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2019/04 글 목록 (2 Page)
2019. 4. 21. 00:10 일상 이야기

내가 자주 가는 곳의 주차장에 왠일인지 HELL이라고 적혀있어 처음엔 깜짝 놀랐는데, 차를 몰며 기둥을 지나면 그것이 HELLO라고 적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옥과 '안녕'이 O라는 알파벳의 한끗차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왠지 큰 깨달을 얻은 듯한 느낌.   

하지만, 여전히 기둥으로 가로막힌 곳에 굳이 'Hello'를 박아 넣은 센스는 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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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20. 00:10 미술 이야기

Antony Gormley, Another Time

 

https://sleeping-gypsy.tistory.com/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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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19. 00:10 옛날 이야기

조선 태조의 어진

옛날 우리집에 있던 전래동화집에서 읽은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하도 옛날 어릴 적 읽었던 내용이라 가물가물하긴 한데, 인터넷을 찾아봐도 자세한 이야기가 없다. 

이야기인즉슨, 옛날 어느 농부가 사주를 봤더니 왕이 될 사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농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왕이 될 날만을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왕이 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일을 하지 않으니 가세는 점점 기울었다. 결국 농부는 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이를 먹고 늙어갔다. 세상을 떠나는 날, 그는 '짐이 붕하신다. 태자 불러라'라고 하면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붕하다'는 임금이 돌아가시는 것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가물가물 하긴한데, 알고보니 왕과 생년월일과 생시가 같더라는 뒷이야기도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여하튼 집에 있던 그 책을 우리 가족 모두 다 읽었고, 그 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우리집에선 가족 중 누군가가 뭔가를 자꾸 미루면 '짐이 붕~하신다!'라며 '붕'에 리듬을 실어 큰 소리로 외치곤 했다.  그건 내 방 정리를 미루는 내게 엄마가 이야기 할 때도 있었고, 숙제를 미루는 우리에게 아빠가 이야기 하실 때도 있었고, 뭔가 맛있는 요리를 해달라고 했을 때 엄마가 '다음에~'라고 미루시면, 우리 형제들이 목소리 높여 외치기도 했었던 것 같다. 

예전에 정말 왕이 될 사주나 관상이라고 손가락 빨고 아무일도 안한 사람이야 있었겠냐 싶고, 오늘날에도 이를테면 재벌될 사주라고 집에서 재벌될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야 있겠냐마는, 크든 적든 자꾸만 '언젠간 ~을 할거야'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결국은 '짐이 붕~하신다'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간 정원이 넓은 집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며 여유있게 지내야지. 생각해왔는데, 그냥 내친김에 베란다에 작은 허브 화분들과 꺽꽂이 한 화분 몇 개를 만들어 정리해놨다. 언젠가 한국에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꽃꽂이도 배우고 본격적으로 필라테스도 배우고 하려고 했는데, 이번 봄에 본격적으로 하나라도 시작하려고 한다. 어차피 상황 다 갖춰지고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지는 때란 오지 않을테니까. 매일매일 조금씩 하나라도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지내야겠다. 

올해는 봄 날이 꽤 길어서 행복하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18. 00:44 영화 이야기

이전에 올렸던 내 인생 영화 <개같은 내 인생>에 대한 단상. 

https://sleeping-gypsy.tistory.com/40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17. 00:10 미술 이야기

Norman Rockwell (1894-1978), Going and Coming, 1947. Oil on canvas, 16" x 31 1/2". Cover illustration for The Saturday Evening Post, August 30, 1947  휴가 가기전 기대와 희망에 부푼 이들의 모습과 휴가지에서 하얗게 불태우고 난 뒤 집으로 향하는 기진맥진한 모습의 상태를 대비해서 보여주는 작품. 노먼 락웰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예리함과 인간 심리 포착의 뛰어남을 보여주는 예 

미술 비평가들은 '일개 일러스트레이터'인 노먼 락웰의 작품을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다시 봐도 그만큼 인간의 심리를 잘 포착한 작가도 사실은 드물어 보인다.  그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표지를 담당했던 시기 무려 47년. 1916년부터 1963년까지로 미국이 공황과 전쟁, 그리고 케네디가 암살을 당했던 시기를 다 아우른다. 개인적으로도 행복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락웰 스스로가 개인적으로는 우울한 기질의 소유자라고 했다고 하니 그가 표지로 그렸던 작품들이 '냉혹한 현실의 표현'이라거나 '작가의 자아나 실존의 표출'이 아니었음은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예술 작품이 다 그렇게 실존의 표명이라야만 한다는 규율은 또 어디에 있는가?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미국 소도시에서 소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미소를 머금었고 행복해 했고,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돌려 당의정을 입혀 표현한 작가라는 비판을 의식해, 자신은 주변 세상이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랬으면...하는 소망'을 담아 그린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후 'Look'이라는 사회성 짙은 잡지로 옮겨가서는 보다 사회비판적 작품을 그린 것을 보면 그러한 낙천적이고 소시민적 행복감 넘치는 그의 작품의 주제는 그가 표지를 담당했던 'Saturday Evening Post'의 잡지 성격에도 영향을 받았음에 분명하다.  때로는 '대한 뉘우스'급의 바른생활 어린이스러움이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 그의 유머와 위트, 세상을 보듬는 따뜻한 시선은 높이 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다음번 리바이벌 때에는 존 커린 (John Currin: 1962-)에 대해서 좀 써보기로 하련다. 

https://sleeping-gypsy.tistory.com/21

이하는 작년 추석을 맞이하여 올렸던 글.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16. 00:10 미술 이야기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15. 11:17 미술 이야기

깊은 우물 속 물 길러 올리듯, 목차가 일목요연하지 않은 내 블로그의 깊은 곳 글들 하나씩 다시 재게재하는 작업 중.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에는 주로 여성의 누드로 표현되곤 하는데, 아름다운 젊은 남성의 누드가 화면 전체를 차지하도록 그린 예외적 작품, '바닷가의 젊은 청년'에 대한 글이다.  

그리고 '차용' 혹은 'appropriation'이라고 불리는 고전을 '의미없이' 복사하는 작업에 대해서도 잠시 살펴보는 시간.  

Photograph after Flandrin's study by  Wilhelm von Gloeden

https://sleeping-gypsy.tistory.com/22

 

건강과 미의 상관관계-플랭드랭의 바닷가의 젊은이

흔히 미의 여신 비너스는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폴리트 플랑드랭은 청년의 누드로 지극히 고요한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바닷가에 올 누드로 저런 포즈로 앉아있었어야..

sleeping-gypsy.tistory.com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14. 00:10 일상 이야기

난 아일랜드 인이야~

이건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게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할 때 경험했던 일이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에는 ‘Where are you from?’이라는 질문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냥 한국에서 왔다는 말 해주고, 그러면 반드시 돌아오는 ‘Oh, I like Bulgogi!’ 혹은 ‘I love kimchi.’라는 뻔한 반응에 그냥 웃어주곤 했다. 물론 개중에는 자신이 잘가는 네일숍의 한국 점원들이 얼마나 자신의 손톱을 잘 손질해주는지 칭찬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들이 내 피부색만 보고 내가 ‘외국인’일 것이라 짐작하는 것 이면에는 잠재적인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나같이 완전한 외국인일 경우에는 덜하지만, 그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교포 2,3세가 느끼기에는 더 민감한 문제이기도 했다.   

어떤 한국계 코미디언은 그걸 코미디 소재를 삼기도 했다.

누가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으니까, ‘I’m from Chicago.’라고 하자, 그 사람이 다시 ‘NO. I mean, where are you from originally.’라고 묻는다. 그러자, 자신은 'originally'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해주며, 이번에는 그 한국계 코미디언이 그 백인 친구에게 묻는다. ‘Where are you from?’ 방금 똑같은 질문을 한국계 친구에게 했던 백인 친구는 다소 황당해하며, 자신이 어디 출신이라고 미국 도시 이름을 댄다. 그러자, 한국계 친구는 ‘NO! I mean, where are you from originally?’이라며 방금 그가 받은 질문들을 그대로 돌려준다는 내용이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아직도 정체성의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흑인인 경우 대부분 ‘originally’ 아프리카 출신일 것이고, 백인들의 경우 많은 이들이 'originally' 유럽 어느 나라에서 왔을 것인데, 유독 아시아계 사람들에게만 이방인이라는 편견을 갖고 대한다는 말이다.

나는 물론 명실공히 ‘한국인’이 분명하지만, 번번히 국적을 묻고, 그 반응이 기껏해야 자신들이 다니는 음식점이나 네일숍과 연관해서 말하는 것이 좀 지겨워지면서 내 나름대로 대응하는 농담을 고안해 냈다. 누가 나한테,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으면, 난 ‘I’m Irish. I mean black Irish.’ (난 아일랜드 사람이야.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럼 보통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곤 곧 그게 농담인 것을 깨닫고는 함께 웃곤 했다.   

하루는 내가 자주 가던 카페에서 일어난 일. 

그 카페는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자주 가던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카페였다. 한국의 대학가에 있는 이쁜 카페들에 비하면 왠지 낡고 다소 지저분하기까지 하달 수 있는 카페였지만, 그 도시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제공한다고 자랑하는 곳이었고, 벽을 둘러서 놓여져 있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는 차 한잔에 꽤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아주 잔뜩 멋을 낸 공간이 아니니만큼, 그 곳은 친구 집에 놀러온 듯한 편안함을 주었고, 벽에는 학생 혹은 어린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걸려있는 갤러리를 대신해 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는 예술적 감각도 지닌 그런 공간이었다. 위치가 위치인만큼 손님들로는 그 주변에 사는 주민들인 단골들이 많았고, 따라서, 맘만 먹으면 옆에 앉은 사람들과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실제로 아닌게 아니라, 그 곳의 단골들은 대부분 서로 알고 지내는 눈치였다. 나로서는 집에서는 잘 안되는 숙제나 번역을 하러 가는 곳이어서 그다지 옆의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오히려 내가 펼쳐든 '그림책'을 보고 '오~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네요. 누구 작품이에요?' 혹은 '미술을 공부하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서 간단한 대꾸를 해주며 예의바르게 '난 지금 바쁘다'는 사인을 보내곤 할 정도.) 

하루는 공부를 하려고 그 카페에 갔는데 마땅히 자리가 없어서 집에 다시 가야하나 망설이던 중에, 조금 큰 테이블을 혼자 차지한 사람이 있길래, 그에게 내가 합석을 좀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흔쾌히 자기 자리를 좁혀주면서 그러라고 했다. 왠지 개인적 공간을 침범한 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그 자리를 내 준게 고맙기도 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사람이 나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 묻길래, 내가 예의 ‘아일랜드 사람이야’ 그랬더니, 그 사람은 ‘아~’ 그러면서 납득하는 듯한 반응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오히려 좀 당황해서 ‘이 타이밍에 니가 웃었어야 한다’라고 했더니, 그 남자애는 ‘자기 절친 중 하나가 원래 한국 사람인데 입양이 되어서 국적이 아이리쉬’라고 했다. 아~ 그럴 수 도 있구나. 

미국을 ‘용광로 (melting pot)’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이후론 내 ‘아이리쉬’ 농담은 한동안 봉인해두었다는 전설이… 

한국에서는 자리값 비싼 카페에 공부를 하러가서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던데, 나로선 ‘고독’은 좋으나 ‘고립’은 싫은 그 심정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금방 비판을 못하겠다. 물론 한국에선 땅값도 인권비도 유명 카페의 권리금 같은 것도 내가 가던 그 카페에 비할바 아니게 비쌀테니 한국에서의 상황은 미국의 그것과는 엄청나게 다르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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