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Vincent van Gogh' 태그의 글 목록
2021. 6. 2. 18:29 미술 이야기

한동안 VR 시리즈를 블로그에서 계속하다가 느낀 소감을 적어봤네요. 

https://blog.naver.com/eunicemin/222381180033

 

VR 시리즈 - 최적화 미술관은 자연사 박물관이 아닐까?

제목 그대로다. 요새 VR 시리즈를 계속 진행하면서 관심 깊게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VR 이나 AR 기술...

blog.naver.com

Skin & Bones promotional video. 출처 https://youtu.be/7agVb4IG16M

 

https://vangoghexpo.com/miami/ "회화 속으로 걸어들어간다는 것을 꿈이나 꿔보셨나요. 이젠 가능합니다! 잔 고흐: 몰입하는 경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다. 예전엔 머리 속에서 가능했던 경험을 이젠 VR 기술이 대신하고 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20. 5. 1. 00:24 미술 이야기

의도한 것은 아닌데, 계속해서 반 고흐의 꽃 그림을 올리게 된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라는데, 무려 네번째!  이렇게 포스팅으로라도 꽃 놀이를 해서 소중한 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에 대한 보상을 해보겠다는 맘이다. 그리고 새삼 깨닫게 된다. 반 고흐는 정말 꽃 그림을 많이 그렸구나.   (이전의 반 고흐 포스팅 아몬드 꽃, 복숭아 꽃, 배꽃에 대해서는 링크를 참고)

정말 그렇다! 그래서 세계 유명 미술관 곳곳에 그의 꽃 그림이 안 걸린데가 없을 정도다.  상황이 그러하니, 그의 어떤 꽃 그림은 내가 본 적이 있는지 아님, 어디서 본 건지 알쏭달쏭 아리까리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의 제비붓꽃 그림은 전시실의 분위기도 기억날 정도로 확실히 기억난다. 가끔 그런 작품들이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가 그러했고, 이 블로그의 제목이 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가 그러했다).  반 고흐의 '제비붓꽃들 (Irises)'는 J. 폴 게티 미술관에서 봤다.  [난 붓꽃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포스팅을 계기로 찾아보고 화면에 나타난 꽃은 '제비붓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Vincent van Gogh (1853-1890), Irises (1889) oil on canvas; 74.3 × 94.3 cm, J. Paul Getty Museum

그리 대작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했던 규모보다는 꽤 큰 작품의 크기에 놀라고 화면 가득히 채운 꽃을 그려낸 힘찬 붓질과 생생한 색감에 놀라고,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제비붓꽃들>을 소개한다.  사실 제비붓꽃은 서양화가들이 많이 그리는 꽃의 종류는 아닌데, 반 고흐는 이 특이한 꽃을 꽤나 좋아했나보다.  그가 그린 또 다른 제비붓꽃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적인 제비붓꽃 그림이 미국의 동서부에 각각 한 점씩 있는 셈이다. 

핑크색 벽과 대조되는 바이올렛 빛깔의 붓꽃이 화려함을 더한다. 반 고흐가 사용한 분홍색은 변색이 심해서 오늘날 남은 작품에서는 거의다 흰색으로 보인다. 이는 아래 장미꽃을 그린 화병의 장미꽃 색들도 마찬가지.  Vincent van Gogh, Irises (1890) oil on canvas ; 73.7 x 92.1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위의 제비붓꽃이 가득 꽃힌 화병은 1890년 5월 그가 생 레미의 정신병원을 퇴원하기 전에 폭발적으로 그려낸 두 점의 제비붓꽃 화병과 두 점의 장미 화병 그림 중 하나다. 저번 포스팅에도 언급했듯이 그는 1890년 7월 자살인지 타살인지 논란 중인 총상으로 세상을 뜨게 되므로 이 작품은 그가 죽기전 두달 전에 완성한 것이다. 이 아름다운 작품과 함께 그가 그렸던 장미 화병 그림들 (아래 그림 참고)과 또 한 점의 제비붓꽃 화병 그림은 1907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그의 어머니가 소장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에 그가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 중에 그렸던 두 점의 장미 화병이 각각 한 점씩 소장 중이다.  Vincent van Gogh  (1853–1890), Roses (1890) oil on canvas ; 71 x 90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Vincent van Gogh, Roses (1890) oil on canvas ; 93 x 74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에 그가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 중에 그렸던 두 점의 장미 화병이 각각 한 점씩 소장 중이다.  Vincent van Gogh  (1853–1890), Roses (1890) oil on canvas ; 71 x 90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다시 제비붓꽃으로 돌아와 보자. 장미나 다른 화병의 꽃들도 즐겨 그린 반 고흐이지만, 그의 제비붓꽃은 여러모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비붓꽃을 그린 서양화가들이 그리 없기도 하고, 다른 꽃들보다 에너지면이나 색감면에서 단연 그의 제비붓꽃 그림은 독보적이라 생각한다.  아직 학술적으로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난 그가 그의 제비붓꽃 소재를 일본의 작품에서 따온게 아닌가 생각해왔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그의 제비붓꽃 화병 그림을 감명 깊게 보고 나서, 일본의 장식적인 미술을 대표하는 오가타 코린 (Ogata Kōrin (尾形光琳): 1658-1716)의 제비붓꽃 그림을 그린 대형 병풍을 연이어서 봐서 였을까? 금박을 배경으로 녹색과 청색을 아낌없이 사용한 그의 제비붓꽃이 리드미컬하게 펼쳐져 있는 병풍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Ogata Korin (尾形光琳), Irises at Yatsuhashi (left) (Metropolitan Museum of Art)
 Ogata Korin (尾形光琳), Irises at Yatsuhashi (right) (Metropolitan Museum of Art)

오가타 코린은 금박을 배경으로 제비붓꽃이 만개한 병풍을 수 점 제작하였고, 세계 각곳의 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다. 그리고, 이 제비붓꽃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그 얘기인 즉슨, '이세 모노가타리 (The Tales of Ise (伊勢物語))' 혹은 '이세 이야기'라고 하는 일본의 헤이안 시대 고전으로 와카라고 하는 일본의 시로 구성된 옛날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주인공이 신분이 높은 귀족 여성과의 연애가 발각되어 교토에서 추방되게 되었는데, 떠나는 길에 야츠하시 (8개의 다리) 위에서 연애시를 읊는다.

이세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병풍 속에 인물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 작품을 보면 일본 사람들이라면 이 꽃과 다리가 그 장면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반 고흐가 그 내용까지 알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고, 그가 고가인데다가 부피도 큰 이 금박 병풍을 직접 봤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그는 부채나 우끼요에 작품 같은 저가인데다가 이동이 용이한 작품들 중에 이 작품과 유사한 그림을 본 적이 있으리라 짐작해본다.   

Ogata Korin: Irisis, right screen, 151x360 cm. Ink, color and gold on paper, begin. 18th-century. Nezu Art Museum
Ogata Korin: Irisis, left screen, 151x360 cm. Ink, color and gold on paper, begin. 18th-century. Nezu Art Museum.

이로써 무려 네번에 걸친 반 고흐와 함께하는 봄 꽃놀이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느새 5월이다. 5월에도 꽃들은 피어 있을 것이고, 아직도 전염병에의 공포는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달을 맞아 기분 전환하고 활기찬 생활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20. 4. 27. 16:52 미술 이야기

지난 며칠 계속 반 고흐의 꽃나무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고 있다. (아몬드 꽃복숭아 나무) 오늘은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반 고흐의 꽃나무 한 그루를 올려본다.   이 작품을 그린 시기는 복숭아 나무와 과수원 그림을 많이 그리던 시기 1888년 4월, 장소도 마찬가지로 아를르 지방에서 그린 것이다. 그는 유독 아래 그림처럼 오도카니 한 그루 나무를 많이 그렸다. 

Vincent van Gogh (1853 - 1890), Small Pear Tree in Blossom (1888)  oil on canvas ; 73.6 x 46.3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저번에 언급한 것처럼 이렇게 전방에 뚜렷한 윤곽선으로 주제를 그리는 방식은 우끼요에의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몬드 꽃 참고할것) 하지만 그의 나무에는 왠지 모를 짠~함이 느껴진다. 주변엔 아무 것도 없이 혼자 서있는 나무. 뒤틀린 나무 줄기에 열린 꽃들은 아름답지만, 보통 그렇게 작은 꽃들이 모여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의 정취와는 좀 다른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꽃은 많아도 아름답고 홀로 피어도 아름답지만 말이다. 

 

위의 배 나무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꽃 핀 복숭아 나무>  Vincent van Gogh (1853 - 1890),  Peach Tree in Blossom  (1888), oil on canvas ; 50 x 37.5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20. 4. 24. 17:50 미술 이야기

며칠 전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 - 1890)의 <아몬드 꽃>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였다. 오늘 '내 맘대로 작품 보기'편은 저번 작품보기 보다 더 '내 맘대로~'의 취지에는 벗어난다.  이전에 몇 번 스쳐지나듯 봤을지도 못하는 이 복숭아 나무 그림의 뒷야기와 이와 연관된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1888년 4월1일 일요일자)를 요번 기회에 처음 읽게 되었으니, 오늘의 '내 맘대로 작품보기'는 '그림과 함께 편지 읽기'라고 이름 붙여야할지도...

지난번의 <아몬드 꽃>은 새로 태어난 조카에 대한 사랑과 어린 생명에의 축복과 희망으로 가득한 작품이었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는 작품이다. 비록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그린 작품은 아니지만 말이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반 고흐의 분홍색 복숭아 나무 (The Pink Peach Tree)  (1888)이다.  지난번의 작품과 비교하면 약간 작지만 비슷한 크기이고 같은 꽃나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색조면이나 붓자국의 면에서나 많이 차이가 난다.  (인터넷 상으로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의 이미지가 아래 띄운 이미지라 원래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 없음은 아쉽지만 감안하고 감상하시길.) 

 

자신에게 처음으로 화가의 길을 제시해주고, 그림을 가르쳐주었던 사촌의 남편인 안톤 모브에 대해 각별한 심정을 가졌던 것 같다. 그의 부고를 듣고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빈센트는 위의 작품 <분홍색 복숭아 나무>를 미망인이 된 사촌에게 자신과 동생의 이름으로 보낼 것이라 밝히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모브에 대한 추억> Vincent van Gogh, <Souvenir de Mauve (Reminiscence of Mauve)> (1888), oil on canvas ; 73 x 60 cm, Kröller-Müller Museum

반 고흐가 (자신의 환상 속의) 일본의 기후와 유사한 아를르 지방에 옮겨온 뒤, 그 해 봄에 그린 것이다.  반 고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겠지만, 그는 과수원을 주제로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반 고흐는 화려하고 커다란 꽃망울을 지닌 장미나 목단보다는 하나보다는 무더기로 모여서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라일락이나 배꽃, 아몬드 꽃, 그리고 복숭아 꽃과 같이 자잘한 꽃들과 나무들을 많이 그렸다. 

위의 작품 <분홍색 복숭아 나무>에 대해서는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1888년 4월1일자로 보낸 편지에서, 그 제작과정과 그림의 왼쪽 아래에 자신의 서명 위에 "Souvenir de Mauve"라고 쓰게 되었던 경위에 대해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빈센트는 위의 작품에 대해서,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야외에서 넓게 펼쳐진 과수원에 복숭아 나무들과 푸르른 하늘과 흰 구름'을 그렸노라 하면서, '이제까지 자신이 그린 풍경화 중에서는 제일 잘 된 것'이라 자부한다. 이 작품을 완성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그는 사촌으로부터 안톤 모브 (Anton Mauve: 1838-1888)의 초상화 한 점과 함께 그의 부고 소식을 받게 된다.  

안톤 모브는 헤이그 화파를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헤이그 화파는 프랑스의 바르비종 화파와 유사하게 야외의 풍경을 주로 주제로 다루었다. 이들의 화면의 색상에서 '회색 화파'로 불리기도 한다. Anton Mauve (1838-1888), Morning Ride on the Beach (1876) oil on canvas ; 45 x 70 cm, Rijksmuseum, Amsterdam

안톤 모브로 말하자면, 반 고흐의 외사촌의 남편으로 당시에는 꽤 알려진 화가였는데, 친절하게도 방황하던 반 고흐를 화가의 길로 인도해준 사람이었다. 1881년, 반 고흐는모브의 스튜디오로 옮겨가 그의 밑에서 그림을 배웠고, 그는 반 고흐의 생활을 돌봐줬다고 알려져 있다.  비록 그가 반 고흐에게 그림을 봐 준 것은 길어야 한달 남짓에 불과하기에 그 둘이 함께 지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처음에는 친절했던 그가 금세 차가워져서'는 반 고흐에게 더 이상 그를 돌봐줄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고 한다. 그게 그의 변덕인지 아님 반 고흐에겐 주변 사람들을 못견디게 하는 뭔가가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말이다. 모브의 입장에서 보면, 반 고흐는 '그림보다는 산책을 더 좋아하는' 게으르고 싹수 안보이는 청년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고, 혹은 당시 반 고흐가 사귀던 여성이 애 딸린 매춘부라 그러한 그의 사생활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에게 처음으로 화가의 길을 제시해주고, 그림을 가르쳐주었던 사촌의 남편인 안톤 모브에 대해 각별한 심정을 가졌던 것 같다. 위에 언급한 편지에서, 그의 부고를 듣고 빈센트는 감정이 격해져 '목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어서 자신이 막 완성한 그림 <분홍색 복숭아 나무>에 "안톤 모브에의 추억, 빈센트와 테오"라고 썼고, 미망인이 된 사촌에게 자신과 동생의 이름으로 보낼 것이라 밝히고 있다. (현재 작품에 Theo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나중에 빈센트가 지운 것이리라)

그러면서 편지에는 '내 생각에는 모브 씨에 대한 추억은 너무 심각한 것이 아니라 정답고 즐거운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하면서 이런 구절을 덧붙이고 있다. 

‘Don’t believe that the dead are dead.
While there are people still alive 
The dead will live, the dead will live’.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한 죽은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  /죽은 자는 (산사람과 더불어) 살 것이다. 죽은 자는 (산 사람과 더불어) 살것이다. 

위의 문구는 마치 반 고흐가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세상을 뜬지 무려 1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는 우리와 더불어 이 봄을 맞고 있다. 

1888년 4월에서 5월 사이 아를르에서 그렸다는 분홍색 배 나무.  빈센트는 비슷한 시기 복숭아 나무 그림을 두 점 그렸는데, 그 중 하나는 모브에게 헌정했고, 또 하나는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냈다.   아래 작품은 내가 찾아본 한도에서는 <분홍색 복숭아 나무>와 구도가 가장 비슷한데, 이 작품이 동생에게 본 작품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Vincent van Gogh (1853 - 1890),  The Pink Peach Tree  (1888),  oil on canvas ; 80.9 cm x 60.2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20. 4. 20. 18:36 미술 이야기

오늘 소개할 작품은 엄밀한 의미에서 '내 맘대로 작품 보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원래 '내 맘대로 작품 보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내가 사전 지식이 없이 우연히 맞닥뜨린 작품 중 맘에 드는 것을 따로 깊이 있는 조사를 하는 일 없이 내가 본 것과 직관에 기초해서 글을 써보자는 것이 취지였다.   그런데 오늘 올리는 작품은 내가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는 이유는....

이 봄 변변하게 흐드러지게 피는 봄 꽃들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지내는게 안타까워서 그림으로라도 상쾌한 봄 날의 공기속에 만개한 꽃을 만끽하며 그 설렘을 나눠보고자...

예전 학교 다닐 때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미술사나 미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나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화가로 빈센트 반 고흐가 '당첨'된 적이 있다. 그리고, '왜 우리 모두는 반 고흐를 사랑하는가?'라는 답없는 질문에 한동안 얘기에 열을 올리기도 했었다. 나로서도 반 고흐가 최애 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작품 중 몇 작품은 각별히 좋아해서 오늘 소개하는 그림은 한동안 스마트폰 커버로 사용하기도 했다. (꽤 거금을 주고 인터넷에 주문을 했는데, 내가 기대해 마지 않았건만, 실제로 받은 제품은  화면으로 봤던 쨍하던 청록색 하늘이 아니라 실망을 하긴 했지만! 거금 (?)을 들인게 아까워서)    

Vincent van Gogh (1853 - 1890),  <Almond Blossom> ( February 1890,  Saint-Rémy-de-Provence) oil on canvas ; 73.3 x 92.4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반 고흐 뮤지엄에 소장 중인 이 작품은 미술관 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1890년 2월  남프랑스 지방인 생-레미-드-프랑스에서 그려진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 소개할 작품은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네덜란드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 - 1890)의 <아몬드 꽃 (Almond Blossom)>(1890)이다. 1890년 2월에 그려진 이 작품은 그해 1월 31일 동생 테오와 그의 아내 조 사이에서 태어난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선물이었다.  동생 테오의 남달랐던 우애는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특히나 조카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딴 Vincent Willem van Gogh로 지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빈센트는 각별히 더 기뻤던 모양이다. 그의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 '조카의 이름을 자신들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지었어야 하는거 아닌가'하면서도 '그 소식을 듣자마자 위의 작품에 착수했다'고 알리고 있다.  청록색의 신선하고 청명한 하늘을 배경을 힘차게 쭉쭉 뻗은 가지 위로 아름답게 피어난 흰색 아몬드 꽃들은 새롭게 탄생한 생명에 대한 축복과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자연 속에 흐드러지게 핀 꽃나무는 빈센트 반 고흐가 좋아하는 주제였긴 하지만, 아몬드 꽃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던 듯 하다. 이미 2년전 그는 아직 추운 겨울임에도 싹을 틔운 아몬드 가지가 유리병에 담아 2점이나 그리기도 했다.  

Vincent van Gogh, Blossoming Almond Branch in a Glass (1888) Van Gogh Museum, Amsterdam

빈센트 반 고흐가 좋아한 것은 꽃나무 뿐 만은 아니다. 그는 유명한 일본미술 팬이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는 폭넓게 일본풍의 유행이 있었다. 이를 자포니즘 (Japonisme)이라는 명칭이 따로 있을 정도로 콜렉터와 애호가들 사이에 엄청난 인기였다. 빈센트 반 고흐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본 미술을 무지 사랑했고, 실제로 일본의 목판화 (우끼요에)를 상당수 수집하기도 했다.   <아몬드 꽃>에서도 일본 목판화의 영향이 보이는데, 주제를 근거리에서 확대해서 그림으로서 강한 윤곽선으로 표현된 가지들이 화면 밖으로 잘려져 나간 듯한 구도는 우끼요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히로시게와 같은 유명 우끼요에 작가들의 작품을 다수 모사하기도 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안도 히로시게의 우끼요에 목판화 작품을 유화로 모사한 작품. 한자를 알았을리 없던 반 고흐가 그려놓은 한자를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Vincent van Gogh, Japonaiserie Flowering Plum Tree (after Hiroshige) (1887) oil on canvas; 55 x 46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안도 히로시게의 에도 100경 중에서 30번째 작품인 <카메이도 매화 공원>. 판화 작품이다보니 소장처는 세계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Ando Hiroshige, Plum Park in Kameido (亀戸梅屋舗, Kameido Umeyashiki) number 30 in the series One Hundred Famous Views of Edo (1857), a woodblock print in the ukiyo-e ; 37 x 25 cm

 

사실 빈센트 반 고흐와 자포니즘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되어 있고, 그런 사전 지식 없이도 시각적으로도 영향이 너무 명백해서 오늘은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뭐 그가 애초에 아를르 지방으로 옮긴 것도 일본과 같은 따뜻한 햇살이 항상 빛나는 곳을 찾다가 가성비가 높은 아를르 지방에 정착을 하게 된 것이고,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작품은 궁극적으로 다 '일본적'이라고까지 천명한 작가이니까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는 습도 높은 일본의 기후를 지중해의 태양 가득한 기후로 만들어 버린 것은 그가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일본에 대한 환상의 결과물!)

이 <아몬드 꽃>이라는 작품을 오늘 선택한 것은 왠지 모르지만, 내가 이 작품을 접할 때마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찬란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는 내 맘까지 벅차오르는 듯하게... 물론 이와는 상반되게 역시 왠지모를 '처연함'도 함께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벅참과 쓸쓸함의 절묘한 조화가 나로 하여금 이 작품이 프린트된 스마트폰 커버를 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빈센트 반 고흐가 <아몬드 꽃>을 그린 것이 1890년 2월이고, 그가 생을 마감한 것이 같은 해 7월이니까, 이 작품은 그가 세상을 뜨기 전 불과 5개월 전에 완성한 작품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불태워서 그린 그림이라서 그런걸까? 아님 그건 그냥 남은자가 덧붙이는 쓸데없는 감상(感傷)적 감상(感賞)인건가?  

오늘의 내 맘대로 작품보기, 빈센트 반 고흐의 <아몬드 꽃>이었습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8. 10. 15:50 미술 이야기

어느새 다섯번째 색깔 이야기 - 파랑에서 시작해서 자주, 빨강, 초록에 이어 오늘은 노랑.

참고로 이제까지 내가 언급한 색의 시리즈:

파란색의 역사와 티파니의 청록색

 

파랑색의 역사와 티파니의 청록색

구글 어스에서 마우스를 잘못 놀려 바다 쪽으로 커서가 움직여서 확대 화면이 되기라도 하면 컴퓨터 스크린에 검푸른 색만 가득할 때가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난 그렇게 화면 전체가 검푸른 색이 될 때 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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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혹은 자주색의 역사

 

보라색 혹은 자주색의 역사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제 파랑색에 관한 글을 쓰다가 자유연상 작용으로 오늘 보라색에 대해서도 쓰게 되었다. 어제 파랑색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색상이라고 밝힌 바가 있고, 나도 파랑색을 좋아한다고 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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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의 역사와 다양한 작품 이야기

 

빨강색의 역사와 다양한 작품 이야기

'빨강색'하면 머릿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붉은 장미꽃, 혹자는 아름다운 여인의 붉은 입술, 많은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있겠지만, 의외로 빨강색은 내가 좋아하는 자주색과 연관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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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그 치명적 색의 역사

 

초록색, 그 치명적 색의 역사

우연히 시작한 '색에 대한 이야기'의 네번째 시리즈 (?) [시리즈가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네번째니까 나름 시리즈] 봄에 돋아오르는 새싹과 새순들만큼 가슴설레게 하는게 또 있을까? ['신록'이라는 단어를 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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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색깔들을 차례로 써왔다면 오늘은 약간은 구색 맞추는 경향이 없잖아 있...

노란색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기는 왠지 그렇다 싶은데는, 지난 번 초록색에 대한 글을 쓰면서 잠시 언급했지만, 인쇄 체계에서 사용되는 CMYK에서 Y가 노란색이고, 삼원색에도 들어가는 것이 노란색이고... 많은 화가들이 사랑한 노란색이다보니 중요한 색이기도 하고, 말할 거리도 많고...  노란색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왠지 색깔의 이야기가 완결이 안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컬러인쇄의 기본이 되는 4색: 사이안 (cyan), 마젠타 (magenta), 노랑 (yellow), 검정색(key혹은 black). 이 네가지가 각각 혼합되어 2차색인 빨강, 초록, 파랑이 만들어진다. 

   

노란색을 사랑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화가로는 단연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이다. 그의 유명한 해바라기 시리즈는 대놓고 노란색이 많지만, 그 밖에도 그의 화면에는 노란색이 많이 사용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수많은 해바라기 시리즈 중 한 작품. 배경까지 노란색으로 한 작품. Vincent van Gogh (1853–1890), Sunflowers (F.458), repetition of the 4th version (yellow background) (August 1889)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1853–1890), The Night Café, 1888. Yale University Art Gallery, New Haven, Connecticut

워낙 유명한 화가이고 인기있는 작가이다보니, 그의 노란색 사랑에 대한 연구도 많았고, 그에 대한 글도 쏟아져 나왔다. 혹자는 빈센트 반 고흐가 ‘황시증 (Xanthopsia)’이라고 하는 안질환을 앓았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즉 노란색 필터 안경을 눈에 쓰고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은 증상을 앓았다는 것이다. 또 혹자는 그러한 황색에 민감한 그의 시각을 정신병과 연결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신병을 앓는 환자들이 유난히 황색을 즐겨사용한다는 임상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안과나 정신과나 내 영역을 훌쩍 벗어나는 분야라 뭐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빈센트 반 고흐가 사용한 노란색의 활기와 명료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에는 깊은 공감.

대중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미술계에서는 또 반 고흐 못지않게 노란색을 사랑했고, 탁월한 노란색의 발색을 화면위에서 구현했던 것으로 유명한 작가가 또 한 명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윌리엄 터너 (J.M.W. Turner: 1775-1851)이다. 연배상으로는 고흐보다 거의 80년 가까이 앞서는 선배이다.  오늘 날 19세기에 이미 정확한 형상의 묘사보다는 폭풍우가 치는 바닷가의 '분위기'만을 강조해서 표현함으로써 표현주의와 추상의 선구자로서 칭송받는 이 작가의 노란색 사랑은 각별하다. 

 

해양화가로도 잘 알려진 J.M.W 터너.  눈부신 노랑색으로 표현된 바다 위로 비추는 태양의 빛은 강렬하다.  
J. M. W. Turner, 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 (1838) oil on canvas ; 91 × 122 cm, National Gallery, London

특히, 터너가 사랑한 노란색은 '인디언 옐로우 (Indian Yellow)'라고 해서, 망고잎과 물만 먹인 소의 오줌에서 추출한 노란색이었다고 하는데, 이후 동물학대를 금한다는 이유로 생산이 중단된 색이라고.  (다이어트 한다고 한가지 음식만 줄기차게 먹어야만 하는 원푸드 다이어트 해본 사람은 알것이다. 한 가지만 먹고사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아름다운 색을 포기하더라도 소들이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살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화가들은 이 색상이 단종되는 것을 무척 슬퍼했다고 한다.) 

노란색에 대한 글을 적으면서 곰곰 생각해봤는데, 난 노란색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닥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굳이 노란색을 선택해야한다면 '겨자색'이라고 불리는 노란색 계열의 색은 좋아하지만 최우선으로 선택하는 색은 아니고 말이다. 내가 노란색에 감명받은 적은 단 한번. 어느 가을, 집 근처 공원에 외로이 서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 노란 은행잎이 죄다 바닥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노란색이 일종의 반사판 효과를 일으켜서 은행나무의 일대가 환해진 것을 본 때이다.  그 날은 조금 우울한 날이었는데, 그 광경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아!'하는 낮은 탄성이 흘러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 기분이 갑자기 확 밝아진 느낌을 받았던 기억도. 이후로도 노랑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때의 그 아름다운 풍광.  모르긴 몰라도 영화나 사진에서 이탈리아의 투스카니 지방의 가을 풍경도 노랑이 아름답던데, 기회가 되면 그곳을 여행해보고 싶다~ 작은 차 하나 몰고 구릉지를 오르고 내리며~   세상에는 다양한 노란색이 존재한다는 것을 참고하시라 표를 하나 올리며 오늘의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컴퓨터 해상도에 따라 색의 채도는 천차만별이니 참고하시길~

다양한 노란색의 종류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4. 01:13 미술 이야기

며칠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에 대한 글을 올렸다.  그리고 그 때, 개별 작품에 대해서 하나씩 설명하도록 하겠다고 '공약'을 걸었다.  그 공약에 대해서 기억하는 사람이 있던 없던 일단 약속은 약속이니....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에 대한 글은 여기를 참고)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나 보통 순위처럼 아래쪽 순위부터 하나씩 올라가는 식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매일 그 순위에 있는 작품을 다루지는 못하겠지만, 순차적으로 하나씩 올릴 것이다.  두둥~  

먼저 오늘은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의 <의사 가셰의 초상> (1890)과 피에르-오귀스트 르느와르, <물랭 드 라 걀레트의 무도회> (1876)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저번에 밝힌 대로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2018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경매에서 팔렸던 작품 17위에 오른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과 20위에 해당하는 르느와르의 <물랭 드 라 걀레트의 무도회>는 1990년 경매에서 그해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인플레 고려 17)위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Dr. Gachet (1890) $82.5-millions (1990 Christie’s auction)  (현재 154.5-millions 상당) 같은 제목의 다른 버전은 오르세이에 소장 중인 작품. 이 작품은 2006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Gustav Klimt의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이 $135-millions로 기록을 깨기 전까지 경매 판매가 1위를 고수했다. 

인플레 고려 20)위 Pierre-Auguste Renoir,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oil on canvas; 78 × 114 cm. $78.1-millions (1990 Sotheby’s auction)  $146.3-millions  - 위의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과 함께 두 작품 모두 일본의 제지회사를 소유한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가 각각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구입하여 당시에 큰 뉴스거리였다.  


먼저,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은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1990년 5월 15일 크라마스키 (Kramarsky) 가족 소장이었던 작품을 일본의 제지 회사 재벌 (大昭和製紙)의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가 US$82.5 millions (대략 한화로 950억원) 에 구입하였다. [참고로 당시의 경매가를 오늘날 인플레를 감안해서 계산을 해보면 US$154.5 millions (대략 1750억) 상당.] 이 사이토 료에이라는 분은 다시 이틀후, 소더비 경매에서는 르느와르의 물랭 드 갈라트의 무도회 (Bal du moulin de la Galette)를 $78.1 millions (대략 898억원)에 구입하므로써 미술계의 큰손으로 우뚝 섰었죠. [오늘날 인플레를 감안해서 계산하면 이 작품 또한 약 US$146.3 millions (대략 1657억) 상당.]

위의 두 작품은 1990년 5월에 각각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경매에서 모두 일본의 제지 재벌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에게 판매되었다는 공통점 이외에도 두 작품 모두 다른 버전이 파리의 오르세이 미술관에 소장 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Dr Gachet (1890) Oil on canvas, 67 cm × 56 cm, Musée d'Orsay, Paris 2nd Version.

누가봐도 우울한 성격인거 같은 인물인 의사 가셰는 인기와 유명세 때문에 유독 ‘~카더라’ 통신이 많은 반 고흐의 삶의 끝자락에 화가에게 많은 의지가 되었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가셰 씨의 초상화 두 점을 비교해보면, 두 번째 버전으로 알려져 있는 오르세이 소장 중인 작품과 비교를 해보면, 필치나 색조, 그리고 세부 구도에 있어서 쉽게 구별이 된다.  

크기는 동일하지만, 두 번째의 현재 소재 미상의 작품 쪽이 필치나 색상 면에서 훨씬 더 공을 들여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책도 이 작품에만 그려져 있다. 첫 번째 작품은 초창기에는 잠시 위작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었다. 현재는 두 작품 다 명실상부한 그의 작품이라고 인정받고 있고, 이 작품이 가셰 본인이 소장 중이었던 작품이라고 밝혀졌다. 참고로 그가 들고 있는 꽃은 흔히 팍스 글러브 foxglove 라고 불리는 식물로 정식 학명은 디지털리스 digitalis라고 한다. 꽃이 아름다운 이 식물은 소량씩 사용하면 심장 질환 치료에 도움이 되지만, 다량 사용하면 독이 되기도 하는 식물이라고 한다. [미드 Psych에서 이 식물을 사용한 독살 사건 케이스가 등장하기도 한다] 아마도 여기서는 책과 함께, 동종요법 의사였던 그의 직업을 나타내기 위한 지물 attribute로 사용된 것이리라. 인물의 섬세하고도 우울한 성향은 ‘블루’한 자켓의 색상으로 방점 찍고 있다. 그리고, 턱을 괸 도상 역시 알베르히트 뒤러의 ‘멜랑콜리아’에서 나타나듯이 예전부터 ‘우울’을 표현하는 포즈이기도 하다.

Albrecht Dürer, Melencolia I (1514) 24 × 18.8 cm, Minneapolis Institute of Art

개인적으로는 첫번째의 작품의 가셰 씨의 표정보다 두 번째 작품에서의 표정에서 그의 우울함 뿐 아니라 섬세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통찰력도 함께 표현된 듯 해서 더 맘에 드는 바이다. 실제로 그는 반 고흐와도 친했을 뿐 아니라,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하였고, 예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가셰 씨 말고도 반 고흐가 의사 선생님을 그린 작품이 또 하나 있다. 엄밀히 말해 당시 인턴이었던 펠릭스 레이의 초상. 유명한 고흐의 귀 절단 사건 당시 인턴이었던 펠릭스 레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처치를 하면서 고흐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귀를 다시 봉합하는 수술까지는 못했긴 했지만 말이다. 그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반 고흐는 그의 초상화를 선사했는데, 정작 그 인턴 선생님은 작품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그 그림을 닭장 수리할 때 사용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그냥 ‘개나 줘버렷!’ 하는 심정이었을까? 남에게 줘버렸다고…. 훗날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현재 이 작품은 러시아의 푸쉬킨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 작품의 가치는 무려 US$50millions에 상당한다고 하니…. 역시 사람은 안목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Van Gogh, Portrait of Doctor Félix Rey (1889) oil on canvas, Pushkin Museum

반면, 자신도 아마추어 화가였던 폴 가셰 박사는 예술에도 조예가 상당히 깊었던 듯 하다. 반 고흐 뿐 아니라 당대의 ‘아직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훗날 미술사에 기리 이름을 남기게 되는’ 화가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가졌다. 참고로 아래의 그림은 세잔이 아직 화풍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의 작품 중 하나. 제목하여 <오브르에 있는 의사 가셰의 집>. 이 시기 세잔은 이 지방에 몇 개월 체재하면서 동료이자 스승 격이던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 등과 함께 가셰 박사와 예술에 관한 토론을 자주 가졌다고 한다.

Cézanne, The House of Doctor Gachet at Auvers (c.1873) oil on canvas 46 x 38 cm Musée d'Orsay, Paris

한편,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팔렸던 작품 20위를 차지한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걀레트의 무도회>(1876)는 어떠한가? 이 작품 역시, 앞서 밝힌대로 다이쇼와 제지 명예회장이었던 사이토 료에이가 <닥터 가셰의 초상>과 함께 1990년에 구매한 작품이다. 이전에는 유명한 휘트니 가문의 일원으로 영국주재 미대사를 역임했던 존 헤이 휘트니의 소장이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이 밖에도 공통점을 꼽자면, 유사한 구도의 동일한 제목의 작품이 오르세이 미술관에 소장 중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제3회 인상주의에 전시되었다고 하는데, 인상주의 화가이자 후원자 역할을 했던 구스타브 카이유보트의 소장이었다가 1894년 프랑스 정부가 구입한 후, 룩셈부르, 루브르를 거쳐 오르세이 소장이 된 것이다.

Pierre-Auguste Renoir,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Oil on canvas ; 1.31 m x 1.75 m, Musée d'Orsay

위의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의 경우, 첫번째 버전과 두번째 버전이 명확히 밝혀졌으나, 피에르-오귀스트 르느와르의 <물랭 드 라 걀라트의 무도회>의 경우, 경매에서 팔린 작품과 오르세이 소장 작품 중 어떤 것이 오리지널이고 어떤 것이 나중에 다시 그려진 그림인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은 상태이다. 반 고흐의 작품이 구도나 세부 묘사에서 확실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인데 반해, 르느와르의 작품의 경우 경매 작품의 크기가 오르세이의 소장품에 비해 약간 작은 것을 제외하고 구도 상의 차이는 거의 없다. 따라서, 인상주의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이 둘 중 어느 작품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육안으로 봤을 때, 경매에서 판매된 작품 쪽의 묽은 물감을 이용해서 빠른 붓놀림으로 유연하게 그려진 작품이라는 차이를 알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의 인상주의 사랑은 유별나기로 유명하지만, 특히나 당시 75세였던 이 일본 재벌의 인상주의 작품에의 열정은 남달랐다. 이 분은 자신이 죽었을 때 이 작품과 함께 화장을 시켜달라는 유언을 남기겠다 천명하기도 했는데, 이 말의 여파로 논란이 너무 거세지자, 부랴부랴 ‘그 정도로 내가 이 작품을 사랑한다는 뜻’이라며 그 말을 철회하기도 했다. 자신의 사후에 일본 정부나 미술관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어떠한 염원도 이뤄지지 못했다. 두 작품 다 1996년 그의 사후 비공개 경매로 판매 되는 바람에, 1997년 이후의 소장처가 묘연하다. 이후 2007년 리포트에 따르면 <닥터 가셰의 초상>은 1997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은행가이자 미술계의 또 다른 큰 손 Wolfgang Flöttl에게 판매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프뢰틀 Flöttl은 경제적 사정 때문에 그 작품은 진작에 매각했다고 밝힌 관계로 현재 이 작품의 구매자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바 없다. 르느와르의 작품도 스위스 소장가가 구매했다고만 알려졌을 뿐. 이 아름다운 작품들은 어느 누가 가지고 있을까? 특히 <닥터 가셰의 초상>의 경우, 가뜩이나 전설에 가까운 일화들로 가득한 반 고흐의 삶과 예술에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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