 깊은 연관이 있던 그녀가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건 당연해보인다.  예전에 초록색의 의미에 대해서 깊은 생각없이, 혹은 동양적 관념의 초록만 알고 작품을 봤을 때엔 존 에버렛 밀레의 <오필리어>(1851)는 오필리어의 죽음과 생명력 넘치는 자연과의 대조미로만 파악했었는데, 초록의 의미를 음미하며 감상하니, 그 초록색들 울창한 수풀이 죽음의 향기를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팜므 파탈은 아니지만, 일년의 4개월씩은 지하에서 머물러야할 프로세르피네가 녹색 드레스를 입은 것은 TPO에 적합한 듯하다.   Dante Gabriel Rossetti, Proserpine (1874) oil on canvas ; 125.1 x 61 cm, Tate Britain

 

예전에는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오필리어와 신선한 초록의 자연의 절묘한 대조가 그녀의 죽음을 더욱더 슬프고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고만 느꼈는데, 정작 존 에버렛 밀레는 초록이 지니는 죽음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하며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Ophelia (ca. 1851) oil on canvas ; 76.2 x 111.8 cm, Tate Britain

비슷한 시기에 쉴즈 그린의 대체물로 만들어진 패리스 그린 (Paris Green) 혹은 에메랄드 그린 (Emerald Green)도 독성을 갖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네가 노년에 실명을 하게 된 것, 세잔이 심한 당뇨를 앓게 된 이유가 이 초록색을 즐겨 사용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하니 말이다.  패리스 그린 혹은 에메랄드 그린...예술적일 것 같은 이쁜 이름에 걸맞지 않게 독성을 갖고 있었다니. 무엇보다 초록색 염료가 거의 예외없이 독성을 가지고 있었다니... 무서운 색이다.  

물론 최근에는 더이상 그런 독성을 지닌 염료를 사용해서 초록색을 만들지도 않을 뿐더러,점차  환경문제까지 더해져서 초록색이 환영받게 되었고, 패션계에서도 유행색이 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리라.  

컴퓨터의 해상도가 어디까지 협조를 해줄지 모르지만, 참고로 몇 가지 초록색을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Cobalt green 코발트 그린 

 

에메랄드 그린  Emerald Green

 

녹청  Verdigris    '베르디그리' 혹은 '녹청'이라고 번역되는 Verdigris는 원래 불어로  vert-de-Grèce, 즉 '그리스의 녹색'이라는 뜻이다. 고대 청동상이 오랜 세월 공기나 바닷물에 노출되는 경우, 녹색으로 변하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나의 경우, 이번 봄에 에메럴드 그린의 얇은 트렌치코트를 사서 초록을 만끽하며 봄을 보냈는데, 모를때엔 '신록'을 떠올리며 신나하며 입고 다녔건만, 녹색에 대해서 좀 알다보니 여러가지 상상의 나래를 펴며 생각이 복잡해진다.  (흠...그렇지만, 난 녹색 코트 '놓치지 않을거에요~')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8. 6. 00:15 미술 이야기

어제에 이어 지난달 7월 14일 양재 aT센터에서 열린 서울모던아트쇼의 뒤늦은 방문기 겸 '내 맘대로 작품보기'편 2탄. 어제는 임승현 작가의 작품을 소개했다. 

오늘은 권혜조 작가의 작품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사실 작품을 멀리서 봤을 때엔 판화 작품인줄로만 알았다. 화면의 질감이나 색감이 다색 판화의 그것과 비슷해서였다. 그런데 캔버스에 유채 작품들이라 그런 점에서도 특이했다.  나중에 이력을 읽어보니 판화 작업도 많이 하는 작가인듯했다. 전체적 색감은 수채화 같기도 하고, 목판의 질감도 느껴진다. 주제는 도시의 풍경인데, 독특한 색감 탓에 해질녁같기도 하고, 비오는 날의 풍경같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외로움이 묻어나는 화면인데 그 속에 고즈넉함과 따뜻한 느낌이 든다. 

비 갠 오후의 데이트 (2018)

 

해외 여행중의 스냅사진과도 같은 작품들

선과 색의 오묘하게 겹쳐서 어떨때에는 색의 역할을 선이 해내기도 하고, 어떨때에는 선의 역할을 색이 해내기도 하는 화면. 나무의 색과 결이 드러나는 액자와 조화를 이룬다. 예기치 않게 좋은 작품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8. 5. 15:29 미술 이야기

한동안 블로그에 글을 제때제때 못올리다보니, 약간 뒤늦은 업로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내 블로그가 발빠른 리뷰 프리뷰가 안되는게 결정적 단점이다.  한동안 할 일이 많은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블로그가 뒤로 밀리다보니, 차일피일하게되고 지나고 나서 보면 한동안 글 업로드가 뜸하게 되는 상태가 반복되는 것 같다. 앞으로는 시간을 할당해놓고, 좀더 규칙적으로 글을 올리도록 해야겠다고 급반성!  

지난 7월 14일 토요일 양재 aT센터에서 서울모던아트쇼에서 알게된 작가와 작품.  꽤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았던 모던아트쇼이지만, 그 쇼를 통틀어 개인적으로는 임승현 작가의 작품과 권혜조 작가의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기에 여기에 소개하는 바이다.  권혜조 작가의 소개는 담 기회에~

오늘은 임승현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요새 작품들의 경향이 전반적으로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 그리고 장식성이 강한 작품들이 대세인듯하고, 굳이 나누자면 이 작가의 작품도 그러한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유화 작품으로는 아주 독특한 질감이다 싶었는데, 알고보니 작가가 동양화를 전공해서 화선지에 유화로 작업을 한다 했다. 물론 개중에는 캔버스에 유화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어느 작품이고 색감이 독특하고 섬세해서 맘에 쏙 들었는데, 작품의 주제는 동심으로 돌아간듯 천진하고 순수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어린 시절 한번쯤은 해봤을 슈퍼맨 놀이.  소년시절의 순수한 동심을 포착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기법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왼쪽은 화선지에 유화를 그린것이고, 오른쪽은 유화를 나이프로 긁어낸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왼쪽의 그림이 어린시절의 추억에 대한 아련함이 더 묻어난다면 오른쪽 그림에서는 무르팍 성할 날 없었을 개구진 소년의 모습이 더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위의 두 작품은 어린 시절 한번쯤은 해봤을 슈퍼맨 놀이를 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소년시절의 순수한 동심을 포착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기법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왼쪽은 화선지에 유화를 그린것이고, 오른쪽은 유화를 나이프로 긁어낸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왼쪽 작품의 경우,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풍으로 그려진 소년의 모습에 옅은 흰색으로 그려진 꽃과 별, 구름 등이 더해져서 어린시절의 추억에 대한 아련함이 더 묻어난다면, 오른쪽 작품에서는 물감이 긁혀나간 자리가 만들어내는 질감으로 화면에 활기가 더해지면서 무르팍 성할 날 없었을 개구진 소년의 모습이 더 두드러지는 듯하다.   

나오는 길에 부스에 앉아 계시던 분에게 내가 작품에 대한 질문 몇 가지를 했는데, 왠일인지 아주 자세히 대답해 주신다 했더니 작가 본인이셨다!  작가의 직문직답을 받은 셈이다.  내가 블로그에 작품 소개를 해도 되겠냐 했더니 '그래주시면 제가 고맙죠'라며 흔쾌히 승낙. 사실 내맘대로 작품보기는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작품을 올리는거고, 나로선 편견없이 작품을 보고 그 감상을 적는 글의 연습코너 같은 곳이라 그렇게 물어본거기도 했는데... 정작 작가의 의도나 지향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가 그림을 읽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특정 작가를 홍보하려는 의도도 없이 그냥 '내 맘대로' 맘에 드는 작품들을 올려와 왔기에, 고마와하시는 작가분의 대응에 작가의 겸허함이 따뜻하게 묻어나서 고마우면서도 아주 약간 당황스러운 맘도 있었다. ('내 맘대로 작품보기'라는 코너 자체를 내가 뭐 그렇게 오랫동안 거창하게 많이 올린건 아니라서 괜찮을거 같긴하다) 

 

앙리 루소에게 사자가 있다면 임승현 작가에게는 코끼리가 있다. 그에게 있어서 코끼리는 일종의 수호천사 같은 것일까? 큰 상아를 가진 코끼리이지만 순둥순둥한 코끼리는 등에 태운 인물들을 태우고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줄 것만 같다. 

 

'동양화' '서양화'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매체와 주제에 대한 구분이 유난히 엄격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자유롭고 독창적으로 작품을 하는 작가를 만나서 기뻤다. 오늘 전시된 작품 말고도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서정성 넘치는 또 다른 작품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검색을 하다보니, 임승현 작가가 방송도 하는 모양이다. 알고보니, 한국의 '밥 아저씨'였나? 참고하시라 링크를 걸어둔다.  

https://youtu.be/BqKxnC7W9B4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8. 4. 17:39 일상 이야기

한동안 내팽개쳐뒀더니, 방울토마토는 웃자라고 곁자라고 가지가 엉키고 설키고 베란다의 빨래대까지 타고 올라갈 정도라 도저히 카메라의 한 화면에 담지 못할 정도로 크다. 그리고, 파종한 허브들은 그 사이 운명하신 것도 있고 나름 잘자란것도 있는데, 정성들여 키우질 못했더니 이쁘게 자라지는 못한거 같다. 

레몬밤, 라벤더, 바질. 중간에 비는 부분은 원래 로즈마리가 심어져 있었는데, 과습인지 다 운명하셨다. 더 풍성하게 자란다고 해서 가끔 윗부분 잘라서 차로 마시기도 했는데도 키는 많이 컸다. 무성한건 모르겠고. 레몬밤의 잎 끝이 거뭇거뭇한건 왜 그런지 모르겠다. 

 

지난 4월 처음으로 들였을때의 뽀송뽀송했던 모습. 지금보니까 라벤더는 수종이 달라보일정도로 이상하게 자랐다. 
지난 4월의 유칼립투스
오늘날의 유칼립투스.  성장속도가 더뎌서 크는 줄 모르겠더니 지금 처음이랑 비교해보니 얘도 꾸준히 꽤 자랐다. 뿌듯하다~

그리고 파프리카와 아보카도는 수퍼서 사서 먹고 씨를 뿌렸는데, 세상에나 싹이 엄청나게 자랐다. 파프리카는 원체 씨가 많으니까 뿌린 자리에서 너무 많이 나서 빈약한 애들은 뽑아 버리고 키웠는데, 그 중 하나에서 못생기고 작지만 파프리카 하나가 열려있어서 너무 신기했다. 

나의 생애 첫 파프리카 열매

그리고 아보카도는 씨 4개를 심어뒀더니 3개에서 싹이 났다. 한동안 뒀더니 한화분에서 너무 비좁게 크는듯 해서 엊그제 분갈이 해줬다. 지금까지 아직 새 화분에 적응하느라 잎이 축 쳐져 있긴 한데, 잎사귀 크기가 엄청 크다. 역시 열대에서 크는 애들답다.  이제 넓은데 이사했으니 쑥쑥 크기를. 

아보카도 3개 중 가장 잎이 큰 아이. 이파리 큰건 왠만한 사람얼굴만함.
아보카도 세 개 중 가장 키가 큰 애. 
토마토는 전체를 화면에 다 담기는 불가능해서 이렇게 부분 촬영. 가지를 잡다보니 손가락 모양새가 조금 이상한데 양해 바람. 

그 밖에 허브 중에서는 레몬밤과 페퍼민트가 제일 잘 크는 것 같다. 딜은 지나치게 웃자라더니만 지 크는 속도를 못이겼는지 지풀에 푹 쓰러지더니 그길로 운명. 그리고 아예 싹이 안튼 화분도 몇개 있다. 야로우라는 허브도 잘자랐는데, 잊고 안찍었고, 하나는 이름을 잊어버렸다. 담에 업뎃하는 걸로. 

레몬밤
페퍼민트

앞으로는 좀 더 신경써서 키워줘야지.  더운 날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너스 이미지.  워홀의 'Before & After' (1961)

Warhol, Before and After (1961) casein on linen ; 137.48 x 178.44 cm,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8. 4. 01:50 일상 이야기

사실 수확이라고 하기엔 미미하지만....  

작년 말에 뿌린 방울토마토 씨앗들 중에 단 하나의 줄기만 올 곧게 올라와서 어찌된 일일까 궁금했는데, 사실 올 봄 허브랑 여러 종류 파종하고 바쁜일이 계속 닥쳐서 미처 신경을 못쓰고, 때맞춰 물이나 주는 일도 겨우 할 정도의 나날이었다. 허브들은 거실 안쪽에서는 아무래도 기껏 싹만 틔우거나 아니면 웃자라기만 하는 것같아서 베란다 쪽으로 내놓고서는 자주 돌봐주지도 못했다. 그리고 가끔 물을 줄 때도 밤인 경우가 많아 사진 촬영도 용이하지가 않았다.  (오늘도 밤에 시도해서 몇 장 찍어봤으나 다 실패...)

오늘은 수확한 토마토와 허브만 한 컷!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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