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추수감사절' 태그의 글 목록
2019. 11. 21. 00:06 일상 이야기

우리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요만큼만' 이라고 바랄 정도로 더할나위 없이 좋은 한가위 명절 추석이 있다면, 미국에는 추수감사절이 있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미국은 매년 11월 4번째 목요일로 정하고 있기에, 매년 날짜는 달라진다. 우리 추석도 음력으로 쇠다보니 날짜가 바뀌니까 이점도 비슷하다면 비슷하달까?  

미국에 있을 때, 추석마다 가족과 친구들이 행여 타지에서 쓸쓸히 지낼까 연락을 해주곤 했는데, 그땐 오히려 미국에선 아무도 추석을 쇠지 않으므로 별반 느낌이 없었다. 물론 연락을 주는 가족과 친구와 수다 한마당은 벌이고는 했고, 엄청 반갑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 사람 모두가 쇠는 추수감사절엔 한국에서 연락 하나 없었고, 그럴때면 내가 타향에서 혼자 살고 있구나 실감하곤 했다.  물론 돌이켜보면, 추수감사절은 매번 학기 끝무렵이라 딱히 휴일이라고 여유를 만끽하기보다는 연휴찬스로 밀린 자료 조사며 페이퍼 쓰느라 정신없어서 외로워서 괴롭거나 할 틈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추수감사절 당일은 매번 추수감사절  만찬에 초대를 받곤 했는데, 이를 거절하기엔 예의가 아닌거 같아 초대에 응하고는 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땐 '아~ 이 바쁜 와중에~'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막상 아무에게도 초대받지 않고 나혼자서 숙제나 하고 앉아서 며칠내내 보냈다면 잠들다 베겟잎을 적시거나 벽을 박박 긁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미국 생활을 했던 곳은 텍사스 오스틴이었다. 그 곳은 그 지역의 말투자체가 강하고 특색이 있어 미국인데도 영어를 쓰지 않는거 같은 느낌조차 들 정도였고 지역색이 강한 곳이었다. 일단 주 자체가 엄청 크고 (전속력으로 달려도 주를 가로지르는데 10시간 이상은 걸린다), 그래서인지 모든게 규모가 컸다. 'Everything is Big in Texas.'가 공공연한 모토였을 정도.  내 선입견인지 몰라도 사람들도 토박이들은 평균적으로 좀 더 덩치가 큰 듯했고, 식당같은데서의 음식량도 어마어마했다.  그곳에서만 발상 가능한 추수감사절 요리 중 하나가 바로 "Turducken" 터~ㄹ더큰 이라고 읽는 이 요리란 과연 무엇일까?

어마무시한 크기의 터~ㄹ더큰 

그것은 바로 칠면조 (turkey) 안에 오리 (duck) 안에 닭 (chicken)을 한마리 씩 통째로 넣어 구운 요리.  이름하야 tur-duc-ken이다.  

처음에 슈퍼에서 아예 이렇게 조치를 마친 생 고기를 파는데 표지판에 turducken이라 적혀서 의아해하다 실체를 알고 엄청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서 친구들끼리 텍사스에서 생각해낼 만한 요리라고 웃었는데, 과연 이것을 처음 만들어 먹기로 한 곳이 텍사스인지는 확실하지는 않다.  혹자는 이게 cajun (루이지애나 지방에 정착한 프랑스인들) 요리라고도 하고, 혹은 야외에서 요리를 할 일이 많던 사냥꾼들이 개발한 음식이라고도 하는데, 정설은 없는 것 같다.  칠면조 중자 하나만 해도 대가족들이 몇끼를 먹기에 충분한 양인데, 꼭 '그렇게까지 해 먹어야 속이 시원했냐~!!'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뭐,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고 식욕도 식성도 다르니까.... 

 어쨌든 오늘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세상에 이런일이~'차원에서 글하나 올려본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명절하면 떠올리는 각종 전과 잡채, 갈비찜 등으로 풍성한 식탁이 맘을 풍요롭게 해주듯이, 커다란 칠면조 구이와 크렌베리 소스, 에그녹 등으로 가득찬 테이블과 부억을 가득 채운 음식의 향으로 고향을 떠올리는 미국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  혹 이 글을 읽는 한국에 있는 미국 친구들이 향수를 달랠 수 있기를 바란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9. 13. 05:21 미술 이야기

John Atkinson Grimshaw – November Moonlight (1883)

난 추석하면 무엇보다 보름달이 떠오른다.  어릴 때, 지방의 큰댁에 모였을 때 봤던 휘영청 밝은 달에 대한 기억 때문일까?  물론 그 때의 풍요롭고도 따뜻한 분위기를 사진으로 찍을 생각도 그림으로 남길 생각도 못했기에 지금은 낭만주의 풍의 (조금쯤 우울해보이는) 달 그림으로 대신하지만 말이다.  

Norman Rockwell, Freedom from Want (1943)

모르긴 몰라도, 미국 사람들 맘 속에 추석, 아니 추수감사절 (Thanksgiving)이라고 하면 노먼 락웰의 이미지가 떠오르리라.  그래서인지 추수감사절 시즌이면 수많은 매체에서 그의 작품을 패러디하곤 한다.

드라마 <모던패밀리>에서 락웰의 이미지를 패러디해서 Tableau vivant (살아있는 그림) 버전을 제작 
자고로 심슨즈가 패러디 하지 않은 작품은 명작이 아니다! 

맥락은 조금 벗어나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수확과 풍요를 관장하는 것은 데메테르 (혹은 로마 버전으로는 세레스)이다. [때로는 케레스라고 표기된 것도 봤는데, 아침마다 먹는 시리얼과 어원이 같다는 점에서 '세레스'라는 표기가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일텐데, 이번에 신화 공부를 하면서 찾아볼 때, 데메테르 여신에 대한 회화나 조각의 이미지가 많이 없어서 의외라 생각했다. 오히려 미모탓에 지하의 신 하데스에 납치된 페르세포네의 이미지는 차고 넘치는데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쁜 것은 중요하다)  

18세기 후반 도자기로 만든 세레스 여신상. 데메테르 혹은 세레스의 지물인 풍성한 이삭 다발을 쥐고 있는데, 때로는 풍요를 상징하는 과일이 담긴 뿔 (Cornucopia)을 함께 들고 등장하기도 한다. Porcelain model of Ceres with cereals by  Dominik Auliczek  of the  Nymphenburg Porcelain Manufactory , late 18th century

 

 

폼페이에서 발견된 세레스 여신을 묘사한 프레스코의 스케치, 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of Naples)  Pompeii in the Casa del Naviglio
2세대 라파엘전파에 속하는 프레드릭 레이튼의 작품 속에서도 데메테르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하데스의 꾐에 빠져 일년에 4개월은 지하로 되돌아와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어머니 데메테르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된 페르세포네.  Frederic Leighton, The Return of Persephone (1891) oil on canvas ; 203 x152 cm, Leeds Art Gallery 

페르세포네의 이미지로는 단연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회화에서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라파엘전파 화가들은 신화속의 여인들을 많이 그렸고, 그 중 프레드릭 레이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그의 그림 속 데메테르는 어디까지나 페르세포네가 구출되는 장면에 등장하는 조연이다.  

그녀의 운명을 바꾸어놓은 석류를 손에 쥐고 있는 페르세포네. 제목은 로마식으로 표기하여 '프로세르피네'라고 되어 있다. Dante Gabriel Rossetti, Proserpine (1874) oil on canvas ; 125.1 × 61 cm, Tate Britain, London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닥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심슨즈와 락웰은 중시했던,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더도덜도 말고 딱 요만큼만 하라던 풍요로운 추석이다.  즐거운 추석을 다들 보내시길 바라는 의미에서 짧은 포스팅 하나~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0. 08:00 미술 이야기

Norman Rockwell, Freedom from Want (1943) oil on canvas ; 116.2 x 90 cm, Norman Rockwell Museum, Stockbridge, Massachusetts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온 가족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네의 한 식탁에 모여들었다. 반가운 얼굴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는 가운데, 할머니께서 온 가족이 실컷 먹고도 남을만큼 커다란 칠면조 통구이를 내오셨다.  할머니께서 식탁에 큰 쟁반을 내려놓으시면 할아버지는 그 칠면조를 가족들에게 나눠주실 심산으로 그 옆에 서서 기다리고 계신다.  모두의 접시 위에 칠면조 구이 조각이 놓여지면, 할아버지의 주도로 기도가 이어질 것이다. 아름답고 행복한 가족을 주신 것과 생활에 부족함이 없게 살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한다는...... 


노먼 락웰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추수감사절'이라는 말을 들으면많은 미국인들의 뇌리에 이 그림이 떠오를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시트콤 '모던 패밀리'에서의 락웰 <추수감사절> 패러디  -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 - 다문화 가정, 동성애 커플, 청소년 문제 - 등을 다 가지고 있는 미국의 중상류층의 가정을 배경으로 한 코믹시트콤. 그런 가족이 보수적이며 온건한 미국의 중산층 가정을 대변하는 락웰의 <추수감사절>을 재현한다는 것에서 코믹한 요소가 배가되는 효과가 있다. 


대중적인 인기가 워낙 높은 락웰이었지만, 이 작품의 인기는 특히 높아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이후 수많은 패러디가 제작되었다. 락웰의 작품은 거의 다 '그림으로 그린듯한' 이상적인 미국인들의 생활상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화목한 가정을 묘사할 때 '노먼 락웰-같은 가족 (Norman Rockwellish Family)'라고 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락웰이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 현실의 어려운 면은 외면한 채, 설탕물을 바른 쓴 알약, 당의정같은 작품을 그렸노라 하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시절, 혹은 한번도 누리지 못했으나 가졌으면 했던 행복한 시절을 떠올리며 흐믓한 미소를 띄게 되는 그의 작품은 줄곧 인기가 높았다.      


이 작품은 '4가지의 자유' 중 하나 Freedom of Want (기본 의식주가 부족하지 않을 권리)의 주제로 그려진 작품이다.  [그 밖의 세가지로는 Freedom of Speech (언론과 표현의 자유), Freedom of Worship (신앙의 자유), Freedom from Fear (공포로부터의 자유)이 있다]  그리고, 시리즈로 제작되었던 작품은 아래와 같다.


Norman Rockwell, Freedom of Speech (1941-45) oil on canvas ; 116.2 x 90 cm, National Archives at College Park 


Norman Rockwell, Freedom of Worship (1941-45) oil on canvas ; 116.2 x 90 cm, National Archives at College Park 


Norman Rockwell, Freedom from Fear (1941-45) oil on canvas ; 116.2 x 90 cm, National Archives at College Park 


1941년 12월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연합군으로 참전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 해 1월, 루즈벨트가 '4가지 자유'라는 제목의 국회 연설을 하게 된다.  '세계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미국이 참전할 수 밖에 없다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락웰의 작품은 이러한 이데올로기, 즉, 당시 파시즘과 대조하여 민주주의가 더 우위에 있다는 것 강조하는 이념이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순회 전시되면서 전쟁 채권의 판매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John Currin, Thanksgiving (2003), oil on canvas ; 173 x 131 cm, Tate



위의 작품은 존 커린 (John Currin)의 <추수감사절>이라는 작품이다.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있는 화려한 저택, 세 명의 여인이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견 부유해보이는 이 저택의 식탁에는 그러나, 요리되어 있는 음식이 없다 - 생 칠면조, 껍질도 까지 않은 양파 한 알, 시들어가는 꽃이 꽂힌 꽃병, 빈 접시, 이러저리 널려있는 포도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여인들 중 어느 누구도 제대로 먹고 있는 인물이 없다. 한 명이 스푼에 뭔가를 담아 다른 한 명에게 권하고 있으나, 상대방은 받아먹으려는 것인지 그 스푼을 피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게 입은 벌리고 있으면서도, 목을 쭉 빼고 윗 쪽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추수감사절>이지만, 과도한 다이어트, 혹은 거식증을 이야기 하고 있다. 먹을게 없어서가 아닌 자발적인 기아. 존 커린이 자주 언급하는 '미의 기준'에 대한 언급이자, 현대인들이 과도하게 집착하는 '깡마른 미'에 대한 비판이다. 

이번 추석 우리 가족의 식탁은 어떤 모습일까?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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