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파프리카가 자라난 것을 보고 놀랐는데, 어제 보니까, 다른 화분의 파프리카도 놀랍게 성장했다! 이러다가 파프리카 농장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열악한 환경이다보니 슈퍼에서 파는 것처럼 가지런하게 자라지는 못하고 약간 삐뚤빼뚤하게 자라는데, 그래도 자그마한 열매가 하루가 다르게 열심히 자라나는 것을 보니 대견하고 너무도 귀엽다.
슈퍼에서 뿌린 씨앗에서 이렇게 자라다니 대견하기 이를데 없는 파프리카. 또 슈퍼에서 사먹고 뿌린 씨앗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삼형제가 있었으니 바로 아보카도~ 삼형제~ 네 개를 사서 먹고, 큰 기대없이 씨를 화분에 심어뒀는데, 그 중에 세 개가 자랐다. 각각 다른 화분에 분가시켜줬더니 개성을 마구 뽐내며 자라고 있다. 올 여름 크게 신경 못쓰고 그냥 물만 흠뻑 줬을 뿐인데 제법 잎사귀들이 울창하다. 몇 년 쯤 뒤엔 아보카도 수확기를 올릴 날이 올까? 우연히 시작하게 된 그리고 지금도 보잘것 없는 베란다 화단에서 매일매일 조그마한 기쁨을 맛본다.
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문화센터 수업을 듣는 수강생이거나 혹은 특강이나 전시 가이드에서 만나는 분들에게서 미술사에 대해서 좀더 공부하고 싶은데 추천해줄 만한 책이 있냐는 질문을 종종 받고는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을 몇 권 수업시간에 들고 가서 소개를 할 때도 있긴 했는데, 매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책을 늘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단 여기 글을 하나 남겨두고자 한다. 물론 관심분야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일단 미술사 분야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읽었을 책들 몇 권과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책 몇 권을 함께 소개해보고자 한다.
에른스트 H. 곰브리치는 미술사 분야에서는 인지심리학 분야의 권위자로 알려진 인물이지만, 대중들을 위한 미술사 개론서인 <<서양미술사>>, 원제대로 해석해보자면, "예술에 대한 이야기"라는 저서와 어린이들을 위해 출판한 <<세계사>>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특히 <<서양미술사>>는 미술사 개론서 분야의 성서라고도 일컬어질 정도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 셀러이다. 제목도 'History of Art'가 아닌 'Story of Art'이다. 제목처럼 무겁고 딱딱하지 않게 이야기하듯이 깊이 있는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를 평이하고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전혀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도 다소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정말 미술사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맘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해보는 바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은 여러차례 번역이 되었고, 문고판 양장판등 판본도 다양하다. 가장 도판도 훌륭한 최근 버전은 예경에서 나온 것이지만, 인근 도서관에서 빌려 볼 사람이라면 그 곳에 소장되어 있는 버전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이다. 나도 처음 미술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나중에 그가 미술사 분야에서도 권위자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더더욱 그가 자신의 전공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진정으로 미술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겸허하고도 아름다운 태도에 더욱더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어떤 분야든 경지에 오른 분들만이 내용을 쉽게 설명해줄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고...
대학의 교양 수준으로 교과서로 채택되는 책들로는 예전에는 H. W. 잰슨의 <<서양미술사 (원제: History of Art for Young People)>>가 있다. 잰슨의 미술사 책은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대학교의 미술사 교양과목의 교과서로 오랫도록 애용되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하면서, 서양의 백인 남성 지성인의 시선으로 씌여진 책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후 이 책 자체도 그러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 기존에 다루지 않았던 제3세계 미술이나 여성 미술 등의 분야들을 보강하여 증보판을 펴내기도 했다. 워낙 오랫동안 교과서로 군림했던 책이다보니, 한국에서도 여러차례 번역이 되기도 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원 책의 내용이 원체 방대하고 크기도 장난 아니게 크다보니, 한국에 출판될 때에는 편역이라는 이름으로 요약본이 주로 출판된 듯하다.
그리고 잰슨 책의 대안으로 교과서 류의 책들이 출판되는데, 그 대표적 예가 <<가드너의 시대를 통해 본 미술사 (Gardener's Art Through the Ages)>>와 매를린 스톡스태드 (Marilyn Stockstad)의 <<미술사 (Art History)>>가 있다. 대학 교재용으로 출판되는 책들은 매년 새로운 책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자주 새로운 에디션을 펴내는 편인데, 가드너 책은 최근 에디션으로는 16판이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미국에 있을 때에는 이 책에 대해서도 캐롤 스트릭랜드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들어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몇 차례 출판 관계자들로부터 이 책이 한국에서는 서양미술에 관한 개론서 중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스테디셀러라는 말을 들었다. 궁금한 맘에 몇 번 훑어보았는데, 개인적 소감으로는 이 책의 인기 비결은 '편집의 승리'라는게 개인적 소감이다. 이 책은 원본 보다 한국어판의 편집이 훨씬 더 잘되어 있다는데, 두 세 페이지 안에 각 사조의 특징과 미술사적 의의에 대한 요약이 실려 있고, 대표작가들과 그 대표작이 실려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따라서, 미술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이 책 한 권만 잘 읽고 나면 어느 정도 윤곽은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이 장점은 입문자가 선택하기엔 절대적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조금이라도 미술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개론서라고 꼽기에는 요약이 지나치게 되어 있다고 할까? 대표 사조와 그 대표작가, 대표작 만으로도 그 정도의 부피는 나올 것이니 일단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 그리고 개인적 소견으로는 그 책의 내용에 실린 내용이 소위 말하는 '카더라 통신'이 여과 없이 실린 것들도 있고, 그렇게 한정된 페이지 안에 굳이 그런 에피소드를 넣을 필요가 있나 싶은 것들도 있어서 좀 아쉬웠다.
폴 존슨은 유명한 역사학자이지만,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인물로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하다. 노 역사학자가 평생 취미와 직업 사이에서 연구한 결과물이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이 책은 내가 번역을 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책의 두께도 두껍고, 폴 존슨의 예술에 대한 내공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라 결코 손쉽게 읽어버릴 책은 아니다. 그리고 저자가 엄밀히 말해서 '미술사학자'는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미술사 책들과는 예술사조의 구분이나, 작품과 작가 선정에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개인적 사견이 가감 없이 담긴 점은 곰브리치의 저서와는 대척점에 이른다 할 정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학자의 식견과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미술사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
주변에서 요즘 볼만한 전시회를 추천해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 말을 듣는 빈도가 높을 때면, '아닌게 아니라 궁금하군!' 하는 맘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여기저기 나도 물어보며 물색을 해보곤 한다. 그러다가 좋은 전시다 싶은게 있으면 추천을 하고. 그런데 최근에 꽤 자주 전시회 추천 요청을 받았으나, 정작 다른 일들의 우선 순위에 밀려 딱히 찾아보지를 못했다.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소개를 살펴보고 전시도 보시고 하시라고 추천! 2012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도라고 한다. 아직 전시를 보지는 못했는데, 요새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공부와 강의를 하다보니, 현대 작가들에 대해 더욱더 관심이 가기도 하고, 한국 현대미술의 동향 및 현대작가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져서인지 이 전시가 궁금해졌다.
예술 분야를 예로 들어보자면,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도 어느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고, 소중히 여겨 작품은 물론, 그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고 보존해주지 않으면, 후대에 가서는 그 작가의 재능과 탁월함에 대해 알 길이 없다. 최근 페미니즘 관련 수업 준비를 하다보니, 결국 잊혀지거나 관심받지 못했던 여성 작가들이 후대에 가서 '발굴'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작가들에 대한 기록이나 작품들이 남아있을 때 이야기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으로 많은 페미니즘 미술사학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여성 작가라 하더라도, 그에 대한 작품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을 경우, 연구를 시작하는 것조차 용이하지가 않다는 것도.
그리고, 다이얼식 전화기나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처럼 불과 몇 십년 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당시에는 너무 당연히 다 알고 있어서 설명해두거나 기록할 필요가 없었던 것들도 불과 몇 세대가 지냈다고, '요즘 어린 친구들'은 도통 용도를 알지 못하는 물건도 많더란 것도 알게 되었다.
역사란 결국 사람들이 아끼고 기억해주는 것들이 모여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 와닿는 일러스트레이션.
올 여름엔 베란다 화단에 애정을 쏟지 못한 관계로 방울토마토의 경우, 겉자라기는 엄청 겉자라 울창하긴 했으나, 정작 열매는 많이 열리지 않아 다소 실망스러운 상태. 와중에 시들시들한 가지 끝에 매달린 방울토마토를 버리기 아까워서 가지만 꺾어 물꽂이를 해줬더니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발그스름하게 익어간다. 그 놀라운 생명력에 경의를!
그런데, 파프리카는 모종도 아니고, 사먹고 나온 씨들을 뿌려서 키웠는데, 놀랍게도 이쁜 흰꽃들이 피더니, 얼마전 보니 완두콩만한 열매들이 열린걸 발견! 엊그제 보니까, 제법 자랐다.
허브는 정작 씨뿌린 라벤더는 싹도 안보이더니, 빈약한 가지 하나 얻어 꽂아둔건 꽤 자랐다. 앞으로 계속 잘 자라길...
안시리움은 우리집에 온지 벌써 햇수로 4년. 원래는 조그만 잎들 밖에 없었고, 빨간 잎도 쪼꼬맸는데, 어느새 무성하게 크더니, 뿌리 근처엔 새끼 잎들도 생겨서 화분을 옮겨 주었더니 그것도 꽤 자랐다. 며칠전 보니 파랗게만 무성해지던 잎 중하나가 아주 선홍색으로 이쁘게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작은 화분에 옮겨준 새끼 잎들도 꽤 자라서 또 작은 잎들이 더 자랐다.
본격적으로 화단을 가꾸는 분들이 보면 가소로운 규모겠지만, 화단을 가꿔본 적 없는 나로서는 지난 수년 베란다에 늘여놓은 몇 개 안되는 화분에서 생장해가는 식물들을 보는 것은 경이롭고도 힐링이 되는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잘 키워봐야지.
"procrastination"! 발음하기도 힘든 이 단어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을 의미한다. 써야 할 페이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이퍼 쓰기를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가, 그 데드라인이 임박해져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책상 앞에 앉은 것까지는 좋은데, 불현듯 주변이 너무 지저분해 보여서 갑자기 청소를 시작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이 단어를 외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인생이 영원한 것도 아닌데, 계속 미루기만 하다가는 결국 시작도 못해보고 죽을 수도 있다. 매일 매일 조금씩이라도 해나가는 것이 거창하게 대단하게 해나가는 것보다 훨씬더 실현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시작하기 전에는 어마무시한 시간이 걸릴 것 같고, 엄청나게 힘들 것같아 보이는 일도 일단 시작하면 의외로 쉽게 빨리 끝날 수 도 있다. 지레 겁먹지 말고 일단 시작해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내맘대로 작품보기' 시리즈에 본격적으로 한번 올려본다. 이미 유명작가이신 분이라 새삼 소개하는 의미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 맘대로 작품을 올리는 거니까. 가을이기도 하고, 특히 올해는 매일 스치듯 지나가는 가을이 아니라 제법 길게 머무르는 가을이기도 하고... 자칫 지구가 멸망 (?)할 수도 있었다는 뉴스를 뒤늦게 접하기도 했고.... 한동안 유유자적한 여행 못가보기도 했고... . 자그마한 차에 짐 척척 싣고 맘 내키는대로 여행 떠나고 싶은 내맘을 알아주는 듯한 작품이다.
인기 작가인 것치고는 그의 홈페이지나 작품의 자세한 정보가 담겨있는 정보를 찾지를 못해 발견해온 화면 만으로 평가해보자면, 아마도 주로 아크릴릭과 판화 작품을 제작하는 듯하다. 자세히 보면 가로로 짧게 뻗은 붓자국이 힘찬 그의 화풍은 회화적이면서도, 자동차 부분에서는 단순화 시킨 선 탓에 일러스트레이션 혹은 만화 풍의 인상도 있다. 각각의 작품에 담긴 풍경은 다르지만, 짐 잔뜩 올려 실은 자그마한 자동차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때로는 너른 평야로 때로는 자작나무 가득한 오솔길로 유유자적 다니는 자동차를 보노라면, 그렇게 작은 차에 몸을 싣고, 올 가을엔 꼭 한번 계획없이 훌쩍 떠나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